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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딸감을 자처한다-29화 (29/74)

〈 29화 〉 성녀님은 엄청나게 아프다고 합니다 (1)

* * *

성녀님은 엄청나게 아프다고 합니다 (1)

유리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과연 이 틀딱 꼰대가 자신에게 무슨 옷을 입히려고 들까?

개망신을 주려고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옷을 입힐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적 수치심을 주기 위해 속옷만 입고 다니라고 할지도 몰랐다.

유리의 눈에 김틀딱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세연의 선택은 유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말도 안 돼. 저, 정말로 이런 옷을 입으라고요?!”

“어. 너 졌잖아.”

“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요!”

“뭐가 심해? 그냥 무난한 옷인데?”

“요즘 아무도 이런 거 안 입는다고요! 롱패딩이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게다가 지금은 겨울도 아니잖아요!”

세연이 골라준 옷은 롱패딩이었다.

유리의 발목까지 덮어 버리는 검은색 롱패딩.

“응 너 졌잖아.”

“으으…….”

“애송이 넌 좀 보수적인 마인드를 배울 필요가 있어. 어린애가 그렇게 발랑 까져가지고 쓰겠니? 응?”

“틀딱 꼰대!”

“응 나 틀딱이야. 그러니까 빨리 입어.”

사실 세연이 롱패딩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극히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다.

복학하기 전까지는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

그런 세연이 생각하기에 유리처럼 발랑 까진 여고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은 롱패딩이었다.

“하 진짜 싫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유리였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의 내기에는 보증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껍질 기사가 이 더위에 롱패딩은 조금 심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차라리 시원한 옷을 입히는 게 어떠냐고 묻습니다.]

“껍질 기사님.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사도 정신 아닌가요?”

[껍질 기사가 헛기침을 합니다.]

[어서 약속을 이행하라고 말합니다.]

“힝…….”

유리가 교복 위로 롱패딩을 걸쳤다.

옷이 좀 커서 유리의 덩치도 커 보였다.

세연은 그녀의 지퍼를 끝까지 올려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벌써 더워요. 저 쓰러지면 책임지실 거예요?”

“밖에 돌아다닐 때만 그렇게 입고 다녀.”

“치…….”

그때, 세연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껍질 기사님. 여긴 대기실인데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 원래 배후신이랑은 대기실에서 얘기 못 하잖아요.”

[껍질 기사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

“음?”

예외가 있나 보지.

세연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언니. 다시 내기해요. 다음 딸감은 누가 되는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나야 손해볼 거 없지. 내가 계속 이길 테니까.”

“또 그 변태 같은 낙서 할 거예요? 솔직히 그건 반칙이잖아요.”

“이, 이제 그건 안 해!”

둘은 투닥거리면서 성훈이 묶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지난 3층 공략에서 성훈은 유일하게 부상을 입었다.

기절하는 게 일상이면서도 꽤 잘 버텨 왔는데, 그건 성훈의 탱킹 스킬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충격이 컸는지, 정신을 차렸음에도 골골대고 있었다.

그에 병문안을 가기로 한 것이다.

유리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병신!”

“…….”

“왜 답이 없어? 딸딸이 치고 있으면 죽여 버린다?”

유리는 마치 그런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호기심이 생긴 세연이 물었다.

“진짜 그런 적 있어?”

“네. 세 달 전인가. VR 끼고 야동 보고 있길래 폰으로 촬영한 다음에 100만원 받고 지워줬어요.”

“전에 돈 빌려달라고 연락 왔던 게 그거 때문이었나……. 근데 너 그럼 남자 꼬추를 처음 본 것도 아니잖아?”

“휴지로 둘둘 감싸고 있어서 안 보이던데요?”

“윽. 그만 얘기하자.”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간 둘.

딸딸이라는 말에 겁을 먹은 세연은 시야를 손가락으로 살짝 가렸다.

그러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어디 갔지……?”

“아직 다 낫지도 않았을 텐데…… 왠지 불길하다.”

*

오랜만에 정말 푹 잤다.

침대에서 자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1층에서 대충 식사를 해결한 나는 건물 밖으로 향했다.

거기서 왜인지 모르게 롱패딩을 입고 있는 유리와 마주했다.

“유리야. 너 왜 패딩을 입고 있어? 별로 춥지도 않은데.”

“……그런 게 있어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때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세연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나랑 내기해서 졌거든. 그 벌로 정조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지.”

“내기? 무슨 내기?”

“누가 네 딸­”

“?”

대답하던 세연이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화제를 돌렸다.

왠지 감추는 것 같아서 몹시 궁금했으나, 눈앞에 닥친 광경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크윽……. 하아. 너무 아파요…….”

“조금만 참으세요. 지혈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제 막 3층을 클리어하고 대기실로 들어온 자들이 있었는데, 중상을 입을 자가 있었다.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다 했더니, 학교 앞 유명 떡볶이집 사장님이었다.

“대충 지혈은 됐습니다. 근데 제 힘으로 부상을 다 치료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사장님을 도운 건 또 다른 플레이어였다.

아무래도 치유 배후신을 둔 자인 듯했다.

“이 마을에 의사 NPC가 있나요?”

“아뇨. 애석하게도 이곳의 NPC는 모두 죽어 있어서요.”

“젠장…….”

2층 대기실에서는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해주는 의사 NPC가 존재했었다.

여기도 의사의 집은 존재했으나, 그 역시 사망한 상태였다.

“부상이 심각해 보이시는데, 자연 치유하실 수 있을까?”

“아마 안 되겠지. 다음 공략에서 힘들어지실 거야.”

“치유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떡볶이 사장님을 치료할 만큼 유능한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높은 확률로 다음 층에서 사망할 터.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실 부상 이슈는 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우리 파티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라서 부상자가 성훈이 한 명뿐.

그마저도 가벼운 뇌진탕 정도로 보이지만, 다른 파티는 사정이 좀 달랐다.

손가락, 팔, 다리 등이 부러진 골절 환자.

자상으로 인해 커다란 딱지가 붙은 환자.

감염으로 인해 눈이 퉁퉁 붓거나 말 못 할 곳을 부여잡고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수두룩했다.

의사 NPC가 없다는 건 그만큼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강성훈? 너 왜…….”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울고 있었으니까.

“끄흑……. 제, 제발…… 도와줘 얘들아…….”

“???”

그것도 아주 서럽게.

*

성훈이는 우리를 마을 밖으로 안내했다.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건지 불안했지만, 목적지에는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너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냐?”

“나도 설명할 순 없어. 직감적으로 느낌이 오더라고. 여기에 내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어쩌면 머리를 다친 것도 운명일지 모르지.”

성훈이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이 녀석이 헛소리를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궤가 좀 다르기도 하고, 머리를 다친 직후기도 해서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결과적으로 딱히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성훈이는 그저 평소처럼 마하 10의 속도로 사랑에 빠졌을 뿐이니까.

“인사해. 이 마을에 살아계신 유일한 NPC이자, 신성한 성녀님이시자, 단 하나뿐인 나의 태양, 나의 달, 나의 별님이야…….”

“뭐래.”

우린 하나같이 성훈이의 말을 무시하고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신성함과 꼴림이 혼재하는 옷을 입은 여인이 누워 있었다.

“성훈 씨의 친구분들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편치 않아서…….”

“괜찮아요. 그냥 누워 계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에시트라라고 해요. 사람들은 저를 ‘성녀’라고 부르죠…….”

어쩐지 우유통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역시 성녀였구나.

원래 소설 속 성녀는 다들 가슴이 크잖아.

“성녀님이라면 사람을 치료할 수도 있겠네요?”

“네…… 하지만 보시다시피, 제가 많이 위독한 상황이라…… 콜록.”

성녀는 매우 아파 보였다.

그녀가 플레이어들의 상처를 치료해준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그때, 성훈이가 우아아앙! 하고 울며 성녀의 손을 붙잡았다.

“죽지 마세요 성녀님! 제가 어떻게 해서든 성녀님을 살려보겠습니다!!”

“콜록……. 정말 감사합니다……. 전 타고난 운명 때문에 혼인을 치를 수 없는 몸이지만, 만약 가능했다면 당신처럼 마음이 따뜻한 남자와 혼인했을 거예요……. 콜록.”

“사랑합니다 성녀님.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합…… 크흑!”

성훈이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비극적인 운명.

그 절절한 로맨스를 본 유리가 말했다.

“지랄.”

그와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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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 성녀, 에시트라 치료]

­성녀님이 엄청나게 아프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성녀님을 아프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성녀를 아프지 않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을 구하지 못하면 다음 공략이 힘겨워질 것입니다.

[공략 조건]

­성녀를 치료하여 대기실의 플레이어들을 치료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퀘스트는 최초 발견 파티를 제외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제한 시간]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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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쭉 읽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맞아?”

“안 될 것 같은데.”

우리 중 치료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는 없었다.

우리가 감당하기는 어려운 퀘스트였다.

하지만 성훈이는 절실한 듯했다.

“얘들아. 제발 부탁해. 성녀님을 치료하는 걸 도와줘.”

“하지만 치료 스킬도 없고, NPC들도 다 죽어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세연이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르긴 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특히나 성훈이는 그 눈빛이 정말 간절했다.

“뭐, 뭔데?! 뭐든 해줘! 성녀님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좋으니까 제발 부탁해!!”

뭐든 좋다고?

과연 그럴까?

나는 말로 답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내 좆을 가리켰다.

“그, 그건 뭐야? 팬티 안에 약이라도 숨겨 둔 거야?”

“내 자지는 여자를 건강하게 만들거든.”

“???”

모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진짠데 왜 그래?

내 좆은 약좆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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