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주머니 괴물을 잡아서 키워보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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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괴물을 잡아서 키워보자 (1)
염원의 층.
배후신의 생전의 염원을 대신 이루어주는 컨셉의 층이었다.
염원의 층을 클리어하면, 평소보다 큰 보상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배후신의 격이 상승하기도 한다.
[마녀 사냥꾼의 격이 상승합니다.]
[마녀 사냥꾼이 진명을 얻어 엘리자베스가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당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벼, 별말씀을! 하하……!”
엘리자베스는 우리가 염원의 층을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염원이 담긴 층에는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독수리 부족장이 엘리자베스에게 묻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염원의 층을 공략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말합니다.]
[엘리자베스가 흥미가 있다고 전합니다.]
저 망할 독수리 새끼.
우리 파티를 망칠 셈인가?
[독수리 부족장이 당시 상황을 묘사합니다.]
[그가 엉덩이를 흔들며 야한 신음을 흘립니다.]
[귀축 용사가 엘리자베스의 눈을 찌릅니다!]
[엘리자베스가 비명을 지릅니다!]
다행히 핑챙의 활약으로 우리의 만행이 까발려지는 것은 막은 듯했다.
이 틈을 타 선수를 치는 게 낫겠다.
“당연히 황제가 마녀라는 걸 밝혀냈죠! 확실히 아랫배에 음문이 있더라고요!”
사실 황제는 마녀가 아니었고, 엘리자베스 당신은 미친년이었으며, 당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블루투스 오나홀로 원격 강간하여 연속 절정으로 굴복시켰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엘리자베스의 격은 상승했다.
그것으로 세연이의 힘은 상당히 강해졌다.
16층부터는 세연이의 독주였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타락한 자들의 비명!”
끄아아아!
뜨거워어어어어!!!
살려……! 살려줘!!!!
세연이 스킬을 사용하자 사방에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귀를 찢는 듯한 괴성.
그에 우리뿐만 아니라, 오우거들도 귀를 막아야만 했다.
“순결의 불꽃! 처형인의 검!”
화르르륵!
검에 불꽃을 붙인 세연이.
연계 스킬로 그녀의 검이 두 배는 더 커졌다.
세연이는 두부를 자르듯 손쉽게 오우거들을 조각냈다.
“세연 언니 혼자서 무슨 게임 캐릭터 같네요…….”
“그러게. 우리도 강해지긴 했지만 세연이는 차원이 달라.”
“지금이라도 친하게 지내야겠어요…….”
“유리 넌 이미 늦지 않았을까?”
“아씨. 깝치지 말걸.”
세연이가 강해진 것은 우리 파티에 큰 호재였다.
나와 유리, 성훈이도 그녀의 강함에 특수를 누렸으니까.
[히든 상자를 찾아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스탯 포인트 +5]
[히든 보스를 처치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스탯 포인트 +10]
[압도적인 수준으로 층을 공략하셨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스탯 포인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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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스탯 포인트와 코인 등, 보상을 쓸어 담았다.
층의 난이도 상승보다 우리의 실력 상승이 더욱 가파랐다.
갈수록 공략이 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10층의 서큐버스 도시에서부터 굴러온 스노우볼이었다.
“와……. 어떻게 이 레벨에 이런 스탯이…….”
우리가 압도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대기실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동 레벨의 플레이어들 중 우리보다 강한 자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상태창을 확인한 한 남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당신들이 100층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네요!”
“100층이요?”
“탑의 끝이 100층이라고 하더군요. 소원을 이루어준다나 뭐라나.”
“아아. 그 커뮤니티에 떠도는 얘기요?”
“네. 맞아요.”
나도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 탑의 존재 이유.
우리가 싸우는 이유에 대해 추측한 글이었다.
버전이 굉장히 많고,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다지 신빙성 있는 얘기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재미로 가장 유명한 버전을 꼽자면…….
“이게 일종의 용사 오디션이라는 거죠. 배후신들은 이세계의 신들이고, 마왕에 의해 몰락한 이세계를 구하기 위해 용사를 뽑고 있다는 거예요. 100층에 다다르면 마지막 임무 수행을 위해 이세계로 이동되고, 마왕을 죽이러 가는 거죠.”
“남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이런 생고생이라니…….”
“그래도 그 끝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그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주려나?
그럼 난 세계 최고의 부자에다가 내가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는 건강한 신체, 내게 환장하는 초미소녀 100명을 부탁해야지.
그때, 성훈이가 소리쳤다.
“그럼 난 세계 최고의 부자에다가 내가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는 건강한 신체! 내게 환장하는 초미소녀 100명을 달라고 소원을 빌겠어!”
“…….”
씨발.
내가 강성훈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현타 오진다…….
그에 세연이와 유리가 얼굴을 구기며 성훈을 경멸했다.
“쓰레기.”
“병신.”
“머, 멍청아! 좀 더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란 말이다!”
나 역시 성훈이를 비난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성훈아…….
그때, 유리가 뒤통수에 두 손을 댄 채 휘파람을 불다가 말했다.
“난 소원 같은 거 필요 없는데.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거 알고 있으니까. 후후후.”
유리가 내 자지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슬며시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세연이와 성훈이는 나와 유리가 섹스했다고 알고 있었다.
유리가 떠벌리고 다닌 탓이다.
“아 또 섹스하고 싶다 기분 개좋았는데. 후후후.”
세연이를 보며 도발하는 유리.
유리야…….
너 섹스 안 했어…….
그냥 구멍에 넣었다 뺀 것뿐이야…….
*
탑의 25층이었다.
다행히 파티 총원이 4명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기에, 우리는 갈라지지 않고 쭉 함께할 수 있었다.
25층에 이동된 직후.
우리는 생소한 광경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콜로세움처럼 생긴 원형의 스타디움.
그 아래에 두 명의 플레이어와 여섯 마리의 괴물이 있었다.
“여긴 뭐”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민욱! 정민욱! 정민욱!!”
우리의 말소리는 엄청난 함성에 그대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별수 없이 우리는 정체불명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중앙에서 마이크를 든 남자가 외쳤다.
주머니 괴물 배틀 토너먼트의 결승전을 시작합니다!
주머니 괴물 배틀의 챔피언! 29회 연속 우승자! 길드 소속의 양훈!
과연 그는 30회 연속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맞서는 정민욱!
혜성 같이 나타난 신인! 무패의 성적으로 결승까지 올라온 괴물!
양훈의 독주를 끊어낼 최초의 비 길드 플레이어가 나올 것인가?!
지금 바로! 그 대결이 시작됩니다!!
“정민욱! 정민욱!!”
“길드 새끼들 다 죽여 버려!!”
챔피언 양훈.
도전자 정민욱.
사람들은 도전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저기 봐! 플레이어끼리 싸우는 게 아니야!”
세연이가 경기장을 가리켰다.
그곳에선 여섯 마리의 괴물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그저 지시를 내릴 뿐.
그래. 이건 마치…….
포켓몬스터 같았다!
이런! 정민욱 선수의 주머니 괴물들이 무참히 쓰러집니다!
세 마리 전부 머리가 터져 버렸군요! 아! 챔피언의 괴물이 시체 위에 똥을 싸고 있습니다!
허무한 결과였습니다! 이로써 양훈 선수가 30번째 챔피언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양훈 선수! 다음 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상대 선수의 모든 것을 박탈하시겠습니까?!
“……박탈한다!”
이로써 정민욱 선수는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코인과 무기, 아이템을 포함한 모든 물건을 두고 떠나주십시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괴물 트레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건 대충 알겠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 양훈이란 놈을 꺾어야 한다는 것도.
그때, 한 여자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안녕하세요?”
“도 안 믿어요.”
“네? 그게 아니라, 그쪽들 뉴비죠?”
“아, 맞아요. 방금 이동됐어요.”
“많이 혼란스러우실 텐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나를 유혹하는 그녀.
뭔가 수상하다.
왜 굳이 손발 벗고 뉴비를 도와줘?
그때, 성훈이 놈이 자석처럼 이끌려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인물 누님의 친절한 안내! 감사히 받겠습니다!!!”
“…….”
그렇게 우린 함께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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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25층]
세상에는 다양한 괴물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괴물을 조련하여 자신의 친구로 삼곤 하죠. 이곳에선 24시간 365일 주머니 괴물 배틀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를 대회에 출전시켜 싸움을 붙여 보세요.
[공략 조건]
주머니 괴물 배틀 대회에서 우승하시오.
※참고. 우승자는 26층으로 넘어가거나, 상대방의 모든 재산을 박탈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택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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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우리를 숲속으로 안내했다.
퀘스트 창을 통해 대충 감을 잡긴 했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조언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괴물들은 대부분 플레이어보다 강해요. 다행히도 야생 괴물들은 힘이 너프되어 있죠. 플레이어의 소유가 되면 야생 괴물들은 두 배 정도 강해져요.”
여자가 초록색 슬라임을 발로 뻥 차 버렸다.
그리곤 내 주머니를 빌려 슬라임에게 던졌다.
빛이 번쩍하더니 슬라임이 작은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봤죠? 이렇게 잡으면 돼요. 뉴비들도 늑대까지는 쉽게 잡더라고요. 좀 치시는 분들은 트롤도 잡고요. 참고로 전 오우거도 잡았어요.”
“일단 두들겨 팬 다음에, 이 작은 주머니에 넣으면 된다는 거네요?”
“맞아요. 치료는 센터에서 하면 순식간에 끝나니까요.”
참 비인도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괴물들은 포켓몬처럼 귀엽지가 않아서 죄책감은 제로였다.
그때, 느끼한 미소를 장착한 성훈이가 여자의 머리에 주머니를 대었다.
“고인물 누님. 전 당신을 잡고 싶군요.”
“으엑? 자, 잠깐!”
번쩍!
성훈이의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가고 만 고인물 여자.
설마 이게 될 줄은 몰랐는지, 성훈이도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여자는 곧 자력으로 주머니를 빠져나왔다.
“놀랐잖아요!”
“사, 사람한테도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진짜 기분 나빠. 2m 이상 떨어지세요……. 왜 나는 이상한 남자만 꼬이는 거야.”
“…….”
여자는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직 설명할 게 남았어요.”
“뭐죠?”
“당신들. 딱 보니까 되게 약해 보이네요?”
“네?”
“어리버리한 것도 그렇고……. 이 층을 돌파하려면 토너먼트에서 우승해야 하는데, 결승은 꿈도 못 꿀 팔자예요. 예선도 못 뚫을걸요?”
어쩐지 건방진 태도로 변한 그녀.
우리가 그렇게 좆밥처럼 보이나?
뭐, 우락부락한 모습은 아니니까.
사실 그녀의 도발은 딱히 감흥이 없었다.
주머니 괴물 배틀도 결국 플레이어의 힘이 중요하다.
더 강한 괴물을 잡으면 이기는 게임이고, 강한 괴물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건 강한 힘뿐이니까.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께 특별한 제안을 드리죠.”
여자가 자랑스러운 듯 우리 앞에 배지를 내밀었다.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죠. 저는 ‘길드’ 소속의 주머니 괴물 배틀 지부, 줄여서 ‘주괴배’의 간부, 최소라라고 해요. 여러분에게 특별히 제 부하가 될 기회를 드리겠어요.”
“?”
길드라고?
분명 10층에서 고창복 교수가 그랬지.
자신의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라고.
뭔가 냄새가 나는군.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세연이가 선수를 쳤다.
“싫은데요.”
“하. 건방지긴. 조건이나 들어보세요. 전 여러분이 더 강한 괴물을 잡을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물론 영입비도 드릴 거예요. 인당 100코인입니다. 아, 거기 날 희롱했던 남자는 50코인이에요. 당신은 좀 덜떨어진 것 같으니까요. 어때요? 이 정도면 완전 혜자죠?”
좋은 조건을 나열하는 최소라.
나는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최소라의 말이 개소리라는 걸 알아차린 낌새였다.
물론 성훈이는 빼고.
“고인물 누님! 전 코인을 받지 않아도 평생 누님의 노예로 살 수 있습…… 컥!”
“오빠. 약 먹을 시간이 지났네.”
유리가 성훈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최소라의 말이 거짓인 이유는 간단했다.
길드.
그 두 글자가 너무 구렸다.
도시의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플레이어들을 수탈한 고창복도 길드 소속이었고, 이곳의 챔피언이라는 양훈도 길드 소속이었다.
양훈은 26층으로 넘어가지 않고 상대의 모든 재산을 수탈하는 짓을 30번이나 이어오고 있는 놈이다.
최소라는 양훈의 부하일 테고, 이 녀석들 역시 고창복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을 누리려는 쓰레기겠지.
그런 조직의 말단 부하로 들어간다?
그냥 골수까지 빨리다가 버려질 뿐이다.
세연이가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하자, 코인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건 어때요? 내가 3,000코인을 줄 테니, 당신이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강한 아우라를 풍기며 쏘아붙이는 세연이.
내 친구지만 조금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의 기세였다.
그건 최소라도 마찬가지였다.
“풉. 3,000코인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리는”
그때였다.
세연이의 손에서 우르르 코인이 쏟아졌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황금의 폭포.
동전은 산처럼 쌓여 세연의 허리춤까지 왔다.
세연이는 코인이 많다.
존나게 많다.
온갖 숨겨진 보상을 독식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세 아닌데?”
“아…….”
최소라의 눈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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