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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딸감을 자처한다-55화 (55/74)

〈 55화 〉 주머니 괴물을 잡아서 키워보자 (2)

* * *

주머니 괴물을 잡아서 키워보자 (2)

코인.

그것은 탑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화폐였다.

음식과 옷 등, 필수품을 구입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재화였다.

그뿐만 아니라 유저간 거래에도 활용되었고, 특정 퀘스트를 활성화하는 데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만큼 사용처가 많았기에 길드는 코인을 벌어들이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길드 소속인 최소라도 이렇게 많은 코인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3,000이면 우리 지부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이랑 맞먹는데…… 혼자서 저렇게 많은 코인을 모았다고? 대체 어떻게?!’

3,000코인은 개인이 모을 수 없는 양이었다.

25층까지 팀빨과 난이도 운으로 올라온 최소라에게는 타당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을 벗어난 초인들이 존재한다.

세연도 그런 부류였다.

“사, 삼천…….”

“어? 진짜 내 부하가 되려고요?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저 부하 같은 거 필요 없거든요.”

“나, 나도 될 생각 없거든! 코인 좀 있는 게 뭐 대수라고! 뉴비 주제에 설쳐대지 마!”

최소라가 버럭 윽박질렀다.

그녀는 허리춤에 감아둔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가라! 타락한 나무!”

퍼엉!

주머니 안에서 커다란 나무가 튀어나왔다.

5m쯤 되는 나무에는 눈코입이 달려 있었고, 나뭇가지와 뿌리가 마치 팔다리처럼 움직였다.

“타락한 나무! 잎날 베기!”

우오오오오……!

스샤샥­

나무가 나뭇가지를 털어 잎날을 날렸다.

이파리가 마치 뾰족한 독침처럼 날아들었다.

그는 침엽수였던 것이다.

그에 성훈이 앞으로 나섰다.

“껍질화!”

투두두둑!

성훈의 피부가 두꺼운 각질처럼 변했다.

나뭇잎 침은 껍질 피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어느새 화살을 장전한 유리가 스킬을 영창했다.

“화살 독수리!”

피잉!

하늘로 날아간 화살은 커다란 독수리로 변했다.

독수리가 나무 괴물의 얼굴을 쪼며 괴롭혔다.

우오오오!!

온 신경이 독수리에 빼앗긴 상태.

그 틈에 세연이 날아올랐다.

“심판의 불꽃.”

화르륵!

활활 타오르는 검.

뜨거운 칼날이 나무 괴물의 몸통을 통과했다.

퍼석!

괴물은 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아……. 타, 타락한 나무가…….”

타락한 나무는 최소라가 목숨을 걸고 잡아낸 괴물이었다.

잡는 데에 소모된 기간만 무려 한 달.

그마저도 길드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렇게 간단히 쓰러지다니…….”

그런 나무가 쓰러졌다.

불과 30초도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타락한 나무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듯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첫 만남부터, 맛있는 밥을 함께 먹은 날들, 폭포수를 함께 맞아가며 수련한 날들, 서로를 끌어안고 잔 날들까지…….

타락한 나무는 최소라의 진정한 친구였다.

“나무야…… 미안해…….”

짧은 애도를 표한 최소라가 남은 두 개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남은 두 마리는 타락한 나무보다 약한데…….’

최소라는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더 싸우는 건 의미가 없다.

비굴하게 비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자들은 괴물 같이 강하다.

목숨을 위협했던 자신을 좋게 대해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튀고, 길드에 알리자!’

최소라가 주머니를 던졌다.

쿠오오오!

케륵 케륵!!

두 마리의 괴물이 튀어나왔다.

오크와 고블린이었다.

“얘들아! 시간을 벌어!”

쿠오옷!

케릇!!

충성스러운 괴물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도망칠 생각이었다.

남은 두 마리 괴물은 타락한 나무와 달리 약한 괴물이었다.

그래서 함께 쌓은 추억도 별로 없었고, 정도 딱히 들지 않았다.

‘약한 놈들은 이렇게라도 밥값을 해야지.’

한창 숲속을 달리고 있는 때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최소라가 잠시 무릎을 짚고 쉬었다.

바로 그때.

후웅!

“꺄아아악!!”

무언가 그녀의 목덜미를 채었다.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오른 그녀.

고개를 드니 아까 봤던 화살 독수리가 있었다.

‘좆됐네…….’

무력감에 몸이 늘어졌다.

*

최소라를 제압한 우리는 잠시 야영을 하며 작전을 세웠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정보 수집이었다.

“이름이 최소라라고 했죠?”

“네? 네네! 편하게 불러주세요. 헤헤…….”

“그 챔피언이라는 사람이 지금 제일 강하죠?”

“넵.”

“길드의 우두머리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길드의 우두머리는 누군지 아무도 몰라요. 탑 전체에 퍼져 있으니까요. 양훈님은 길드 소속 주괴배 지부의 지부장님이십니다.”

“양훈이란 사람 얼마나 강해요?”

“그건…….”

“우리보다 강해요?”

최소라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때, 세연이가 그녀의 뒤로 가더니 어깨를 붙잡았다.

“똑바로 얘기해.”

“히익……! 주, 죽이지 말아주세요!!”

손발이 포박된 최소라가 땅에 엎어지며 몸부림쳤다.

세연이가 어지간히도 무서운 모양이었다.

“세연 언니. 너무 겁주지 마세요.”

“내가 뭘 했다고…….”

“얼굴을 들이밀었잖아요. 언니는 좀 무섭게 생겼다고요.”

“하. 내가 뭐가 무서워? 밖에서는 다들 예쁘다고 난리였거든?”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어 시야를 차단했다.

유리와 세연이가 으르렁거릴 때는 서로를 못 보게 하면 효과적이었다.

“똑바로 말해봐요. 양훈이 강해요? 우리가 강해요?”

“뉴, 뉴비님들이 강하실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부장님이라고 해도, 타락한 나무를 그렇게 쉽게 쓰러뜨릴 순 없을 거예요…….”

양훈은 25층의 클리어를 가로막는 적폐다.

근데 우리가 양훈보다 강하다.

답은 나왔다.

“가서 양훈을 처리하자.”

“그래. 그럼 되겠네.”

주머니 괴물 배틀이고 뭐고, 그냥 양훈을 패 버리면 되잖아?

“그건 안 될 겁니다…….”

“왜요?”

“도시 안에서는 플레이어들끼리 싸울 수가 없거든요. 그게 가능했다면 길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작 쿠데타를 일으켜 지부장님을 때려눕혔겠죠…….”

그런 규칙이 있다면, 양훈을 도시 밖으로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겠네.

역시 괴물을 잡으러 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근데 양훈은 왜 26층으로 안 넘어가는 거예요?”

“지부장님이니까요.”

“그러니까 지부장이 뭐하는 사람인데요?”

“길드에 대해서 모르세요……?”

최소라는 우릴 무슨 원숭이 보듯 했다.

15층 이후로 여러 층과 대기실을 겪어왔지만, 우리가 만난 플레이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길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건 서큐버스 도시 때가 마지막이었다.

“길드는 플레이어들의 연합이에요. 플레이어들의 공략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죠.”

“웃기시네. 우리가 만난 길드원이란 놈들은 다 쓰레기였어.”

세연이의 말이 맞았다.

고창복 교수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뇨. 공략을 돕는 건 맞아요. 다만 길드가 돕는 플레이어가 우리가 아닐 뿐이죠.”

“?”

“여러분은 모든 플레이어가 이 탑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보세요?”

“그건 아니죠.”

“길드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들만 지원하죠. 우리 같은 하층민들이 해야 하는 일은 층 구석구석에 흩어진 코인과 아이템을 모아 최상위권으로 지원하는 일이에요. 그게 하층민의 소명이자 의무죠.”

“최상위권이라는 건 누가 정하는데?”

“그야 당연히 길드죠.”

“…….”

취지는 좋다 이거야.

근데 왜 최상위권을 너희들 마음대로 정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길드를 싫어하지.

“어쨌든, 이 정도면 됐네.”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뉴비의 등을 처먹을 때는 꼭꼭 조심할게요!”

“뭔 개소리세요? 풀어준다고 한 적 없는데요?”

“히익!”

최소라가 자신의 목을 감쌌다.

여긴 도시 밖이라서 PK가 가능했다.

하지만 죽인다고 한 적은 없는데…….

“죽이지도 않을 거예요. 아직 물어볼 게 남았으니까요.”

“뭐, 뭐죠?”

“여기서 제일 강한 괴물이 사는 곳이 어디예요?”

직접 맞짱을 뜨든, 주머니 괴물을 잡아 맞짱을 붙이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양훈보다 강한 괴물을 손에 넣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왕 잡을 거라면 존나 짱 센 괴물이 좋잖아?

최소라가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아마 우리가 골로 가 버리는 상상을 한 것 같았다.

참 속마음을 못 숨기는 사람이다.

“숲 너머에 커다란 화산이 있어요. 그곳에 날개 없는 드래곤이 살고 있죠.”

“오. 개쩐다.”

“녀석에게 당한 플레이어만 세 자릿수가 넘을 거예요. 다들 뛰어난 플레이어였지만 모두 사라졌죠. 길드에서도 정예 플레이어 파티를 꾸려 레이드에 나섰지만 결과는 참혹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라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행운을 빕니다!”

내내 우중충한 얼굴로 겁을 주던 최소라가 주먹을 불끈 쥐며 화이팅을 불어넣었다.

“고맙습니다! 이제 같이 가죠!”

“예! 예……? 가, 같이 가자고요……?”

“네. 길잡이가 필요해서요.”

“…….”

최소라는 사색이 되어 침묵했다.

날개 없는 드래곤이라는 게 엄청나게 강한 건 사실인가 보네.

“사,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뭐, 여차하면 도망가면 되니까……. 다들 괜찮지?”

“오빠 계획이니까 좋아요.”

“어정쩡하게 하다가 전 재산 털리는 것보다는 낫지.”

“소라 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 꼭 붙어서 지켜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우린 숲 너머의 산으로 향했다.

*

최소라는 공포에 떨며 산에 올랐다.

화산 지역은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괴물들이 나오는 곳이었다.

화산에 들어간 사람 중 돌아온 이는 겨우 1%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나 화산에 대한 공포는 곧 사람에 대한 공포로 바뀌었다.

서걱­

퍼석!!

세연의 검과 유리의 화살은 적들을 너무나도 쉽게 쓰러뜨렸다.

단단하기로 소문난 암석 트롤을 해치우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성훈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최전방에서 괴물들의 어그로를 끌어 탱커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괴물들인가……?’

이젠 누가 괴물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도 날개 없는 드래곤 앞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그들이 소리쳤다.

“강성훈! 석화해!”

“윽…… 알겠어!”

“이진현! 넌 딸딸이 쳐!”

“오케이!”

능숙하게 딸딸이를 지시하는 세연.

순간 최소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딸딸이?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놀랍게도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진현이 바지를 벗고 자지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세연아! 옷 좀 벗어줘!”

“아씨. 잠시만!”

“유리야 너도!”

“이럴 줄 알고 바니걸 복장 준비했어용♡”

세연은 비키니 차림.

유리는 바니걸 차림이 되었다.

진현은 그 둘을 보며 신나게 딸딸이 쳤다.

정신없이 싸우다 말고 갑자기 음란 행위라니……?

“소라 씨!”

“윽…… 저, 저요?”

“거기 가만히 있지 말고 좀 도와요!”

“뭐, 뭐를요!”

진현이 가방에서 천쪼가리를 꺼내 던졌다.

그건 비키니였다.

젖소 무늬가 그려진 천박한 비키니.

“그것 좀 입어주세요!”

“???”

딸감을 자처하는 두 여자.

당연하다는 듯 자신에게 젖소 비키니를 입히려는 남자.

‘이게 대체…… 뭔 씨발스러운 상황이야……?’

최소라는 너무 어지러워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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