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규격 외의 괴물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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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의 괴물들 (2)
아케찰파는 야만 용사 같은 모습이었다.
민머리에 우락부락한 몸.
반쯤 나체인 차림.
손에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으윽. 머리가…….”
그의 모습을 살피던 나는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작은 칼날이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후신의 위엄에 정신이 피해를 입습니다.]
[마나를 소모하여 피해를 최소화합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나를 소모해야 한다는 설정이었다.
최대한 보지 않아야겠네.
근데 전에 핑챙 여신을 볼 때는 안 이랬는데?
위엄이란 게 없는 배후신이라서 그런가?
대체 얼마나 허접한 신인 거야?
“나 아케찰파! 너 만나서 반갑다!!”
어딘가 바보 같은 말투.
하지만 진짜 바보는 아니겠지.
“왜 절 불렀죠? 머리 아프니까 본론만 하죠.”
“너 당돌하다! 마음에 든다! 아케찰파! 네게 관심 있다!”
씨발.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근육맨 씨.
“아케찰파의 밑으로 들어와라!!”
“밑으로 들어오라니요?”
“귀축 용사 배신하고! 나와 계약한다!”
핑챙을 배신하라고?
핑챙이 주는 능력은 죄다 좆 같은 데다, 그녀가 허접한 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내게 기회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정이 있는데…….
근데 정이 뭐가 중요해?
아케찰파는 힘 좀 쓰는 배후신으로 보인다.
아마 갓 진명을 얻은 마녀 사냥꾼, 엘리자베스보다도 훨씬 강하겠지.
무엇보다 아케찰파의 플레이어가 되면 더 이상 딸딸이를 치지 않아도 된다.
“아케찰파! 힘 센 배후신이다! 나보다 센 배후신! 탑에 별로 없다! 너! 아케찰파와 함께하면! 100층도 간다! 100층에서 소원 이룬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진짜라고요?”
치이이익!
그가 숫돌을 들고 도끼날을 갈았다.
도끼에서 불티가 튀었다.
그 너머에서 아케찰파는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 믿음 없나? 믿음 없는 플레이어. 매력 없다.”
“…….”
“남자는 직접 확인한다!”
대충 못 믿겠으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뜻 같았다.
100층에 올라간다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오래도록 건강한 신체와 무한한 재산, 100명의 초미소녀는 덤.
게다가 내가 인류의 희망이 되어 웹소설 주인공 서사를 써 내려갈지도 모르지.
상당히 달콤한 유혹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라!”
“이 탑의 정체는 뭐죠?”
“대답 못 한다!”
“배후신들은 왜 플레이어들을 돕는 거죠?”
“대답 못 한다!”
“배후신들의 목적은 뭐죠?”
“대답 못 한다!”
“혹시 모르는 건 아니죠?”
“으아아아아! 아케찰파 안 무식하다! 아케찰파 다 안다!! 아케찰파가 아는 거 넌 모른다! 너 알면 머리 터진다! 진짜 펑! 터진다! 아케찰파 실수로 말하면! 너 죽는다!!”
음……. 질문은 그만하는 게 좋겠다.
내 머리는 소중하니까.
그때, 또 머리가 지끈했다.
“윽…….”
“빨리 계약하자! 계약! 계약!!”
아케찰파는 당연히 내가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나 역시도 그의 제안에 구미가 당기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 마음은 꽁해져 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거절?”
“거절한다고요. 핑챙…… 아, 아니, 귀축 용사님과의 우정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핑챙의 핑계를 대긴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귀축 용사의 플레이어가 아니게 된다면…….
이제 세연이를 직관하면서 딸딸이 못 치잖아!
딸딸이 버프가 없으면 세연이가 나 같은 놈을 쳐다나 보겠어?!
아예 파티에서 내쫓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크하하하하! 너! 머리로 생각 안 한다! 너 고추로 생각한다!!”
“뭐, 뭐라는 겁니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변태! 생각을 고추로 한다! 하하하하!”
젠장. 무지개 변태 소문이 배후신들한테까지 퍼졌나?
“하지만 너 잘못 선택했다! 능력 있고 힘 센 수컷, 암컷이 좋아한다! 능력 없고 고추만 큰 수컷, 암컷이 싫어한다!”
“세, 섹스 때문이 아니라 우정 때문이라니까요!”
“너! 고추가 머리다! 머리가 고추다! 그럼 암컷이 싫어한다!”
“섹스 때문 아니라고요!”
어쩐지 강성훈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빡치네.
파앗!
내 시야에 다시금 빛이 쏟아졌다.
구역질 나는 부유감이 다시금 도래하고 있었다.
그때, 아케찰파가 무언가를 빠뜨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길드는 강하다! 그리고 야비하다! 너! 길드 이기면! 배후신들에게 인기 많아진다! 아케찰파는 너 포기 안 한다!!”
제멋대로 귀를 쑤셔오는 야만 용사의 함성.
너무 시끄럽게 느껴져서 귀를 막았는데, 따뜻한 액체가 묻어났다.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쿠웅……!
“쿨럭!”
정신을 차리니 다시 마굿간이었다.
양훈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성훈이가 내 상태를 살폈다.
“이, 이진현! 괜찮냐?!”
“아니…….”
“걱정하지 마라! 리치의 가슴은 내가 복원했다!”
“그거면 됐어…….”
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진현은 다음날 무사히 회복했다.
곧장 본선 토너먼트가 시작되었고, 진현의 활약이 이어졌다.
나, 날개 없는 드래곤이 등장했습니다! 상대 선수는 정말 운이 없군요!
리치가 스켈레톤 군단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 많은 스켈레톤을 과연 어떤 괴물이 물리칠 수 있을까요?!
이번엔 다이아몬드 골렘입니다! 필드에 나온 그 어떤 괴물도 다이아몬드 덩어리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겁니다!
승자는 이진현!
또 다시 이진현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이미 예견되어 있는 결과였습니다! 이진현 플레이어의 승리!
그의 적수는 챔피언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승승장구였다.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진현을 저격하기 위해 맞춤형으로 괴물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진현의 괴물들은 상대 괴물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토너먼트의 승자는 이진현!
오늘 밤 12시, 49회 연속 챔피언 양훈과 역대급 도전자 이진현의 챔피언 결정전이 펼쳐집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진현! 이진현!”
손쉽게 챔피언 결정전 자리를 따낸 진현이었다.
최종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진현과 파티원은 센터에 들러 괴물들을 치료하기로 했다.
“저는 잠시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최소라는 잠시 파티와 헤어졌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드가 머무르는 건물 근처.
최소라가 벤치에서 한 여자와 접촉했다.
“물건은?”
“여기.”
길드 소속의 여자가 유리병을 건넸다.
검은 잼 같은 게 가득 들어있었다.
“순도 99% 도핑잼이야. 한 스푼씩만 먹이면 충분해.”
“고마워.”
도핑잼.
그건 길드원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약물이었다.
암석 지대에서 나는 검은 열매는 괴물의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킨다.
그러나 열매는 매우 써서 괴물들이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에 길드는 열매를 잼으로 만들어 괴물들에게 먹여왔던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이진현의 승리 확률은 거의 100%야.’
그것 역시 진현의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한 최소라의 계략이었다.
“현정아. 정말 고마워. 이번 일이 잘 끝나면, 그땐 내가 널 도와줄게.”
“정말로 길드가 무너질까?”
“응. 그 녀석들은 괴물이야.”
“길드가 무너지면…… 우린 행복할까?”
“당연하지. 이제 이 엿 같은 도시에 묶여 있을 필요도 없잖아. 옛날처럼 같이 층을 공략하자.”
“……그래.”
최소라는 인사를 남긴 뒤 진현의 파티로 돌아갔다.
*
챔피언 결정전 15분 전.
나와 파티원들은 대기실에서 함께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어때? 가슴 볼륨 충분해?”
“응. 근데 엉덩이 좀 더 커야겠다.”
“후훗. 엉덩이 전문가에게 맡겨달라고.”
성훈이가 리치의 옷 안으로 지푸라기를 넣었다.
리치의 엉덩이가 서양인처럼 빵빵해졌다.
세연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진현……. 진짜 저런 몸매가 좋아?”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딸감으로 쓰려는 거지.”
“윽…….”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세연이 정도 몸매가 딱 좋긴 한데, 리치에겐 좀 색다른 매력을 주고 싶었다.
딱딱♡
리치가 이를 부딪치며 브이자를 그렸다.
어제부터 계속 리치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저 해골 바가지가 귀여워 보이는 것 같기도…….
그때, 최소라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죠?”
“도핑잼이에요. 이걸 먹으면 괴물들이 더 강해지죠.”
“정말요?”
“길드의 간부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에요. 친구 하나를 꼬드겨서 얻어왔어요.”
“잠깐!”
세연이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잼의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구겼다.
“수상한데…….”
“전 여러분 편이라고요! 양훈이 이기면 그놈이랑 강제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요!”
“언니는 우릴 죽이려고 했었잖아요. 뭘 믿고 그쪽을 신뢰하죠?”
“하참. 답답하네.”
최소라가 숟가락으로 잼을 듬뿍 펐다.
그리곤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여기에 무슨 맹독이라도 탔을까 봐요?”
“…….”
최소라가 내게 잼을 넘겼다.
본인이 퍼먹을 정도인데, 수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나는 잼을 퍼서 날개 없는 드래곤, 리치, 다이아몬드 골렘에게 먹였다.
쿠에에에엑!
딱딱!
우오오오……!
괴물들이 눈웃음을 치며 기뻐했다.
트레이너로서 뿌듯해지는 광경이었다.
바로 그때.
콰앙!
플레이어들이 문을 박차며 들이닥쳤다.
양훈을 비롯한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괴물들에게 불법 약물을 사용했군!”
“뭐?”
“배후신님! 불법 약물을 사용한 괴물의 출전권 박탈을 요구합니다!”
[주괴배를 관장하는 신들이 심사에 들어갑니다.]
“자, 잠깐! 지부장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도핑잼은 길드에서도 암암리에 사용하는”
“무슨 소리지? 우린 그런 약물을 사용한 적이 없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증거가 있으면 가져와 보시지.”
“크읏…….”
양훈의 뒤에서 한 여자가 스윽 등장했다.
그녀는 최소라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최소라가 저 여자한테 낚인 듯했다.
[주괴배를 관장하는 신들이 판결합니다.]
[불법 약물 사용을 인정하여 출전권을 박탈한다면 찬성해주십시오.]
[악마 추기경, 마리낙은 반대합니다.]
[하늘의 지배자, 지코능은 찬성합니다.]
[광전사, 아케찰파는 찬성합니다.]
[과반수 이상이 찬성했습니다.]
[약물을 복용한 세 마리의 괴물, 날개 없는 드래곤, 리치, 다이아몬드 골렘의 출전권이 박탈됩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 전설의 주머니 괴물들은 밴을 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양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비열한 웃음을 지은 그가 어울리지도 않는 망토를 펄럭이며 말했다.
“안타깝게 됐군……. 최소라.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내 여자가 되어라. 따뜻하게 품어주마.”
“…….”
소라 누나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역시 우릴 배신하려나?
“싫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렇게까지 의리 넘치는 스타일로 보이진 않는데…….
“대체 왜……! 난 힘도 있고 돈도 많아! 따뜻한 마음씨도 가졌고! 나이에 비해 동안이지!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50년 평생 이렇게 강렬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널 가질 수만 있다면……. 아니, 내 옆에 둘 수만 있다면, 난 영혼이라도 팔겠다…….”
양훈의 외침은 끝에 가서 거의 흐느낌으로 변했다.
징그럽든 아니든, 그의 감정은 진짜인 듯했다.
그래도 양훈은 인간적이네.
고창복이었으면 그냥 육노예로 만들었을 텐데.
“소라……. 대답해 줘.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눈물까지 흘리는 양훈.
젊은 남자 배우였다면 멋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배 나온 아저씨일 뿐이라 추했다.
최소라가 대답했다.
경멸 섞인 목소리였다.
“지부장님이랑은 도저히 키스 못 할 것 같아요.”
“……!”
아. 키스 못 하면 어쩔 수 없지.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소라. 난 포기하지 않아……. 네가 내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
양훈은 터덜터덜 대기실을 나섰다.
“…….”
“…….”
“…….”
잠시 적막이 흘렀다.
내 사랑스러운 괴물들은 전부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딱딱…….
리치가 이를 부딪치며 나를 위로했다.
씨발. 이럴 거면 가슴이랑 엉덩이는 왜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든 거야.
“괜찮아. 아직 시간이 있어. 이번 경기에서 진다고 해도, 빈털터리가 되는 건 이진현 하나뿐이잖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세연이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언니. 이제 밖에도 더 강한 괴물이 없을 거예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애들이 있잖아.”
“걔네는 얘네만큼 강하지가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하아. 그러게 내가 수상하다고 했지?!”
세연이 찌릿 노려보자 최소라가 발끈했다.
“뭐, 뭐요! 저도 몰랐다고요! 도우려던 것뿐이에요!!”
“사과는 못 할망정, 그런 소리가 나와요?”
대기실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비난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대책을 찾아야지.
1분 남았습니다.
선수는 출전시킬 괴물들을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결승전이 코앞에 있었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조금 덜떨어진 괴물들을 데리고 참가하느냐, 아니면 기권패당하느냐…….
혹은, 플랜B를 작동시키느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고민할 시간 따윈 없다.
“뭔데?”
나는 빈 주머니를 꺼내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세연이와 유리, 최소라.
재빠르게 그녀들을 향해 주머니를 던졌다.
“으악!”
번쩍하며 여자들을 집어삼키는 주머니.
“당장 꺼내 미친 새끼야!”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꺄악! 잡혀 버렸네? 이제 절 오빠 마음대로 하실 생각인가요?”
주머니 안에서 방방거리는 여자들.
내 아이디어가 바로 이거였다.
“챔피언 결정전은 너희들로 정했다……!”
주머니 괴물 트레이너가 아닌, 주머니 여성 트레이너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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