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섹스냐 사랑이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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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냐 사랑이냐? (2)
솔직히 진현이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쏠 아다였던 놈이 섹스 좀 해보더니 조금 신이 난 것뿐이라고.
결국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자신일 거라고, 세연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 점수 내기 했을 때도 내가 제일 점수 높았잖아……. 내가 제일 꼴린다면서, 나보고 꼴린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많이 말했으면서……!’
진현과 있었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진현이 느꼈던 것은 사랑이 아닌 쾌락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달랐는가?
혹시 세연 그녀도 진현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진현이 자신을 보며 딸딸이치는 걸 보며 쾌락만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
‘사랑이 아닌가…….’
세연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자신의 몸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간에, 진현은 세연이 처음으로 몸을 주고 싶은 남자였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소유욕뿐.
진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아. 배후신 때문에 확 덮쳐버릴 수도 없고……. 섹스해도 처녀로 남을 방법은 없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나, 당장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창고를 나선 세연은 괴물 조련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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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열심히 조련한 괴물들로 나는 여러 번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며 강자들의 재산을 박탈했다.
길드 출신인 자들의 재산은 모두 박탈했고, 비 길드 출신에게서는 절반만 빼앗았다.
마침내 파티원들을 다음 층으로 보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가장 쓸모없는 성훈이부터, 유리, 세연이 순으로 25층을 클리어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23연속 챔피언! 이진현! 과연 이번 도전자는 그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소개합니다! 익명의 플레이어! 가면남입니다!
펄럭
콜로세움에 등장한 남성.
다리를 절뚝이며 망토를 펄럭이는 그 모습이 어쩐지 익숙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애송이……!”
“?”
그가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관중들은 몹시 놀랐다.
나 역시도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 저 사람?”
“맞아! 그 사람이야!”
이럴 수가! 가면남이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의 정체는 전 챔피언이자 49회 연속 챔피언 자리를 지켰던 주괴배의 전설! 한때 ‘지부장’이라고 불렸던 남자! 양훈이었습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했고, 다리를 절었지만, 분명 양훈이었다.
“내가 그렇게 쓰러질 줄 알았냐? 천만의 말씀! 널 쓰러뜨리고 다시 챔피언이 되어 길드를 세울 것이다! 내가 전보다 더 많은 힘과 권력을 얻게 되면! 소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연인에 대한 마음 하나만으로 부활한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한 집착입니다!
대단하고 징그러운 집착이었다.
저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은 수준.
“널 죽이고 소라에게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시 밖을 돌아다녔다. 그 결과…… 세계 최강의 괴물을 손에 넣었지! 하하하하!”
양훈이 주머니를 꺼내어 던졌다.
“가라! 거대전갈! 토룡! 잉어왕!!”
파앙
세 마리의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전갈.
거대한 지렁이.
거대한 잉어 인간이었다.
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모두 규격 외의 괴물입니다! 양훈 선수! 목숨을 건 보람이 있는 모습입니다!!
나도 25층에 다다른 지 한 달이나 지났다.
저 괴물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내가 잡았던 날개 없는 드래곤에게 버금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도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거든.
“리치! 너로 정했다!!”
파앙
덜그럭! 덜그럭!
도핑잼을 먹었던 세 마리의 괴물은 출전 자격을 영구 박탈당했다.
하지만 리치는 예외였다.
내가 그녀의 출전권 정지를 무효화시켰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뼈다귀뿐인 리치가 도핑잼을 소화시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챔피언이 리치를 내보냈습니다! 이번에도 한 마리만 사용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대단한 도발입니다!
리치 하나면 충분하다.
다른 괴물을 꺼내봤자 리치와 나의 호흡에 방해만 될 뿐이다.
키이이이잇!!
적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건 거대 전갈이었다.
녀석이 커다란 꼬리를 창처럼 찔러왔다.
“리치! 본 월!”
덜그럭!
파지지지지지짓……!
땅에서 거대한 뼈 벽이 솟아났다.
꼬리가 벽에 꽂힌 전갈은 발버둥치느라 바빴다.
“그대로 가둬 버리자! 본 프리즌!!”
콰드드드득!
전갈의 몸 주변으로 뼈가 튀어 올라 그를 가두었다.
마치 새장에 갇힌 꼴이었다.
그때, 리치가 선 땅이 흔들렸다.
“리치! 조심해! 지렁이가 지하에 있어!”
덜그럭덜그럭……!!
리치가 허둥지둥 움직이는 땅을 피해 달렸다.
리치는 대단한 마법사지만, 신체 능력은 별로 좋지 않았다.
아니, 뼈다귀인 몸으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겠지.
파앙!
덜그럭!!
땅속에서 거대 지렁이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직격은 피했다.
중심을 잃은 리치가 바닥을 굴렀다.
“리치! 팔 하나가 빠졌어! 챙겨야지!!”
덜그럭?
허겁지겁 자신의 왼팔을 잡은 리치가 주문을 외웠다.
딱딱딱
파스슷!
파슷!
땅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스케레톤들.
그들이 일제히 지렁이에게 달라붙었다.
지렁이는 재빨리 땅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거대 잉어 인간 차례였다.
잉어의 머리, 몸통에 인간의 팔다리가 달린 기괴한 모습이었다.
푸우우우우!
녀석이 입에서 물대포를 발사했다.
덜그럭……?!
리치는 미처 물대포를 피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아, 안 돼! 리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챔피언의 리치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리치! 힘내!”
“양훈에게 지면 안 돼!”
“리치! 리치! 리치!”
관중은 우리 편이었다.
리치는 힙겹게 몸을 일으켰다.
건녀 편에서 양훈이 커다랗게 웃었다.
“하하하하! 객기는 그만 부리고 나머지 두 마리를 더 꺼내라 애송이 챔피언! 내가 잡은 괴물들은 최강의 주머니 괴물이야! 넌 절대로 날 이길 수 없다!!”
“…….”
잔뜩 거들먹거리는 녀석.
최강의 주머니 괴물이라고?
웃기고 있네.
스륵
나는 바지를 내렸다.
“리치. 시작할게.”
덜그럭♡
리치를 보며 딸딸이를 시작했다.
지금 그녀에게는 지푸라기 가슴도, 진흙 엉덩이도 없다.
그러나
“따, 딸딸이를 치고 있어!”
“저 해골 바가지를 보면서 딸딸이를 치고 있다고!”
“역시 무지개 변태야!”
“남자! 여자! 노인! 아동! 괴물까지! 대체 너한테 안 꼴리는 게 뭐냐!”
나는 딸딸이를 치고 있다.
딸감은 나의 사랑스러운 주머니 괴물, 리치.
덜그럭♡ 덜그럭♡
그녀가 새하얀 엉덩뼈를 흔들며 나를 유혹했다.
과거였다면 역효과였겠지만, 지금은 섹시하게 느껴질 정도다.
10일 금딸의 효과였다.
[★☆이진현의 딸♡감이 된 리치☆★]
딸감 버프 성공.
리치의 텅 빈 눈구멍에서 새빨간 안광이 빛났다.
딱딱
그녀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땅에서 거대한 뼈창이 솟아나 잉어 인간의 배를 꿰뚫었다.
께에에엑?!
갇혀 있던 거대 전갈도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남은 건 땅속으로 숨은 지렁이뿐.
당황한 양훈이 소리쳤다.
“이, 이럴 순 없어! 이 나약한 새끼들……! 토룡! 어서 놈을 끝장내라! 저 해골 바가지를 부숴 버리란 말이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땅이 진동했다.
그러나 리치는 전처럼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두 팔을 벌리고,
둥실
공중으로 떠오를 뿐.
나는 그녀의 우아한 비행을 보며 더욱 빠르게 딸딸이쳤다.
콰지지직!
마침내 토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면을 뚫고 높이 뛰어오르는 녀석.
그러나 토룡의 입은 리치에게 닿지 못했다.
끼에에엑?
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토룡은 그대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공중으로 떠올랐으니까.
“마, 말도 안 돼.”
“저렇게 거대한 토룡을 염동력으로?”
“리치 개 세다…….”
끼에에엑! 끼에엑!!
토룡이 공중에서 몸부림쳤다.
그러나 말 그대로 몸부림일 뿐이다.
“리치. 본 스피어.”
덜그럭.
퍼서서서서석!
땅에서 커다란 뼈 창이 튀어나왔다.
딸감 버프를 얻기 전에 시전했던 것에 비하면 열 배는 컸다.
거대 뼈 창은 토룡을 토룡 꼬치로 만들어 버렸다.
대, 대단합니다! 양훈 선수의 괴물들이 전부 전투 불능이 되었습니다! 승자는 이진현 플레이어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딸딸이! 딸딸이!”
“뼈박이! 뼈박이!”
“리치! 리치! 리치!”
“와! 샌즈!!!”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을 연호했다.
나는 지상으로 돌아온 리치와 포옹했다.
“진짜 잘했어. 완전 멋졌어.”
달그락♡
우리의 뒤로 양훈이 보였다.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리고 있는 녀석.
가까이 다가가니, 그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말도 안 돼……. 최강의 괴물들이었는데 어째서……. 분명…… 분명 내 괴물들이 더 강했는데……!”
“착각하지 마 양훈.”
“?”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퀭한 눈.
나는 그를 쏘아보며 충고했다.
“주머니 괴물은 시합의 도구 따위가 아니야. 진정한 강함. 그것은 트레이너와 괴물 사이의 사랑과 신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랑과…… 신뢰……? 나, 나약한 놈들이나 하는 소리를…….”
“나약한 건 너겠지. 난 리치를 애정했어. 그 결과 자지를 세웠고, 널 쓰러뜨렸지.”
덜그럭! 딱딱! 딱!
리치도 한 마디를 쏘았다.
양훈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나, 나도 괴물들을 아꼈어! 최고의 컨디션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 좋은 것만 먹이고! 열심히 훈련시켰다고! 그저 운이 좋았던 주제에 감히 가르치려”
“정말로 당신의 괴물들을 ‘애정’했나?”
“뭐……?”
“그저 괴물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거 아냐? 괴물들의 상태가 어떤지, 지금 어떤 마음인 건지,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신경 쓰지 않았겠지. 최소라한테 그랬던 것처럼.”
“……!”
“당신이 정말로 괴물들의 말에 귀기울였다면, 승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을 거야. 이만 가자. 리치.”
딱딱♡
나는 미련 없이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아. 존나 멋있어.
아마 양훈도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겠지.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양훈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린 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란 말이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네.
“길드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길드 상위 플레이어들은 층을 뛰어넘을 수 있다! 각오해라! 조만간”
양훈의 겁박은 해설자의 목소리에 의해 묻히고 말았다.
이진현 플레이어! 24연속 챔피언이 되셨습니다! 상대방의 재산을 박탈하시겠습니까? 아니면 26층으로 넘어가시겠습니까?
물어 뭐해.
당연히 26층이지.
하지만…….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리치.”
딱.
“헤어질 시간이야.”
딱딱…….
주머니 괴물은 25층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하는 것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폭.
리치가 해골 바가지를 내 어깨에 묻었다.
나는 그녀의 딱딱한 어깨를 감쌌다.
그때였다.
[광전사 아케찰파가 당신과 리치의 우정을 좋아합니다.]
[아케찰파가 리치를 데리고 갈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자신의 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합니다.]
아케찰파가 다시 한번 제안해왔다.
리치를 데리고 가는 대신 핑챙을 배반하라는 제안이었다.
순간 고민이 됐다.
리치는 강하다.
리치와 함께 간다면, 당분간 목숨을 위협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핑챙을 배신하는 것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저는…….”
[귀축 용사가 울먹입니다.]
[설마 고민하고 있는 것이냐 묻습니다…….]
덜그럭…….
“…….”
서운함에 울먹이는 핑챙.
텅 빈 안구 때문에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울고 있는 듯한 리치.
탑에 들어온 이후 가장 어려운 선택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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