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자들이 딸감을 자처한다-67화 (67/74)

〈 67화 〉 성욕이 없는 엘프 마을 (3)

* * *

성욕이 없는 엘프 마을 (3)

“저, 저 슬라임은…… 보통 존재가 아니군요.”

“개변태 같은 놈이죠!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변태?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죠.”

“?”

“엘시. 당장 슬라임을 마을 밖으로 던져라. 내가 본 게 사실이라면…… 우린 슬라임에 의해 파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뀨잉?

이 뾰족귀가 대체 뭐라는 걸까?

혹시 성에 대해 문외한이라서 성훈이의 변태성에 너무 큰 충격을 먹고 정신이 나가 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세계수를 관리하는 독 슬라임의 숫자가 부족한 걸요.”

“세계수가 문제가 아니란다. 그 녀석은 슬라임이 아닐지도 몰라.”

“위장했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어쩌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스릉.

뀨잇……?!

점쟁이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나는 얼른 성훈 슬라임에게 보자기를 둘러 낚아챘다.

“슬라임이 엘프 마을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뀨잉뀨잉!

“아니. 당신도 이방인일 뿐이지. 우리의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슬라임을 이리 내! 어서!”

“하, 할머니! 잠시만요! 진정하세요!!”

그때, 누군가 우리에게 큰 호통을 쳤다.

“엘린느! 이 망할 할망구! 또 무슨 소란을 벌이는 거야?!”

그는 엘프 장로였다.

“지난번에는 고기를 더 달라며 소란을 피우더니, 이제는 손님에게까지 무례를 범하는 거냐?!”

“이 슬라임은 우리 마을을 파괴할지도 몰라! 당장 쫓아내야 해!”

“헛소리 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

“헛소리가 아니라­”

“명령이다! 엘린느!”

“…….”

엘프 점쟁이는 나와 성훈 슬라임을 쏘아 보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장로는 다시 부드러운 톤으로 돌아왔다.

“귀중한 독 슬라임을 잃을 뻔했군. 대신 사과하지. 괜찮다면 내가 슬라임을 세계수에게 인도해도 되겠나?”

“아, 네. 저도 같이 갈게요.”

장로의 등장으로 위기를 넘겼다.

나는 세연이, 엘시와 함께 장로를 따라 이동했다.

“독 슬라임은 아주 희귀한 이종이지.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개체수가 워낙 적어서 우리에게는 황금보다도 중요하다네.”

“세계수가 죽으면 엘프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보금자리를 잃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두지 않을 걸세. 올해는 독 슬라임을 많이 찾아내서 조만간 반드시 세계수의 꽃을 피울 걸세.”

“꽃이요?”

“그래. 엘프들은 세계수의 꽃이 피는 10일 동안만 아이를 가질 수 있거든. 아이들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미래이지 않은가?”

“아. 그럼 성욕도 그 시기에만 있겠네요?”

“……맞아.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장로가 내 바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바지 위로 보이는 묵직한 소세지의 실루엣.

사실 그건 내 좆이 아니라 유리였다.

나는 기절한 유리를 슬쩍 꺼내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행히 세연이는 엘시와 함께 뒤에 있어서 이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자네, 대체 바지에 왜 그런 걸 넣고 다니는 건가?”

“크흠. 사정이 있어서요……. 아무튼 어서 세계수가 꽃을 피웠으면 좋겠네요. 언제쯤 필까요?”

“시기상으로는 이미 임박해 있다네. 다만…….”

“다만?”

어느새 우리는 세계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세계수는 보기보다 초라한 모습이었는데, 다른 나무들에 비해 생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수는 말라 비틀어가고 있었다.

“세계수의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주기를 기다려야겠지.”

“다음 주기는 언제죠?”

“10년 뒤라네.”

“10년……?”

이번 주기를 놓치면, 이 세계에서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싶다가도, 안 될 건 어딨냐는 생각이 들었다.

탑은 우리의 놀이동산이 아니다.

악랄한 신들의 놀이터지.

엘프 장로는 성훈이를 세계수 위에 올렸다.

성훈 슬라임이 꾸물꾸물 움직이며 세계수 위로 올랐다.

“자네들이 묵을 만한 집을 준비했네. 그리로 가서 좀 쉬게나. 밤에 파티에서 다시 보지. 엘시. 이분들을 안내하게.”

*

우리는 나무집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세계수의 꽃을 피우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세계수에게 버프를 주면 간단하잖아.”

“나무를 보면서 딸딸이를 치라고?”

“해골 바가지를 보면서도 치는데, 나무를 보고는 못 쳐?”

“못할 건 없지만…….”

“내가 도와줄 테니까 억지로라도 해.”

“못생긴 오크가 도와줘봤자죠! 작아져서 더 귀여워진 제가 도울 테니까 언니는 빠지세요!”

“뭐라고? 이 날파리 같은 게!”

유리가 세연이의 주변을 날며 성가시게 했다.

세연이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으나, 유리는 대단히 날렵해져서 세연이를 농락할 뿐이었다.

“누가 세워주든……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야.”

세계수를 ‘건강’하게 만드는 건 세연이 말대로 쉬웠다.

그냥 자지를 세우고 딸딸이를 치면 그만이었다.

오크의 몸이 되어 자지도 절륜해졌겠다, 못할 게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죄책감이 든단 말이지…….

“그럼 뭐가 중요한데?”

“세계수가 꽃을 피우고, 엘프들이 발정기에 들어서면, 귀축 용사가 등장해서 엘프들을 다 죽일 거야. 엘프를 소탕하는 게 그녀의 임무니까.”

“…….”

“우릴 도와줬던 엘시와 엘프 장로도 전부 죽게 될 거라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에게 잘해준 엘프들을 죽게 만드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진현. 여긴 실제가 아니야. 탑의 관리자가 했던 말 잊었어? 배후신들의 과거를 토대로 만들어진 공간일 뿐이라고.”

“그건 그렇지만…… 탑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워서 그래.”

“오빠 말도 일리가 있어요. 마녀 사냥꾼 때도 그랬잖아요?”

우리는 잠시 침묵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엘시였다.

“여러분. 식재료가 도착했어요. 이제 손질을 시작할 건데, 같이 구경할래요?”

“손질이요?”

“재밌을 거예요. 진귀한 광경이거든요.”

엘시가 화사하게 웃었다.

더 이상 머리를 맞대고 있어 봐야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었다.

침묵으로 동의한 우리는 엘시를 따라나섰다.

“으아아악!”

밖으로 나서자 웬 비명이 들렸다.

공포에 질린 외침.

엘시가 말한 ‘식재료’라는 것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줘!”

“내겐 가족이 있어! 날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고!”

“이 괴물들아! 신께서 너희를 요서치 않을 것이다!”

엘프 전사들의 긴 행렬.

그들은 마치 죄수를 운반하는 것처럼 창살 감옥에 인간들을 싣고 있었다.

“사, 사람이잖아요……?”

“네. 인간이죠. 오크들도 인간 고기를 좋아하지 않나요?”

“…….”

붙잡힌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대충 세어 봐도 스무 명 이상.

엘프들은 그들을 바로 죽이지 않고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손질이라는 건…… 정확히 뭐죠?”

“아. 기름을 먹이는 거예요.”

“기름?”

“살아 있는 인간을 기름통에 넣어서 기름을 먹도록 하죠. 그렇게 하면 겉에만 기름이 발리는 게 아니고, 위장, 폐 등의 장기 깊숙이 기름이 배거든요. 그렇게 직화로 요리하면 환상적인 맛을 볼 수 있어요.”

참으로 구역질이 나는 손질법이었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이들이 신성하고 고귀한 엘프가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좆프라서, 죄책감 없이 귀축 용사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때, 헛구역질을 참은 세연이가 말했다.

“혹시…… 저녁에 우리가 먹은 고기가, 인간 고기는 아니죠?”

“그럴 리가요. 그건 닭과 돼지였어요. 기름 먹인 인간 고기는 그것보다 훨씬 맛있거든요.”

식인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세연이는 한시름 놓은 듯했다.

“저기, 엘시.”

“네?”

“저희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어요.”

“벌써요? 하지만 파티는 이제 시작인걸요?”

“사실 부족들에게 오늘까지 돌아가기로 약속했거든요.”

“아. 그것 참 아쉽네요.”

우리는 엘시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딱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마을의 중심.

세계수가 있는 곳.

나는 나무박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

엘프들에게 세계수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엘프들의 사랑은 세계수가 꽃을 피워야만 이루어진다.

그들은 세계수 아래에서 관계하며, 세계수 아래에서 출산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수는 인근 숲의 나무들과 소통하여 숲이 엘프를 지키도록 한다.

나무들의 소식을 엘프들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다가올 위기와 재난을 점지해주기도 한다.

엘프의 신비는 곧 세계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세계수는 엘프들의 신이자, 고향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이다.

엘프 청년 이노프는 마을에서 그 누구보다 세계수를 사랑하는 엘프다.

그는 매일 하루 한 번 세계수 앞에서 기도한다.

몇 달 동안이나 세계수를 찾지 않는 엘프들도 있었기에, 이노프의 세계수 사랑은 유별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가 좀 더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네.’

이노프는 세계수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말뜻 그대로 세계수를 어머니로 여겼다.

이노프의 친모는 오래 전 인간들에 의해 죽었다.

죽은 엘프의 영혼은 세계수와 함께한다는 전설이 있었기에, 이노프는 세계수를 어머니로 여긴 것이다.

전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세계수를 위하는 이노프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응? 세계수 앞에 누군가가 있잖아?’

이노프는 세계수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보통 이 시간에는 세계수를 찾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 엘프들은 파티를 벌이느라 바빴다.

방문자를 유심히 살펴보던 이노프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크? 마을에 왔다던 이방인들인가?’

이곳의 엘프는 오크와 딱히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이노프는 별생각 없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마침내 진현 오크의 거대 몽둥이를 목격한 이노프.

그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뭐, 뭐야 저거……? 설마 좆? 좆이 저렇게 크다고?’

첫 감상은 놀라움이었다.

이노프에게도 자지가 달려 있었지만, 발기해봐야 7cm 정도였다.

반면 오크의 것은 몽둥이라고 해도 좋을 사이즈였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자지를 매만졌다.

“…….”

놀라움.

열등감.

그 다음에 치민 것은 모욕감이었다.

‘뭘 놀라고 있는 거야! 세계수가……! 나의 어머니가 더럽혀지고 있잖아!!’

오크는 세계수를 보며 자위를 하고 있었다.

번식기가 아니면 성욕이 전혀 없는 엘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역겹고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스릉.

이노프가 단검을 꺼내 들었다.

수풀에 숨어 접근한 뒤에 곧장 목을 긋는다.

이노프는 훌륭한 전사였다.

변태 오크 두 마리 따위, 1초도 안 되어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 오크의 자지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 옆에 서 있던 여자 오크가 소리쳤다.

“좀만 더 힘내!”

“하읏! 존나 꼴려!!”

변태 오크가 세계수를 보며 더욱 빠르게 딸딸이쳤다.

‘나의 어머니가…… 꼴린다고?’

이노프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저 오크는 뭐가 꼴린다는 걸까.

나무 성애자?

나무와 유대가 깊은 종족인 엘프들에게도 그런 정신병은 없다.

“커다란 세계수 개꼴렷! 엘프들의 신성한 나무를 딸감으로 써 버린닷……! 자지에서 영양제 뿌려 버린닷……!”

‘개자식! 더는 못 참는다!’

정말로 자신의 어머니가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는 참지 못한 이노프가 단검을 꽉 쥐었다.

곧장 튀어나가 그들의 목을 베려는 그때.

세계수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사샤샤샤샷…….

‘어, 어머니?’

말라 비틀어졌던 가지가 되살아났다.

누런 잎들이 떨어지고, 파릇한 새싹이 돋아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세계수의 모습이 상쾌해 보였다.

‘어머니가…… 기분 좋아하고 있어……?!’

세계수는 되살아나고 있었다.

거근 자지 오크의 딸딸이에 의해서.

‘어머니……? 어, 어째서……?’

이노프는 충격으로 굳어 버렸다.

엘프의 신이자, 고향이자, 어머니.

신성한 세계수…….

그러나 이노프의 눈에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대체 왜! 어째서 이종족의 자지를 보며 좋아하시는 겁니까?!’

암컷 타락해 버린 세계수.

거근 오크 자지의 노예 되어 버린 어머니를 보며, 이노프는 투명한 눈물만 흘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