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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35화 (35/131)

〈 35화 〉 영속교(5)

* * *

지금까지, 범인들을 구속시키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특수대가 지금껏 잡아들인 놈들은 법의 처벌을 받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놈들이었다.

따라서 놈들은 나름대로 법정 싸움에 자신이 있었다.

물론 황금방패 사건 때는 예리엘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일단, 예리엘의 힘을 빌릴 수 없다.

그녀는 자선단체 행사 때문에 출장을 나갔다.

애초에 은퇴한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도 좀 미안하다.

나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하여 최신식 전투복과 그린 더스트 탄두를 보급해놓았다.

그러나 막상 일이 이렇게 되자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싶었다.

영속교 교주 김우민은 정신계 능력자인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죄질도 워낙 나빠서 무기징역은 기본에 사형까지 갈 수도 있는 판국.

사형 집행까진 안 되겠지만, 체포될 경우 평생 햇빛을 못 볼 것은 확실하다.

본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신도들도 널려있으니 놈은 일단 도주를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으나...

무대 위에 나타난 김우민의 측근들을 보자 자신감이 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A급이 뭐 저렇게 많아?'

김우민보다 먼저 등장한 헌터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다.

앨리스의 실력을 감안하면 B랭크 이하는 그냥 없는 셈 칠 수 있는데, A랭크만 쳐도 너무 많다.

게다가 놈들은 세뇌의 영향으로 물 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 것이 분명하니 평소보다 고평가 하는 것이 맞다.

앨리스도 그것을 아는지라 내쪽을 힐끔거리며 난색을 표했다.

참고로 놈들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알몸이었다.

"모두 잘 오셨습니다."

"아아..."

"교주님! 교주님, 이쪽을 한 번만 봐주세요!"

"김우민 교주님!"

이윽고 교주 김우민이 나타나자 신도들은 그대로 광란에 빠졌다.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받으려고 애쓰는 어린이들 같은 모습.

무대 위를 먼저 지키고 있던 헌터들이 아니었다면 통제가 힘들었으리라.

나는 미리 봤던 자료와 심하게 차이가 나는 실물에 속으로 혀를 찼다.

사진이 좀 오래된 것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생긴 건 멀쩡하다 못해서 평균 이상이군. 그새 살 좀 뺐나?'

홀로 흰색 옷을 입고있던 김우민은 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벗어던졌다.

제법 봐줄만한 몸을 드러낸 그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내세에서의 영생을 약속하는, 뻔하디 뻔한 내용은 둘째치고 웅변술은 제법 수준급이었다.

'그래도 교장 선생 훈화보단 훨씬 짧네.'

이젠 기억도 희미해진 학창시절을 떠올리고 있자 이내 연설이 끝났다.

애초에 격주 단위로 특별 집회를 하는데 매번 길게 떠들어대는 것도 고생일 것이다.

여기까진 그냥 좀 특이한 사이비 종교라고 볼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영속교의 신도들은 김우민이 등장하자마자 눈에 띄게 바뀌었다.

아까는 세뇌의 영향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이젠 어휘력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아아, 교주님. 당신께서 저희에게 임하시여... 임하시여?"

"교주님! 교주님! 교주님께서 나를..."

광란 상태의 신도들은 교주가 손을 들고 나서야 겨우 진정됐다.

나는 머리칼이 찌릿, 떨리는 기분에 겨우 상황을 눈치챘다.

'능력을 사용한 건가.'

나와 앨리스는 그린 더스트 덕분에 능력에서 면역이지만, 다른 이들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체포를 시작하고 싶은 눈치의 앨리스.

그러나 나는 대기 신호를 보냈다.

아직 놈이 정확히 어떤 능력을 사용했는지 모른다.

그 사이 교주는 제법 친근한 태도로 신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그래봤자 신도들은 무대 앞에 넙죽 엎드린 채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나는 놈의 교묘한 화술을 엿들으며 다시 한 번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일종의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 같은데, 놈은 그마저도 직접 명령을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랬으면 좋겠다'식으로 말한 뒤에 신도들이 직접 하겠다고 하면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하여간 지독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놈이었다.

"뭐 하는 거야? 안 잡아?"

"아직이야. A랭크가 너무 많잖아. 만약 저놈들이 미쳐 날뛰면, 너 혼자 모두 제압할 자신 있어?"

"..."

앨리스는 차마 그렇다고 하진 못했다.

나는 수사 과정에서 그린 더스트로서의 능력을 대놓고 쓸 수 없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돌입팀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하다못해 장비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나도 앨리스도 맨몸이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특별 집회가 열리고 있는 회장의 곳곳에서는 독한 술이 소비되고 있었다.

김우민이 등장한 이후로는 대마로 보이는 연초나 약물류까지 보인다.

'아마 세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겠지.'

이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포교를 해도 신도가 1만을 못넘지.

이대로 시간을 좀 끌면 저놈들 중 대부분은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다.

심지어 호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헌터들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아직 헌터가 더 있을지도 몰라. 그나마 일찍 찾아서 다행이네."

"그래? 도대체 어딜봐서?"

"지금이야 이놈들이 사이비 종교 취급이지만, 덩치가 좀 더 커져서 기업화가 되면 기독교 분파 중 하나로 취급받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우린 건드리지도 못해."

실제로 그렇게 출세한 사이비 종교들이 수두룩하다.

그쯤되면 사이비라고 함부로 부르지도 못한다.

만약 교주의 능력이 조금만 더 숙련됐다면 진작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존의 신도들과 대화를 대충 마친 교주가 비교적 신참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예 처음 입교한 것은 나와 앨리스 둘 뿐이지만, 특별 집회에 처음 참석한 신도들은 몇 명 더 있었다.

"저와 교단, 그리고 하느님과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해주신 신도분들. 지금부터 제가 직접 세례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새로운 가족들을 환영해주십시오."

"아,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세례용 욕탕을 보곤 얼굴을 살짝 굳혔다.

냄새가 섞여서 잘은 모르겠지만 색깔이 좀 탁한 것이 뭘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아마 정신을 흐리기 위한 약품이겠지.

일반인들에게 저렇게까지 하다니. 이쯤되면 조금 존경스럽다.

'세례 때 대상의 머리를 만져서 세뇌하는 건가.'

아직 좀 불확실하지만, 이대로 놔둬도 될까 싶던 중.

돌연 교주의 눈이 나와 앨리스에게 닿았다.

그는 우리를 보곤 살짝 놀라며 측근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오늘 처음 입회한 신도들입니다."

"그렇군요. 아주 잘 오셨습니다. 첫 날부터 집회에 참석해주시다니, 조금 당혹스러우셨죠?"

"그... 그렇진 않습니다. 뭔가 신기하네요."

내가 더듬더듬 대꾸하자 활짝 웃는 교주.

역시 우리들은 그를 위한 진상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는 정작 앨리스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교주가 친히 움직이자 신도들의 시선이 아주 따갑게 꽂혔다.

"아주 아름답고 멋진 몸이네요. 두 분은 부부시죠?"

"그렇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세상에 이처럼 멋진 한 쌍이 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영문모를 소리를 지껄이던 교주가 갑자기 위험할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당황하면서도 차마 도망치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내 어깨를 턱 붙잡았다.

"그러나 남녀간의 관계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요. 부인, 남편을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네, 네에?"

알몸의 앨리스는 수치심조차 잊은 채 멍하니 입을 벌렸다.

교주의 질문은 다분히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남자도 되는 거였다니.

아까 신도들이 내 몸을 보고 태도가 돌변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교주는 앨리스보단 내쪽이 더 취향인 모양이다.

아직 확신이고 뭐고 한참 모자라지만, 나는 앨리스와 함께 그에게서 떨어지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기, 김우민! 헌터 협회 특별 수사대다. 너를 헌터 등급 위조 및 계통 위조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뭐얏?"

"교주님께서 위험하시다!"

김우민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의 측근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있던 신도들도 피부가 살살 떨리는 수준의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앨리스가 내 옆에서 눈을 질끈 감는 사이.

나는 의무적으로 항복을 권고했다.

"이미 돌입팀이 밖에서 대기 중이다. 여기서 도망쳐봤자 소용없어!"

"..."

지금까지의 범죄자들과 달리, 교주는 굳이 잡아떼지 않았다.

어차피 협회에게 의심받은 시점에서 끝이다.

그뿐이랴.

일단 구속시켜 놓으면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는 것이 특별 수사관이라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순순히 항복하지도 않았다.

내가 눈매를 고치는 데에 썼던 테이핑을 떼어내자 놈이 용케도 나를 알아봤다.

"어디서 본 것 같다 싶더니... 그 유명한 예리엘 프로스트의 남편이었나. 어쩐지 모처럼 좋은 남자더라고."

"김우민, 순순히 투항해!"

"너 같으면 하겠냐."

김우민은 너무 설득력 넘치는 대꾸를 던지며 신도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황급히 능력을 발동시키려던 앨리스의 눈에 망설임이 깃들었다.

실내에는 아직 김우민의 능력에 당하지 않은 일반 신도들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세뇌된 놈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도 없다.

"..."

급박한 와중 앨리스를 돌아본 나는 강한 죄책감을 느꼈다.

과연 이런 역할을 그녀에게 떠넘겨도 되는 것일까?

애초에 저놈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덤벼들면 아무리 앨리스라도 승산이 희박하다.

숫적으로 완전히 열세고, 이미 포위까지 당했다.

게다가 내 짐작대로 회장 밖에서 대기하던 경비들도 소란을 듣곤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번만 고집을 꺾기로 했다.

"야, 이거 풀어!"

대열을 갖춘 헌터들이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오던 중. 앨리스는 이상을 눈치채곤 내게 외쳤다.

이미 내 능력이 발동중이라서 그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풀어주긴 커녕 출력을 급격히 높였다.

"너는 가만히 있어."

"뭐어?"

"김우민의 능력은 대상이 본인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거야. 그건 다른 신도들을 보면 알 수 있지."

내가 손 안에 그린 더스트 조각을 만들어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김우민.

나는 그런 그의 제지를 완전히 무시하며 손 안의 그린 더스트를 폭주시켰다.

"자, 잠깐. 그건?"

파아앗!

초록색의 광채가 실내를 온통 휩쓸자 신도들의 눈에 이채가 조금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포위망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제야 내 정체를 눈치챈 김우민이 피식 웃었다.

"그린 더스트? 협회의 특별 수사관이 그린 더스트라고? 하하, 하하핫! 이거 참 걸작이군! 하지만 내겐 소용없다!"

알고 있었다.

김우민의 능력은 대상의 뇌를 영구적으로 변형시킨다.

그로 인한 악영향은 그린 더스트로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평소의 정교한 조정은 불가능하게 됐다.

나는 동작을 일제히 멈춘 신도들을 돌아보며 음울한 기분으로 내뱉었다.

"네 신도들은 너를 사랑하고 있어. 네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 음?"

"그런데, 사랑이라는 게 꼭 긍정적인 면모만 있는 건 아니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김우민을 돌아보는 신도들.

놈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곤 몸을 흠칫 떨었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은 김우민의 자업자득이다.

"교... 주님..."

"교주님, 교주님!"

"사랑합니다! 모든 이들의 어버이시여!"

다음 순간.

신도들은 우리를 지나쳐서 김우민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격하게 자리다툼을 하던 놈들은 이내 김우민을 산 채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악, 아아악! 머, 멈춰! 멈추라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한쪽 눈을 뽑히게 된 김우민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으나 신도들은 멈추지 않았다.

전두엽이 크게 손상된 그들은 이미 인간의 감정도, 논리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김우민이 그들을 이용하기 쉽도록 조작한 결과다.

"아아, 교주님!"

"저리 꺼져! 교주님의 코는 내 거야!"

"꺄아악!"

퍽, 콰드득...

김우민의 조각 하나라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를 거침없이 차고 때리고 찢어내는 아비규환!

앨리스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그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나는 크나큰 죄책감을 느끼며 그나마 멀쩡한 신도들의 앞을 지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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