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80화 (80/131)

〈 80화 〉 자전거 도둑(1)

* * *

헌터펫 살인사건이 일단락된 다음 날 아침.

나는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훈련의 성과를 지켜봤다.

티아는 특수대가 인수하게 된 헌터펫, 케르베로스에게 자신있게 명령을 내렸다.

"케르, 일어서! 앉아!"

"왈! 왈!"

원래부터 훈련된 녀석이라서 그런지 아주 똘똘한 케르베로스.

덕분에 추가 교육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아침 커피를 홀짝이며 그것을 지켜봤다.

"아직 사람을 물진 못하는 거지?"

"아, 그게 범죄자를 제압하는 것 정도는 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헌터펫 훈련사들에게 직접 물어봤어요!"

"제압?"

"케르, 나를 막아봐!"

"그르르!"

티아가 명령을 내리자 냉큼 일어나서 몸으로 벽을 만드는 케르.

녀석은 사냥용 헌터펫인만큼 몸집이 상당한데다, 온몸이 근육 덩어리라서 상상 이상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티아는 녀석을 마구 때리고 걷어찼으나 그 정도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돌파를 포기한 그녀가 우회하려고 방향을 바꾸자 케르도 따라서 몸을 돌렸다.

"오, 이건 꽤 쓸만하겠는데?"

"그렇죠? 케르, 그만둬!"

"왈!"

"옳지, 착하다 착해."

나는 특수대의 새로운 식구에게 간식을 하나 던져줬다.

장민호는 헌터펫용 간식도 거의 사놓지 않아서 아예 특수대 예산으로 구매할 필요가 있었다.

"그놈에게서 적당히 압수할 수 있었다면 편했을텐데..."

"이 헌터펫 분양 비용이 보기보다 엄청 비싸대요. 장민호의 경우에는 빚까지 졌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래?"

길드원들에게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피해자인 길드 마스터가 고용 문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장민호도 이래저래 궁지에 몰렸던 셈이다.

물론 나는 놈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헌터펫 유투브 같은 것도 했다지만, 요즘은 그것도 포화상태라서..."

"근데 케르는 인간만 공격을 못하는 거지? 몬스터는 멀쩡히 공격할 수 있잖아?"

"그야 얘는 사냥용 헌터펫이니까요."

"그럼 너는 판정이 어떻게 되냐?"

내가 티아를 가리키며 묻자 케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아는 즉시 울며불며 내게 매달렸다.

"주인님! 저 말 잘 들었잖아요!"

"근데 너 반쯤 몬스터잖아. 아니, 따지고 보면 그냥 몬스터 아닌가?"

"정말 너무하셔요!"

"잠깐, 아침부터 무슨 난리야..."

아침에 약한 앨리스가 인상을 팍팍 쓰며 서지유와 함께 나타났다.

그녀는 특수대 겸 현역 헌터인만큼,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자격을 갱신하는 등 이래저래 처리해야할 일이 있었다.

덕분에 아래층에 다녀온 그녀는 최근 이슈가 되는 사건을 물어왔다.

"요즘 자전거 도둑 때문에 난리인 거 알아?"

"아니, 전혀 몰랐는데... 알아야 해?"

"그게 협회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같아."

협회에서 자전거 도둑이라니, 간도 크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경범죄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자전거 절도라니... 너무 흔하잖아. 딱히 헌터 범죄 같지도 않고."

"그, 그렇지?"

어차피 나는 차를 타고 다녀서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자전거 절도는 정말 너무나도 흔한 범죄인 것이다.

한국에선 지갑도, 스마트폰도 놔두고 다녀도 되지만 자전거는 놔두고 다니면 안 된다.

심지어 자전거를 훔친 놈이 또 도난을 당하거나 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찌보면 진정한 의미의 공유 자전거 제도를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곧 이서우가 출근하는 것을 보게 된 나는 생각을 조금 바꿀 수밖에 없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우 씨가 지각하다니, 웬일이래? 괜찮으니까 어서 앉아."

"팀장님. 제가 지각할 땐 그런 소리 안 하셨잖아요."

"지유 씨는 너무 자주 늦잖아."

내가 서지유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있자 이서우가 한숨을 삼키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 자전거를 도둑맞은 것 같아서요."

"뭐? 서우 씨, 자전거 타고 다녔어?"

"특수대 차량으로 단체 퇴근한지 꽤 됐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차를 끌고다니긴 좀 그래서... 접이식 자전거는 트렁크에 실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 도난당한 건 확실해?"

"시간이 없어서 아파트 CCTV 영상을 복사해왔습니다."

이서우는 즉석에서 영상을 재생시킬 준비를 했다.

나는 다른 업무를 올스톱하고 자전거 도둑부터 잡기로 했다.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자전거를 훔치는 중범죄자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우리는 당분간 이 사건에 집중한다."

"아까 자전거 절도는 너무 흔하다며..."

"내 부하직원의 자전거를 훔치는 건 흔하지 않아! 놈은 서우 씨의 출근을 늦춰서 특수대의 수사를 방해한 테러범이야. 어쩌면 블랙 로터스와 엮여있을지도 몰라."

내가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고 있자 앨리스와 이서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차마 나를 말리진 못했다.

"좋아, 일단 얼굴부터 볼까?"

"여기. 이게 제 자전거입니다. 어제 저녁시간 때만 해도 멀쩡히 있었네요."

이서우는 특수대 소속답게 CCTV에 잘 비치는 명당에 자전거를 주차해놓았다.

덕분에 영상 분석은 상당히 쉬울 것 같다.

"빨리 돌려보겠습니다."

"좋아. 어디 한 번... 음? 사라졌다. 아직 새벽도 아닌데?"

"밤 11시... 여기서부터 역재생을 해보죠."

"어? 나타났다. 근데 범인이 안 보이는데?"

어젯밤 10시 47분.

우리는 영상 속에서 자전거가 사라진 시점을 파악했다.

그런데, 자전거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뿐. 그것을 가져가는 범인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우리가 아예 0.5배속으로 영상을 돌리자 비로소 그 순간이 제대로 보였다.

"뭐, 뭐야 이건?"

파아앗!

영상 속의 자전거가 작게 발광하더니, 다음 순간 자전거가 사라져 있었다.

절도범이 자물쇠를 자르거나 한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몇 번이나 영상을 돌려보며 서로의 눈을 의심했다.

"사라졌잖아?"

"설마 영상이 조작된 건가?"

"아닙니다. 노이즈 같은 건 없었는데? 게다가 이 반응은..."

블랑쉬의 판독 결과, CCTV영상은 조작되지 않았다.

녀석은 내가 요구하지도 않은 소견까지 내놓았다.

[영상 속의 빛 반응은 공간이동계 헌터들의 능력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종류입니다.]

불행히도 내 소견 또한 블랑쉬의 것과 같았다.

문제는 그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공간이동계 헌터처럼 귀하신 몸이 뭐하러 자전거 절도 따위를..."

"귀, 귀한 건가요?"

"당연하지. 공간이동계는 B랭크만 돼도 대형 길드에서 모셔간다고."

특히 인간을 공간이동시킬 수 있는 헌터는 연봉을 부르는대로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놈은 자전거나 훔치고 있지만 달리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쎄고 쎘다.

"근데 무슨 10만원 남짓한 자전거를 훔치고 앉았..."

"팀장님. 이거 60만원 짜립니다."

"뭐? 서우 씨, 60만원 짜리 자전거를 왜 밖에다 대놓은 거야?"

"집사람이 현관이 좁아진다고 해서... 아까 전화로 미안하다 하더라구요."

미안한 줄이라도 안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이서우의 결혼 생활에는 아직 희망이 보인다.

아직도 믿고 싶진 않지만... 이번 범행 방법은 공간이동계 능력이다.

아파트 주변의 CCTV를 뒤져봐도 단서가 될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태야, 지금 당장 고급 자전거 20대 정도만 구해봐. 최소 100만원 넘어가는 걸로."

"예, 팀장님."

"엑... 2, 20대요? 그럼 최소 2천만이잖아요?"

"공간이동계 헌터를 낚을 수 있는 미끼치곤 터무니없이 싼 값이지. 당연하지만 추적 장치도 붙여야 하니까 2천만원보다 훨씬 더 들어갈 거야."

서지유의 경악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안 들키게 제대로 달고, 아파트 주변에 적당히 뿌려놔. 놈이 낚이면 즉시 출동해서 체포한다."

"예!"

정말로 자전거 도난 사건을 수사하게 된 특수대는 아주 기민하게 움직였다.

결국 그날이 끝나기도 전에 미끼 투척에 성공.

우리는 야근을 하며 실시간으로 그것들을 주시했다.

"엇, 3번 자전거가 사라졌습니다!"

"잠깐... 3번 자전거, 평범하게 이동 중. 아무래도 일반적인 절도 같습니다."

"저거 갖다놓은 지 1시간도 안 되지 않았냐?"

도대체 한국인의 유전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스마트폰도, 지갑도, 가방도 함부로 훔치지 않는 준법정신 투철한 민족이 유독 자전거 앞에서는 사족을 못쓴다.

이것은 일종의 과학적 법칙처럼 느껴질 정도다.

"저거 자물쇠도 튼튼한 걸로 걸지 않았나?"

"예... 통짜 철제 자물쇠라서 그라인더라도 가져왔어야 했을텐데요. 아, 저건 앞바퀴만 뗀건가..."

"14번 자전거도 도난! 현재 자물쇠 절단 중입니다! 이거 오늘 안에 다 털리겠는데요?"

우리가 너무도 빠른 페이스에 아연실색하던 중.

마침내 기다렸던 반응이 돌아왔다.

낭보를 가져온 것은 다름아닌 블랑쉬였다.

[7번 자전거, 추적기 반응 3초간 소실. 배치된 구역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신호를 재수신 했습니다.]

"1km라고? A랭크 헌터 수준이잖아? 이건 놓치면 두 번 다시 못잡는다. 다들 완전무장해!"

나는 특제 그린 더스트 연막 수류탄을 챙겨들며 말했다.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느낀 케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왈왈!"

"케르, 당분간 짖지마. 소리내면 안 돼."

끄덕, 끄덕.

나는 아주 믿음직한 기분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블랑쉬, 7번 자전거의 위치는?"

[상가 건물입니다. 현재 완전 정지 중.]

"가자!"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도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현장으로 출동했다.

앨리스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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