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버튜버(3)
* * *
수사에 있어, 신고자가 곧 범인인 경우는 심심찮게 발생하는 불상사다.
우리도 얼마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다만. 이번 사건은 따로 사상자가 나오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조금 천천히 수사를 해봤다.
전처럼 대뜸 신고자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들을 배제하고 나머지 전원의 알리바이부터 조사해본 것이다.
만약 자작극이 아니라면 너무 미안해지니까.
하지만 그러한 절차도 모두 끝났다.
이제는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번 신상 노출 사건을 통해서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된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버튜버 3인방 본인들이다.
나는 그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무시하며 최대한 담담히 읊었다.
"먼저 범행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범인이라고 가정하면, 범행이 아주 쉬워지죠. 그저 본인이 직접 프로그램을 꺼버리면 그만이니까요. 프로그램에 붙어있는 안전장치도 마음대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잠시만요. 저는 그 때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어떻게..."
"간단한 타이머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그만입니다. 원격 해킹보다 그쪽이 훨씬 쉽죠. 이건 포렌식하면 바로 나옵니다."
소속사에서 사건이 터지자마자 방송용 데스크톱을 따로 보관했다니, 기록을 지울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내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 3인방이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저희가 뭐하러 그런 짓을..."
"범행 동기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들이 버튜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해당 소속사의 버튜버들은 거의 전원이 아이돌 지망생들이었다.
아까 신소이가 말했듯, 실제로 데뷔했던 인원들도 있다.
그러나 아이돌 데뷔 당시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거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 인원들을 버튜버로 데뷔시킨 것이었다.
소속사의 입장에선 그녀들에게 나름대로 기회를 줘본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수가 됐다.
연예계는 상당히 가혹해서, 제대로 데뷔도 해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연습생들도 부지기수다.
3인방으로선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기획사 쪽은 안목이 있었다.
아이돌이나 가수로선 성공하지 못했던 그녀들이었지만, 방송인... 그것도 버튜버로서의 재능은 충분했다.
적절한 입담과 외국어 실력, 준수한 연기력과 특색있는 목소리 등등.
원래 전공이었던 음악 쪽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게임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그건 잘 못하면 그것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기업의 홍보를 등에 업었다곤 하지만 3인방은 중견급 이상의 버튜버로 분류되고 있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적절한 인재기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들은 버튜버를 좋아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방송을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식은 거의 바닥 수준.
그녀들은 오히려 방송 내내 그쪽을 은근슬쩍 혐오하는 반응까지 내비쳤다.
버튜버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그녀들이었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있었다.
특히 오리지널 앨범 2집이 준수한 성적을 거두자 그녀들은 헛된 생각을 품게 됐다.
버튜버로서의 본인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아이돌이나 가수로서의 데뷔를 꿈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아바타는 기획사와의 계약으로 단단히 묶여있었다.
기획사의 입장에서 버튜버는 데뷔 단계에서 제법 돈을 잡아먹는 존재였다.
전용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3D모델링과 관련 장비 등등.
오리지널 곡이야 전공을 살려서 자력으로 해결한다 쳐도, 돈이 들어가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따라서 버튜버들의 아바타 소유권은 대부분 기획사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 연기자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아예 계약 차원에서 금지되어 있었다.
연기자가 버튜버로서 인기를 얻고 이적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비밀유지 조항에는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했다.
이제 연기를 포기한 3인방은 아직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억울하다는 듯 지껄였다.
"맨얼굴을 좀 드러내는 게 뭐 어떻다구요? 그런 유치한 설정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키라는 건데요!"
"저희가 무슨 죄수도 아닌데 SNS에 글 하나 쓸 때마다 일일이 감시하고..."
"유치한 설정이라."
한숨쉬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한 것은 내가 아니라 미레이였다.
3인방은 대선배의 말에 잠시 얼어붙었다.
확실히, 버튜버들의 설정은 유치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 플레잉에는 제법 열을 올린다.
연기자들이 모두 유치하고 멍청해서 그러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미레이는 살짝 성난 목소리로 그 이유를 밝혔다.
"설정은 좀 유치해도 상관없어. 제대로 몰입을 못해도 괜찮아. 중요한 건 손님들이 즐길 수 있을만한 요소를 추가하는 거야."
"즐길 수 있을만한 요소라니... 설정 가지고 시시한 농담이나 하는 거요?"
"그래. 그 시시한 농담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인터넷 방송의 최대 강점 아니었나? 의사소통을 못할거면 인방 같은 걸 왜 보는데?"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건 비단 버튜버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예계는 원래 환상을 팔아서 먹고사는 업계다.
고객들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 사업도 끝난다.
그런데 그 환상을 본인들의 손으로 부정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설령 유치하고 우스울지언정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연기자의 역할인데, 3인방은 그것을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미레이는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토해내듯 말했다.
"RP를 안 해도 괜찮아. 아바타를 본인들의 명함 정도로 여겨도 큰 문제는 없어. 결국 중요한 건 손님들이 즐길 수 있냐는 거니까."
"..."
"하지만, 이상한 오해는 그만뒀으면 좋겠어."
"이상한 오해라니..."
"너희들은 음악가로서 가망이 없어서 버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거야. 적어도 기획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
이젠 거의 폭언에 가까운 소리가 되었지만 미레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옆에 앉은 신소이도 그저 슬프게 웃을 뿐이었다.
"가수로서의 너희들은 아무리 잘 쳐줘봤자 2류야. 버튜버 쪽이 제법 짭짤하다곤 해봤자, 아직 수익도 위상도 일류 가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데, 안 그럼 너희들을 굳이 버튜버로 데뷔시켰겠어?"
"그, 그만!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헛소리를..."
항변을 이어나가는 3인방도 알고 있었다.
미레이야말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획사는 이미 미레이를 통해서 기획력을 증명해냈다는 것을...
그녀의 말대로 3인방의 음악은 기껏해야 2류였다.
앞선 음반들이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버튜버라는 포장지로 정성껏 포장을 해낸 덕분이다.
사실상 마케팅의 승리라고 봐야한다.
만약 순수하게 노래로 승부했다면 그녀들은 참패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들 본인이 이미 그것을 증명했다.
미레이는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해하지 마. 나는 버튜버가 가수보다 급이 낮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야. 직업에 귀천은 없다잖아. 하지만 버튜버라는 직업을 대하는 너희들의 태도는 너무 천했어. 기껏 재능을 타고났는데 뭐하는 짓인지 원."
"..."
"도대체 뭘 믿고 나한테 가수 데뷔를 다시 부탁했던 거야? 우리 기획사에서 새로 데뷔한 애들 노래, 제대로 들어보긴 했어? 너희가 걔네들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에, 저런 부탁까지 했던 건가?
연예계 쪽은 선후배 관계가 상당히 경직된 것으로 알고있는데...
이걸 보니까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미레이 정도 되는 대선배에게 깡도 좋다.
나는 그녀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이야기를 궤도로 되돌렸다.
"어쨌든 버튜버로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다시 가수 데뷔를 하기 위해선 이 방법이 최선이었죠. 본인들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계약 위반이 되지만, 불의의 사고로 신상이 노출되는 것은 문제없으니까요."
스토커의 살해위협 같은 것도 그녀들과는 인연이 없다.
어차피 자작극이니까.
내가 제시한 첫 번째 범행 동기를 납득한 앨리스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두 번째 범행동기는?"
"이건 사실 범행동기라고 말하긴 좀 그런데,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란 거지. 잘 풀리면 좋고, 안 풀려도 그만."
"밑져야 본전?"
내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3인방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설마 여기까지 읽어냈으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가장 먼저 뭘 생각할까요? 당연히 실패해서 처벌을 받게 될 때의 걱정부터 합니다. 사람들의 그 부정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범죄의 예방에 가장 큰 도움이 되죠."
"..."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 세 분의 입장에선 리스크가 거의 없었어요."
보통 이런 식으로 허위 신고가 들어오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공무집행방해죄에 의한 처벌은 몹시 가볍다.
"술 취해서 경찰서나 소방서에 수십번씩 전화를 걸어도 무죄가 나올 확률이 있는 게 공무집행방해죄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공무원 인력을 혹사시키는데에 굉장히 관대한 나라거든요."
정확하게는 말단 공무원을 혹사시키는데에 굉장히 관대하다.
덕분에 법원과 사회복지계 공무원들 중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자가 나올 정도.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굉장히 가벼웠다.
"허위 신고라곤 해도 실제로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들이라고 해봤자 버튜버들에게 기만당한 시청자들 정도죠. 그마저도 처벌의사가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구요."
귀중한 수사인력의 낭비?
괜찮다. 여긴 한국이니까.
장난꾸러기 시민들에게 관대한 선진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허위 신고로 징역 받으려면 폭발물 관련 허위 신고 정도는 해야한다.
"이 경우에는 실제로 수사인력이 낭비됐으니까 벌금 정도는 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좀 귀찮네요."
"그, 그런..."
"죄송합니다 수사관님."
3인방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한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그녀들이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당연했다.
사실 그녀들로선 내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놀랍고 달갑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건 원래 수사력 부족으로 반려됐어야 하는 게 당연한 사안이다.
만약 내가 좀 더 의욕이 없고, 업무가 바빴다면 깔끔하게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저 말고 시청자들에게 미안해하셔야죠. 저야 뭐 잠깐 산책나온 정도니까."
"으음..."
티아가 무어라 하려는 것을 무섭게 노려보며 틀어막던 찰나.
3인방에게 의외의 변명이 튀어나왔다.
그녀들은 조금이라도 내 동정을 얻기 위해 그릇된 방법을 선택해버린 것이다.
"저, 저희도 이러고 싶었던 건 아녜요."
"버튜버 시청자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변태같은데요."
"... 네에?"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헛웃음을 지으며 테이블 아래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내 반응을 오해한 3인방이 열심히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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