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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7화 (17/229)

〈 17화 〉 이, 이게 머선129...(6)

* * *

패밀리어를 통해 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나는 곧바로 집안으로 들이 닥쳤다. 용사의 동료 녀석을 역강간의 위협에서 구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이쁜 수인녀들과 빨리 7p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녀들의 외모는 마르스나 메이 같은 내 여자들에 비하면 조금 약하지만, 육체 관계를 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미모였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거부하는 고든 녀석이 사실은 고자가 아닌 걸까 진심으로 의심이 될 정도로 말이다.

"내가 너희랑 말이 좀 통할 것 같은데, 그 녀석 대신 나랑 대화를 하자고. 물론, 몸의 대화 말이야."

그 말에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검은 털의 수인녀가 나를 가볍게 흩어보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그 제스쳐의 의도가 너무 명백하여, 수많은 여인의 몸을 맛보았던 나로서는 제법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수컷의 씨앗이다. 그런데 너처럼 말라 비틀어진 녀석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군."

"하, 내가 비록 힘은 딸려도 체력은 자신 있거든? 그리고 강한 수컷이라고 말했는데, 그 강함의 기준이 설마 근력만을 포함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마법적으로 강한 사람은?"

그 말에 검은 털의 수인은 건방지게 코웃음쳤다.

"본인의 몸이 가진 힘이 아닌, 외부에서 가져온 힘으로 으스대는 나약한 족속 따위는 교미 대상에서 제외다."

...아, 이건 좀 많이 짜증나네. 수인들과 즐거운 플레이를 할 생각에 들떴던 기분이, 검은 털 수인의 마법을 무시하는 발언에 팍 상해버렸다.

"마법을 쓰는 사람은 나약한 족속이라고? 마법사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뭐야, 마법사였나?"

그 말과 함께 검은 털의 수인이 다시 날 돌아보았지만, 나를 훝는 그 시선은 명백히 자신보다 아랫것을 보는 듯한 무례하기 그지 없는 시선이었다.

"하긴, 어쩐지 뼈도 마르고 근육도 없는 것 같은데 무엇 믿고 그리 자신만만하나 했더니, 그 잘난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였나?"

이건 좀 자존심이 상하는 데. 나는 마법사이고, 동시에 귀족이다. 오늘 초면인 사람에게, 그것도 자국의 사람이 아닌 타국에서 만난 수인들에게 저런 기분 나쁜 시선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나는 아직 네가 귀족이라는 것을 밝히지는 않았다만, 밝혀봤자 저 시선이 좋아지기는 커녕 되려 나를 더욱 얕볼 것이다.

수인들은 순수한 힘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근육뇌들이고, 그런 수인들에게 있어서 인간 사회의 귀족은 이해할 수 없는 관습일테니.

"한 명은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마법사에, 다른 한 명은 여자라. 차라리 둘 다 튼튼한 수컷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너희들에겐 볼일 없으니 썩 꺼져라."

그래도 말이지, 용사도 꺼려하는 나를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수인이 주제도 모르고 얕보고 있으니, 아무리 나라도 유쾌한 기분이 들리가 없었다.

"이거 참. 가만히 듣고만 있어 주니, 내가 아주 만만해 보이나 봐? 나약한 족속이라고? 어차피 너희들이 전부 한 번에 덤벼도, 여기 있는 그 나약한 족속을 절대 이기지 못할 텐데 말이야?"

"흥! 해볼 테면 어디 해 봐라. 그 잘난 주문을 읖는 순간 다리를 찢어버릴 테니까."

푸른 털의 수인이 이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그 모습이 나에겐 가소롭기 그지 없었다.

....웃음도 나오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 모처럼 즐겁게 나선 여행길인데, 초장부터 기분 잡치네. 원래는 원활하게 너희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순조롭게 끝낼 생각이었다만...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건방 떠는 어린 개새끼 같은 태도에 마음이 바뀌었어."

따악.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수인들이 말하던 주문을 영창한 것도 아니고, 오늘 처음 온 집의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둔 것도 아니며, 손에 스태프나 완드, 혹은 마법이 내장된 아티펙트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가볍게 손을 튕겼을 뿐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긴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천장을

바닥을

그리고 벽을

불길한 검붉은 빛을 내뿜는 마법진이 빼곡히 채웠다.

"...이게, 무슨."

그녀들이 그에 대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팔들이 그녀들 향해 쇄도했다.

"...! 어서 피..."

팔과 다리를 붙잡고, 목과 등을 눌러 바닥에 눕히고, 입과 눈을 틀어막는다. 육체 능력 자체는 인간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는 수인들이, 그 종족의 특성이 다 무색해지게 불과 몇 초만에 완전히 제압되었다. 당황하여 상황 판단이 늦은 것 이전에, 그녀들을 붙잡은 손의 움직임 자체가 그녀들의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기 때문이다.

"세,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호크나는 경악한 기색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 내가 사용한 마법은 하급 흑마법인 '구울의 손길'. 마법진을 통해 적을 붙잡는 손을 만들어 내는, 상대를 제압하거나 행동을 방해하기 위한 마법이다.

하지만 이 마법은 원래 이런 식으로 사방에서 갑자기 손을 소환하는 다소 공포 게임의 한 장면과 같은 마법이 아니라, 미리 만들어 둔 마법진에서 손을 소환시키는 마법이다.

물론 상위 마법사는 사전에 마법진을 그리지 않아도 원하는 면에 마법진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 수도 굉장히 한정적이다. 보통은 잘해봤자 서너 개에서 많으면 대여섯 개 정도?

그래서 이런 식으로 상대를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보단, 미리 만들어 두고 상대의 접근을 방해하는 용도로 자주 쓰이는 마법이다.

물론, 나는 예외다. 파편의 힘의 특성상 나는 사실상 마력이 무제한이나 다름이 없고, 그래서 이렇게 다소 낭비가 심한 비효율적인 마법도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가진 파편의 능력은 '암흑'. 그것은 대상을 뒤틀고 오염시켜 변절시키는 힘. 하지만 나는 그것과 별개로, 흑마법사로서의 흑마법을 사용한 것 뿐이다. 파편과 맺은 불공정 거래로, 남들은 상상도 못할 어처구니 없는 효율로 말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마법 하나 제대로 발동시킬 수 없는 극소량의 마력만으로도, 남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낭비를 할 수 있는 이점 덕분에 나는 실패의 대가를 두려워 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어지간한 흑마법사는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물론 흑마법사 자체가 요즘엔 거의 없어서 비교할 대상이 없지만.

"호크나, 얼른 네 동료 데리고 여기서 떠나라. 나는 이 녀석들의 뒤처리를 좀 해야겠으니까."

"....."

호크나는 의외로 별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 고든을 부축하고 나왔다. 그녀는 떠나기 전 나를 한 번 힐긋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을 보내다,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 그럼 훼방꾼도 사라졌겠다. 본격적으로 볼일을 볼 시간이군. 나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그녀들의 입과 눈을 막은 손들이 물러나고, 머리를 바닥에 짓누르던 손이 힘을 뺐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으, 움직일 수가 없어...!"

"으응, 으으응! 이거 ?! 놓으란 말이양!"

"....."

"제길... 빌어먹을 인간 놈. 이런 비겁한 짓이나 벌이긴... 절대 용서 못 해!"

"그르르르르....!"

어디보자. 검은 놈, 파란 놈, 빨간 놈, 노란 놈, 거기에 초록이랑 주황까지. 색깔 별로 다 있네. 그리고 하나 같이 당황스러워하거나, 화를 내고 있고. 그 와중에 한 명은 말하는 게 수인이라기 보다는 그냥 개인 것 같긴 하지만... 생긴 건 수인이 맞으니까 넘어가자.

"그럼... 일단 거기 푸르딩딩한 녀석. 너 이름이 뭐냐? 아니, 일단 이름은 있냐?"

태어날 때부터 이름을 갖는 인간과 달리, 수인들은 태어나고 한 명의 부족원으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후부터 부족의 대표에게서 이름을 받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수인과 인간의 문화적 차이다, 이거지.

"....."

"이름이 없다면, 주변에서 외형 가지고 대충 불렀겠네. 털이 파란 색이니까, 아마 파랑이라고 불렀겠지?"

"...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이지마, 비겁한 인간 새끼..."

음, 이 녀석 말버릇 한 번 고약하군. 호크나의 매도가 자신의 몸에 욕정하고 관계를 강요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혐오라면, 이 수인의 매도는 나 개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에 가깝다.

짜악!

"윽...?!"

그래서 나는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그런 취급을 받는 것에는 불만이 없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나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짜증이 났다. 한강에서 뺨 쳐맞고 종로에서 눈물 흘리는 거야, 뭐야?

원한이 있는 인간은 따로 있을 텐데,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향했어야 할 감정을 나에게 푸는 것은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너희들의 감정 쓰레기 통이 아니라고.

설마 자신이 나약한 인간에게, 그것도 그토록 무시했던 마법사 따위에게 따귀를 맞을 줄은 몰랐다는 듯, 푸른 털의 수인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난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고개를 강제로 들려 눈을 맞추었다.

"난 말이야, 니네가 바이올렌스 그 제멋대로인 계집이랑 무슨 일이 있었고 어쩌다가 여기에 온 건지는 좇도 관심 없어. 니네 부족의 부흥이니 뭐니 하는 것처럼, 나랑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근데 말이야,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이지 마라고? 그건 내가 할 소리란 말이지. 너야말로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겁한 인간이라고 일축한 주제에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거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어차피 인간이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는 만큼, 그만한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냥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자신이라는 인간을, 완전히 타인인 누군가가 완벽히 이해하는 일 따위는 절대 불가능하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그러니 난 누군가에게 이해받길 원한 적이 없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난 말이지.

"자기 멋대로 착각하고, 증오하고, 이빨이나 들이대는 건방진 개새끼는..."

그저.

"아무래도, 벌이 필요하겠지?"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상대를 바꿀 뿐이다.

때로는 있는 힘껏 때려 부수고, 때로는 부드럽기 녹이고, 때로는 거칠게 찢어발기고, 때로는 천천히 깎아내리고, 때로는 정성스레 하나 하나 완전히 분해하고, 때로는 짓밝고 으깨서 가루로 만들고...

수많은 선택과 방식. 나는 그것을 오로지 나를 위해 사용한다. 그것에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 따위는 없다. 내가 누군가를 배려한다면, 그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배려하는 '척' 하는 편이 내게 편하고 좋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할 뿐.

그리고 내가 그녀들에게 취할 선택은.

"각오는 되어 있지? 밤은 아직 길거든."

내 기준에서도, 다소 거친 방식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우리가 잠든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루크, 넌 이게 진짜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 그래. 우리의 다음 목표, 폭군 바이올렌스가 지배하는 엘헤임 왕국의 병사들에게 도망친 여자 수인들이 부족의 대를 잇기 위해 고든을 납치했다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비올라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 호크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라그나 아마게돈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와 싸운 적이 있는 그 남자가, 고든을 구하는 과정을 도왔다고? 말이 된다고 상각해?"

"그건..."

"루크, 너도 상대해 봤으니 알잖아? 아마게돈 남작은 결코 호의만으로 누군가를 도울 위인이 아니야. 아직도 영지전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대체 뭔 개꿈이냐며 욕할 걸?"

"진정해, 비올라."

루크는 적발의 여마법사를 진정시켰다.

"확실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지. 하지만 우리 동료인 고든과 호크나가 그렇다고 말하잖아.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뜻이겠지."

"즉, '그' 라그나 아마게돈이 우리를 도왔다? 나 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동료의 말을 신뢰하는 루크와 라그나에 대한 이야기를 도저히 믿지 못하는 비올라의 대화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계속 평행선을 이루었다. 그 와중에 에일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저, 그러니까... 아까부터 아마게돈 남작의 마차 안에서 들려오던 그 목소리의 주인이, 어젯 밤에 고든을 납치했던 수인들이라는 뜻이네요..."

"""....."""

오늘 아침부터 아마게돈 남작의 마차 안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이상한 소리.

마치 괴로워하는 여자의 신음과 같은 그 소리의 원인을 알게 되자 어째서 그의 병사들이 주기적으로 마차 안을 들락날락 거리는 지, 그리고 왜 마차에서 내릴 때 묘하게 산뜻한 얼굴이었던 것인지, 용사 일행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

아무리 동료를 납치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꼴을 당하게 냅버려 두는 것이 정말로 옳은 것일까? 그것이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벌이라고 한들, 그 벌을 아마게돈 남작이 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의 마차 안에 감금되어 있을 그녀들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루크는 차마 그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로 첫째는 납치를 당했던 당사자이자 동료의 앞에서 납치범을 구하자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고, 둘째는 상대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인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었던 탓이다.

"...후우."

루미너스 여신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

그러나 용사의 간절한 기도에도, 언제나 들려오던 여신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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