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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24화 (24/229)

〈 24화 〉 미..미...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지!(6)

* * *

여행을 떠나고 닷새가 된 오늘, 용사 일행의 마차와 내가 탄 마차가 마침내 엘헤임 왕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지?"

"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그 말만 이미 다섯 번은 들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히, 히익...!"

경비대는 내 신원을 확인하자 곧바로 들여보내는 대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어딘가에 연락을 보내며 초병 한 놈을 보내 나를 붙잡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 바들바들 떠는 다리, 가만히 있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는 손까지. 이거, 아무리봐도 신참이다. 이 잔인한 놈들, 신참병을 제물로 내 시간을 뺏을 셈이군.

...도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그 망할 놈의 상호불가침 조약 때문에 미리 전령도 보냈는 데, 막상 도착해보니 전령 같은 건 도착한 적이 없다나 뭐라나? 그 탓에 나는 이 망할 조그만한 마을 입구에 붙잡혀서 이것의 최고 책임자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쒸빨 내 전령 어디갔어?

항상 보내던 녀석을 보냈으니 가는 길을 몰라 헤매지는 않을 테고, 여비도 필요한 정도만 줬으니 도중에 여비가 떨어지거나 금품을 노리는 도적들에게 표적이 될 리도 없을 텐데...

도대체 누구 짓이지? 어떤 개잡놈이 감히 이딴 되도 않는 수작질을 부린 걸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가문의 인장을 지니고 있는 전령을 노렸다고? 도적들이 아무리 무식하다 해도, 어느 정도 세력을 가진 놈들이라면 나에 대한 것을 듣지 못 했을 리가 없다. 그만큼 난 유명인사니까.

그렇다면 전령은 내 가문의 인장을 지니고 있음에도 공격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문의 인장을 지니도 있었기에 공격받았을 확률이 높다. 평소에 '안개의 마녀'에게 내 말을 대신할 전령을 자주 보냈으니 '안개의 마녀'의 물건을 노린 범죄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범인은 이미 일개 국가 급의 전력을 가진 나를 방해하려고 했다는 뜻이 되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래간만이군요, 검은 군대의 라그나 아마게돈."

"뭐야, 안제? 네가 왜 여깄는 거냐?"

그렇게 초병과 십 분 정도 더 노가리를 까다가 마침내 엘헤임 왕국 상부에서 보낸 사람이 도착했다던데, 그 사람은 내게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로얄 나이트, 안제.

로얄 나이트란 바이올렌스 여왕 직속 기사단으로, 오직 그녀의 명령만을 듣고 수행하는 기사들이다. 그녀가 지배 능력으로 복종시킨 사람 중 가장 강한 이들로만 구성된 무력 집단으로,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이 논외급이다.

솔직히 지배 능력만 아니었으면 그녀가 어찌할 수 없는 강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스보다 쎈 부하몹 같은 놈들이다. 만일 용사 일행이 바이올렌스 처치에 실패한다면, 그건 100% 로얄 나이트 때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구성원은 고작 100명인데, 그 수로 다른 나라의 군대와 정면으로 맞붙어도 이길 정도이니 말 다 했지.

본래 전쟁은 머릿수 싸움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일한 스펙일 때의 기준. 코끼리 한 마리와 개미 한 마리를 싸움 붙이는 것이 말도 안돼는 조건인 것처럼, 로얄 나이트는 구성원 전체가 일개 개인이 가지기에는 너무나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 재능이 있던 놈들인데, 그녀의 지배 능력의 영향으로 그 재능이 완전히 개화한 영향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그 로얄 나이트 중 하나인 안제는 나랑 면식이 있는 여자다. 단순히 아는 사이도 아니고, 제법 뜨겁게...

"...당신,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죠?'

"이상한 생각이라니, 난 그저 조국에 승리의 영광을 바치겠다던 여기사가 망측한 자세로 내 앞에서 벌벌 기며 꼴사나운 소리로 울던 기억을 떠올렸을 뿐이야. 이야, 그 때는 진짜 좋았는데 말이지. 안 그래?"

"...당신은, 진짜 최악의 인간입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언제 들여 보내 줄 거야?'

"수상한 것이 없나 제가 직접 한 번 검사하고, 이상이 없을 경우 들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폭탄이나 마약, 뭐 그런 거? 그딴 것보다 몇 백 배는 훨씬 위험한 게 네 눈앞에 있는 데, 굳이 확인을 해야 해?"

"...그게 절차입니다. 따라주시길."

정말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안제는 이런 쪽으로는 꽉 막힌 융퉁성 없는 녀석이니까. 뭐, 그래도 딱히 제제당할 법은 물건은 없다. 마차는 마법을 꺼놔서 다시 평범한 마차로 돌아갔고, 엘헤임 왕국 법에 위배되는 물건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이건.."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수인들이군요."

"그래. 너네 최근에 수인 사냥을 벌였다며? 그 때 도망쳤다는 녀석들인데 납치, 강간미수, 귀족모독 등의 죄를 지었거든. 그래서 노예로 만들려고 챙겨왔지."

"그렇습니까?"

그 말을 하며 수인녀를 살피는 안제의 눈에 굉장히 불길한 빛이 떠올랐다. 나를 짜증나게 할 방법을 발견해서 신나는 것 같은...

그 때 안제가 돌연 수인녀들의 입에 걸어놓은 재갈을 풀며 말했다.

"당신들, 혹시 '결투 재판'을 신청할 의사가 있습니까?"

"...갑자기 무슨 짓이지?"

"왜 그러시죠? '결투 재판'은 엘헤임 왕국의 시민이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권리입니다. 따라서 형을 집행하기 전, 그 권리를 행사할 의사가 있는 지 묻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그 수인녀들은 엘헤임 왕국 근처의 수인 부족 출신이지, 엘헤임 왕국 출신의 시민이 아닐 텐데?"

"실은 그 수인 사냥 이후, 여왕 폐하께선 잘못된 결정에 대한사과의 의미로서, 살아남은 수인들에게 엘헤임 왕국 시민의 자격을 주기로 하셨답니다. 따라서, 그녀들은 엄연히 엘헤임 왁국의 시민이며 결투 재판을 신청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죠."

씨발, 결투 재판이라니. 그 귀찮고 번거로운 짓을 하라고? 안제, 이 망할 년이... 넌 나중에 끝나고 두고 보자.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주지.

"결투 재판? 그게 뭐냐?"

"어머, 모르셨나요? 결투 재판이란 엘헤임 왕국에만 있는 특별한 법이랍니다. 범죄자가 형을 집행받기 전에 휘두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로, 일 대 일의 공평한 결투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재판이죠. 즉, 당신들이 저기 있는 아마게돈 남작을 상대로 결투 재판을 신청해서 승리한다면, 기소되었던 죄를 사면받을 수 있죠. 노예가 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랍니다."

안제는 푸른 털의 수인녀에게 결투 재판의 룰을 알려주었고, 이미 내가 길들여진 누렁이와 마음이 꺾인 초록이를 제외한 네 명의 수인이 일제히 눈을 빛냈다. 귀찮게시리...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 확실히 결투 재판에서 이기면 무죄가 되지만, 반대로 패배했을 경우에는 훨씬 끔찍한 결과 뿐이다. 결투 재판에서 패배한 쪽은 어떠한 형벌이라도 달게 받아야만 하니까. 원래는 금품갈취 행위로 기소되어 벌금행을 받을 예정이었던 도적 하나가 그걸 무죄로 만들겠답시고 결투 재판을 신청했다가 패배하여 양손의 손목이 잘린 일도 있었지."

받아야 할 벌이 벌금에서 손목 절단으로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빛나던 수인들의 눈이 일제히 죽은 눈이 되었다. 그렇겠지.

이미 나한테 패배해서 붙잡혔던 주제에, 이제와서 다시 맞붙어봤자 이길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저항해봤자 더 끔찍한 결과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전부 포기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여기서 결투 재판을 신청할 놈은 없겠지.

"그 결투 재판인가 뭔가 하는 거, 하겠어."

...이 망할 푸른 놈을 제외하면 말이야.

하, 저 빡대가리 년. 평소에도 생각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대가리가 빈 년이었을 줄이야. 저 년은 기도 세고 머리도 멍청해서 메이드로 쓰기엔 어렵겠고, 그냥 실험체 및 병사들 성욕 배출구로 만들어야 겠다.

*

결투 재판이란 엘헤임 왕국에만 있는 특별한 법으로, 이름 그대로 결투를 통해 판결을 내리는 미친 재판이다.

이 재판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들이 있다.

1. 결투 재판은 엘헤임 왕국의 시민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며, 누구도 이 권리의 행사를 억제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2. 결투 재판에서 이기면 신청한 죄목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으나, 질 경우 지었던 죄질 이상의 형벌을 받게 된다.

3. 결투 재판은 어떠한 경우에도 취소 및 무효로 할 수 없으며, 해당 권리 행사에 대해 당사자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다.

4. 결투 재판은 판사의 자격을 가진 심판 앞에서 양쪽이 합의하에 공평한 조건으로 결투하며, 이 때 그 어떤 외부의 압박도 없이 본인의 의사로만 결정해야 한다.

5. 결투 재판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결투 재판을 신청할 수는 없다.

...뭐, 대략 이런 법이다. 말 그대로 이긴 쪽의 말을 듣는, 알기 쉬운 법이지. 어찌보면 힘이 있는 쪽이 무조건 무죄가 될 수 있다고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4번. 양쪽이 합의 하에 공평한 조건으로 결투해야 한다. 즉, 이 재판이 행사될 때 약한 쪽이 강한 쪽에게 제한을 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저 파랑이 놈이 재판을 받아들인 것은 이 조항 때문인 셈이고.

"로얄 나이트는 엘헤임 왕국 내에서 일어난 분쟁에 대해 즉결 심판할 권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 결투 재판의 입회인 자격이 있습니다. 저, 로얄 나이트 안제의 앞에서 양측은 서로 결투의 상세한 조건과 제한을 정해주십시오."

나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안제를 따라 원형 경기장이 도착했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이 경기장은 결투 재판이나 투기장을 위해 세워진 건축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아와 파랑이의 결투를 구경하러 모여든 상태다.

"넌 어느 쪽이 이길 것 같냐?"

"당연히 아마게돈 남작이지! 넌 저 인간이 질 것 같냐?"

"하지만 수인도 신체 능력은 뛰어난 편이고, 이건 그냥 싸움도 아니도 결투 재판이잖아? 아마게돈 남작은 마법사라던데, 그냥 상대가 마법 사용을 제한하면 끝이지."

파랑이의 귓가가 쫑긋거리는 것을 보니, 저 구경꾼의 이야기를 엿들은 모양이다. 마법 사용 제한이라... 쓸데없는 소리나 하긴. 저 구경꾼은 나중에 사하에게 시켜서 몰래 처리해야겠다.

존나 귀찮은 상황이지만, 꼭 나쁘기만 한 상황은 또 아니다. 용사 일행도 구경꾼 사이에 섞여 있었으니까. 아마 내가 뭔가를 한다길래 뭘까 싶어서 찾아온 거겠지.

딱 좋다. 이건 올곧고 정의로운 용사님에게, 라그나 아마게돈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최악의 악당을 무찔러야 한다는 사명감과 투지를 다시 불태울 수 있게 만드는 찬스이기도 하니까.

우선 파랑이가 나한테 먼저 조건을 걸었다.

"너, 인간! 저번에 그 이상한 기술 쓰지 마!"

"마법 말인가? 좋다. 그럼, 나는 마법'만' 쓰지 않으면 된다는 거로 괜찮겠지?"

"그래!"

이 멍청한 수인은 내가 마법만 안 쓰면 자기가 반드시 이길 거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병사들한테 돌림빵을 당하면서도 태도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겠지.

마음 속으로 '이것만 아니었으면, 그것만 아니었으면, 뭐뭐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겼던 건데, 제대로 싸우면 내가 이기는 데'라고 자기 위로를 하며 병사들을, 그리고 나를 얕보고 있던 것이다.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뭘해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거지. 머리가 너무 멍청해서 내가 얼마나 강한 지 모른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 조건 승낙한다. 그럼 이번엔 내가 조건을 걸 차례지? 음... 어느 한 쪽이 항복 선언을 하기 전까지 절대 결투를 끝내지 않는다. 동의하나?"

"바라던 바다!"

자신만만하게 내가 내민 조건을 받아치는 수인녀의 모습에, 나는 입을 가리켜 킥킥 웃었다. 멍청한 년. 도대체 얼마나 머리가 비었길래, 이렇게까지 내가 파둔 함정에 딱 들어올 수 있는 거지?

"그럼 결투의 룰은 일 대 일 결투, 제한은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의 마법 사용 제한 및 항복 선언에 따른 승패 유무 결정. 이상의 조건으로, 지금부터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과 이름 없는 푸른 수인 여성의 결투 재판을 개정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안제의 선언, 관객들의 우렁찬 함성을 시작으로 결투 재판이 개정했다.

*

심판인 기사의 개정 선언과 동시에, 파란 털의 수인녀는 온 힘을 다해 라그나 아마게돈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수인 특유의 각력으로 바닥을 거세게 박차며 단숨에 도약했고, 상대의 얼굴을 향해 날카롭게 세운 손톱을 휘둘렀다.

마법도 못 쓰는 마법사 따위는 절대 막을 수 없을 거다!

예리한 손톱으로 그 꼴보기 싫은 얼굴을 찢어발기려는 순간, 맑은 금속음이 울리며 그녀의 손에 불쾌한 반동이 돌아왔다. 그 얼얼한 감각에 그녀는 눈쌀을 찌푸렸다.

...막대?

그 남자는 어느샌가, 아디선가 꺼낸 긴 막대로 그녀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검은 색의 무척 얇고 긴 금속 막대였다. 수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쪽 손을 휘둘러 다시 그를 공격하려 했느나, 그는 막대를 휘둘러 내지르고 있던 손을 튕겨내고 그녀가 휘두른 공격을 다시 완벽하게 방어했다.

"뭐야, 그건! 반칙이잖아!"

"무슨 소리지? 나는 반칙 같은 건 저지르지 않았다만."

"무기를 쓴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없었지. 네가 처음에 내건 조건은 '마법의 사용 금지'뿐이었을 텐데?"

확실히 그랬다. 그녀는 상대가 마법사이기에 무기를 쓸 줄 몰랐고, 그래서 마법 사용의 제한만 걸었다.

"마법사에게 마법을 쓰지 못하게 해두고서 무기를 쓰는 것마저 비겁하다고 욕하다니, 그게 온몸이 무기인 수인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오히려 그렇게 우기는 네 쪽이 비겁하지 않나?"

"닥쳐!"

"왜 화를 내고 그래? 찔렸나? 아니면 설마, 주종목인 마법도 아니고 무기를 휘두르는 마법사를 상대로 질 것 같아서 후달리나...?"

빠지직. 남자의 도발에, 수인녀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 두려워 한다고? 내가? 마법도 못 쓰는 마법사를 상대로 패배할까봐?

말도 안 되는 소리.

"웃기지마!"

수인녀는 사납게 외치며 다시 거칠게 덤벼들었다. 그 기세는 흉흉하였고, 위력은 위협적이었느나, 공격의 패턴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아마게돈 남작은 그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거나 흘려내며 방어하다, 틈이 날 때마다 막대를 휘둘러 그녀를 후려쳤다.

빠악! 퍽! 뻐억!

"칵, 크읏...!"

뭉특한 막대 끄트머리로 팔이며 다리며 몸의 곳곳을 얻어 맞던 수인녀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수인들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육체 능력과 예민한 감각 덕에 성인식을 치룬 후라면 인간 병사 세 명은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 하나가 뛰어난 전사들이다.

그런데 그런 전사들 중에서 특히 힘과 속도 하나는 위인 자신이, 마법이니 뭐니하는 이상한 수작이나 부리는 인간에게 신체 능력으로 뒤쳐진다고?

남자의 힘과 속도는 특별하지 않으며, 기술은 더더욱 형편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작 이런 인간을 상대로 자신이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수작이라니, 섭섭한 소리를."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막대 끝을 겨누었다.

"적어도 '나는' 마법은 쓰지 않았어. 그저, 내가 휘두르는 이 무기에 몇몇 마법이 '걸려 있을' 뿐이지."

"...심판! 이거 반칙이잖아! 저 녀석, 마법을 썼다고!"

그러나 그녀에게 이 결투 재판이라는 희망을 주었던 심판은 고개를 내저으며 냉정하게 판결을 내렸다.

"결투의 제한은 어디까지나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의 마법 사용 제한' 뿐. 그 외에 다른 것은 전부 허용되어 있습니다. 저 무기는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이지만, 이 재판 중에 부여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걸어둔 마법이기에 대상에서 제외입니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반칙이야! 실격이라고! 이건 무효야, 무효!"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수인녀의 억지에 가까운 외침에, 심판을 맡은 로얄 나이트 안제나 두 눈을 사납게 빛냈다.

"무효라고요? 아뇨, 그건 안 됩니다. 한 번 시작된 결투 재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를 수 없습니다. 이미 사전에 제가 전부 전해드렸을 텐데요? 그럼에도 싸울 의지가 없다면, 항복을 선언하고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시면 그만입니다. 결투 시작 전에 '어느 쪽이 항복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절대 결투를 끝내지 않는다'는 조건에 수락하셨으니까요."

"크읏...!"

수인녀는 기사의 너무나도 차가운 반응에, 이를 악물며 다시 아마게돈 남작을 향해 손톱을 세우고 덤벼들었다. 물론, 얼마 안가 그 얇은 몽둥이에 얻어맞으며 나가떨어졌지만.

그렇게 몇 번이고 얻어 맞다 보니,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패배하는 지 그 몸으로 깨달았다. 그를 향해 휘두른 자신의 공격들은 느리고 약해지지만, 반대로 그에게서 날아오는 공격들은 빠르고 강해졌다.

마치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는 것처럼, 혹은 불어오는 역풍을 맞는 것처럼.

"보아하니 항복 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군."

"항복 따위, 할 까 보냐! 너 같은 비겁한 녀석에겐 절대로 항복하지 않아!"

"뭐... 솔직히 항복한다고 해도 들어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는 의미심장한 발언과 함께 그녀의 공격을 흘리고, 날카롭게 반격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같은 휘두르기가 아니었다. 그는 검은 금속 막대를 마치 창을 다루듯 내질렀다.

"허윽?! 칵..! 학, 하윽...!"

갑작스러운 찌르기가 명치에 그대로 작렬하자, 수인녀는 괴롭게 숨을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아무리 수인이 온몸이 무기라 불릴 정도로 강하고 튼튼하다고 한들, 눈이나 명치 같은 급소에 맞으면 무력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상대가 급소를 얻어맞고 숨도 못 쉬는 상황일 때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줄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빠악!

"....!!!"

정신이 혼미하다. 귓가에 삐­하는 신경을 거슬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얼굴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손을 가져다 대보니, 손이 붉게 젖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급소를 찔려 숨을 못 쉬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그는 온힘을 다해 쇠막대를 휘두른 것이다.

"...!"

그 사실을 인지하자 뒤늦게 통증이 밀려온다. 얼굴이 쓰라리고, 아랫턱이 빠질 것 같다. 입을 벌리려고 하면 찌릿한 통증이 밀려와, 그녀는 한 쪽 눈을 질끈 감았다.

"뭘 혼자 쉬고 있지? 결투는 아직 안 끝났다."

빠악! 거침 없는 몽둥이 질이 다시금 얼굴을 향해 날아든다. 그녀는 다급히 두 팔을 교차해 막대를 받아냈지만, 그의 공격 수단은 막대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우왁스러운 손길이 교차한 팔을 잡아 당겨 강제로 수비 자세를 풀었다. 그녀는 잡히지 않은 반대쪽 팔을 휘둘러 어리석게도 자신이 공격 가능한 사정거리 안으로 제 발로 들어온 그를 공격했다.

"역시 미친 개에겐."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그가 든 쇠막대가 그녀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쳤을 때, 그녀는 어리석은 쪽은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몽둥이가 약이지."

공격의 사정거리? 결투?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수인의 강점인 뛰어난 신체 능력이 그가 가진 이상한 수작 앞에서 무의미해진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대한 안 아프게 얻어맞는 것이 고작이었다.

분명히 마법이 맞는 데, 심판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법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 현상인데도, 저 남자는 마법을 쓰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럼, 대체 이 마법은 뭘까?

빠악!

고민해봤자 알 턱이 없었다. 그녀가 그걸 알아낼 정도로 머리를 굴릴 수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

끊이지 않는 귓가의 불쾌한 이명 너머로 들여오는 폭력에 취한 관객들의 잔혹한 환호성.

한 쪽이 붉게 물든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것은 사악하게 웃는 얼굴로 무자비하게 막대를 휘두르는 인간 남자.

후각에 잡히는 것은 진한 피 냄새. 그리고 그것은 모두 그녀 자신의 것.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팔이, 다리가, 얼굴이, 배가, 눈이, 귀가, 손이, 코가, 발이, 꼬리가, 가슴이...

아프고 또 아파서, 너무나도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심판이 자신의 패배를 알리며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그녀는 곧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폭력이 계속되어 더 이상 저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그녀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그런데 남자의 몽둥이 찜질은 멈추지 않으며 심판의 결투 종료 선언도 들려오지 않는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 그리고 자신의 몸이 막대에 두들겨 맞으며 나는 둔탁한 피격음 뿐.

이윽고 그녀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닫는다.

조금 전에 심판인 그 여기사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항복 선언을 하기 전까지 절대로 결투는 끝나지 않는다고.

그녀가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임에도 그의 폭력이 멈추지 않으며 결투가 끝나지 않는 이유, 그것은 간단했다. 그녀가 자기 입으로 항복 선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아아....져..."

더 이상 아픈 것은 싫다. 말을 듣지 않는 턱을 억지로 움직여 항복을 외치려 했으나, 이윽고 휘둘러진 막대가 입을 후려쳐 나오려던 말을 끊었다.

"무슨 말을 했나? 잘, 안들렸는 데 말이지."

이 남자, 지금 일부로 턱을 때려 말을 끊었다. 항복 선언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금 무자비한 매질이 시작되었다.

항복 선언을 하지 않으면 결투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일부로 입을 때려서 항복 선언을 막았다.

그러니 이 결투는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떠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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