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외전 옛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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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한 용사와 사악한 용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용사는 그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는 최강의 전사였지만, 용은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의 괴물이었습니다.
용은 용사의 손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었지만 절대로 죽지 않았기에 다시 일어나 용사에게 덤볐습니다.
용사는 거대한 용이 상대도 되지 않는 초인이었으나, 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기에 영원히 용을 상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용사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용이 가진 힘의 근원인 검은 보옥을 파괴하고, 용을 지하 깊숙한 곳에 봉인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고,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라는 동화 같은 해피 엔딩으로 끝날 만큼 세상은 자비롭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용이 봉인된 날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용이 봉인된 지하의 신전에 네 명의 남녀가 발을 들였습니다.
왕의 사생아이자 계승 순위 최하위인 공주, 모두에게 미치광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추방 당한 학자,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복수에 눈이 먼 병사, 그리고 이국에서 찾아온 몰락한 귀족 가문의 젊은 후계자.
서로 전혀 연이 없을 것 같은 네 명의 남녀는 자신들의 불온한 인생을 바꿔줄 힘을 갈망하였습니다. 설령 그것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라 할 지라도.
그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대다수에게서 잊혀져 지키는 이 하나 없는 지하 신전에 도달했고, 너덜너덜해진 낡은 봉인 속에서 고대의 사악한 용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사악한 용은 자유를 원했고, 자신을 찾아온 인간들을 이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용은 네 사람 앞에서 검은 빛을 띄는 보물 상자 하나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심상치 않는 힘을 내뿜는 보물들의 광채에, 그들은 빠져들었습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용은 네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각자 하나 씩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에 맞는 보물을 너희에게 주마.]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복수에 미친 병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부술 힘을 원했고, 용은 그에게 힘이 솟아나는 갑옷을 선물했습니다.
갑옷을 입은 병사는 칼이나 활에 맞아도 멀쩡했으며, 제 아무리 단단한 것도 손쉽게 박살 낼 힘을 얻었습니다.
미치광이 취급 받던 괴짜 학자는 자신을 비웃은 사람들이 후회하게 만들 힘을 원했고, 용은 그에게 세상의 법칙을 뒤집는 지팡이를 선물했습니다.
학자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치면 그 어떤 흔들리지 않는 진리도 반전되고 뒤틀리며 왜곡되었습니다.
원치 않은 출생의 비밀로 고통 받던 사생아 공주는 자신을 무시하는 모든 이들을 지배할 힘을 원했고, 용은 그녀에게 그 어떤 인간도 지배할 수 있는 보관을 선물했습니다.
보관을 쓴 그녀의 앞에 모든 인간이 고개를 조아리고 그녀의 명령을 모두가 아무런 불만 없이 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몰락한 귀족에게, 용은 무엇을 원하느냐 물었습니다.
몰락한 귀족은 앞의 세 사람이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가 모두 담긴 상자를 원했고, 용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세상의 모든 어둠이 담긴 상자를 넘겼습니다.
검은 상자 안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자를 받은 귀족은 용에게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며 신전을 나섰습니다.
각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네 사람은 그 날 곧장 흩어졌습니다.
병사는 무적과 최강의 갑옷으로 전장을 누비며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을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학자는 왜곡과 반전의 지팡이를 휘두르며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농락하고 조롱했습니다.
공주는 지배와 종속의 보관을 쓴 채 명령을 내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왕족을 숙청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둠과 죄악의 상자를 가져간 몰락한 귀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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