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36화 (36/229)

〈 36화 〉 벚꽃이네? 벚꽃이여?(3)

* * *

루미너스 여신이 만든 세계 속, 그러나 그 세계 안에 담긴 창조주조차 몰랐던 곳. 바깥과 이어지는 그 어떤 통로도 존재하지 않은, 완벽하게 폐쇠되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

그 안에서 이 세상의 규칙에 얽매여 있지 않은 두 존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칫... 설마="" 그걸="" 맞고도="" 안="" 죽고="" 살아남았을="" 줄이야.="" 나름="" 들키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힘을="" 썼는="" 데...="" 아아,="" 짜증나.="" 이래서="" 다른="" 녀석의="" 세상="" 따위에="" 머물고="" 싶지="" 않다니까.="" 무슨="" 놈의="" 제약이="" 이리="" 많은="" 건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너는="" 그="" 녀석을="" 처리하겠다고="" 호언장담해놓고="" 거하게="" 실패했다.="" 아무리="" 제약이="" 많이="" 걸려있다고="" 하지만="" 명색의="" 신이라는="" 자가="" 고작="" 인간="" 한="" 명도="" 제대로="" 처리="" 못="" 하다니...="" 역시="" 손을="" 잡을="" 대상을="" 잘못="" 고른="" 모양이군.=""/>

<아아아, 시끄러워.="" 내가="" 본래="" 힘만="" 쓸="" 수="" 있었다면="" 그딴="" 벌래를="" 태워죽이는="" 데="" 1초도="" 안="" 걸린다고!=""/>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런="" 의미="" 없는="" 가정은="" 도움이="" 되지="" 않지.="" 차라리=""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나="" 훨씬="" 현명하지="" 않겠나?="" 되도="" 않는="" 자존심을="" 부리며="" 실패를="" 얼버부리려는="" 것보단.=""/>

사실, 그것은 대화라기보단 말싸움에 가까웠다. 그것도 서로의 책임을 묻고 떠넘기는.

<이 새끼가="" 진짜...="" 너,="" 나랑="" 한="" 판="" 해보자="" 이거냐?=""/>

<후우... 됐다.="" 모든="" 일을="" 다="" 처리한=""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

<...하여간에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야.=""/>

<누가 할="" 소릴.="" 그보다,="" 지금="" 그는="" 어떤="" 상태지?=""/>

한참을 투닥거리며 돌고 돌던 이야기가 마침내 본론에 들어섰다. 성질이 더럽고 말투가 험악한 쪽은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자신의 손 안에 담긴 먹구름 안에 펼쳐진 광경을 노려보았다.

먹구름 안 쪽은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 마차에 탄 라그나 아마게돈과 비라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야.="" 왠="" 여자="" 하나랑="" 같이="" 있군.="" 루미너스="" 그="" 년의="" 대본에는="" 없던="" 여자야.="" 귀찮은="" 데="" 그냥="" 둘="" 다="" 한="" 꺼번에="" 지져버리면...=""/>

<미친 소리!="" 그런="" 짓을="" 했다간="" 이번에야말로="" 발각될="" 거다.="" 잊지마.="" 우리들의="" 목적은="" 그녀의="" 연극을="" 망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절대="" 들켜선="" 안="" 된다.=""/>

<그래, 그래.="" 알고="" 있다고.=""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내려앉겠다.="" 그럼="" 이제="" 어쩌자고?="" 이="" 년놈들="" 하는="" 꼬라지를="" 보니="" 수도까지="" 쭉="" 동행할="" 모양인데?=""/>

<하지만 수도에="" 도착하면=""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질테지.="" 너는="" 그="" 때를="" 노려라.="" 녀석이="" 혼자="" 남는="" 순간,=""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라.=""/>

<네가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내가="" 어련히="" 잘="" 할="" 거다.="" 애초에...=""/>

쿠르릉, 쿠르르르릉...!

<감히 이="" 몸의,="" 그="" 누구라도="" 한="" 번에="" 골로="" 보내버리는="" '천벌'을="" 맞고도="" 뻔뻔히="" 살아있는="" 짜증나는="" 자식을,="" 몸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라그나 아마게돈의 수난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

아, 존나 귀찮아. 존나 짜증나.

내 목숨을 끊는 것은 이 연극의 주인공인 용사의 성검이지, 어디서 살던 지도 모를 미친 신놈의 번개 따위가 아니다. 내가 씨발,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 데, 감히 중간에 난입해서 내 노력을 거품으로 만들려고 해?

보통 신에게 목숨이 노려지고 있다면 불안해서 떨겠지만, 이미 그런 감정을 스스로 거세했던 나는 그런 데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그 신을 향해 분노를 불태우면서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보통 신이라 함은 전지전능한 초월적 존재지만, 그렇다고 공략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루미너스 여신과 교류하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이지.

우선 그 신이란 존재는 나를 죽일 생각이 만땅이지만,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을 셈이다. 내가 부하들과 흩어져서 혼자가 되자마자 루미너스 여신과의 연결이 끊기며 공격해왔으니까.

목표는 여신 루미너스의 연극을 망치는 것. 아무래도 지금까지 연극이 순탄치 않았던 것은 그 신놈이 뒤에서 몰래 장난질을 한 탓인 모양이다.

뭐든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복수귀와 상대하기 까다로운 능력의 미친 광대가 그렇게 간단히 쓰러트린 용사가 나에게 허무하게 졌던 것도 그 영향이겠지.

그런데 내가 다른 악역 보스들과 달리 주인공 앞에서 나를 죽여보란 듯이 나대는 꼴을 보고 내가 루미너스 여신의 조력자라는 것을 눈치채고 처리하기로 한 모양이다.

처음엔 용사가 깨달음을 얻지도 못하게 허무하게 이기게 함으로서, 지금은 용사의 손에 쓰러져야 할 보스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객사하게 함으로서 연극을 망칠 셈이지. 하지만 나는 그들의 힘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신이 워낙 강한 존재이긴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만든 세상에 한해서다. 신이 자기 손으로 창조한 세상 밖에서 쓸 수 있는 힘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 한해서 뿐.

그 예로 빛의 여신 루미너스는 이 세상의 창조주니 이 세상 안에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다른 세상에선 빛에 관련된 분야에만 힘을 쓸 수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은 루미너스 여신이 만든 세상이니, 나를 공격한 신은 물론 다른 세상의 신이고 자신이 맡은 분야의 힘으로만 내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그 먹구름을 생각하면... 천둥이나 번개의 신? 아니면 더 크게 봐서 하늘의 신? 뭐 대충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 신의 목적은 여신의 연극을 망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만약 상관 없었다면, 내가 혼자있을 때를 노려 번개를 쏘는 게 아니라 그냥 주인공 일행에게 벼락을 마구 던져서 태워 죽였겠지.

즉, 나는 혼자 있지만 않으면 그 망할 신놈에게 목숨이 노려질 일이 없다. 수도까지 향하는 길에는 비라와 함께, 그리고 수도에서 사하나 레이와 다시 만나면 그 신에게 노려질 일은 다시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넘어갈 생각은 없다. 그 신의 목적은 연극을 망치는 것. 즉, 연극을 무사히 끝낸다는 내 목적과 정반대이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당연히 방해가 될 수 밖에.

그러니 막을 거라면 내 선에서 막아야 한다. 만일 내가 예정대로 용사에게 죽은 후에 그 신이 용사를 죽여서 연극을 망치려고 하면 내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연극을 망치려는 신을 막을 수 있을까? 방법이 없지는 않다.

그 신이 간섭하지 못하게 다른 신들이 나서던가, 아니면 내가 직접 그 신을 처리하던가.

전자는 루미너스 여신과 연결이 끊긴 시점에서 기대하기 힘들고, 후자의 경우엔...

신은 세상이 담기엔 너무나 거대한 존재이기에, 신이 세상에 현현하기 위해선 화신의 형태로 다른 존재의 몸에 깃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분체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세상이라는 작은 틀에 맞추어 줄인 것이기에 당연히 여러 제약이 걸리게 된다

앞서 위해서 언급했듯 자신이 맡은 분야의 힘만 쓸 수 있는 것이 그 제약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인간과 똑같이 상처 입고, 죽을 수도 있지. 물론 화신이나 분체를 죽인다고 신이 진짜로 죽는 건 아니지만, 본체에 어느 정도 영향이 가기에 당분간 세상에 간섭하지 못하게 무력화시킬 수는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신의 화신 또는 분체를 찾아서 제거함으로서 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법이긴 한데, 도대체 어떻게...?

"...아."

방법이... 있네?

용사의 일행 중에 외모가 제법 내 취향이었던 그 여신관.

여신을 섬기는 그 사제라면 루미너스 여신과 다시 연결될 방법을 찾거나, 다른 신의 분체 또는 화신을 감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용사도 꿈을 통해 여신에게서 직접 신탁을 받고 있지만, 여태까지 내 행보를 생각하면 돕기는 커녕 말도 듣지 않고 베려고 달려들겠지. 차라리 여신관만 어떻게 따로 떨어트린 후에, 말로 잘 구슬려서 도움을 받는 쪽이 낫다.

그럼 여신관과 어떻게 따로 접촉하느냐가 문제인데... 호크나를 이용할까? 나 때문에 잠들었던 정욕이 다시 깨어난 그녀라면, 성격상 나와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꾹꾹 눌러 담고 있을 그 엘프라면...

그녀가 타락 직전이라 자신의 동료를 팔고 나와 몸을 섞을 확률이 반, 그리고 아무리 나와 섹스를 하고 싶어도 동료를 팔아넘길 수는 없다며 내게 활을 겨눌 확률이 반이겠군.

이 속도라면 내가 수도에 도착할 즈음에 용사 일행도 도착할 테니, 상황을 봐서 호크나를 이용하든, 아니면 내가 직접 힘을 써서 데려가든 해야겠다.

신을 찾겠답시고 용사의 동료를 납치하는 것이 과연 맞나 싶으면서도, 납치 또한 악당의 일이기도 하니 문제는 없겠지. 이마 없을 거야.

에이, 설마 용사 놈이 여태껏 내가 눈앞에서 수인녀들을 막 대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자기 동료를 데려가려고 하면 미쳐서 덤벼들겠어? 나름 용사인데 설마 내로남불에 '나만 아니면 돼~'를 시전하겠어?

...부디 나중에 '나는 이 당시 몰랐다. 루크도 용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자 남자였다는 것을...' 같은 자기 회상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나는 마차에 올라타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그리고 아래가 불끈거린다. 부하들과 떨어진 지 이제 고작 하루 지났는 데, 벌써 잔뜩 쌓였다.

아, 존나 박고 싶다. 한 명, 한 명이 어디가서 꿀릴 것 없는 미녀인 내 부하들, 그리고 한창 타락 조교 중인 수인녀들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쫄깃한 보지의 감각도.

언제든 먹을 수 있었던 건데, 갑자기 먹지 못할 상황에 처하니 자꾸 생각나네. 물론 눈앞에 훌륭한 미인이 있지만, 차마 은인에게 그런 짓을 할 수도 없고... 여자와 동행 중인데 풍속점에 가서 쌓인 것을 풀 수는 없으니 참아야 하나?

...참아? 내가 왜?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 아직 되게 하지 못한 일만 있을 뿐. 나는 파편을 쥐고 다시 마력을 뽑아내 채웠다. 그리고 감지 마법으로 주변을 흩었다. 어디 없나? 내, 이 쌓인 것을 풀기에 적당한 것이....

....있다!

저 멀리, '나 도적단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차림새의 무리가 하나 있다. 그것도 나와 비라가 탄 이 마차를 노리고 있다. 대부분이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이지만, 우두머리로 보이는 쪽이 여자다. 그것도 꽤 나쁘지 않은 미인.

가슴이 조금 아쉽지만, 새끈하게 태운 피부부터 탱탱한 오리궁댕이, 그리고 살갗을 대범하게 드러내는 패션까지. 이 정도면 욕구 처리용으로 한 번 먹고 버리기에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큭큭... 올 테면 와라. 여러 의미로 평생 잊지 못할 경험를 선사해줄테니.

*

최근 바이올렌스 여왕이 어떠한 일로 인해 곳곳에서 병력을 차출한 영향으로 엘헤임 왕국 내 마을과 도시들의 치안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 틈을 노려 주변을 약탈하며 세력을 키우는 도적들이 몇 있었다.

그리고 라그나 아마게돈을 노리던 도적 무리, 흑랑 도적단도 그들 중 하나였다. 엘헤임 왕국 안 도적단 중에서도 유독 급성장하여 세력을 키운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고 빼앗는 악랄한 도적들이었다.

특히 흑랑 도적단의 우두머리인 밴디트 블래키는 용병 출신으로, 전장의 붉은 귀신 마르스가 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블랙 울프라는 별명으로 가장 사납고 두려운 여자로 이름을 날렸던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두목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로얄 나이트가 출동하지 않는 이상에야 일개 도시의 경비대가 막기엔 버거운 이들이었고, 그들은 바이올렌스의 무관심 속에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기세등등하게 활동했다.

그리고 지금 그 흑랑 도적단은...

"이런, 미친... 괴물 새끼..."

두목인 밴디트 블래키를 제외한 구성원 300여명 모두가 단 한 명의 마법사의 손에, 차마 뭘 해볼 새도 없이 무참히 몰살당했다.

그들이 한 마차를 노린 시간 12시 10분.

마차를 노렸던 도적 20명 중 19명이 잔혹하게 사망하는 데 걸린 시간 단 2분.

그리고 본거지로 달아난 유일한 한 명에서 시작된 저주 역병의 창궐로 남은 도적 모두가 사망하는 데 걸린 시간 단 38분.

단 40분. 300명이 넘는 인원이 죽기에는 지극히 짧은 시간. 순식간에 부하를 모두 잃은 밴디트 블래키는 증오와 공포가 섞인 눈으로 그 괴물을 노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걸로 끝인가?"

괴물은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가슴을 발로 짓누른 채,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그럼... 이제 내놔."

"워, 원하는 게 뭐야...? 돈? 그래, 돈이지? 씨발, 좋아. 줄게! 줄 테니까...!"

"필요 없어."

"...뭐?"

그 순간 블래키는 자신의 몸을 흩는, 추악한 욕망이 뚝뚝 묻어져 나오는 질척하고 더러운 시선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눈앞에 선 괴물 새끼의 목적을 알아챘다. 자신을 목숨과 재물을 노렸던 대가로, 괴물은 그녀의 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아마게..."

블래키가 괴물의 정체와 함께 그를 향한 저주를 토해내려는 순간 괴물은 그녀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으며,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쉿. 내 일행은 아직 내 이름을 모르거든. 그러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입 조심하라고?"

그리고 그 괴물의 이름은 라그나 아마게돈이었다.

"비라, 마차 안에 들어가서 기다려 줄래? 나는 이 악당을 넘길 도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녀가 난동을 피우지 않도록, 밖에서 잠깐 '대화'를 통해 '설득'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가 돌려말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동행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차 안에 들어간 순간, 라그나 아마게돈은 본색을 드러냈다.

"자, 내 순수한 동행인도 자리를 비켜줬으니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라그나 아마게돈, 이 미친 괴물 새끼...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음? 너, 나 아냐?"

"모를 리가 있겠어? 내가... 내가 누구 때문에 용병 일을 그만뒀는데! 네가 마르스, 그 씨발년의 주인이라 이거지? 죽여버리겠어....!"

배디트 블래키의 용병으로서의 삶은, 전쟁광 마르스와 만나며 끝을 맞이했다. 헤르몬 왕국의 어떤 영지에서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그녀를 고용하기 위해 큰 돈을 내놓았고, 그 큰 금액에 혹했던 그녀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는 그 영지가 라그나 아마게돈과 영지전을 펼치는 곳이었다는 것을 몰랐고, 그의 부하 중에 전쟁광 마르스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 미친 귀신의 맹공 속에서 같이 고용된 동료들은 무참히 죽어나갔고, 최후에 살아남은 것이 블래키였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남은 것은 단지 그녀가 죽기 전에 영지가 적의 손에 함락되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녀의 몸 상태가 온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 거대한 대검을 나뭇가지처럼 붕붕 휘두르는 미친년 앞에서 팔 하나 잃고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으나, 험난한 용병 사회는 팔 하나를 잃은 반푼이가 된 그녀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다.

그 후로 도적이 되어, 그녀는 매일 같이 그녀를 떠올리며 저주했다. 그 미친 전쟁광 년이 제발 어디서 화살비가 되서 뒈져버리길, 그리고 그녀의 주인이라는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라는 놈은 마른 하늘에 벼락 맞고 타죽기를 기도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 그녀가 가진 증오의 원천이 나타난 것이다.

"죽여버리겠어! 반드시 죽여버리겠..."

텁. 아마게돈 남작의 손이 블래키의 입을 다시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하반신을 더듬기 시작했다.

"으읍....?!"

블래키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처음에 아주 잠깐만.

그의 손이 닿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기묘한 열기가 점차 몸을 지배해 나갔고, 이윽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큥큥...♡

아랫배, 아마 자궁이 있으리라 추정되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감각에, 이윽고 원치 않은 황홀감 속애서 블래키는 눈을 뒤집어까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이런 쪽은 내 방식이 아니긴 하다만, 지금은 좀 급하거든. 벌써 이렇게나 쌓여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찌걱, 찌걱...!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존나게 박을 생각이니까, 넌 그냥 닥치고 물이나 마음껏 싸지르라고."

이윽고 뜨겁게 달아오른 두꺼운 쇠기둥 같은 것에 하반신을 꿰뚫리는 감각에, 기묘한 열기에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던 밴디트 블래키는 억눌러진 교성을 토해내며 힘차게 절정에 다다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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