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40화 (40/229)

〈 40화 〉 그게 뭔데 10duck bird꺄!!(1)

* * *

부웅! 촤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엑!"

찬란하게 빛나는 순백색 성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추악하게 뒤틀린 짐승들이 감은 피를 흩뿌리며 무너진다. 그러나 승리를 기뻐하기엔, 그들은 너무 지쳤다. 당연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만, 벌써 일곱 번은 거대한 마수와 전투를 치뤘으니 말이다.

"하아, 하아... 도대체... 언제까지 싸우게 만들 셈이야...?"

"루미너스 여신이시여, 영원한 빛으로 저희를 보호하소서. 루미너스 여신이시여, 영원한 빛으로 저희를 보호하소서. 루미너스 여신이시여, 영원한 빛으로 저희를 보호하소서..."

"개가튼년... 개가튼년... 개가튼년... 개가튼년... 개가튼년... 개가튼년... 개가튼년...!"

용사 일행은 다시 출발하는 마차에 풀썩 널부러진 채 저마다 자신의 짙은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언제 끝날 지 모를 전투에 불편을 호소하며, 누군가는 정신이 좀 맛이 간 듯한 상태로 자신이 믿는 신께 기도하며,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들에게 계속 상대하기 조금 버거운 마수를 보내 지치게 만드는 마수 조련사를 욕하며.

일행 중 그나마 상태가 정상이었던 용사 루크와 마법사 비올라는 현재 마차를 끌고 있었다. 용사야 워낙 일행 내에서도 규격 외로 강하니 그렇다쳐도 체력이 저질이기로 유명한 마법사인 비올라가 멀쩡한 것은 어째 찾아오는 마수들이 하나같이 높은 마법 저항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그나 아마게돈의 '어둠'에 오염된 마수들은 기존의 마수들과 큰 차이점이 있었으니, 바로 그 피부색이었다. 검붉은 색의 마수는 물리적인 공격이 잘 통하지 않았고, 검푸른 색의 마수는 마법적인 공격에 높은 저항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용사 일행을 습격해오는 마수들은 하나같이 마법사가 힘을 쓸 수 없는 검푸른 피부의 마수들이었기에, 평소 높은 위력의 폭격 마법을 쏟아붓는데 대다수의 마력을 소모했던 비올라가 아직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그에 비해 최전방에서 흉폭해진 마수의 거친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내던 전사 고든이나, 그 고든의 상처를 치료하겠답시고 신성력을 쥐어 짜내는 여신관 엘리아, 그리고 하늘을 날며 후방의 엘리아를 노리는 비행형 마수들을 죄다 혼자 쏴죽이느라 팔에 쥐가 난 엘프 레인저 호크나는 이야기가 달랐다.

원래부터 나이에 비해 노안이었던 고든은 평소보다 3년은 더 삭은 얼굴이고, 엘리아는 그녀가 그토록 꺼려하던 이교도의 광신자에 가까은 모습이었으며, 최근 무슨 이유에서인지 짜증이 늘었던 호크나는 마수 조련사가 앞에 있다면 잘근잘근 씹어먹을 정도로 험악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로 인해서 지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몸은 수 차례의 전투를 통해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고든은 보통은 한 방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묵직한 마수의 공격을 이제 엘리아의 회복 없이도 세 번까지 견뎌낼 수 있게 되었고, 엘리아도 신성력의 총량과 활용 능력이 대폭 증가했으며, 호크나의 한계까지 늘어난 집중력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단숨에 꿰뚫을 수 있었다.

용사 루크 또한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지 몸으로 익혔지만, 오직 비올라만은 앞선 전투에서 활약이랄 것이 없었기에 성장 또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료들이 열심히 싸우는 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장기가 아닌 방어 마법 뿐이며, 점차 성장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홀로 뒤떨어지고 있는 듯한 소외되는 느낌에, 평소 자신감이 넘치며 활발한 모습이 특징이었던 비올라는 그녀답지 않게 축 처진 상태였다.

그 모습은 당연히 옆에 앉아 말 고삐를 쥐고 있던 루크의 눈에 들어왔고, 루크는 난감한 상황에 뒤통수만 긁적였다.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라면 간단하다. 검을 휘둘러 베면 끝이니따. 하지만, 낙담한 동료를 위로하는 일은?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 없는 루크는 그저 떨떠름하게 자신이 아는 가장 좋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괜찮을 거야. 아무튼, 비올라도 소중한 동료니까."

"....."

그리고 루크는 곧바로 안하느니 못한 말을 했다며 속으로 후회했으나, 한층 어색해진 분위기를 다시 되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사람 하나는 족히 죽이고도 남을 법한 살인적으로 무겁고 답답한 침묵 속에서, 루크가 숨이 넘어가기 전에 비올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에 동료가 될 때, 내가 마탑의 엘리트라고 소개했지."

"응? 어, 응. 그랬지?"

"사실, 내 또래의 수련생 중에 나보다 더 뛰어난 엘리트가 한 명 있었어."

이건 뭔가 엄청나게 길고 무거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 사실을 직감한 루크는 자신의 입에서 헛소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문 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또래였고, 내 친구였지. 그 애의 이름은 마니카였어. 별볼일 없는 재능 하나만으로 마탑에 들어온 나와 달리,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어. 외모, 성격, 인맥, 재산, 그리고 나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재능. 마니카는 순식간에 마탑의 수석 수련생이되었고, 나는 만년 차석이었지. 친구가 된 이유도, 마니카가 좋은 애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루크는 스스로의 입을 봉인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파괴자 세르베르크. 혼돈의 파편을 가진 자들 중 한 명이며, 강력한 파괴의 힘을 가진 남자. 그는 두 분쟁 국가, 롤랑 왕국과 사우르 왕국의 사이에서 활동하며 눈에 띄는 모든 인간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고작 일개 개인을 막고자 두 나라가 전쟁을 멈추고 그를 저지할 사람을 모으게 만드는 데 이르었다.

루크가 비올라를 처음 만났던 곳도, 롤랑 왕국에서 세르베르크 토벌대를 모집하던 모험가 길드 앞에서였다. 이미 여신관 엘리아가 함께 있긴 하나, 기왕이면 동료는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던 루크는 새로 영입할 동료를 구하고 있었고, 그 때 만난 사람이 바로 비올라였다.

루크는 그녀의 첫 인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한참동안 관리를 하지 않은 푸석푸석한 더벅머리에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 앉은 퀭한 눈,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증오와 맹렬히 몰아치는 살의였다.

루크는 그녀를 결코 못 본 척 할 수 없었다.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녀가 무슨 일을 당하거나 아니면 무슨 일을 치룰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마법사가 필요하기도 했던 터라 루크는 비올라에게 동료가 되지 않겠냐 권유하였다. 비올라는 자신의 목적과 루크의 일행이 일치하였으며,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어쩌다보니 세르베르크를 함께 쓰러트린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마탑 최연소 수석이었던 마니카는 그 재능을 인정받아, 마탑 내에서 진행되던 극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어. 나는 선택받지 못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한탄하다, 정말 추하게도 마니카를 질투했지. '저 애만 없었다면 그 영광을 내가 차지했을 텐데'라고 마음 속으로 저주를 퍼붓기도 했어. 그깟 명예가 뭐라고..."

"....."

"비록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에게 선택받지 못해 친구를 질투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가장 소중한 친구의 프로젝트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필요한 마법 물품을 모으기 위해 마탑을 나와 롤랑 왕국을 방문했어. 그리고..."

쌓인 울분이 터진 듯, 잠시 숨을 고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훔친 비올라는 이윽고 놀라우리만큼 덤덤하게 자신의 가장 끔찍한 기억을 털어놓았다.

"사건은 내가 마탑을 떠난 사이에 벌어졌지. 마탑에 큰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돌아온 내가 본 것은... 처참하게 무너진 마탑의 풍경 사이이었지."

"그 마니카라는 친구는..."

"그 당시 마탑에 체류중이던 사람은 여든 명이었지만 발견된 시체는 마흔 두 구가 전부였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안에 마니카의 시체는 없었어. 그래서... 알고 싶었어. 그녀가 어떻게 된 것인지. 시체도 남지 않고 죽은 건지, 아니면 어딘가에 간신히 살아있는 건지..."

"만일 살아있다면?"

"그야 물론... 만나러 가야지.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고,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니까. 하지만 만일 그녀가 정말로 죽은 것이라면..."

이윽고 비올라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니카의 복수를 할 거야."

마탑에서 일어난 대 참사.

그 사건을 일으켰던 그 사람,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 도대체 어떤 이유가 있었기에, 그는 가장 뛰어난 마법사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알 수 없다. 자신은 그가 아니었으니. 그러니 다음에 그를 만날 경우, 그에게 검을 겨누며 물으리라.

당신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잔혹해졌는가.

*

창조주인 루미너스조차 모르는, 그녀의 세계 안에 숨겨진 어두컴컴한 공간. 그곳에는 이 세상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두존재가 숨어 있었다.

둘 중 침착한 쪽은 루미너스의 개입을 주시하며 작은 목소라로 중얼거렸다.

<여름이 지난="" 지금="" 계절에="" 필="" 리가="" 없는="" 벚꽃이="" 핀="" 가지라...=""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불확정="" 요소인="" 인간을="" 배제하기="" 위해="" 기껏="" 통신을="" 차단시켰더니,="" 이런="" 방식으로="" 메세지를="" 보내겠다는="" 건가?="" 저게="" 무슨="" 담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인간이="" 저것에="" 접촉하게="" 둘="" 수는="" 없지.=""/>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게="" 뭘="" 씨부리는="" 거냐?=""/>

<네가 제대로="" 처리하기만="" 했어도="" 이렇게="" 일이="" 꼬이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이="" 새끼가="" 진짜...!=""/>

<그보다, 그="" 인간은="" 아직도="" 처리="" 못="" 한건가?=""/>

마치 그런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냐며 힐난하는 듯한 그 말에 난폭한 쪽은 목소리를 버럭 높이며 대꾸했다.

<시끄러워! 애초에,="" 네가="" 말한="" '혼자="" 있을="" 때'가="" 없는="" 데="" 어떻데="" 하라고!=""/>

<그래도 계속="" 주시해라.="" 반드시="" 녀석이="" 혼자인="" 틈을="" 노려.="" 하지만="" 목격자는="" 절대로="" 만들면="" 안="" 된다.="" 그="" 인간은="" 다른="" 세계에서="" 온="" 녀석이기에="" 상관="" 없지만,="" 만일="" 지성체가="" 우리의="" 개입을="" 목격하게="" 된다면="" 흔적을="" 통헤="" 추적당할="" 위험이="" 있으니까.=""/>

<나도 안다고!="" 하지만="" 어쩌라는="" 거야!="" 이="" 망할="" 놈이="" 절대로="" 혼자="" 있을="" 생각이="" 없는데!="" 내가="" 보기엔,="" 새끼="" 이미="" 눈치="" 깠다니까?=""/>

<후... 그러게="" 처음에="" 잘="" 처리헸으면...=""/>

<야! 싸우자,="" 이="" 씨발="" 놈아!=""/>

<그런 소리="" 할="" 시간이...="" 하,="" 됐다.="" 말을="" 말자.=""/>

<이 씨발="" 새끼가="" 진짜!=""/>

<그만두지.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니.=""/>

평소라면 이 즈음에서 말다툼은 끝났을 것이다. 이 둘이 싸우는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아무리 서로가 싫다고 한들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위해 잠시 손을 잡은 관계였기에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싫어도 힘을 합쳐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그걸로 다툼이 끝나지 않았다. 난폭한 쪽은 몸에 스파크를 튀며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트린 채 임시 동맹을 향해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시비는 지가="" 먼저="" 걸었으면서,="" 짜증낼="" 거="" 다="" 내고="" 그만두자고?="" 씨발,="" 너="" 진짜="" 장난치냐?="" 언제="" 한="" 번="" 그="" 좇같은="" 아가리를="" 확="" 꼬매주랴?="" 매일="" 잘난듯이="" 이래라="" 저래라="" 입만="" 나불거리고,="" 정작="" 제대로="" 하는="" 일은="" 없는="" 주제에...!!=""/>

<논파할 가치도="" 없는="" 수준="" 떨어지는="" 지적이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부탁이니="" 그런="" 저급한="" 표현은="" 좀="" 삼가도록.="" 너와="" 같은="" 5급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제발이니,="" 최소한의="" 품격은="" 갖추지="" 않겠어?=""/>

콰앙! 귀를 찢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이동한 그 존재는 상대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지금 뭐라고="" 했냐?="" 다시="" 한="" 번="" 씨부려봐,="" 개새끼야.=""/>

<귀가 어두운="" 건지,="" 아니면="" 자기가="" 들은="" 말을="" 제대로="" 이해도="" 못="" 할="" 정도로="" 지능이="" 낮은="" 그것도="" 매도="" 당하는="" 것을="" 즐기는="" 이상="" 성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놈이="" 다시="" 듣고="" 싶다고="" 똑같은="" 해주는="" 녹음기나="" 앵무새가="" 아니다.="" 설마="" 그="" 정도를="" 구분할="" 지능조차="" 없었을="" 줄이...=""/>

꽈릉!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한 쪽이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그것도 사람 수백은 순식간에 태워 죽이고도 남을 정도로 강렬한 벼락을 두른 채 꽂은 것을 시작으로.

<...네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꾸득, 꾸득, 꾸드득...!

벼락을 두른 죽빵에 대한 답례로, 평소보다 온도가 몇 도는 더 내려간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수십 구의 뼈들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