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그게 뭔데 10duck bird꺄!!(4)
* * *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포근한 감각에 잠시 넋을 잃을 뻔 했으나, 나는 최대한 이성을 강하게 붙잡았다. 여기서 본능에 몸을 맡겼다간 틀림없이 그녀가 망가질 테니까, 비록 내가 육욕에 미친 놈이지만 그것은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나는 발기한 자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거고, 내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와, 시2발. 진짜 빨통 하나는 끝내주네.
레이나 마르스와 비교하면 작은 편이지만 그 둘의 크기가 논외이니 넘어가고, 비라의 가슴은 내 취향에 딱 적합한 적절하게 큰 가슴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아래로 처지지 않고 봉긋 선 예쁜 모양이나 같은 인간의 살덩어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이 감촉이나, 남자의 이성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강력한 흉기였다. 한 손으로는 움켜쥐기 어려운 저 흉부의 감촉을 상상할 때마다 그녀를 넘어트려 범하고 싶다는 욕망은 커져만 갔고,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뭉클.
....아, 쉬발 존나 부드럽... 아니, 이게 아니지.
젠장! 그래, 소수다. 이럴 땐 소수를 세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거다. 2, 3, 5, 7, 11, 13, 17....
제길. 이대로 가다간 시간 문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비라를 떨어트려 놓을 수 있을까? 지금 나를 끌어안은 그녀의 표정은 스스로도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풀지도 않았고, 이 푹신한 흉기로... 제길,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멈추진 않았지만.
하는 수 없지. 나는 부디 이 일이 그녀의 트라우마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즈큐우우우우웅!
....실제로 이런 효과음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옛날에 봤던 어떤 만화의 장면이 생각났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지만, 이번엔 조금 전과 같은 가벼운 버드 키스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갠 상태에서, 내 혀를 그녀의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혓바닥을 열심히 움직였다.
"웁, 으읍, 웁....! 흐읏, 흡....!"
비라가 내 혀의 갑작스러운 구강 침입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내 혀가 그녀의 혀를 정열적으로 탐하기 시작하자 혼란스러웠던 그녀의 두 눈이 점차 힘이 풀리며 몽롱하게 변해갔다. 힘이 풀린 비라의 팔이 내 등에서 떨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내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붙잡았다. 비라는 내게 붙들린 채, 입안 구석구석을 타인의 혀에 범해지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처량하거나 불쌍하다기보다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기에, 나도 그녀의 입안에서 혀를 빼낼 수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진한 딥키스. 비라는 내 옷을 꽉 움켜쥔 채 낯선 쾌감에 점차 물들어 갔고, 나 또한 그녀를 나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 점차 이성의 끈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청초하고 순수한 모습의 그녀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몽롱한 얼굴을 한 채 색정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어, 도저히 발기가 풀리지를 않았다.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타인과 성관계를 맺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우리 애들과는 다른, 어색하게 풋풋한 모습. 하지만 답답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이것은 지금 밖에 볼 수 없는 희귀한 광경이니까.
유니콘마냥 처녀를 찾는 놈들이 세상에 왜 그렇게 많을까 했더니, 어째서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녀석들은 이것을 보고 싶은 것이겠지.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에 열매를 맺으며, 가을에 그것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잎을 떨군다.
사람의 인생을 나무에 비유하면, 성에 대한 경험이 없는 순결한 처녀는 이제 막 나무에 피어난 꽃과 같다. 영원하지 않는, 오히려 찰나의 순간이기에 그만큼 소중한 순간.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그들을 매료시킨 것이겠지.
하지만 난 굳이 따지자면, 가을이 좋다. 막 피어난 꽃을 보고, 그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가꾸어 원하는 열매를 맺게 하며, 마침내 그 탐스러운 과실을 내 손으로 따내는 그 순간이, 내가 추구하는 쾌락이다.
그 과정에서 꽃잎이 찢어지거나 줄기가 꺾일 수도 있고 남들의 눈에는 그것이 별로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결실을 맺기 위한 과정이니까.
상대가 처녀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해도, 지나치게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며 색에 개방적인 걸레라고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남들처럼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들을 걸러내고 분류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하나의 기준을 잡고, 그것이 맞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행동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여인을 안는 것에 대한 기준은 간단하다.
꼴리냐, 안 꼴리냐.
아무리 순결하고 예쁜 여인이라도 꼴리지 않으면 필요 없고, 어디에나 있는 흔한 외모에 남자의 경험도 많은 여인이라 할 지라도 내가 꼴리면 안는다. 나는 그 간단명료하고 단순한 하나의 기준점, 나의 욕망을 기준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이것에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망설임, 후회, 두려움. 모두 내게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니까.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힘을 빌려 나 자신을 뜯어고쳤다.
나는 공포를 없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기에, 아무리 아프고 위험한 상황이라도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없기에, 어떤 선택을 내릴 때라도 오직 내가 세운 나만의 기준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결단을 내린다.
자신에 대한 공포가 없기에, 혹시라도 내가 틀렸던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했던 선택이 틀렸다면, 수습하면 된다. 내가 실패했다면,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면 된다. 내가 죽었다면... 뭐, 그건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는 된다. 난 최선을 다했으니까.
독백을 하다보니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조금 샌 것 같지만, 어쨌든 결론은 이거다.
나는 비라를 덮치지 않는다. 그녀가 그것을 원하기 전까지는.
나는 잠시 후, 진한 키스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 그녀를 부축하여 블래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하. 하하.]
빛의 여신 루미너스를 다시 돌려보낸 그 존재는, 다시 한 명의 관객으로서 연극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존재의 시점은 용사와 그 일행이 아닌, 그들의 손에 쓰러질 예정인 악역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었다. 외모나 육체가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음에도 잠시 못 본 사이에 또 한 명의 여성을 꼬셔내는 그의 능력이 가히 놀라울 지경이었다. 물론 하반신의 물건이 어울리지 않게 굉장하긴 하지만, 그것도 몸을 섞을 기회가 있을 때나 자랑할 수 있는 장점이다.
상황만 따지고 보면, 그는 눈앞의 여인을 간단하게 취할 수 있었다. 그대로 힘을 주어 덮치면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그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입맞춤이 끝난 후, 그는 여인을 부축하여 (일행인지, 아니면 노예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한 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의아함이 느껴졌기에 잠시 그의 생각과 기억을 훔쳐본 그 존재는, 이윽고 입가에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인 공포란,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지만 동시에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브레이크다.
지나친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공포를 모르는 인간은 앞에 놓인 함정의 위험성을 알지 못 한다. 그렇기에 공포란 것은 극복해야 하면서 동시에 품고 있어야 하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허나 그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억제기를 제거하였고, 두려움을 몰랐던 다른 인간들이 그러했듯 파멸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었다면, 그는 다른 인간들과 달리 자신의 파멸을 알고 있으며 일부러 그것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이라 할 지라도, 지적 생명체인 이상 생존 본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설령 사후 세계의 존재를 알고 있어도, 몸에 새겨진 본능을 억누를 수는 없다.
그는 자진해서 자신의 역활인 파멸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본래 그의 것이 아니었던 그의 육신은 그에 저항했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여러 종류의 공포가 사라짐으로서 달라진 행동력.
공포의 상실로 인해 본래 느꼈어야 할 감정을 대처하게 된,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성욕.
그리고 죽음을 앞둔 그의 육신에 새겨진 생존 본능. 자신의 후손을,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본능.
아마 그의 하반신에 달린 그 어울리지 않는 물건은 저 세 가지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의도치 않은 시너지가 생긴 결과이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억누를 수 없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이란 본능이 이성을 이기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처럼 본능이 강해진 상태라면 결코 연약한 이성 따위로 그것을 억누를 수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본능이 눈앞의 여인을 범하라며 속삭여도, 연약하기 그지 없는 이성으로 그것을 이겨내었다. 그것은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어린 인간이 맨손으로 3일 동안 굶주린 흉포한 야수를 쓰러트리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단순히 우연이나 기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일이기에 그 존재는 라그나 아마게돈의 육신에 들어간 영혼의 과거를 조금 더 살폈고, 이윽고 폭소를 참을 수 없었다.
[하, 하하... 아하하하하! 과연, 과연... 그래, 이런 수가 있었나. 정말이지, 내 기대를 한 순간도 저버리지 않아.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야.]
지금의 그를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래, 굳이 비유를 한다면...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실을 자신의 손에 쥔 꼭두각시 인형?
더 없이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보다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그 존재는 그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행동, 사상, 욕망, 무엇하나 빠짐 없이 모두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런 인간을 만나보지 못한 것일까, 그동안의 세월은 모두 낭비한 셈이나 다름 없다고 후회할만큼 그 존재는 라그나 아마게돈이, 정확히는 그 육체에 깃든 인간의 영혼이 탐이 났다.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손에 넣고 싶을 정도로.
그 존재는 왼손을 허공에 내저어, 반투명한 패널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루미너스 여신에게 한 통의 메세지를 전송했다. 그가 보낸 메세지는 단 한 줄이었으나, 그것에 담긴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든 뒷처리는 내가 직접 수습할 테니,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도와라.]
한 세계를 창조한 여신인 루미너스가 두려워하며 거스를 수 없는 존재, 그는 자그만한 구체 속 영상에 비치는 라그나 아마게돈의 모습을 바라보며, 뱀처럼 갈라진 혓바닥으로 입술을 불길하게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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