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47화 (47/229)

〈 47화 〉 그게 뭔데 10duck bird꺄!!(8)

* * *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 루크는 건물의 벽면에 등을 맞대고 그를 용사로 만들어준 성검­유니코르를 뽑아 보이지 않은 안개 너머를 겨눈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것은...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호크나가 활로 습격자를 때려잡음과 동시에 그들을 둘러 싼 안개가 눈앞에 있는 자기 손을 확인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짙어졌다. 그리고 안개가 다시 옅어졌을 때, 루크는 이미 동료들과 떨어진 채 홀로 이곳에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마법 밧줄은 진즉에 잘려 있었다. 마법사인 비올라조차 잘 모르는 밧줄에 가해진 마법 가공을 마법사도 아닌 루크가 알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연기의 마녀'가 그리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보장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연기의 마녀'가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안개의 마녀'가 가진 힘이 '연기의 마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것이겠지.

라그나 아마게돈이 자신들을 해치려 들지 않았기에 그의 사람인 '안개의 마녀'도 자신에게 큰 해가 될 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은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과는 별개로 '안개의 마녀'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자신들을 처리하려는 것일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지금 상황에서, 루크는 섣불리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걸음을 내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안개는 적의 홈그라운드.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버티고 있어봐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질 뿐이다. 차라리 적의 함정이 눈앞에 있음을 각오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유일한 활로였기에, 루크는 몸을 잔뜩 긴장시킨 채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흐릿한 시야로 인해 바로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공포 속에서, 루크는 자신의 청각에 의존한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혹시라도 조금 전처럼 누군가 습격해 올 경우, 손에 든 날카롭게 벼려진 성검으로 상대의 가슴을 망설임 없이 꿰뚫을 준비를 한 채로 말이다.

걱정과 달리, 다행히 안개 속 거리를 헤쳐나가는 루크는 그 어떤 함정이나 습격도 마주치지 않았다. 단순히 운좋게 준비된 함정을 피해간 건지, 아니면 정말로 함정이 없던 건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조금 자신감을 찾은 루크는 걷는 속도를 높여 거리를 탐색했다. 건물들은 죄다 문과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안쪽에서 가린 곳이 대다수였다. 그렇지 않은 곳은, 약탈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폐가 뿐.

고작 일주일 만에, 마법의 안개로 뒤덮인 이 거리는 탐욕스러운 약탈자와 겁에 질려 틀어박힌 선량한 시민, 이렇게 둘로 나뉘어 졌다. 혹시나 싶어 닫힌 문을 똑똑 두드려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안개 속의 약탈자들 때문에,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불신이 자라난 모양이다. 이래서야,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아...앙...!"

결국 다시 혼자서 동료를 찾아 헤매는 루크는 어디선가 틀려오는 독특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이윽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이런 삭막한 공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달콤한 교성과 달뜬 숨소리. 비록 루크는 그런 쪽의 경험은 없지만, 지식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귓가를 자극하는 소리의 정체를 대충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루크는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러기에 그것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용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어엿한 젊은 청년인 그에게, 이러한 류의 자극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결국 루크는 저 달콤한 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에 집중할 수 없다고, 그리고 혹시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핑계 같지도 않은 핑계를 스스로에게 갖다 붙히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걸었을 무렵, 마침내 루크는 소리의 근원지에 도달했다.

"여긴..."

다른 집들과 달리 유독 크고 화려한 저택. 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그 형태가 어렴풋이나 보일 정도로 큰 저택이 그의 앞에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소리는, 저택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굳게 닫힌 저택의 문 앞에서, 루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안개가 짙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지만, 정문이 굳게 닫힌 이런 넓은 저택에서 들리는 소리라면 도움이 필요한 소리는 아니리라. 실제로, 저택에서 나오는 소리는 남자의 한창 격렬히 몸을 섞는 여인이 낼 법한, 듣는 사람의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로 적나라한 목소리였다.

굉장히 높고 가녀린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낯설어서, 루크는 다시 저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뒷편에서 들려오는 자그만한 걸음 소리에 곧바로 성검­유니코르를 뽑아 찌르기 자세에 들어갔고... 안개 속을 헤치며 나타난, 굉장히 두껍고 묵직해 보이는 중갑 갑옷을 입은 사내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고든 씨,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내가 할 소리야, 루크.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는가 싶더니, 시야가 돌아왔을 때 모두 사라졌길래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그나마 너라도 찾아서 다행이야."

이 낯선 타지에서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루크는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에요? 혹시 비올라나 엘리아, 아니면 호크나 씨는 만나지 못 하셨나요?"

"다른 동료들 말이야? 난 전혀 못 봤어. 대신에... 그 여자는 봤지."

"...그 여자요?"

그 여자라니, 누굴 말하는 것일까? 의아해하는 루크에게, 고든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말이야. 그 마수 조련사."

마수 조련사 레이.

라그나 아마게돈의 심복 중 한 명으로, 네 명의 심복 중에서 악명으로 따지자면 마르스보다 낮은 편이지만 위험성 하나는 그 이상이라 볼 수 있는 존재.

마르스가 자신의 순수한 육체 능력 하나로 전장의 흐름을 뒤집는다면, 레이는 수많은 마수를 풀어 전장의 상식을 일그러트리는 존재다. 마수를 길들이는 그녀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그 힘이 그녀의 주인인 라그나 아마게돈의 힘과 얼마나 상성이 좋은지, 수도 엘 하르다로 오는 내내 겪어보았던 루크와 동료들에게 그녀만큼 골치 아픈 존재는 없었다. 게다가 라그나 아마게돈을 쓰러트리기 위해 그의 저택에 침입했을 때도, 자신들의 전력을 가장 많이 깎았던 상대 또한 그녀였다.

"어디에요? 어디서 본 거죠?"

"솔직히 나도 자세한 위치는 잘 몰라. 워낙 안개가 짙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 가니까. 나는 너희들을 찾아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에 우연히 그녀를 찾게 됬어. 게다가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지. 처음 보는 여자랑 함께 있었어."

"처음 보는 여자요?"

"응.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자세히는 듣지 못 했지만, 얼마 안가 두 사람이 함께 어딘가로 향하더라. 그래서 뭔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싶어 필사적으로 뒤를 쫓았는데, 도착하니 여기더라. 혹시 누가 오지 않았어?"

"...음, 아뇨. 실은 저도 막 도착해서, 누가 이 근처를 왔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마수 조련사 레이, 역시 그녀는 이 안개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만난 또 다른 여자, 두 사람은 이곳으로 향했다. 안개 속의 저택... 루크는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고든 씨과 봤다던 또 한 명의 여성, 그녀가 이 안개의 주인일지도 몰라요."

"뭐? 이 안개의 주인이라면... 그 '안개의 마녀'인가 뭔가 하는 여자 말이야?"

"네. 그리고 아마 이 저택은, 높은 확률로 그녀의 저택이겠죠."

"여기가 그 마녀가 사는 저택이라고? 허, 참. 생각보다 쉽게 발견한 거 아니야?"

"...어쩌면 저희가 쉽게 발견한 게 아니라, 저들이 쉽게 발견되어 준 것일 수도 있겠죠."

루크는 뒤늦게 깨달았다. 안개 속의 저택에서 들려오던 달콤한 교성이 어느샌가 멎었다는 것을.

루크와 고든이 저택의 앞에서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하는 사이 엘리아가 나타났고, 얼마 안 가 비올라도 일행에 합류했으며... 마지막으로 호크나가 어쩐지 묘한 표정으로 도착했다.

*

"오랜만이네, 안 그래?"

"...당신이, 왜 여기에...?"

안개의 저택. '안개의 마녀'가 펼친 대규모 마법 결계 '방황하는 안개'의 중심점. 즉, 이 안에는 이 사건의 원흉인 '안개의 마녀'와 그들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마수 조련사 레이가 있으리라. 그렇게 판단한 루크와 일행은 호크나의 도착과 동시에 저절로 열린 대문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 재회했다.

라그나 아마게돈. 루크에게 처음으로 실패와 망설임을 가르쳐 준 남자, 도저히 귀족답지 않은 저급한 품행과 방탕한 성 생활을 가지고 있으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할 수 없을 만큼의 힘과 권력을 가진 사내.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뻔한 걸 묻는군. 내가 미스트리나의 후원자니까."

"후...원자?"

"그래, 후원자. 그녀가 마음 편히 마법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지. 집, 옷, 음식, 돈, 그리고... 안전까지. 물론 그 대가로, 나는 그녀에게서 필요한 마법을 얻어내지만 말이야."

"...역시."

비올라는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정교한 마법 술식, 차고 넘치는 마력, 그러나 그에 비해 너무나도 저급한 마력 운용 방식. 역시 당신의 마법은 마녀가 만들어 준 것이었군. 당신은... 마법사를 자칭할 자격이 없어! 특히 마탑을 박살낸 당신은 더더욱...!"

비올라는 루크가 말릴 새도 없이 스태프를 꺼내들며 곧바로 주문을 외웠으나, 그 영창은 중간부터 끊기고 말았다. 비올라는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으나, 그녀의 입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잊으셨나요? 이 저택 또한 안개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안개 속에선... 누구도 제가 허락하지 않은 일을 멋대로 저지를 수 없답니다."

라그나 아마게돈의 뒤에서 한 여자가 걸어나왔다. 사이즈를 잘못 잰 것인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은 헐렁한 옷을 입은 그 성숙한 미녀는 라그나 아마게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졸린 말투로 말했다.

"당신이 아마게돈 남작님이 말씀하셨던 용사...인가요?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겼네요."

"...마수 조련사와 같이 있던 여자로군. 역시 당신이 '안개의 마녀'였던가."

고든은 그녀를 노려보며 낮게 중얼거렸고, 성숙한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띄웠다.

"네, 맞아요. 라그나 님께서 마탑을 파괴할 때 썼던 마법도, 그리고 이 거리를 뒤덮은 이 대규모 마법도, 모두 제가 만들었답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악인을 위해 일하는 건가요!"

엘리아의 외침에,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그거야 당연히 '이쪽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죠."

"뭐, 뭐라고요...?"

"친구와 함께 마탑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로 추앙받기를 잠시, 체내의 마력 수용량이 적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탑에서 추방당한 사람의 기분을 당신들이 알 수 있나요? 부모도 없이 피 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도달한 자리를, 운 좋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런 걱정 없이 살던 중에 뜻밖의 재능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탑에 들어온 애송이에게 순식간에 빼앗겼을 때의 박탈감을, 당신들은 알고 있나요? 그렇게 마탑에서 쫓겨나, 자신이 투자한 10년에 걸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차가운 거리에 앉게 된 마법사의 심정을, 당신들이 알 수 있을까요?"

마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조용했으나, 그 잠잠한 수면 밑에 숨은 차갑고 시커먼 어둠이 느껴졌다.

"그 아이, 시가레테는 용캐도 그런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않더군요. 제 친구지만, 정말 대단한 아이에요. 물론 마탑이 무너진 이후에는 저를 원수로 여기며 죽이려 들기에 조금 슬프긴 하지만, 전 아직도 그녀를 제 친구로 생각한답니다. 그녀는... 불길이에요. 뜨겁고 강렬하게, 그러나 너무나도 짧게 타오르는 불길. 그것은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덧없어요. 그래서 전 그녀와 달리 라그나 님의 제안을 승낙했죠. 그녀가 불이라면, 저는 물. 오랫동안 모습을 바꿔가며 세상에 남으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이 되고 싶었거든요."

"...결국 당신도, 그 놈의 영생인가 뭔가에 미친 거군."

자신에게 걸린 침묵 마법의 술식을 해제한 비올라는 미스트리나를 경멸 어린 눈으로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지나치게 마법에 몰두한 탓에 머리가 맛이 간 이들, '마녀'들은 주로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지. 당신도 결국 그런 부류였어. 게다가 자신이 살고자,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저런 놈을 위해 마법을 만들어? 당신은... 당신은 마법사들의 수치야! 마탑에서 당신을 추방하는 것도 당연하지! 당신 같은 마법사가 있었다는 것이, 마탑의 숭고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었을테니!"

"비올라!"

"뭐!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루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 지금 비올라는 너무 흥분했다. 그래서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았을 저런 심한 말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마탑에서 추방당한 사건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한테, 추방당할 만 했다고? 그가 아는 비올라는 절대로 저런 말을 서슴치 않고 쓰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마탑과 친구를 잃게 만든 원흉인 두 사람이 앞에 있어서,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일 뿐이다.

".....하."

하지만, 아주 잠깐에 불과하더라도 이성을 잃은 마법사의 폭언은 마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추방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마탑의 오점? 마법사들의 수치? 하, 하하, 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보는 사람이 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적인 폭소는, 갑자기 중간에 뚝 하고 멎었다. 마치 음악을 재생하다가 중간에 멈춘 것과 같은 그 부자연스러운 침묵에 불길함을 느낀 루크는 서둘러 성검­유니코르를 뽑으며 그 힘을 발산했고, 그와 가장 오래 호흡을 맞추었던 여신관 엘리아도 루크의 움직임에 맞추어 신성력으로 파티원 모두에게 수호의 축복을 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비를 마치자마자...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큿....?! 크아아아악!"

마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의 폭풍이, 그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미스트리나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비올라가 사용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불길한 마력, 그것은 라그나 아마게돈이 사용하던 것과 같은 마력이었다. 그 질척질척하고 어두운 마법의 힘은 곧 안개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기존에 있던 새하얀 안개와는 전혀 다른, 칠흙같은 어둠을 연상케 하는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루크와 그 일행을 집어 삼켰다.

"...호크나!"

그리고 루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들을 향해 쇄도하는 검은 안개를 피해 옆으로 몸을 날린 호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안개를 헤치며 나타난 라그나 아마게돈에게 뒤를 잡히는 광경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