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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48화 (48/229)

〈 48화 〉 야, 깐프... 넣을게. (1)

* * *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검은 안개가, 그 전까지 저택과 거리를 메우고 있던 휜 안개를 시커멓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주변의 공간을 오염시키는 것만 같아 루크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며 검을 들었다.

이 사태는 명백히 이쪽의 잘못이다. 상대가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문제를 떠나, 비올라의 발언은 아군인 루크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선을 넘었다. 아무리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자신과 동료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한들, 마탑 붕괴 사건의 피해자와 그 원인인 두 사람을 한 공간 안에서 만나게 한 것 자체가 그의 실수였다.

항상 침착하고 지적으로 행동하던 비올라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앗아간 원흉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사람 앞에서 평소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었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거친 말은 결국 그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무너트리고도 남을 정도의 파문을 일으켰다. 분노한 마녀가 뿜어낸 검은 안개는, 도시의 서쪽 거리를 메우고 있던 휜 안개와는 전혀 다른 물질로 만들어진 굉장히 불길한 것처럼 보였다.

루크는 동료들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외치기 직전, 수도에 오기 전까지 어둠에 물든 마수들과 쉴새 없이 전투를 반복하느라 단련된 예리한 감각이,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했다. 루크는 육감이 경고하는 방향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겨눈 채, 어떤 상황이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낮추었다. 이윽고 검은 안개를 가르며,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보통 사람은 자신을 향해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막아내거나 피하려고 하기 마련. 그러나 루크가 취한 행동은 방어도, 회피도 아니었다. 두 발은 바닥에 붙힌 채, 다리를 왼쪽 다리를 쭉 피고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며, 동시에 자신의 상체와 검을 든 오른손을 뒤로 빼며 반격의 자세를 취했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적이 휘두른 발톱이 그의 상체가 있던 곳을 헤집음과 동시에, 루크는 한 마리의 벌이 되어 앞을 향해 뾰족한 칼날을 내질렀다.

카앙!

"큿...!"

"이건...!"

루크의 무기 성검­유니코르는 고대에 살았던 한 신수, 일각수의 머리에 난 뿔로 만들어졌다 전해지는 성스러운 검이다. 힘을 실어 베는 것보단, 긴 리치를 이용하여 적을 견제하다 틈을 노려 빠르게 찌르는 것에 특화된 그의 무기는 비록 일반적인 검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루미너스 여신에게서 받은 빛의 힘을 실은 성검의 찌르기는 그 많은 단점을 모두 감내하고 남을 만큼 강력한, 루크의 특기였다.

본래 빛의 힘이란 어둠의 성격을 지닌 귀신이나 언데드, 악마 등의 불길한 것들이 아닌 이상 그리 큰 효과를 보이지 않지만, 성검의 소재로 사용된 일각수의 뿔은 빛을 잘 받아들이는 성질과 함께 그 빛을 물질적인 힘으로 바꾸는 특성이 있었다. 그리고 루크가 지금 성검에 담은 빛의 양을 생각하면, 갑옷을 입지 않는 피부는 절대 그것을 견뎌낼 수 없었다. 잘만 하면 말을 탄 기사의 랜스차징에 맞먹는 위력까지 낼 수 있는 그의 힘이 막혔다면, 그 이유는 하나.

"당신은...! 어째서 당신이 나를 공격한 거지?!"

루크는 자신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고, 동시에 쇳조각은 커녕 가죽 갑옷조차 두르지 않은 몸으로 자신의 검을 받아낸 상대... 푸른 털의 수인 여성을 향해 물었다.

루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엘하임 왕국의 국경 마을에 도착했을 때,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에게 결투 재판을 신청했다가 모두의 앞에서 끔찍하고 처참한 꼴을 당한 여성. 분명히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에게 적대적이었던 그녀가, 어째서 지금은 자신을 향해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역시나. 그 수인 여성의 털은 더 이상 이전 같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몸에 난 털은 푸른 색이지만, 곳곳에 검붉은 색 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루크는 그 색을 잘 알고 있었다.

라그나 아마게돈의 힘을 받은 마수, 어둠에 물든 마수들은 몸이 검푸른 색, 혹은 검붉은 색으로 변이한다. 그 중에서 검붉은 색의 경우, 대다수의 물리 공격에 높은 내성을 지니게 된다. 기사의 두꺼운 방패마저 뚫을 수 있는 그의 찌르기가 막힌 것은, 그렇지 않아도 튼튼한 수인의 육체에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의 어둠의 힘이 더해진 결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상처는 바늘에 찔린 정도로 작았지만, 루크의 검을 받아낸 그녀의 털로 덮인 팔에는 명백히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 루크가 검에 담은 힘, 성스러운 신성력의 영향이리라. 빛의 힘은, 어둠을 뚫는 법이니.

"어째서 너를 공격했냐고? 뭐...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으려나."

수인 여성은 팔에 난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툭툭 털었다. 그 짧은 새에, 그녀의 팔에 난 상처는 이미 거의 다 아물어 있었다. 아무리 수인의 신체 능력과 재생력이 빠르다고는 한들, 정상적이지 않은 회복 속도다. 역시, 라그나 아마게돈에게 받은 힘의 영향이겠지. 하지만 루크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녀의 비정상적인 회복력이 아니었다.

그 투기장에서 봤던 그녀는, 길들일 수 없는 난폭한 야수이자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허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그녀는, 보이지 않는 목줄에 묶인 무기력한 맹수. 체념한 듯한 그 낮게 가라앉은 모습이, 루크의 눈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에게 무슨 짓을 당한 거야?"

"무슨 짓이라... 하. 없다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역시 너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잖아?"

그녀는 낮게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지간한 단검 부럽지 않은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다.

"너에겐 그다지 나쁜 감정은 없어. 오히려 고마움이 있다면 모를까. 모두가 나를 비웃고 야유할 때, 넌 유일하게 앞으로 나서서 나를 지키고자 행동했으니까."

"그럼..."

"그러니까 말이야..."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루크는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으나,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성급하게 앞으로 달려들면 곧바로 묵직한 반격이 자신에게 돌아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검은 안개 속으로 몸을 숨긴 그녀는 붉게 물든 안광을 빛내며 경고했다.

"허튼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최대한 아프지 않게 기절시켜 줄 테니까."

물론 루크는 이런 곳에서 그녀의 손에 기절하고픈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기에,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를 맹수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다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이미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상처를 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더 이상 지나친 상처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적이 된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선,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과도한 힘을 쏟아서도 안 된다. 지나치게 힘을 많이 실어봤자, 몸의 긴장이 드러나 상대가 공격을 읽을 수 있게 되고 공격이 실패하면 그대로 큰 빈틈이 생길 테니. 루크는 모래 속에 숨은 한 마리의 전갈처럼, 언제라도 성검을 내지를 준비를 마친 채 검은 안개 속에서 사방을 경계하였다.

삼십 초, 일 분, 그리고 삼 분...

대치 상태가 길어질 수록, 루크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이 검은 안개 속에서 적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수인 여성은 조금 전 자신이 있던 곳을 향해 정확히 공격을 날리던 모습으로 보아, 지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이 안개는 결코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마녀의 마법이었고, 그렇다면 루크와 그 일행들의 시야는 가리면서 라그나 아마게돈의 부하들은 멀쩡하게 그 속을 뚫어보는 일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끈다고 해서 좋을 것이 없다. 이대로 가다간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루크의 초조함에 더욱 불을 붙였다. 이마에서, 등에서, 그리고 검을 쥔 손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도대체 언제 공격해 올 생각이지? 언제까지 기다릴 셈이야?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은 확실하다. 적이 있는 곳을 모르는 자와 아는 자, 그 정보의 차이에서 오는 여유. 대치하는 시간은 같지만, 소모되는 정신력은 다르다. 그리고 그녀가 노리는 것은 자신이 방심하거나 지치는 것, 그 틈을 노려 그녀가 자신에게 공격할 것을 알고 있는 루크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견제를 하겠다고 섣불리 검을 휘둘렀다가, 곧바로 공격 당한다. 어설프게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리를 움직이다가 후방에서 공격 당할 수도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마저도 최선이라기 보다는 차선, 아니, 차악에 가깝다. 그나마 최악이 아닌 것이 다행일 지경이다. 물론, 이 일방적으로 지치는 심리전도 결국에는 끝이 올 것이다. 루크는 용사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고, 인간의 집중력이란 잘 발휘하면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보일 수 있다지만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집중이란 것은 그만큼 자신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빨리 지치기 마련. 언젠가 루크가 지쳐서 틈을 보이는 순간, 수인 녀는 그를 향해 묵직한 일격을 가해올 것이다.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녀의 공격에 쓰러지기 전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처리해야...

"제길..."

이대로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서 길은 열리지 않는다.

기회는, 무작정 기다리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며 행동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옛말에도 동전을 줍기 위해선, 최소한 아래를 보며 걸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집안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다면, 길바닥에서 동전을 줍는 행운이 찾아올 리도 없다.

결국 이대로 기다리는 것은 답이 되지 않는다. 결국 최악이 아닌 차악에 불과하다. 그리고 용사된 자로서,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 할 것은 응당 '최선의 결과'이지 않겠는가?

루크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시 되새겼다. 자신과 접촉한 대상에게 빛의 힘을 부여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거나 몸을 강화할 수 있다. 최근에 익힌 '정화'의 권능은 빛의 힘을 이용해 자신에게 가해진 부정적인 효과를 제거함으로서 몸의 상태를 다시 되돌리는 능력. 하지만 이 안개는 한 명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서부 거리 전체라는 큰 범위를 두고 사용한 마법이기에 정화로 없앨 수는...

...아니, 꼭 그렇지 않을 수도.

빛과 어둠은 서로 상극. 서로에게 치명적인 힘이다. 하지만 잘만 하면, 이 안개를 헤쳐나갈 수도 있다. 루크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연기의 마녀'는 말했다. '안개의 마녀'가 펼친 이 대규모 마법은 명백히 이상하다고. 범위 내의 대상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거나 그 대상에게 곧바로 마법을 걸 수 있는 등의 이점은 확실히 매력적이나, 그것을 위해 쏟아붓는 마력의 양이 너무나도 비정상적으로 많기에 설령 마탑이라고 해도 이런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안개의 마녀'는 말했다.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 마탑을 무너트리는 데 사용한 마법 부터, 이 거리를 뒤덮은 이 마법의 안개까지. 그 남자가 사용하는 마법들은 전부 그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처음에는 이 마법을 '안개의 마녀'의 마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연기의 마녀'가 그렇게 말했고, '안개의 마녀'도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 마법을 '안개의 마녀'가 유지한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일 년 치 사용하는 마력을 매일 쓰는 이런 마법을, 마탑에서 마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안개의 마녀'가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이 마법은 '안개의 마녀'가 만들었지만, 그것을 지금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그녀가 아니라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었다.

'파괴자'는 그 어떤 것도 부수었고, '광인'은 이치를 뒤틀었으며, '폭군'은 만물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검은 군대'는... 무한한 자원으로 힘을 길렀다.

무한한 자원, 그것은 끝이 없는 마력.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샘솟는 불길한 마력.

하지만 그 힘은 그가 가진 혼돈의 파편에게서 나오는 어둠의 힘. 그리고... 그 어둠의 힘에 대치하는 것이 그가, 루크가 가진 여신에게서 받은 성스러운 빛의 힘, 신성력.

"...그래."

루크는 검을 고쳐 쥐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검은 안개 너머를 겨눌 필요가 없었다. 이제 엉뚱한 곳을 노릴 필요가 없다. 흩어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쓰러트려야 마땅한 악을 베기 위하여, 루크는 마음을 다잡았다.

"루미너스 여신이시여, 제게 힘을...!"

그의 기도에 반응하여, 그의 몸이 방대한 신성력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빛이여!!"

루크는 깨달았다. 그의 칼끝이 진정으로 겨누어야 할 곳을...!

"어둠을 걷어내라!!"

검은 안개 속에서 당황스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루크는 검의 끝을 하늘로 향한 채, 빛의 힘을 끌어모았다. 길고 예리한 검으로 모인 빛의 힘이, 이윽고 검은 안개 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환해졌을 때, 루크는 그 빛을 묶어두는 억제하는 힘을 풀었다. 안개 속의 습격자가 뛰쳐나와 발톱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신수의 뿔로 만들어진 검에 모여있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해방된 빛이,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오며 신의 위업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빛의 기둥이 세워졌고, 그 성스러운 힘이 불길한 검은 안개를 차츰 걷어 내었다.

*

엘하임 왕국의 수도, 엘 하르다.

최근 치안이 약해진 틈을 타 생겨난 두 마녀의 대치. 그 결과 엘 하르다의 서쪽 거리는 '안개의 마녀'가 만들어 낸 거대한 마법, '방황하는 안개'에 집어삼켜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해도 무방한 상태였다.

'연기의 마녀' 시가레테 타바코나가 보낸 마공학 생체 골렘들은 그녀의 마력 패턴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회로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여 움직이는 기능으로 마녀의 안개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되었지만 매번 안개 속에 숨겨진 마법의 칼날에 절단되어 못 쓰게 되었고, 시가레테는 언제나 저 지긋지긋한 안개를 노려보며 그것이 걷힐 날만을 기다렸다. 저 안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 따위가 아니기에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그것을 바랬다. 저 망할 안개가 걷히는 순간을...

그리고 놀랍게도, 이루어질 일이 없을 그녀의 바램이, 지금 이루어졌다.

짙은 안개를 뚫으며 피어난 한 줄기의 빛의 기둥. 그리고 그 따스하고 눈부신 빛에 의해,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시가레테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하, 하하하! 분명히 자칭 용사였던가? 그 애송이에 대한 인상을 조금 수정해야 하겠는 걸? 그리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대박을 칠 줄이야!"

시가레테는 담뱃대를 입에 물며, 곧바로 마력을 품은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마력 패턴에 반응하여, 그녀의 뒤로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인 채 정렬하고 있던 기괴한 생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움직여라, 내 사랑스러운 작품들아! 목적지는... '안개의 마녀' 미스트리나, 그 망할 년의 저택이다!"

그 외침을 신호로 수 백의, 기계 장치가 붉은 살덩이와 기묘하게 뒤섞인 생물들이 몸에서 회색 연기와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흩어지는 마법 안개에 남아있던 잔여 마력을 흡수하며 엘 하르다 서쪽 거리를 달려나가는 그 모습은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지옥도에 가까운 악몽 같은 광경이었으나, 그녀의 눈에는 납작하다 못해 앞인지 뒤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납작한 가슴이 더없이 끓어오르는 광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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