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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77화 (77/229)

〈 77화 〉 악역하러 와 놓고 야스만 쳐하고 있는 내 인생이 레전드다(5)

* * *

성 경험이 없지는 않지만 결코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비올라에게 있어서, 라그나 아마게돈과 수인 여섯이 정원에서 벌이는 망측한 짓은 도저히 계속 지켜볼 것이 못 되었다. 애초에 저런 짓거리를 지켜보고 있을 여유도 없었지만 말이다. 비올라는 충격적인 광경으로부터 눈을 돌려, 반대편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찾았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들려온, 지독하리만큼 무감정하고 섬뜩한 목소리. 비올라는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누군가가 위쪽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 그리고 '찾았다'라는 단어로 보면, 자신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는 인물일 것이며 적지 한복판인 이곳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 아군일 확률은 극히 낮다. 즉, 적이다.비올라는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마력을 최대한 끌어모으며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 순간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녀는 순간적으로 집중이 풀려 기껏 모은 마력이 다시 흐트러질 뻔 했다.

상대는 그녀의 머리 위, 정확히는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의 저택 벽의 옆 면에 두 발을 딛은 채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새하얗게 샌 단발의 여인.

끈이나 사슬 같은 것으로 몸을 묶어서 고정한 것도 아니고, 어디 발판 같은 것 위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걸칠만한 곳 없는 벽면에, 마치 중력을 무시하듯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옆으로 서 있는 모습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마법?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비올라는 곧바로 해주 마법­디스펠의 주문을 영창했다. 정체가 뭐든, 지상으로부터 3m나 떨어진 벽면에 붙어 있는 이상 그 마법을 풀면 상대는 그대로 바닥에 추락할 테니까.

비올라의 빠른 주문 영창이 끝나고, 새하얀 기운이 상대의 몸을 감쌌다. 디스펠 마법으로 상대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한 것이다. 그러나...

"뭐해?"

"뭐야...? 대체 어떻게..."

분명 디스펠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상대는 조금 전과 바뀌지 않은 모습 그대로 벽 면에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탈출. 곤란. 돌아가. 지하로."

"...!"

그제서야 비올라는 상대가 뭐하는 작자인지 눈치챘다. 아마게돈 남작가 저택의 지하에 있는 감옥을 빠져나오는 동안 지속적으로 뒤에서 따라오던 그 알 수 없는 존재. 따돌린 줄 알았던 감옥의 간수. 그게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자의 정체였다.

"순순히 돌아갈 것 같아? 애초에, 난 이런 곳에 잡혀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어째서 디스펠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고작 자신의 마법이 상대에게 한 번 통하지 않았다고 무릎을 꿇을 정도로 의지가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능숙한 고속 영창으로 주문을 외운 비올라의 손 위로, 사람 머리통만한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일반적인 파이어볼 마법과 유사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마법이다. 대량의 불길을 마력으로 압축한 마법으로, 목표 지점에 도달하거나 다른 공격으로 인해 충격을 받는 순간 압축이 해제되며 사방으로 화염이 퍼져나가는 광범위 공격이었다.

"받아라!"

물론 그런 걸 상대가 알 리가 없다. 이것은 비올라가 동료들에게 발목이나 잡는 무능한 동료로 있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개발한, 방대한 화력으로 다수의 적을 섬멸하는 수제 마법이니까. 이대로 상대가 아무 생각 없이 어떠한 수단으로 공격을 막아내든, 혹은 그냥 공격을 피하든, 그녀의 마법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길이 퍼져나갈 것이다. 화재로 주변이 혼란에 빠진 사이 빠져 나가면 된다.

"?"

물론 그건.

"아까부터. 뭐해?"

그녀의 계획이 먹혀들 경우의 이야기였지만.

"뭣...!"

본래라면 소녀가 막거나 피해도 어딘가에 닿아서 폭발했을 그녀의 화염 마법이, 죽은 동태눈을 한 여인의 손에 너무나도 간단히 잡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여인의 손바닥에서 조금 떨어진 허공에 멈춰 있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마법이지? 애초에, 마법이 맞나? 다른 도구 없이 벽에 붙어 있으면서도 디스펠 마법에 맞아도 추락하지 않고, 조금만 접촉해도 폭발해서 주변을 날려버리는 마법은 중간에 잡아서 폭발을 막아버리고...

"얍."

기껏 허공에 멈춘 마법을, 그 여자는 갑자기 양 손으로 붙잡았다. 멍청하긴. 비올라는 그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가 기대하던 광경은 나오지 않았다. 사물에 접촉하는 것을 트리거로 압축이 해제되어 불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야 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마치 비에 젖은 장작 속의 미약한 불꽃을 밟아 꺼트리듯, 비올라의 마법은 여인의 두 손 사이에서 점차 몸집을 줄이다 이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 모습을 본 비올라는 한 가지 확신을 했다.

저 여자의 정체가 뭐든 간에, 상대해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

싸워봤자 좋을 것이 없다면, 싸우지 않으면 된다. 비올라는 곧 그녀의 눈을 가릴 마법을 준비했다. 그런 와중에서 그 여인은 그녀에게 다가오기는 커녕,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을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처음 보는 작은 소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듯,공허한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비올라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너 같은 거 상대해 줄 시간 없어!"

푸화아아아악!

영창을 끝마친 비올라의 손에서 어둠이 터져 나왔다. 적을 해치는 것이 아닌, 그저 주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릴 뿐인 눈속임용 마법. 고화력 위주의 마법을 즐겨 쓰는 그녀로서는 쓸 일이 없는 비주류 마법이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쓸 때가 있을 거라며 그녀에게 마법을 알려주었던 스승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비올라는 탈출구를 향해 소리 죽여 걸어갔다.

텁.

"어디가?"

"...?!"

시야가 차단된 어둠 속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팔을 붙잡은 여인의 손길만 아니었다면.

분명 눈속임 마법 때문에 앞을 볼 수 없을 텐데,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었기에 소리를 들었을 리도 없는데, 어느 샌가 자신의 옆으로 내려와 정확하게 자신을 찾아낸 여인의 귀신 같은 감각에, 비올라는 비명이 터져나올 뻔 했다.

도대체 뭐지, 이 유령 같은 여자는? 아마게돈 남작, 그 망할 자식의 부하들은 대체 왜 다 하나 같이 이렇게 정상이 아닌 여자들 밖에 없는 거야?

"지하로. 돌아가."

비올라의 손을 잡은 여인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비올라는 그 손길을 뿌리치려 했으나, 마치 거인의 손에 잡히기라도 한 듯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비올라는 아무리 자신이 마법사라서 물리적인 힘이 약하다고는 한들, 자신보다 키가 고작 반 뼘 정도 큰 여자에게 잡힌 팔을 전혀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그것도 잠시.

따악.

"이런, 다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리는 가 싶더니, 두 사람을 감싼 어둠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러나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 비올라는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거. 탈출. 나. 체포."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 마법사가 지하를 탈출했길래 붙잡으려 했다고?"

"정답."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

비올라의 보금자리이자 모든 마법사들의 고향인 마탑을 무너트린 악당.

지금까지 복수할 날만을 기다린 증오스러운 원수.

그러나 비올라가 다시 그를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은 분노와 증오가 아닌, 공포였다.

그가 단지 유적에서 발견한 뼈로 만든 토템을 통해 이계의 신에게서 힘을 빌려 싸웠어도 이길 수 없었던 존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공포를 느낀 진짜 이유는, 그가 사는 저택의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감옥에서 탈출할 때 보았던,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 없는 그 끔찍한 광경.

그 참혹한 풍경을 보고서도 그에게서 공포를 느끼지 않은 인간이 과연 존재할까?

"다른 한 쪽은 아직 안 깨어났나?"

"아직. 쿨쿨."

"그렇군. 언제 깨어날 지 모르니, 이만 다시 내려가라."

그렇다. 이건 공포다.

"애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의 앞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것도.

"포상?"

"네가 감시를 잘 못해서 탈출한 건데 내가 상을 줘야 하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도.

"포상."

"없어."

속옷이 축축해진 것도... 전부 공포 때문....이라고.

킁킁.

"뭐, 뭐야...?"

"왜 그러지?"

갑자기 자신에게 들러 붙어 냄새를 맡는 무뚝뚝한 여인의 모습에 비올라는 당혹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났고, 여인은 그런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언했다.

"이거. 발정."

그 한 마디에, 비올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예전에 들은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떡정은 무시 못 한다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성 관계는 중대 사항이다. 연인들 사이에서 서로 성격이 잘 맞지 않아 헤어져도 속 궁합 때문에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나서 모텔을 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남녀 사이에 성적인 문제는 무시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그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성관계를 한 다면, 어지간히 속 궁합이 별로이지 않는 이상 떡정이 생기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남녀가 쉬지 않고 교접한다는 가정부터가 넌센스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가능하다면 그만큼 서로의 몸이 잘 맞는다는 증거일 테니.

솔직히 비올라의 체형 자체가 그리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여신이 깃든 그녀의 몸은 나의 꼴림 포인트를 상당히 자극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서로 미친 듯이 물고 빨고 싸질렀으니, 설령 몸의 주인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이 기억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아까부터 장황하게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고? 아주 간단하다.

"내, 내, 내가... 바, 발정났다고? 그,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내가, 내가 저 자식을 보면서 바, 바바, 발정 따위 할 리가 없잖아!!"

나랑 일주일 동안 신나게 떡을 쳤던 비올라의 육체는, 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주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비단 수치심만이 전부가 아니었고, 옷 위로도 티가 날 정도로 꼭지가 빳빳하게 섰으며, 딛고 있는 바닥에 아주 작고 질펀한 웅덩이가 고여 있다.

...얼마나 발정이 난 거야?

비록 내가 상대했던 여인은 헬이었지만, 그녀가 쓴 몸은 비올라의 몸. 따라서 비올라의 몸은 이미 내게 개발이 끝난 상태였다.

밥을 주는 시간에 종 소리를 들려줌으로서 종 소리가 들리면 자동으로 밥 생각이 나서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마냥.

그녀의 몸은 나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자지의 맛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아랫입으로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의 의식이 굳건해도, 이미 육체가 굴복한 이상 몇 번 박아주면 알아서 굴복할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성 관계가 전부가 아니긴 하지만, 그게 차지하는 비율이 결코 작지는 않으니. 내 자지가 자궁구를 때릴 때마다 애액이며 오줌이며 미친 듯이 싸지르던 그녀의 몸은, 내가 다시 한 번 박아주면 그 쾌락이 그녀의 흔들리는 정신을 그대로 엎어버릴 것이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직접 박을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취향도 아니었던 그녀의 몸에 미치도록 박았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몸에 갇힌 헬을 제압하기 위해서였을 뿐이고, 용사의 동료인 그녀를 진심으로 함락시킬 생각 따위 없다. 이미 호크나 헌트레스도 어쩌다보니 타락시킨 마당에, 그녀보다 떨어지는 비올라를 굳이...?

따먹을 여자가 널리고 널렸는데, 비올라보다 더 예쁘고 나를 좋아하는 여자들을 얼마든지 안을 수 있는데, 비올라를 굳이...?

호크나처럼 자기 스스로 타락하고 패배 선언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내가 비올라의 몸을 다시 안을 일은 없을 것이다.

"발정. 심각. 냄새. 해소. 필요."

들어온 순서로 따지면 두 번째이지만 대부분이 그 존재를 모르는 내 다섯 번째 부하, 모르모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코를 틀어 막고 다른 한 손으로 비올라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발정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비올라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모욕을 들은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버럭 화를 냈지만 모르모트는 도저히 냄새를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확실히... 좀 심하네."

"...!!!"

아무리 그래도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긴 한데... 솔직히 냄새가 심하긴 하다.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번 의식하게 되니 도저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나 지금 당신이랑 지금 당장 떡치고 싶은 상태니까 좇달린 사내 새끼라면 당장 덮쳐서 따먹어!!'라고 외치는 듯한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수인 중에서 촉수 지옥에 한 번 담궈진 후 상시 발정 상태가 된 주황이한테서 나는 것보다 더한 지독한 발정 페로몬이 코를 찌른다.

이건 뭐... 혹시라도 좇을 꺼내는 순간 되려 덮쳐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돌아가서 나머지 한 명을 잘 감시하도록. 혹시라도 깨어나면, 바로 나에게 데려오고."

"포상?"

"...이번 일을 잘 하면 줄게."

"약속."

짧게 단답하며 내민 새끼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고 위아래로 몇 번 흔들어주자, 그제서야 만족한 모르모트는 다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인 지하 감옥으로 돌아갔다. 도망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지만, 비올라는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니, 그대로는 아니다. 마치 급한 볼일을 참고 있는 듯한 자세로, 그녀는 내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뒤에 있는 것이라곤 아직도 알몸으로 목줄을 찬 수인들 뿐이다. 같은 여성이라고 똑바로 마주하기에는 다소 낯부끄러운 광경이고, 특히나 저렇게 부럽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볼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거, 아무래도 진짜 상태가 심각한 모양인데?

"그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루크는, 내 동료들은 어디에 있어?!"

"아. 이거 설명하기 굉장히 귀찮은데... 정 듣고 싶다면 얌전히 내 뒤를 따라오도록."

"그, 그렇게 말해 놓고서 어디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나를 덮칠 셈이지!"

아주 지랄을 한다. 헬이 안에 갇혀 있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 건 줘도 안 먹어. 아니, 사실 준다면 먹기야 할 테지만.. 이미 호크나를 타락시킨 것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데 비올라까지 타락시키면 용사 파티는 진짜 개망이다. 파티원 다섯 중에 절반인 두 명이 악역의 자지에 굴복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개 좇망 시나리오냐고.

그러니 나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타락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알아서 타락해서 나한테 복종의 의미로 알몸 도게자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마법사로서 높은 자부심과 나에 대한 맹렬한 적개심을 가진 그녀가, 나한테 제발 자신을 따먹어달라고 내 앞에서 알몸으로 엎드려 절하며 부탁할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나, 나... 소실된 마탑의 마법사 비올라는..."

그 날로부터 사흘하고도 닷새 후, 그러니까 내가 저택으로 돌아온 지 딱 보름이 되는 그 날 밤.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 님께,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달빛이 아주 아름다운 밤, 내 방으로 찾아온 비올라는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나선으로 등과 엉덩이 라인이 다 보이도록 내 앞에 무릎 꿇고 고개 숙여 절을 하며, 나에게 복종하겠다고 패배 선언을 하고 있었다.

방에서 진동하는, 수인에게서도 나기 힘든 지독한 발정 페로몬 향에 머리가 절로 아파왔다.

...아무래도 나는 진짜 좇됐다.

대가리에 콘돔 쓰고 다녀야하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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