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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83화 (83/229)

〈 83화 〉 순애가 순순히 애를 낳아라의 줄임말 맞죠?(2)

* * *

비올라에게 있어서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은 단순한 복수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음을 열었던 가장 소중한 친구와 그녀의 고향이 되어준 마탑을 무너트린 그에 대한 감정은, 단순히 분노라던가 증오라던가 하는 단어 몇 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에게 있어서 라그나 아마게돈은 목표였고, 그의 최후를 보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녀가 품고 있던 모든 증오와 분노와 복수심이, 모두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아마게돈 남작은 단순히 사악한 악이 아닌, 그만의 사정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던 인간이라는 사실을, 비올라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다.

그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에게 용서를 빌기에는, 너무도 멀리 와 버렸다.

그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근거도 없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아마게돈 남작이 그녀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아간 원수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끝없이 끓어오르던 감정은 이미 차갑게 식고 찝찝한 감정의 잔재만이 남았다.

그러나 스스로의 감정조차 제대로 갈무리하지 않는 그녀 앞에서, 아마게돈 남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여인들과 몸을 섞었다. 지금 누구는 심각한 데, 눈치도 없이 앞에서 저딴 짓을 한다는 것이 화딱지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생각이 바뀌었다.

적어도 아마게돈 남작은 스스로에게 솔직했다.

그의 행동이나 언사는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행동에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당당하고, 뻔뻔했으며, 떳떳하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은 악인이지만, 결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받아들였다.

모두에게 두려움과 증오의 시선을 받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하며 언제나 자신에게 솔직한 아마게돈 남작.

그에 비해 여신에게 선택 받은 용사의 동료이자 마탑의 비극의 생존자, 그리고 유망 좋은 마법사라고 하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자신.

머릿속에서 대비되는 두 모습.

비올라는 홀린 듯이 고개를 들어, 아마게돈 남작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안고 있던 여인은 이미 지쳐 쓰러져 있었고, 그는 새로운 여인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비올라는 보았다.

그가 숨기고 있었던, 짐승 같은 본성을.

그곳에 그녀가 알던 아마게돈 남작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한 명의 여인을 향해 자신의 진득한 소유욕과 질척한 지배욕을 그대로 드러내며, 금방이라도 그대로 잡아 먹을 듯이 여인의 몸을 탐내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헉헉거리는 남녀의 거센 숨 소리, 찰박찰박거리는 야릇한 물소리, 퍽퍽하고 살과 살이 거세게 맞부딪히는 소리. 평소라면 천박하다며 고개를 돌렸을 광경을, 비올라는 자신의 두 눈에 담았다. 여인의 몸에 사람 팔뚝 만한 흉악한 육봉을 폭력적으로 쑤셔 박는 그 모습이 그녀의 뇌리에 새겨진다.

깡마르고 볼 폼 없는 여인의 육신은 주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강제로 주입당하는 쾌감을 받아들이며 흥분으로 달아올랐고, 여인의 음부를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강하게 부딪혀 오는 굵고 단단한 고깃덩어리를 탐욕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격정적인 모습은 남자와 여자가 몸을 섞는 광경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 쓴 짐승들 간의 교미라고 보는 편이 더 알맞을 것이다. 인생의 목표나 다름 없는 증오가 희미해지고, 꺼지기 직전의 잔불과 타 버린 재만이 가득한 그녀의 마음에, 천박하고 비이성적이며 단순무식한 광경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하며 거리낌 없는 그 모습이 자신을 잃어버린 그녀의 기억에 새겨진다.

어느 순간, 비올라는 짐승처럼 허리를 거칠게 흔드는 아마게돈 남작의 아래에 깔려, 무표정한 얼굴로 애액을 퓻퓻 싸지르며 자신이 받아들이는 쾌감의 크기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여인에게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으면서.

아무리 봐도 몸매는 자신보다 떨어지는 저런 여인도, 흔하디 흔한 평민 출신의 여자 병사도, 겉은 인간과 유사하나 그 속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수인에게조차도 사랑을 주면서, 어째서 나만...?

평소였다면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생각을...?'이라며 깨어났을 그녀였지만, 머리가 깨질 것처럼 뜨거운 열기와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공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막 잃었던 그녀는 오히려 그 생각에 더욱 깊게 잠겼다. 지금껏 벌레 쫓아내듯 가볍게 떨쳐냈을 생각이 달라붙고, 또 달라붙어... 어느 샌가 빠져나올 수 없는 끝 없는 수렁이 되어 비올라의 몸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비올라의 눈에,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와 아마게돈 남작 사이, 방의 정 중앙에 그려진 한 줄기의 굵고 긴 선. 선의 안 쪽과 바깥 쪽은 마치 개별의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비올라는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저 선을 넘으면, 다시는 이쪽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자신이 저 선을 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기억, 머리 아픈 상황, 부정하고 싶은 진실 속에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비올라에게 경계선 너머의 풍경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아늑해 보였다.

괜히 골치 아픈 일에 속 썩을 일 없이, 그저 그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여인의 모습이, 어쩐지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러나, 경계에 걸쳐 서 있던 비올라는 결국 선을 넘지 않았다.

아니, 넘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저 너머가 아늑하고 편안해 보인다고 할 지라도, 그녀에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한 걸음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동료이자 용사인 루크를 생각해서라도, 그의 적이자 악당인 아마게돈 남작의 품에 안길 수는 없었다.

선을 넘을 용기가 없던 그녀는 망설이다, 이내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광경을 뿌리치고자 고개를 돌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자 마자 시원한 바깥 공기가 비올라의 얼굴을 때렸다. 아마게돈 남작의 방을 나온 아마게돈은 벽에 등을 기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 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대체 뭔 생각을 한 거지? 아마게돈 남작이랑... 하고 싶다고? 미친 거 아니야?

­왜? 뭐가 문제야? 결국 그도 가해자가 아니었으면 피해자가 될 운명이었어. 그건 불가항력이었다고.

비록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그 녀석은 내 친구와 마탑을 부순 인간이야!

­네가 고향이라고 생각했던 마탑에서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이려고 했고, 심지어 네가 친구라고 믿었던 그 애가 그 계획의 발안자인데도?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몰라. 어디까지나 그가 그렇게 주장했을 뿐이고, 날 속이려는 거짓말일 수도 있는 거잖아.

­진심이야? 진짜 그렇게 생각해?

마탑의 이면이고 내 친구의 진실이고 그 이전에... 용사의 동료인 내가 그런 남자와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사정이 있었다고 한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태연하게 빼앗은 악당이야. 언젠가 루크와 함께 쓰러트려야 할 적이라고.

­글쎄. 그건 또 모르지.

정신 차려, 비올라. 미친 생각은 적당히 해. 너 답지 않아.

­너 다운 게 뭔데? 뭐가 너 다운 거지?

"시....발....!"

쾅! 쾅! 쾅!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녀의 것을 닮은 누군가의 목소리는 비올라가 벽에 머리를 세 번 박고 나서야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머리가 울리며 시야가 뒤틀리지만, 적어도 그녀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듯한 그 불길한 목소리는 멎었다. 그 사실에 만족하며, 비올라는 벽에 고개를 기대었다.

"시발, 시발, 시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의 방에 진동하던 기이한 공기 속에서 벗어나자 머리가 차가워지며 이성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조금 전에 그녀를 뒤흔든 뜨거운 본능의 열기를 온전히 몰아내지 못 했다. 비올라는 순간 자신을 동료로서 받아준 남자이자 세상을 구할 용사인 루크를 배신하고 그의 적인 아마게돈 남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고민을 자신이 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 듯한 느낌. 자신에게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 마음 속에 메워지지 않을 빈 구멍이 생긴 듯한 느낌...

그 공허한 구멍을 아마게돈 남작이 채워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비올라는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비올라는 벽면에 그려둔 투시 마법진을 지우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그 날, 비올라는 점심과 저녘 식사를 걸렀다.

*

"....지금이, 몇 시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머리를 묻고, 방음 마법으로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고서 그대로 잠에 들었던 비올라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이미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하아, 배고파."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식사마저 전부 거르고 잠들었던 터라 눈을 뜬 그녀는 무척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다. 이미 자신 몫의 식사는 그 메이드가 치웠을 테지만, 혹시 무언가 따로 식사를 부탁할 수 있을까 싶어서 방을 나서려던 비올라는 무의식적으로 투시 마법진이 그려진 벽으로 시선이 향했고.

".....어?"

침묵 속에서, 투명한 벽 너머에서 몸을 섞는 두 남녀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마게돈 남작이 이 시간에 여자를 품는 것 즈음이야, 이제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비올라가 본 대로라면, 아마게돈 남작은 영주로서 할 일을 영주 대리지아 메이드장인 미아에게 전부 떠넘기고 식사 시간 이외의 하루의 대부분을 다른 여자를 안는 것으로 보냈으니까. 어제도, 그리고 조금 전에도 여자 둘을 동시에 안고 있던 그였으니, 지금 시간에 또 여자와 몸을 섞고 있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째서...?"

진짜 문제는 그가 안고 있는 여인이 누구인가, 였다.

푸르른 숲을 연상케 하는 싱그러운 녹색 눈동자, 한 팔로 휘감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가는 허리와 그에 비해 두드러진 빵빵한 엉덩이와 절대 작지 않은 가슴,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찬란한 금발과 피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짧은 소매의 옷과 반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아님을 나타내는, 저 뾰족한 귀.

아마게돈 남작에게 안긴 여인은 엘프였다. 그리고 비올라는 그 엘프를 알고 있었다.

"호크나...?"

호크나 헌트레스.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한 조언으로 용사 파티의 여정을 돕는 길잡이이자 동료인 엘프 족 여인.

비올라와 같이 용사 루크의 동료인 그녀가, 지금 그의 적인 아마게돈 남작과 포옹하고 있었다.

"뭐, 뭐야...? 대,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비올라는 방음 마법을 차단하며 투시 마법으로 매직 미러가 된 벽에 달라붙어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호크나, 오늘따라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니야?'

'그 동안 못해서 얼마나 쌓였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마음 같아선 이 쪽에서 덮치고 싶을 지경이라고.'

'하지만 넌 덮치는 것보단 덮쳐지는 쪽이 취향이지?'

'...알고 있으면, 얼른 해 줘. 빨리...!'

그리고 대화 내용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호크나는 같은 여지안 비올라가 보기에도 엄청난 미인이다. 아무리 종족이 다르다지만, 전체적으로 가녀리고 미인인 데다가 젊음이 오래 유지되기까지 하는 그들의 특성은 이따금 호크나도 탐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마게돈 남작이 그녀를 탐내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할 테지만...

두 사람이 그런 관계라는 것도 물론 그냥 넘길 일은 아니지만... 하다 못해 그런 관계라 할 지라도, 아마게돈 남작이 호크나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여 강간하는 것이라면 이런 상황이 이해는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보면, 오히려 호크나 쪽이 더 원하는 듯한 뉘양스를 풍기고 있다.

즉...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사의 동료인 호크나와 용사의 적인 아마게돈 남작이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관계가 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오히려 호크나 쪽이 아마게돈 남작과 몸을 섞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호크나에 대한 동료로서의 믿음이 컷던 만큼, 그녀가 아마게돈 남작과 그런 관계라는 사실에 비올라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에서 비올라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다가 아니었다.

그녀는 '안도했다'.

호크나가 했다면...

최연장자로서 가장 믿음직하고 든든했던 그녀가 아마게돈 남작과 몸을 섞는 사이라면...

...자신도 아마게돈 남작과 그런 관계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니.

아마게돈 남작과 호크나의 관계는 비올라에게 면죄부와 기회를 준 셈이다.

그리고 '용사를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선을 넘지 않고 있던 그녀에게...

호크나의 일탈은, 그녀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속삭임이나 다름 없었다.

잃을 까봐, 얻지 못할 까봐, 두려워서 피하던 욕망이 다시금 수면 위로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

저택에 돌아온 지 열흘이 되었을 무렵, 호크나가 나를 찾아왔다.

"호크나? 어떻게..."

"쉿."

창문을 통해 방으로 곧장 들어온 호크나는 사정을 설명할 것도 없이 내게 다가와 목에 팔을 둘렀다. 내가 안아 본 엘프가 그녀 뿐이기에 그녀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엘프 종특인지는 모르겠지만, 호크나의 몸에서는 어쩐지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숲 속 한 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불쾌함 없는 상큼한 냄새. 그 체향이 오늘따라 유독 강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보다..."

킁킁.

"여자 냄새가 가득하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야. 최소 다섯 명 이상... 맞지?"

"허, 그걸 냄새만 맡고 알아볼 수 있어?"

"이렇게까지 다른 여자 냄새를 짙게 남겨두고서 오히려 맡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상한 것 같은데. 하, 역시 내가 없어도 다른 여자들이 있으니까 상관 없다 이거지?"

마치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따지는 듯한 날카로운 말투, 그에 비해 은근한 기대를 품은 뜨거운 눈빛. 나는 그녀가 왜 이렇게 까칠게 구는 지 금방 이해했다. 그렇기에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오늘 따라 귀엽게 구네."

대신 나는 그녀를 침대로 끌어당겼고, 호크나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흥..! 그 놈의 잘난 자지만 있으면 다 인줄 알아?"

"그래? 그럼 이거 필요 없어?"

나는 바지를 내리며 어쩌다보니 내 정체성이나 다름 없게 된 흉악한 남근을 꺼내었고, 호크나의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도대체 얼마나 색에 굶주린 에로프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정작 그녀의 정욕에 불을 붙인 사람이 나였기에 굳이 호감도를 깎아 먹을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흐, 흥...!"

하지만 나는 이대로 순순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성격이 좋은 사람이 못 되었다. 금방이라도 갖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이미 지난 번에 한 번 무너트렸던 자존심이 그새 다시 생긴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상의의 단추를 두 개 정도 풀어 가슴 골을 드러내거나 반바지 틈 사이로 살색을 자연스레 노출하는 등, 은근슬쩍 자신을 덮쳐 달라고 어필하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서 더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읏...?! 자, 잠깐...! 거, 거긴 안... 햐으윽♥"

뾰족한 귀를 이빨로 살짝 깨물며, 혓바닥으로 안 쪽을 핥아주자 호크나는 달콤한 신음을 흘리며 금방 눈이 풀렸다. 청각 자체는 수인보다 월등하다는 엘프 답게, 그녀는 귀가 아주 민감했다. 그래서 귀에 직접 대고 할짝이는 이런 asmr 공격에는 매우 취약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효과가 내 예상을 넘었다.

"하아, 하아... 나, 나 더는 못 참겠...어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몸을 비비적거리던 그녀는, 귀에 달라붙은 내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더니 내 가슴에 자신의 유방을 맞대며 껄떡거리는 귀두에 자신의 축축하게 젖은 음부를 갖다 대고서 입구에서 찔걱거리며 비벼대기 시작했다. 당장 자신을 덮쳐달라는 듯, 안달이 난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호크나, 오늘따라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니야?"

"그 동안 못해서 얼마나 쌓였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마음 같아선 이 쪽에서 덮치고 싶을 지경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녀가 먼저 나를 덮치지 않는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넌 덮치는 것보단 덮쳐지는 쪽이 취향이지?"

그녀의 성욕에 다시 불이 붙은 원인은 나였고 그 방식은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박아대는 것이었기에, 호크나는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성벽이 생긴 모양이다. 쉽게 말해서, 공보다는 수. 따먹는 것보단 따먹히는 것을 선호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알고 있으면, 얼른 해 줘. 빨리...!"

자기 손으로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활짝 벌리며, 분명 수많은 남자들이 거쳐 갔음에도 여전히 예쁜 선분홍색 보지를 드러내며 그녀는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사실 오늘은 모르모트와 신 사하를 위해 쓰기로 한 날이었지만, 내가 성욕을 다 해소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먼저 리타이어 해버려서 다 풀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나는 호크나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나는 자세를 바꾸어 호크나를 침대에 눕혔고 내가 그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음부에 딱딱해진 귀두를 겨냥한 채, 한 손으로 알맞게 익은 젖가슴을 힘껏 움켜쥐며 호크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원대로... 개처럼 따먹어줄게, 변태 엘프."

"해볼 테면 해봐...♥ 이 짐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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