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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91화 (91/229)

〈 91화 〉 내가 선점한 놈에 상회 입찰하지 마라

* * *

초월자. 그것은 하나의 세상을 창조할 능력을 지닌, '신'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초월자들의 대다수가 최소 하나 이상의 세상을 손쉽게 창조하고 파괴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초월자들은 크게 둘로 나뉠 수가 있으니.

처음부터 초월자였던 선천적 초월자와

초월자가 창세한 세상의 피조물로 태어났으나 그 한계를 넘어서 초월자의 영역에 오른, 후천적 초월자.

그리고...

[~♪]

총체적인 혼돈의 지배자이자 천 개의 형태의 군주, 기어다니는 혼돈 등... 선천적 초월자의 대표적 유형 중 한 명이며 라그나 아마게돈의 배역을 연기 중인 인간에게 스스로를 '니아'라 소개했던 초월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기로 유명한 이 외신은 그렇지 않은 날이 언제 있었겠냐만은,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계에서 '그 일'로 인재 쟁탈전이 한창 뜨거워진 상황에서 잠시 숨 좀 돌릴 생각으로 들른 많고 많은 하급 신들의 승격 시험 중에... 이곳에서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진 인간을 찾을 줄이야.

특별할 것 하나 없던 평범한 인간이 스스로의 감정을 일부 제어한다는 다소 과격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에게 사용했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고, 그로 인해 생겨난 결과는 그야말로 니아가 찾던 인물상에 딱 들어 맞았다. 이런 인재를 다른 녀석들이 먼저 채가거나 혹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지 모른다며 돼도 않는 이유를 붙여가며 처리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니아는 자신이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으로 그에 대한 우선권을 손에 넣었다.

괜히 자신과 컨셉이 겹쳐서 볼 때마다 짜증 나는 염소박이 놈이랑 사람 짜증하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적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그 광대 놈, 그리고 더럽게 재미 없는 조약한 쇳덩어리 년과 잡몹 생산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디스펜서 년 등등... 그 무능하고 멍청한 놈들이 이런 인재를 데려가서 썩히게 둘 수 없다. 암, 그렇고 말고.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저 도움이 1도 안 되는 머러지들이 아닌 다른 문제.

하필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 중에 그 미친 정의충. 그 놈이 진짜 문제다. 이미 자신을 상대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한 인간 출신 초월자인 다른 자들과, 몇 번을 갖고 상대해 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놈. 미쳐버려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갖고 놀아도 망가지지 않아서 처음엔 좋았지만, 너무 원패턴이라 이제는 질려서 상대하기 싫어지는 놈. 루미너스의 시험 관객 중에, 그 놈이 있다.

생각해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제 아무리 같은 초월자라 해도 처음부터 초월자였던 이와 필멸자로 태어나 초월자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차이가 있었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초월자들에게 기피 대상이 된 니아를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산하의 하급 초월자들이 절망하고, 미쳐버리고, 신격을 잃거나 죽음을 맞이했던가? 그 부족한 수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하급 초월자들의 신격 승급 시험 자리를 나돌면서 영입할 가치가 있는 쓸만한 인재를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근데, 하필이면, 왜 자신이 있는 곳에 저 자식도 있는 거냐고!

이 인간이 있으면 골치 아픈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런 중요한 자리에 가장 성가신 훼방꾼이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 니아는 무척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만일 그 정의충 자식이 다른 세계에서 불러온 인간의 도움 덕에 간신히 여기까지 온 그 무능한 루미너스 여신을 자신의 서클에 받아들인다면, 그만큼 나중에 상대하기 쉬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 정의충이 루미너스를 돕는 인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 했을 경우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뭘 그렇게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고 있나, 니알.]

마주치자마자 날아오는 시비조에, 니아는 화가 난다기 보다는 '또 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누구야? 거머리보다 집요하고 껌딱지보다 잘 달라붙는 정의충 아니야?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정말 몰라서 묻나?]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그르릉거리는 울림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니아는 쓸데 없이 눈치가 좋은 상대가 벌써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음을 깨달았다.

[이미 위그에게 전부 들었다. 보아하니 그녀의 세계에 있던 인간 하나를 유독 마음에 들어하던 모양이군.]

시치미를 떼려던 니아는 상대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얼굴이 썩은 귤처럼 일그러지는 것을 참지 못 했다. 지금 니아의 얼굴이 무슨 표정을 짓는지 눈앞에서 돋보기를 쓰고 봐도 구분하기 어려운 얼굴이기에 망정이지, 평소 애용하던 인간형 아바타를 쓴 상태였다면 상대에게 결정적인 근거를 주었을 것이다.

위그.

니아가 라그나 아마게돈의 배역을 맡은 그 인간을 마음에 들어했다면, 그 관객은 라그나 아마게돈과 연인에 가까운 관계가 된 엘프를 마음에 들어하던 관객이다. 처음에 그 인간이 엘프를 반 강제로 범하던 것을 보고 루미너스에게 따지려던 것을 어떻게든 입 다물게 했지만, 호크나와 라그나 아마게돈의 관계의 변화가 심정에 무슨 영향을 주기라도 한 건지 니아가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워 하는 정의충에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다 털어 놓은 모양이다.

괜히 자신을 짜증나고 귀찮게 만든 죄, 그에 대한 벌로서 그 인간과 엘프의 진득한 정사씬 직관 50편을 무편집본 연속 강제 시청 형을 내리기로 마음 먹으며... 니아는 눈앞의 귀찮은 상대를 향해 '너 따위가...?'라고 비웃는 듯한 묘하게 열받는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뭐, 인간을 마음에 들어하면 안 되나? 그게 내가 평소에 하던 일인데 말이지.]

[똑바로 말하시지. 너는 인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인생이 파멸하여 절망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겠지.]

[그 또한 인간의 삶 중 하나지. 안 그래?]

[미친놈.]

저 경멸하는 듯한 시선도 이제는 익숙해진 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응수했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닐 텐데?]

[....]

[매일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주구장창 외치면서, 하는 짓은 나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주제에 말이야.]

[...그 입 닥쳐라.]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어? 네가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고작 데스 매...]

[닥쳐!!]

쿠웅! 상대에게서 발현된 보이지 않는 힘이 니아를 짓눌렀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도 아닌 곳에서 신의 분노를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니아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상대인 '정의의 신'이 가진 신으로서의 '격'은 분명 결코 낮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많은 초월자들이 살아온 삶을 합친 것보다 더 긴 영겁의 시간을 보낸 이 외신에게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귀청 떨어지겠네. 이래서 정의이니 신념이니 외치는 놈들은 귀찮다니까.]

키득키득. 니아는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을 자신이 없어, 괜히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말을 끊은 정의의 신을 비웃었다. 입으로는 정의이니 뭐니 하지만, 이렇게 막상 상세하게 파고들면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거나 도리여 화를 내는 녀석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어리석기 그지 없는 가식덩어리들.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제대로 하셔~.]

[...'아티피아']

움찔.

[역시 그곳에 데려갈 셈이군.]

[네가 신경 쓸 바는 아닐 텐데?]

[또 한 명의 불쌍한 인간이, 너 같은 재앙에게 제멋대로 휘둘리며 인생을 비참하게 마무리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너는 절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고, 네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인간을 데려갈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그런 헛소리를 막 지껄이실까? 애초에 그 인간은 내가 먼저 점찍었어. 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리고 말이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너는 그 인간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게 아니잖아?]

턱. 니아는 정의의 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려다 보았다.

[너는 그저 나를 향한 개인적인 복수심에, 정의라는 명분을 갖다 대고 있을 뿐이야.]

[이 새끼가...!]

[아, 그리고...]

사아아아악. 조금 전까지의 천진난만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다 거짓말이었다는 듯, 니아는 순식간에 사람 하나 죽일 듯이 싸늘하고 차갑게 변한 분위기로 정의의 신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내가 선점한 놈에 상회 입찰하지 마라. 뒤지기 싫으면.]

아무리 보통 사람은 상대도 하지 않는 니아에게 끈질기게 덤비는 정의의 신이라도, 이번 것은 예상 외였다. 설마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로 유명한 이 외신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낼 정도라니. 더더욱 그에게 그 인간이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는 별개로, 그 몸은 외신이 귓가에 속삭인 무시무시한 경고 한 마디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였다.

[그럼, 어련히 잘 알아 들었으리라 믿고 난 간다.]

탁탁, 어깨를 몇 번 두들기고서 니아는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홀로 남겨진 정의의 신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변의 물건을 때려 부수는 듯한 소리를 뒤로 한 채로.

[어디, 그럼 지금 우리 유망주 님께서는 뭘 하고 계신지 볼까?]

'흐으으으으응♥ 자지이이이이♥ 자지 갱장해애애애앳♥ 엉덩이이이이이! 엉덩이 기분 조아여어어어! 더, 더어어어어♥'

'요즘은 암캐가 말도 하나?'

'히읏, 하읏...! 머, 멍! 멍멍! 헥! 헥!'

[...재도 참 대단해. 아무리 욕망이 증폭된 상태고, 그에 따라 몸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하루 종일 허리를 흔들 수 있다니. 이 정도면 그 금발 백인 양아치랑 붙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 같은데...]

(전전)떠돌이 용병이자 (전)도적 여두목 출신인 (현)메이드의 엉덩이에 팔뚝 만한 남근을 우왁스럽게 쑤셔박으며 짐승들이 교미하듯 격렬하게 허리를 흔드는 그 인간의 모습에, 니아는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물론 저건 루미너스 같은 미숙한 하급 신이 지성체의 정신이라는 섬세하고 예민한 곳을 건드리다보니 좀 맛이 간 상태라서 자신이 고쳐주면 금방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되돌아 올 수는 있긴 하지만,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정도다.

만일 그의 전투 방식을 알지 못 했다면, 그에게 '여자랑 관계를 나눌 때마다 강해지는 능력'을 줬을 지도 모른다. 물론 '아티피아'에 투입한 인간 중에 실제로 그런 힘을 받은 인간이 있었고, 그 인간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니아였기에 그런 눈에 뻔히 보이는 함정에 제 발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 없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언젠가 떠날 곳이라지만 재산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전부 남에게 떠맡기는 것을 보면 재물에 큰 욕심은 없는 모양이고, 악당짓 중에서도 하필 남들에게 신나게 욕을 쳐 먹는 루트로 나가는 것을 보면 명예에도 역시 관심이 없을 테지. 꼬드기려면, 역시 여자려나? 하지만 그의 눈에 찰 만한 여자는... 그래.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 어차피 연극이 끝나기 전까지 시간도 많이 남아있으니, 그 전에 적당한 걸로 하나 만들어 둘까.]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누구보다 섹스에 진심인 그를 꾀어내기 위해, 니아는 한 명의 예술가가 되어, 자신의 영역에 널린 일그러지고 뒤틀린 것들을 한 데 모아, 그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미(美)의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골격을 본 딴 뼈대에, 기이하리만큼 부풀어 오른 붉은 고깃덩어리를 잘라 덧붙여 살을 만들고, 거기에 튼튼한 근육을 더한 후에 그 위로 벗겨낸 피부 가죽을...

[아, 참. 내 정신 좀 봐. 이걸 빼 먹을 뻔 했네.]

피부를 덧씌우기 전, 니아는 붉은 살덩어리를 사람 머리 만한 크기로 떼어난 두 덩어리를 창작물의 흉부에 찰싹, 하고 붙였다.

[인간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있다지. 거거익선(巨巨??)이라고...]

가슴 팍에 머리 두 개 분량의 살덩어리를 추가한 후, 그것을 인간과 유사한 부드러운 피부로 감싸며 니아는 웃었다.

[쉽게 말해 크면 클 수록 좋다. 그리고 찌찌는 머리보다 큰 게 국룰이라지?]

니아는 선천적 초월자임에도 불구하고 후천적 초월자들보다 인간을 더 잘 아는 초월자였다.

[그리고 엉덩이도 가슴 못지 않게 크게! 특히 여기 엉덩이 밑 토실토실한 살집이 매력 포인트지! 하지만 허리는 한 팔로 감을 수 있을 만큼 잘록하게!]

그렇다.

[클리토스를 키우고, 자궁에 성감대 설치. 머리에는 손잡이 용 뿔을 달고, 유두는 함몰 유두로. 아, 눈 밑에 점도 못 참지. 그리고 또...]

그(?그녀?)는 진정으로 꼴잘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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