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역시 좇간은 재미있어...!
* * *
"...에구구, 허리야."
허리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알싸한 통증과 함께, 나는 메이드 파랑이와 초록이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미아는... 내가 눈을 뜨기 전에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역시 어제 일 때문인가. 확실히 나도 꽤 놀랐다. 육욕에 패배해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잘 통제하는 그녀의 본심을 확인할 셈으로 자기 절제력을 약화시켰더니, 순식간에 돌변하여 역으로 나를 찍어 누르는 그 광기와 색기가 철철 넘치는 모습은... 여러 의미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굉장히 오싹하면서도 또 꼴려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쓰러질 때까지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미아가 방에 없던 것도, 나보다 먼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벌였던 일을 떠올리고 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황급히 자리를 피한 것이겠지.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다. 기분이 좋긴 좋은데... 그것과는 별개로 내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특히 하반신 쪽이. 허리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사소한 움직임에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몰려 왔고, 아무리 싸질러도 여자 몸만 보면 금방 다시 껄떡거리던 자지도 어제 혹사 당한 탓인지 삽입은 커녕 손으로 잡기만 해도 그대로 사정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다.
게다가 고삐가 제대로 풀린 미아랑 너무 격렬하게 몸을 섞은 탓인지, 내 세상이라면 몰라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루미너스 여신과 '섹스로 동시 절정하기 전까지 나갈 수 없는 방'에 갇혀서 그녀를 미친 듯이 범하는 기묘한 꿈도 꾸었고...
어쨌든 미아와 보냈던 어제의 경험은 기분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처참하게 지고 끝내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기에, 나중에 다시 할 기회가 생기면 이쪽에서 압도해 주겠다는 쓰잘데기 없는 결심을 세우며 나는 메이드들의 목욕 시중을 받았다.
...펠라 마스터 파랑이가 내 민감한 자지를 자꾸 삼키려고 드는 것을 막는 것은 꽤 고역이었다. 내 몸을 씻기면서도 시선은 내 자지에 고정한 채로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은 제법 오싹했다. 내가 진짜 사람 하나 제대로 망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나중에 입이 심심하지 않게 물고 있을 장난감이라도 하나 만들어 줘야 하나?
메이드들의 목욕 시중을 받고, 식당에서 마침 나온 호크나와 함께 미아가 미리 차려 놓은 음식들로 아침 식사 시간을 보내었다. 오늘 아침은 또 비올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는 굳이 그녀를 찾지 않았다. 어차피 또, 어제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며 자위를 하다가 밤이라도 샌 모양이지. 굳이 챙겨줄 필요도 없고...
나는 평소에 별로 찾아본 적도 없던 정원에 나와서 애완 동물마냥 내 무릎 위에 누워 고롱고롱거리는 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왔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모시모시, 키코이 마스까?
'....음?'
루미너스 님이 이번엔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으시나 싶었는데... 내 머리 속에 울려오는 목소리는 루미너스 님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루미너스 여신님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묘하게 포근한 느낌이 있지만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면 떡상과 떡락을 왔다 갔다 하는 비트 코인 시세 마냥 음의 높낮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지금 들리는 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노인인지 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거기다가 여럿이 동시에 말하는 듯 하면서도,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흉내를 내는 듯하고, 거기에 모종의 노이즈까지 낀, 듣는 사람으로서 찝찝함과 불쾌함이 절로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불편한 목소리. 그리고 나는 이런 목소리를 전에 들은 기억이 있었기에, 금세 상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니아 씨? 왜 당신이 연락을 하시는 겁니까?'
하와와. 도모, 심연에서 기어오는 카오스 니아 쟝데스.
'아니 그 말투는 또 무슨... 아닙니다. 그보다 왜 루미너스 님이 아니라 니아 님이 제게 말을 걸어오시는 겁니까? 루미너스 님은 어디 가셨고요?'
그 건에 대해서 말인데, 쉽게 설명하면 채무 이전이 좀 있었다.
가볍고 장난스러운 한본어 말투가 순식간에 정중하고 덤덤한 사무원 같은 목소리로 변했지만, 지적해봤자 괜히 나만 피곤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그? 그녀?가 언급한 단어에 집중했다.
'...채무 이전이요?'
간단히 말해서, 루미너스가 하기로 한 일을 내가 대신 하게 되었다는 뜻이지. 가능한 너를 서포트하는 것부터 네가 일을 무사히 끝마치면 보상으로 내건 소원을 들어주는 것까지 전부, 루미너스에게서 받아 왔다. 지금 루미너스는 한창 관객들의 시선을 용사에게 모으고 있느라 바쁘니까, 그녀가 할 일 중에서 너와 관련된 부분은 내가 대신 해 주는 셈이지.
'아니, 당사자인 제겐 아무런 말도 없이 둘이서 그 관계를 그렇게 얼렁뚱땅 처리했다고요? 허...'
너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채무 관계가 이전 되었다고 해서 네게 손해가 갈 일은 없어. 오히려 이득이 생기면 모를까. 애초에 같은 소원권이라도 하급 신인 루미너스 보다는 내 쪽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들어줄 수 있거든.
'그걸 빌미로 다른 일을 추가로 시키거나 할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시죠?'
에이, 내가 그런 치졸한 놈으로 보이니?
그렇게 말해도, 상대는 외신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서로 전쟁하도록 유도하거나 사람 하나를 절망시켜 인생을 나락으로 보내거나 하는, 일반적인 사람은 결코 이해도 공감도 하기 힘든 고약한 취미를 가진 고대의 외신이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나로서,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가능성이 아예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알고, 루미너스가 한 가지 조건을 추가로 걸었다.
'...그게 뭐죠?'
너와 관련된 무슨 일이든, 사전에 너에게 이야기하고 동의를 구하라고 말이지.
루미너스가 날 외신에게 팔아 넘긴 것은 괘씸했지만, 저 말을 듣고 나서 그에 대한 분노가 조금 사그라 들었다. 완전한 보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전에 내게 자신이 할 일을 공지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이상 나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나가서 외신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니까. 물론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아무런 보험도 없는 것보다는 이런 그럴 듯한 보험 하나라도 갖춘 쪽이 훨씬 낫다.
"으음? 주인님,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응? 아니, 별 일 없다. 그냥 잠깐 딴 생각을 했을 뿐이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자 분명 개과 수인임에도 고양이처럼 고롱고롱거리던 노랑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고, 나는 대충 둘러대고서 다시 손을 움직이며 머릿속으로는 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외신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니아 씨에겐 이점이 그다지 없는 것 같은데, 손해 밖에 보지 않는 일을 구태여 나선 이유가 있으실테죠.'
별 건 아니고, 그냥 투자 같은 거지.
'투자요?'
실은 요즘 이쪽 세상에서 한창 뜨겁게 불타는 문제가 하나 있거든. 나를 비롯한 여러 초월자들이 엮인 골치 아픈 문제인데, 어쩌면 네가 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나중을 위해서라도 빛을 조금 지어두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도울 뿐이야.
역시나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루미너스 여신과 나눈 약속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 외신은 나에 한해서 자신의 목적을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보다 내가 신들이 사는 세계에 있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아무리 내가 라그나 아마게돈이라는 악당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그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내가 휘두르는 이 힘은 어디까지나 루미너스 여신이 연극을 위해서 잠시 대여해 준 것에 불과하고, 그 힘을 빼 놓으면 나는 특별한 점이 하나 없으니까.
딱히 전투 센스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머리가 엄청 비상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있는 특징은 스스로의 감정에 손을 대서, 두려움과 죄책감 같은 감정이 사라지고 욕망과 같은 감정들이 강해진 것이 전부. 이런 내가 대체 어디에 쓰인다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그 신계의 문제라는 것이 엮이는 순간 인생이 무척 피곤해질 정도로 골치 아픈 문제이니 되도록이면 간섭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만이 들 뿐이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루미너스 여신 님이 할 일을 대신 해주신다는 것은, 용사 녀석의 상태 같은 것도 제게 알려주실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
'그럼 루크, 이 녀석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번에 조치를 하고 돌아오긴 했는데, 아직 결과는 확인하지 못 했거든요.'
타인의 마음을 하나의 호수로 보고, 감정을 그 안에 담긴 물건들로 간주하여,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함으로서 그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상대의 마음을 무너트리거나 굴복시켜 내 부하로 만들 때 사용하는 기술인 '타락의 속삭임'이다.
평소엔 그 사람이 인지하지 못 하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감정을 억지로 끄집어내서 정신을 뒤흔드는 기술이지만, 자신의 선택이 부른 참혹한 결과에 절망한 용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나는 그의 안에서 정의감을 강제로 끄집어 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해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아직 나도 모른다. 그리고 외신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뜻 밖이었다.
지금 용사는... 사람이 바뀐 수준인데?
'그 정도입니까?'
차마 자네에게 직접 검을 휘두르지는 못하고 몸을 쭈뼛 세우며 위협하는 고양이 마냥 노려보거나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서 앞도 생각 안하고 덤벼드는 어리숙한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다네. 묘하게 결연한 눈빛에, 망설임 없는 발걸음... 아무래도 각오를 제대로 다진 모양이군. 그 기세가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부족한 모습에 비하면 차라리 이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네.
흐음... 아무래도 타락의 속삭임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한 것은 처음이다 보니, 그 효과가 조금 과한 모양이다. 그래도 나쁜 상황은 아니다. 시나리오상 나름 최종장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직도 망설임이 남아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니까.
보아하니 악당인 너를 쓰러트리고 네게 잡혀간 바이올렌스를 구하고, 그녀에게 저지른 죄를 사죄할 생각인 모양이야. 자신의 과오로 인해 절망하였으나, 악당에게 두들겨 맞고 자아 성찰을 마친 후 속죄를 위해 각오를 다지고 다시 일어난 용사라... 이 정도면 나름 정통 왕도 판타지군. 관객들이 아주 좋아 죽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은데?
'그것 참 희소식이군요.'
혹시나 영 좋지 않은 소문이 돌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혼돈을 담당하시는 외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그보다, 이거 어째...
주인공이 쓰러트린 세 번째 보스가, 순식간에 최종 보스에게 붙잡힌 가녀린 공주님 신세가 되었군. 크크크.
정작 그 납치된 공주님께서는 오늘 납치범의 것도 아닌 아이를 출산하실 예정인데 말이지. 연극 내용이 돌아가는 꼬라지가, k드라마 양싸다구 후려칠 정도로 스펙타클하게 막장이군.
그래서, 우리 넘사벽 악역 보스님께서는 나름 결의를 다졌지만 상대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용사에게 자연스럽게 패배해주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걸까?
이걸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루미너스 여신이 아닌 니아 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 시점에서 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애초에 이 외신은 내가 하는 걸 팝콘 뜯고 낄낄 웃으며 구경할 지언정, 내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 테니.
'일단 용사 녀석은 개인으로서의 무력도 무력 나름이지만, 세력 쪽이 조금 더 큰 문제입니다. 영지 침공으로 수많은 영지를 빼앗아 힘을 불린 이 아마게돈 영지는 사실상 헤르몬 왕국 내의 독립된 소왕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비해, 용사에게 있는 조력자 또는 아군 세력이라고 해봤자 엘헤임 왕국에서 만난 연기의 마녀 시가레테 타바코나 한 명이 전부입니다. 물론 그녀의 마법 공학 장비라면 어느 정도의 전투력 보정이 가능하지만, 머릿수 싸움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죠.'
바이올렌스의 경우에는 그녀의 왕국 하나를 통채로 상대해야 하기야 했지만 그녀가 너를 견제하느라 용사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고, 거기에 초대 용사의 급습에 치명상을 입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전부터 용사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둔 데다가 지배하는 영토의 크기 자체는 훨씬 적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우세한 아마게돈 남작을 용사가 동료 몇 명과 함께 쓰러트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조력자입니다.'
조력자 후보로는 세르베르크 토벌 전에 함께 했던 모험가들, 붕괴한 마탑 출신의 떠돌이 마법사들, 바이올렌스의 지배에서 막 풀려난 로얄 나이트들 정도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르베르크 토벌 전에 참여했던 이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날뜀으로 인해 피해를 입던 두 왕국에서 내건 현상금을 목적으로 모였던 이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치들을 움직이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재물이니, 용사가 그들을 동원하는 것은 어려우며 질적으로 봐도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죠. 마탑 출신 마법사들의 경우 동기는 확실하지만, 뿔뿔이 훝어진 탓에 일일히 모으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설령 모인다고 한들 도중에 다른 마음을 먹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죠. 마지막으로 로얄 나이트들의 경우에는... 아마 지금 두 부류로 나뉘었을 겁니다. 맞죠?'
정답이다, 흑마술사! 현재 로얄 나이트들은 지배에서 풀려난 후 자신들이 벌인 악한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고 엘헤임 왕국의 치안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제 몸을 불사르는 녀석들과, 아무리 지배를 당했다고 해도 자신이 이미 나쁜 짓을 해버렸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주 도적이 되어버린 놈들. 이렇게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지.
'전자의 경우 엘헤임 왕국의 일을 해결하기 전까지 도움이 되기 힘들고, 후자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죠.'
그래. 결국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에게 대응하기 위해, 주인공이자 용사인 루크가 끌어들일 조력자 세력이 없는 것이 큰 문제야.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건데?
'당연히 그것도 다 대비해 두었습니다.'
나는 내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낮은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을 위해, 나는 수많은 밑준비를 해 두었다. 용사의 손에 쓰러지기 전에 다른 이에게 쓰러지지 않기 위해 힘을 길렀고... 용사가 개인의 무력 이외의 요소로 인해 나를 쓰러트리지 못해서 연극이 망할 때를 대비한 수단 또한 마련했다.
'바이올렌스의 지배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사람들을 완전히 제 맘대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유도할 수는 있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내 무릎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고롱거리며 잠든 노랑이를 흔들어 깨웠다. 잠에서 깬 노랑이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내 무릎 위에서 내려와, 입을 쩌억 벌리며 귀엽게 하품했다. 작은 입 사이로 보이는 앙증맞은 송곳니가 참 귀여웠다. 노랑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서 몇 분 후, 사하가 종이와 잉크, 그리고 깃펜을 가지고서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깃펜의 촉을 잉크에 적신 후 종이에 글을 써내려갔다.
그건...
내가 쓴 글의 내용을 확인한 외신은 보기 드물게 기가 차다는 듯, 혹은 재미있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했다. 나는 종이 한 장을 악필로 가득 메운 후, 그것을 사하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그 자에게 가져다 주고,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준비를 전부 마쳐두어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한 나라를 완전히 지배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직위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넓은 영지와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인 귀족에게 대응하는 세력이 없는 이유가 대놓고 적대했다가 본보기로 죽어간 이들의 수가 세 자리 수가 넘어간 것 하나 뿐일 리가 없다. 나, 라그나 아마게돈 타도 세력은 이미 존재한다다. 단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그 타도 세력을 만들고, 키워가며, 유지해 온 사람이 다름 아닌 타도 대상인 저 일뿐. 그게 답니다.'
내가 꺼낸 서신, 이것은 용사에게 더 없이 든든한 조력자를 만들어 줄 일종의 쿠폰.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것은 내가 만든, 나의 목을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한 자루의 검.
나는 그 검의 자루를, 곧 다가올 용사의 손에 쥐어 줄 생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