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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04화 (104/229)

〈 104화 〉 브레스!! 피해욧!! (3)

* * *

나한테는 방어 불가+즉사기나 다름 없는 흉악한 번개 공격을 날리던 신이라는 존재가 불멸의 용에게 한 방에 짜부라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여태껏 내가 저렇게 벌레 때려 죽이듯 잡히는 놈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던 건가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물론 저 소녀인지 소년인지 모를(이라고는 하지만 저 날개로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손에 든 파편으로 보나, 아무리봐도 불멸의 용 본인이겠지. 몸뚱아리는 저기 아래에 있으니, 저건 아마 불멸의 용의 정신 비스무리한?) 존재가 비교 대상이라서 그런 거지 실제로 저 녀석, 번개의 신 라이키린을 상대로 루크와 함께 싸운다면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다. 애초에 혼돈의 파편을 모두 모은 불멸의 용은 완전 각성 상태인 용사가 아니면 이길 수 없으니까.

물론 이건 '불멸의 용은 용사가 아니면 죽일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불멸의 용이 가진 능력. 스테이터스가 각성이 완료된 용사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없을 만큼 높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크윽, 제기랄...! 놔, 놓으라고...!]

[흐음, 너희들은...]

어쨌든 이걸로 방해꾼도 제압 완료해서 문제 해결...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나와 루크를 향해 불멸의 용이 보내는 시선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좋게 봐도 적 취급, 최악의 경우 장난감 내지 먹잇감. 불멸의 용은 어쩐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고, 나는 수틀리면 여기서 최악의 엔딩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해피 엔딩의 조건은 완성된 용사가 불멸의 용을 죽임으로서 이 대륙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

그리고 배드 엔딩의 조건은 용사가 불멸의 용을 쓰러트리지 못하는 것.

라이키린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체력을 소모한 루크와 그가 풍기는 신성력 때문에 내상을 제법 입은 데다가 힘의 근원인 혼돈의 파편까지 빼앗겨서 무력해진 나. 이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용사조차 죽이지 못한 마룡을 상대로 살아남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뭔가 외부의 개입이 또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이겠지.

[과연, 하나는 이전에 꾀를 부려 내게서 예정보다 많은 힘을 뜯어간 약삭빠른 여우고, 다른 하나는 나를 없애기 위해 그녀가 빚은 독충이구나. 위협이 되는 해충과 쓸모가 다한 짐승을 더 살려둘 이유는 없으니...]

쿠득, 쿠드득. 마치 뼈가 뒤틀리는 듯한, 기괴하면서도 등골이 서려오는 소음과 함께 불멸의 용의 날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 쌍이었던 날개가 위아래로 둘로 갈라져 두 쌍이 되었고, 위쪽 날개가 둥글게 접히며 용의 머리가 되고 아래쪽 날개가 가늘게 말리며 팔로 변했다. 용의 머리가 갈라지며 섬뜩한 이빨을 드러냈고, 팔의 끝부분에 사람의 뼈 정도는 손쉽게 썰어버릴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났다.

[여기서 미리 처리해둘까.]

최악의 결과.

산 넘어 산.

이 좇된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할까 싶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그 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미안하지만 그 이상의 루즈한 전개는 사양한다.

나를 통해 이 세상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관객이자 루미너스 여신으로부터 나와의 채무 관계를 전부 양도 받은 무슨 속셈인지 모를 초월자, 고대의 외신 니아 씨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에겐 니아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지 않을까?

­주인공이 열심히 구르는 모습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계속 시련만 나오면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지. 그러니까... 판을 새로 짜보자고.

그 말과 함께, 불멸의 용에게 짓밟힌 채 발버둥치던 라이키린의 하의 주머니에서 검은 구체가 데구르르 굴러 나왔다.

[뭐지, 저건?]

[큭, 그건...!]

라이키린은 니아에게 받았던 그 물건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그보다 먼저 불멸의 용이 그를 짓누른 다음 바닥에 놓인 검은 구체를 낚아채었다.

[어디... 이건 또 뭐람? 뭔가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정확히 뭔지는 읽을 수가 없....]

그리고 마룡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에 들려 있던 구체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 아, 잠깐만. 저거 뭐야.

[.....히익.]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혐오감이 물씬 들게 만드는, 끈적한 점액을 질질 흘려대며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촉수들이 구체를 쥔 마룡의 손을 따라 휘감겼다. 쓸데없이 역동적인 움직임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저 형태까지 하나 하나가 정말 기분 나빴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풍기는 묘하게 불쾌하고 섬뜩한 기운에, 저것이 니아 씨의 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몸에 거부감이 들었다. 저 무시무시한 마룡조차도 깜찍한 비명을 내뱉으며 질색을 할 정도이니, 그 이상 저것에 대한 묘사를 덧붙일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내가 만든 '검은 군대'도 나름 끔찍한 편에 속하지만, 저 촉수는 논외다. 셀레나가 봤다면, 아마 기겁을 하며 최대한 빨리 달아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 이게 뭐야...! 떠, 떨어져!]

혼돈의 파편을 다시 전부 회수하여 본래의 힘을 어느 정도 되찾은 마룡이 짙은 어둠의 마력을 뿜어내며 거칠게 손을 뿌리쳤으나, 마룡의 손에 얽힌 촉수는 조금이라도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더욱 그 몸에 얽히고 있었다. 파편의 힘을 되찾은 마룡이, 비록 본래 원래 육신은 아니더라도 이 세계 안에서라면 저 번개의 신조차 가볍게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할 텐데도 니아 씨의 촉수 앞에선 얄짤 없었다.

마룡이 촉수를 뿌리치려는 행동은, 굉장히 무의미한 일로 보였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아니,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래... 종이에 그려진 가위로 종이를 자르려는 듯한, 그런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창조하지도 않은 세계 안에서 이 정도 수준의 영향력을...!

­일단, 위쪽의 눈을 가리고.

드득, 드드득. 마치 나무가 땅 밑에 뿌리를 내리듯, 하늘을 향해 뻗어져 나간 수십 가닥의 흉측한 촉수들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눈을 가리려는 듯 구름으로 이루어진 궁전의 천장을 뒤덮었다. 그 모습에서 마룡은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것인지 손톱을 날카롭게 변형시켜 촉수를 잘라내려 했지만, 여전히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다음은, 무대를 바꿀 차례지.

나도, 루크도, 마룡도, 그리고 마룡에게 개쳐발린 번개의 신도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뇌운의 성은 붉은 촉수의 감옥으로 변모했다. 범람하는 살덩어리들이 모든 것을 가득 메웠고, 그것에 맞닿은 피부의 감촉은 정말 소름끼치리만큼 최악이었지만, 아주 잠시뿐. 얼마 안가 촉수들이 떨어져 나갔고, 나는 루크와 번개의 신이 어디론가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곳에 있는 건 나, 그리고... 촉수에 팔다리가 모두 묶여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마룡 뿐.

­불멸의 용은 죽어도 죽지 않고 되살아나니, 고통에는 아주 익숙하지. 하지만, 과연 고통이 아닌 것에도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미 한 초월자를 굴복시켰던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니 보여다오.

고대의 외신이 뒤틀린 악의가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무방비 상태가 된 마룡을 비웃는 듯한 어조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 믿는 건방진 녀석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내게 보여다오.

적으로 두는 것이 두려운, 그렇다고 아군으로 있는 것도 그리 반갑지 않은 뒤틀리고 비틀린 악의. 꼭 이런 식이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악취미적인 행동이지만, 동시에 지금의 내게는 둘 도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용사 루크가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파편의 힘을 모두 되찾은 마룡을 상대로 이길 방법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마룡을 제압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끝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밖에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숙달하게 된 것이라곤 나쁜 짓과 성행위 뿐이었으니.

[크윽, 네놈...! 무슨 짓을 할 셈이냐...!]

마룡은 팔과 다리가 천장과 바닥에 촉수로 묶인 상태라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음에도, 손도 대지 않고 사람 하나 죽일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취한 여자의 수가 몇인데, 그 중에 저런 식으로 강경하게 저항하는 여자가 없었을리가.

근데 생각해보니 마룡은 여자가 맞나? 딱 잘라서 여자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중성적인 외모인데...

­루미너스 여신이 그 용의 성별은 따로 정해두지 않은 모양이더군. 이런 경우는 저마다 다르지만, 대게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지.

그게 뭔 소립니까?

­쉽게 말해 이런 거지.

[자, 잠깐...! 무슨 짓을, 그만 둬!]

바닥에서 튀어나온 촉수들이 마룡이 입고 있던 펑퍼짐한 옷을 잡아 당겨 찢었고, 마침내 마룡의 성별이 드러났다.

외모가 하도 중성적이라서 혹시 달려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마룡은 암컷임이 확인되었다.

*

[크윽, 이런 굴욕을...!]

마룡은 격분했다.

고작 인간에게, 자신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다니.

사실 마룡은, 굳이 따지자면 성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정해지지 않았다. 마룡의 역활은 어디까지나 용사가 최후에 쓰러트려야 할 적이자 인류를 위협하는 마물들을 쏟아내는 악의 원흉이었다. 솔직히, 세상에 어떤 미친 놈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궁금해한단 말인가?

그렇기에 마룡의 성별은 미정(??)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대의 외신이 장난질을 벌였다. '성별이 정해지지 않았다'라는 것은, '남자와 여자, 둘 중 어느 성별이든 될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적용하여 자신의 힘이 미치는 공간 안에서 마룡의 몸을, 정확히는 마룡의 정신체를 여성형으로 확정시켜 버렸다.

원래 마룡에게는 생식 능력이 없었다. 불멸의 용이란 일종의 살아있는 재앙이었고, 어차피 용사의 손에 쓰러지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런 존재에게 후대를 만들 능력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마룡의 입장에선 평생 느껴본 적도 없는 여성의 생식기가 몸에 생겨났다는 것으로도 낯설고 불쾌한데, 거기에 그 꼴사나운 형태를 인간에게 훤히 드러내는 상황은 수치스럽다 못해 자존심이 크게 금이 가는 일이었다. 번개를 다루는 다른 세계의 신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자신이, 인간의 앞에서 이런 죽는 것보다도 끔찍한 추태를 보여야 했으니.

물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그것은 새발의 피에 불과했지만.

"흐음, 생각보다 멀쩡하네?"

자신의 몸을 흩어보며, 마치 물건을 품평하는 듯한 인간의 말에 마룡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마룡에게 있어선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번개에 몸을 수십 번 지지는 쪽이 나았다. 육체적 고통에는 익숙한 마룡이었지만, 이런 정신 공격에는 면역력이 전혀 없었으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면, 어느 쪽도 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특별히 암컷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줬다, 이 말이지.

촉수로 이루어진 공동 전체에 울려퍼지는 듯한,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웃는 듯한 목소리에 마룡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또 그 초월자인지 뭔지하는 놈인가? 게다가 뭐? 암컷의 기쁨? 이런 자신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달아준 것의 도대체 어디가 기쁨이란 말인가?

그렇게 내뱉으며 따져들고 싶었으나, 도저히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그 전에 만난 둘과는 질적인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자신이 루미너스 여신이 세운 이야기 속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알려주었던 자칭 죽음의 여신과, 그녀가 배신하자 될대로 되라는 듯이 자신을 억지로 일으켜서 세상을 파괴하려고 한 자칭 번개의 신. 그 둘이 벌이던 일은 어린애 장난처럼 여겨질 정도로, 자신을 비웃는 초월자에게서 느껴지는 기백과 존재감은 엄청났다.

또한 신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마룡이었지만, 저 초월자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굳이 제 앞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여자로 만들었다면, 역시 그런 게 보고 싶다는 뜻이군요?"

­부정하지는 않으마. 그리고 솔직히 너도 제법 끌리지 않나? 용사가 아니면 쓰러트릴 수 없는 존재를, 네 손으로 타락시킬 수 있는 기회이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제법 끌리네요."

그리고 인간의 입에서 나온, 전혀 생각치도 못한 말에 마룡은 생전 처음으로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 전까지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태도는 어디가고, 갑자기 생각치도 못한 행운으로 값비싼 노획물을 휙득한 강도마냥 눈빛이 변하는 것이, 자신이 어떤 이야기로 설득하려 하던 듣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바지춤이 조금 부푼 것을 보면....

오싹.

비록 생식 능력이 전혀 없던 마룡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런 쪽의 지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피에서 태어난 마물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이성을 상대로 억지로 자신의 성욕을 배출시키는 모습을 본 적이 몇 번 있었던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인간의 눈이 그 때 인간 여자를 덮치던 마물의 눈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이 이상의 창피를 당하기 전에, 차라리 정신에 조금 상처를 입더라도 큰 폭발을 일으켜 주변을 다 날려버릴 생각으로 마룡은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지만...

스륵, 스르륵. 빙글, 빙글.

"큭...!"

"와, 피부가 장난 아니게 부드럽네. 게다가 감도도 제법 괜찮은 것 같고. 이 정도면 제법 즐길 수 있겠는데?"

그것도 잠시 뿐, 흉부와 하반신에 가해지는 손놀림에 마룡은 집중력이 흐트려지며 기껏 모았던 마력을 전부 놓쳐버리고 말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질감과, 알 수 없는 감각. 인간의 손이 자신의 젖가슴의 끝부분과 가랑이 사이의 균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광경이 마룡의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이런 이상한 상황을 만든 초월자도 물론 비정상적이지만, 그런 상황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이 인간도 그 못지 않게 이상했다. 아무리 여색을 밝히는 남자라도, 설마 원래 정체가 죽지 않는 불사의 괴물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단지 외형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정욕을 해소하려고 할 리가...

스륵, 스르륵.

쯔걱, 쯔걱, 쯔걱, 쯔걱!

[크읏....!]

처음엔 그저 겉부분만을 천천히 쓸어내리듯 움직이던 손길이, 이내 예민한 부분만을 콕 집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룡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넘기고자 했으나,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의도를 완전히 배신하고 있었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데 쓰이는 곳, 그리고 균열 윗쪽에 위치한 콩알 같은 것을 단지 손으로 만질 뿐인데 어째서 이토록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손에 익숙하지 않은 신체를 마구 자극당하며, 묘하게 애타는 쾌감과 함께 무언가 안에서 올라오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마룡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부상을 각오하고 마력을 폭발시켜 이 구속을 푼다는 계획 따위,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자신의 생식기를 애무하는 그의 손길에 전부 쏠려 있었다.

쩌억, 쯔걱! 찌걱, 찌걱!

게다가 그 인간은 손장난으로 그녀의 몸을 희롱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흉악한 성기를 자신의 균열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설마 씨뿌리기를 할 셈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났으나, 다행히 직접 안에 삽입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균열 부분에 자신의 성기를 앞뒤로 비벼대기만 할 뿐이었다. 안에 직접 넣고서 정을 토해내는 것도 아닌, 다리 사이에 성기를 끼우고서 허리를 흔드는 그 모습이 스스로의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발정난 짐승 같아서 비웃어주고 싶었으나, 균열 부분의 성기가 비벼지는 곳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묘한 감각 때문에 마룡은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저 살을 비벼대기만 할 뿐인데 이토록 기분이 좋은 것인.... 잠깐, 기분이 좋다고?

그제서야 마룡은 자신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했지만, 상황은 이미 너무 늦었다.

마룡은 고통에는 익숙했지만, 쾌감에는 익숙하지 못 했다. 그런 그녀가,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보낸 라그나 아마게돈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쑤우욱!

[히그으윽...!]

갑작스레 질 안으로 침입한 손길에, 마룡은 꼴사나운 신음을 터트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남성기에 비벼지며 달아올랐던 곳이, 낯선 이물질의 침입에 금새 반응했다.

"우왁, 엄청나게 조여오네.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릴 뻔 했어. 그렇게나 원했던 건가?"

[무슨 헛소릴... 그럴 리가 없다! 차, 착각이다..!]

"그래? 정말로?"

[그, 그래! 죽음도 두려워 않는 무적의 존재인 이 몸이, 고작 하찮은 인간의 손길에 쾌감을 느낀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는가!]

그것은 마룡의 남은 자존심을 끌어 모아 내지른 마지막 발악이었고, 동시에 그녀가 놓은 최악의 수였다. 그녀의 외침에, 그는 한 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어딘가 굉장히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위대한 마룡 님께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뜻인가?"

[무, 물론이지...!]

"그래, 그럼 어디... 그 태도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 확인해볼까?"

그 말과 함께, 마치 지금까지는 장난에 불과했다는 듯, 그의 손길이 확연하게 변했다.

[흐그읏...?! 큿, 흐긋, 카흣...!]

거침 없는 손놀림이, 전신을 휘감는다. 많은 여인들을 거치며 확연히 발전한 그의 손기술은 자기 위로 행위조차 해본 적 없는 마룡에게 너무나도 낯선 감각이었고, 그녀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었다.

예민한 음핵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질 안에 혀를 불쑥 집어 넣어 질벽을 꾸욱 누르거나 가슴을 힘껏 움켜쥐며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굴려대고, 그 외에도 목을 약하게 깨물거나 겨드랑이를 핥는 등의 부끄러우면서도 어째선지 불쾌함 대신 아득한 쾌감만이 돌아오는 자극 끝에, 마룡은 머릿속에 새하얀 불꽃이 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애액을 찌익 하고 싸지르며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라그나 아마게돈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힘찬 기세로 뿜어져 나간 애액을 바라보며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역시 드래곤이라 그런가. 이쪽으로 뿜는 브레스도 심상치 않은데?"

[하윽, 하으으...! 도, 도대체 뭐냐...! 이, 이 감각은...!]

"뭐긴 뭐야, 가버린 거지."

[가, 버리다? 무슨 소리냐...? 간다니, 도대체 어딜 간다는 거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혼란스러워하며 되묻는 마룡의 모습에, 라그나 아마게돈은 입가에 모멸적인 비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큭큭, 그런 것도 몰라? 그럼 친히 알려줄 테니 잘 새겨들어."

[흐긋, 자, 잠깐, 흐으으으으으으으읏!!♥]

그 말과 함께 라그나 아마게돈의 손이 엄청난 기세로 균열 부분을 마구 쑤셔대기 시작했고,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듯한 강렬한 쾌감이 억지로 주입당하며, 마룡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르며 다시금 절정에 이르었다. 그리고 라그나 아마게돈은 절정의 여운으로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에게 속삭였다.

"지금 그 감각이, 가버렸다는 거야. 잘 기억해 둬, 불멸의 용."

찌걱.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금 찾아오는 불합리한 쾌락에 점차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그녀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계속 가버리게 될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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