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2)
* * *
마침내 결전의 날.
용사 루크는 마른 침을 삼키며, 이제는 익숙한 장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마게돈 영지의 중심에 있는,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의 저택. 비록 현재의 작위는 고작 남작에 불과한, 한 때는 개국공신이자 삼 대 공작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웅장한 저택이 풍기는 묘한 압박에 루크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더군다나 저곳은 그가 쓰러트려야 할 마지막 적의 보금자리임과 동시에 그동안의 여정에서 두 번이나 도전하고 두 번 모두 패배했던 장소. 긍정적으로 바라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곳이었다.
"후....."
하지만 그것이 루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루크는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저택 내부 정원에 발을 들였다.
루크가 아는 한에서 귀족들이란 으레 자신들의 저택 안에 정원을 가꾸고 그것을 잘 관리하여 남들에게 자신이 이 정도로 멋진 정원을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것을 즐기기 마련인데, 아마게돈 남작의 저택 안 정원은 달랐다. 관리를 잘 한 것인지 꽤 잘 정돈되어 있지만, 단지 그것 뿐.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과일을 보는 듯한, 어딘가 이질적이고 불쾌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장소였다. 다가오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꽃들이 잎을 떨구고 다시 찾아올 따스한 봄까지 잠에 빠질 준비를 마친 정원에서, 새하얀 벤치에 앉은 새카만 옷차림의 사내가 그를 맞이했다.
"드디어 왔군. 게다가 혼자라."
"당신이 말한 대로 혼자서 왔으니, 설령 제가 패배한다고 한들 제 동료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키셔야 할 겁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 내가 워낙 나쁜 놈이긴 하지만, 내 입으로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니."
"부디 그 말이 거짓이 아니길 바라죠. 그럼... 여기서 바로 하실 겁니까?"
루크가 허리 춤에 매단 검의 자루에 손을 갖다 대며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아직까지도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있던 검은 옷차림의 사내,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이 정원이 엉망이 되잖아. 비록 내가 정원을 가꾸는 취향은 없지만, 내 명예를 위해 일부러 열심히 정원을 손질하던 이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여길 망치고 싶진 않거든. 따로 적당한 장소를 준비해 뒀으니, 그 쪽으로 가지."
라그나 아마게돈은 그렇게 말하며 따악, 하고 손을 튕기자 지면에 나타난 검푸른 마법진이 옅은 빛을 뿜어내며 이윽고 공간을 뒤틀어 어딘가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 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지만, 그 장소는 어디죠?"
"전사의 무덤. 우리들의 마지막 결전을 치루기에 그곳 만큼 적당한 곳은 또 없지 않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전사의 무덤.
묘비 대신 수많은 병장기들이 꽂힌 거대한 공동 묘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머금은 땅이자, 불멸의 용이 봉인되어 있던 지하 신전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장소. 그리고... 여차 하면 바닥에 꽂힌 무기들을 뽑아서 사용할 수 있기에 주요 공격 수단이 마법인 라그나 아마게돈에게는 다소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장소. 굳이 그런 곳을 마지막 결전을 치룰 전장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추측에 가까웠던 루크의 의구심은 이제 확신으로 번졌다.
"자, 가지.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의 막을 내리러."
라그나 아마게돈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이 앞이 함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본인이 먼저 포탈 너머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통로를 통해 병장기들이 바닥에 빼곡히 박힌 언덕에 도달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루크 또한 그 통로를 따라 전사의 무덤에 도착하였고, 그가 지나기 무섭게 포탈은 사라졌다.
"대검에, 롱소드, 배틀 엑스에 메이스, 그리고 할버드.... 오, 스피어도 있네. 디자인은 영 내 취향이 아니지만 말이지."
어쩌면 이제 곧 시작될 결투로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상황에서, 바닥에 꽂힌 낡은 병장기들이나 여유롭게 구경하는 그의 모습에 루크는 어처구니 없었다.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무심코 내뱉은 그 물음에, 라그나 아마게돈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했다.
"응."
"뭐...라고요?"
"사람들이 흔히들 느끼는 공포는 크게 '아는 것에 대한 공포'와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로 나뉘어지지. 아는 것에 대한 공포는 곧 다가올 통증이나 불행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 가깝지. 그리고 죽음 또한,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 직접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 그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설령 그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하지만 난 죽는 게 무섭지 않아. 이미 죽어 봤고, 그 이후에 뭐가 있는 지도 알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다 알거든."
"...이미 죽어봤다고요?"
"세세하게 따지면 조금 다르지만, 대략 그럼 셈이라고 할까. 그 이상은 굳이 말해줄 이유는 없지. 그런데 언제까지 서 있을 거야? 우리 싸우로 온 게 아니었어? 준비가 되면, 얼른 덤벼."
"....."
루크는 허리에 매고 있던 검, 성검유니코르를 뽑으며 그동안 연습했던 자세를 취하였다. 검을 쥔 손이 앞으로 향하게 한 채 빈 손을 등 뒤에 붙인, 찌르고 빼기에 특화된 자세. 그동안 무식하게 휘두르던 자세가 아닌, 미숙하게나마 체계적으로 익힌 검술을 드러내며 루크는 곧 찔러야 할 적을 향해 말했다.
"미안합니다."
"뭐가?"
"제가 이곳에서 당신과 싸우는 동안, 제 동료들이 사람들을 모아 남겨진 당신의 부하들을 상대할 겁니다."
그 말에, 라그나 아마게돈은 눈썹을 으쓱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뭐?"
"당신은 혼자서 상대하기에도 충분히 버거운 적이지만, 부하들과 함께 있을 때는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는 적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당신의 부하들이 뛰어나다고는 한들 수많은 나라와 용병 등으로 이루어진 군세를 모두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흐음, 그러니까... 내가 한 방 먹은 모양이군. 안 그래? 설마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를 이용해서, 되려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파다니. 하지만 그 사실을 내게 밝히기엔 시기가 조금 이르지 않나? 내가 널 여기에 방치하고, 이제라도 홀로 저택으로 돌아가서 감히 주인이 빈 사이 그 보금자리를 털려는 망할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만일 당신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녀'가 직접 나설 겁니다. 저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흐음, 그래...? 좋아, 그럼 나도 특별히 하나 말해주지."
이윽고 라그나 아마게돈은, 여태까지 짓고 있던 여유롭고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이 전부 가면이었다는 듯, 양 손에 불길한 어둠을 두르며 입가에 사악하게 비틀리고 일그러진 미소를 띄웠다.
"네가 생각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다."
"....!"
엄습해오는 섬뜩한 살기를 그대로 받아내며, 루크는 이에 질세라 자신의 몸에 담긴 서로 다른 색의 두 신성력을 있는 힘껏 끌어 올렸다. 이윽고 모든 빛을 집어 삼킬 듯한 탁한 어둠과 눈부시게 번뜩이는 두 가지 색의 섬광이, 전사들의 죽음을 삼킨 대지 위에서 충돌했다.
*
마침내 시작된 마지막 전투, 피날레로 향하는 클라이막스. 비록 연극은 진즉에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나는 루크를 대충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한 번 맡은 일인 이상,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한 명의 악역으로서, 주연과 필사적으로 싸우다 그에 맞는 깔끔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것이 내가 여신에게서 소원권을 얻기 위한 조건이었고, 이제는 고대의 외신을 만족시키기 위함으로 바뀌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그래, 중요한 건.... 이게 마지막 싸움이며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거지.
루크를 상대한다. 내가 가진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더는 봐줄 필요 없이.
그래, 이건.
"그럼 일단 시작은 가볍게... 한 대!"
지난번에 합법적으로 루크를 때렸던 것보다 더 쎄게, 그를 마음껏 두들겨 팰 수 있는 기회란 뜻이지!
나는 바닥에 꽂혀 있던 낡은 창 하나를 뽑아, 그것을 손에 가득 모은 어둠으로 휘감았다. 세월의 흐름을 피하지 못하고 방치된 병장기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지만 나와 루크에게 무기의 내구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둠의 마력과 신성력으로 무구를 강화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 무기 자체의 내구성과 위력보다는 그 형태와 길이가 더 중요했다. 공격을 한 번이라도 받아낼 수 있기는 커녕 휘두르기만 해도 알아서 부러질 것만 같았던 장창은 불길한 어둠의 마력으로 제련되어, 새로운 형태로 빚어졌다.
내가 어둠 속에서 꺼낸 무기는 할버드와 유사한 형태의, 그러나 도끼 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어둠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섬뜩하게 일렁이고 있어, 마치 사신의 낫을 연상케 하였다. 눈부신 빛의 궤적을 남기며 순식간에 코앞까지 달려들어 검을 내지르는 루크를 향해, 나 또한 손에 든 창을 휘둘렀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신성력에 휘감긴 칼 끝을 받아내었고, 눈부신 불꽃이 튀기며 강렬한 충격이 잇달아 양손에 전해졌다.
아무리 신성력으로 위력에 보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설마 이 정도라니. 시속 100 km로 달려오는 자동차에 정면으로 치인 듯한 충격에 손목이 아작이 나 버렸지만, 뼈가 부러지고 손목이 비틀리며 피가 흩뿌려지는 것과 유사한 속도로 상처가 다시 재생되어, 마치 시간을 돌려 내게 가해진 피해를 무로 되돌려버리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모습에 루크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이 힘을 주어 그의 칼날을 밀어낸 후 다시 낫을 휘둘렀지만, 창에 달린 칼날은 루크의 몸이 아닌 허공을 베었을 뿐이었다.
이어진 대치. 루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처럼, 내가 날리는 찌르기와 베기를 피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틈이 보인다 싶으면 귀신 같이 예리한 찌르기를 감행했다. 어둠의 힘 덕에 대부분의 피해에는 면역이지만, 루크가 다루는 신성력만큼은 오히려 내게 치명적인 약점이었기에 나는 그의 찌르기를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목과 심장을 향해 찔러오는 칼날을, 창대로 내리쳐 궤도를 비틀거나 발길질로 루크의 복부를 걷어차 거리를 벌리며 피한 후 곧바로 다시 창을 내지르거나 창에 달린 칼날을 낫처럼 휘둘러 반격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유의미한 피해 하나 주지 못한 채, 마치 짜고 치는 대련처럼 공격을 주고 받던 나와 루크는 이내 맞물리듯 동시에 내지른 일격으로 상대의 어깻죽지를 궤뚫으며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큿...!"
루크는 곧바로 신성력을 활용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다. 하지만...
"쓰읍...."
반대로 내 어깨는 상처가 낫기는 커녕, 오히려 좀먹는 듯한 모양새였다.
사실 상처의 회복 속도와 그에 드는 힘의 소모 정도는 이쪽이 훨씬 우위에 있다. 하지만 내가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성력으로 입은 피해' 이외의 상처 뿐. 루크의 신성력으로 강화된 무지막지한 공격의 충격으로 손목이 아작나는 것은 회복할 수 있지만, 아주 조금 스친 것이라 해도 신성력에 직접 피해를 받은 상처는 내 힘으로 회복할 수 없다. 그에 비해, 루크의 경우에는 회복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고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선 그만큼 공격에 쓰일 신성력을 분배해야 하지만, 회복할 수 있는 상처에 제한이 없다.
즉, 이런 식으로 서로 조금씩 피해를 누적시키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결과적으론 내 쪽이 불리해진다. 내가 어깨의 옅은 상처를 회복하지 않는 걸 눈치챈 루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금 내게 노도와 같은 기세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엔 자신이 공격 받을 위험을 다소 각오한, 과감한 일격이 이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수비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았음을 확신한 루크는, 설령 내가 공격을 가하더라도 방어할 수 없는 꽤 무리한 찌르기를 날렸고... 그것이 바로 내게 찾아온 기회였다.
"크읏..?!"
내가 내지른 창을 전혀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과감하게 칼날을 찔러 들어오던 루크의 몸이 굳었다. 그의 몸을 반 즈음 스쳤던 창이, 창대에서 흉악한 가시들이 솟아나며 루크의 옆구리를 꿰뚫은 탓이다. 내 손에 들린 이 창은 어디까지나 이곳에 있던 낡은 창을 뼈대로 내 마력을 덧씌운 무기. 그리고 힘을 조금만 쓰면, 무기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 즈음이야 간단하다.
"큭.... 커흑!"
나는 창을 거두며 루크의 몸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었고, 루크는 찢어진 옆구리에서 새빨간 피를 왈칵 쏟아내며 비틀거렸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 상처 부위가 신성력 특유의 눈부신 빛에 휩싸이며 피가 멎고 뜯겨나간 피부가 자라며 원상태가 되었지만, 신성력이 상처를 회복시켜 주더라도 그 고통까지 지워주지는 않았다.
"넌 진짜 단순한 놈이구나. 내가 마법을 놔두고, 왜 굳이 잘 쓰지도 못하는 근접 전투로만 널 상대하고 있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거냐? 그것도 내가 회복할 수 없는 신성력 공격에 상처를 입는 것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야."
잘 쓰지도 못하기는, 무슨, 잘만 다루더만...! 이라며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루크를 내려다보며 나는 비웃음을 흘렸다.
"일부러 근접 전투로 상대하며 다른 수단을 쓰지 않은 거다. 내 공격으로 인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지만, 네 공격에 의해 내가 직접 받은 상처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네가 수비를 과감하게 포기하게 내게 최대한 피해를 누적시키는 엘리전을 하도록 네 사고를 유도한 거다. 갑자기 이런 변칙스러운 공격이 날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럼 설마 방금 어깨에 공격을 맞은 건...."
"당연히 일부러 맞아준 거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불길에 눈이 멀도록. 그 불길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로 향하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말이지. 자, 그럼 내가 왜 이 사실을 지금 너에게 굳이 다 설명해주고 있는 지도 맞춰 볼 수 있을까?"
"그건...."
루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창을 내질렀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날아온 공격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한 루크는 창날에 허벅지를 베였다.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상처를 회복하는 루크를 향해 다시금 창을 내지르며, 나는 교활하게 웃었다.
"첫 번째 이유는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몸의 감각으로 익혔으니 본격적으로 실력을 드러내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네가 내 공격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사고를 그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루크는 다급히 왼팔로 내 공격을 받아내었고, 빠각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윽고 창대로 루크의 턱을 후려쳐 그를 넘어트린 후, 오른발로 그의 오른손을 짓밟은 채 창에 달린 칼날을 그의 목 바로 앞에 갖다 대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내가 생각한 대로만 움직여줬더라면, 훨씬 일이 잘 풀렸을 텐데 말이지. 내가 정성스레 세운 계획들을 그렇게 개같이 망치지만 않았어도, 너도 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참 유감이야."
"크...으윽...!"
"이딴 걸 용사라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대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창날을 내리 찍으면, 루크의 목이 그대로 뎅겅하고 날아갈 테지. 하지만 난 일부로 그러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네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듯, 승기를 확신한 오만한 악역처럼 결정타를 날리지 않고 일부러 그를 모욕하고 비웃으며 시간을 끌었다.
"고작 그게 전부인가? 하긴, 바이올렌스를 이겼던 것도 셀레나가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혀 놓은 영향이 컷지. 역시 파괴자 세르베르크와 광인 실립을 쓰러트린 것조차 요행이었던 모양이군."
"흐, 으읍...!"
루크의 오른손으로, 방대한 신성력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팽창한다. 나는 그가 신성력을 방출시키는 것보다 한 템포 빨리 그에게서 물러났고, 방대한 신성력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나는 상처를 회복하며 다시 일어난 루크를 향해 창 끝을 겨누며, 그를 다시금 도발했다.
"자, 다시 덤벼 봐. 가장 무능한 용사."
".....으아아아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