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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13화 (113/229)

〈 113화 〉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3)

* * *

'가장 무능한 용사'.

그 한 마디가 스위치였다.

여신에게 선택 받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했으나, 정작 불멸의 용을 막고 세상을 구한 사람은 자신이 아닌 라그나 아마게돈이었다. 그 일은 이전부터 자신에게 정말로 용사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확신이 없었던 루크에게 그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루크의 왼팔에서 주황색 신성력이 불길처럼 이글거리며 피어올랐고.

"당신의 입에선..."

루크의 오른팔에선 찬란한 황금빛 신성력이 찬란하게 터져나왔다.

"그 말이 나오면 안 되잖습니까!!"

이윽고 루크가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린 에스토크 형태의 성검이 그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대검으로 형태가 바뀌고, 두 팔에 담긴 서로 다른 신성력이 마치 두 마리의 뱀이 나무를 타고 오르듯 휘감겨 올랐다. 루크는 온힘을 다해 대검을 바닥에 내리 찍었고, 불멸의 용을 잠시 쓰러트렸던 그 나선의 일격이 바닥을 깨부수며 라그나 아마게돈을 향했다. 두 신성력들이 서로 밀어내는 반발력을 역이용한 공격이, 잠든 이들의 묘비 대신으로서 그 자리를 지켜온 낡은 병장기들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며 어둠을 두른 귀족을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그 공격이 목표에게 도달했을 때.

"너 진짜 바보냐?"

이미 그는 루크의 등 뒤에 나타나, 한심해서 못 봐주겠다는 듯한 어투로 여유롭게 그를 비웃고 있었다.

"그런 뻔히 보이는 공격을 대체 어떤 병신이 대놓고 맞아주겠냐, 응?"

루크는 곧바로 몸에 익은 반격 자세로 나서려고 했으나, 조금 전의 그 강력한 위력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성검을 평소의 가볍고 얇은 세검이 아닌 무겁고 큰 대검의 형태로 바꾼 탓에 대처가 늦어졌다. 루크가 검을 다시 세검을 바꾸었을 때, 이미 그는 라그나 아마게돈에게 걷어차여 날아가 흙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커...흑...!"

"내가 누누히 말했잖아. 네 녀석의 가장 최적화 된 전투 스타일은 상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찌르기에 특화된 그 가볍고 얇은 칼날로 빠르게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 빠지는 히트 앤드 런, 그러니까 치고 빠지기 전술이라고. 어차피 이 쪽은 네 공격에 제대로 맞으면 회복도 못 하는데, 굳이 맞추기 어렵고 틈이 많이 보이는 강한 공격을 할 게 아니라 위력은 낮더라도 빠르고 확실하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으로 피해를 누적시키는 쪽으로 갔어야지. 진짜 사람 말 더럽게 안 듣는 놈일세."

루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신성력으로 다리의 각력을 강화하여 단숨에 라그나 아마게돈을 향해 도약했다. 사람의 눈으로 쫓기 힘든 엄청난 속도로 상대를 향해 달려든 루크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며 달려든 것과 같은 속도로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네 공격은 너무 직설적이라서 상대에게 읽히기 쉬우니 페이크를 섞으라고 내가 분명 충고했을 텐데? 아무리 빠른 속도라도, 어디로 올 지 그 경로를 알고 있다면 이렇게 상대가 함정을 설치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 없이 달려든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으으아아아아아!!"

루크는 성검의 끝에 신성력을 응축시키며 검을 쥔 팔을 뒤로 쭉 끌어 당겼다가 다시 앞으로 내질렀다. 검의 끝에 모여 있던 신성력은 광선의 형태로 발사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단숨에 꿰뚫었지만, 라그나 아마게돈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것조차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도 여유롭게 고개만 옆으로 까딱 움직여 루크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했다.

"...아무래도 말로만 설명하니 알아먹지 못하는 것 같은데, 좋아.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단 역시 한 번 보는게 낫고..."

라그나 아마게돈의 손에 들려 있던, 끝부분에 낫처럼 칼날이 달려 있던 창이 다시금 형태를 바꾸어, 루크가 쥐고 있는 성검­유니코르와 비슷한 형태의 세검이 되었다. 단, 루크의 검이 찌르기에만 특화된 '에스토크'라면, 아마게돈 남작의 손에 들린 검은 찌르는 것 외에도 베기 위한 칼날도 달린, 그리고 에스토크보다 리치가 긴 '레이피어' 였다.

"백 번 보는 것보단, 한 번 직접 맞아보는 쪽이 이해하기 쉽겠지."

그 말과 함께, 라그나 아마게돈이 바닥을 박차며 달려왔다. 이에 질세라 루크도 성검을 다시 신성력으로 휘감으며 정면에서 덤벼들었다. 루크는 미리 검을 쥔 팔을 뒤로 빼고 있다가 아마게돈 남작이 찌르기를 위해 검을 쥔 오른팔을 뒤로 쭉 빼는 자세를 취했을 때 곧바로 찌르기를 날려 선수를 치려 했으나, 그의 검은 관통한 것은 아마게돈 남작의 복부가 아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라그나 아마게돈은 마치 당장이라고 검을 내지르려는 듯한 자세로 루크를 착각하게 만들어 그가 먼저 공격하도록 유도한 후, 공격이 실패하여 빈 틈을 드러낸 루크를 향해 세 차례의 재빠른 찌르기를 날렸다.

"크읏...?!"

오른쪽 어깨, 허벅지, 옆구리 순으로 세 차례 공격 당한 루크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아마게돈 남작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시 덤벼들었다. 루크는 아마게돈 남작을 견제하기 위해 그가 다가올 정면의 경로를 향해 검을 내질렀지만, 또 다시 검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라그나 아마게돈이 일부로 달려들던 도중에 스텝을 한 박자 늦게 딛는 변칙적인 수를 둔 탓에, 루크는 그가 다가오기도 전에 또 다시 공격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거 봐."

아마게돈 남작은 허망하게 허공을 찌른 루크의 검을 옆으로 쳐내며 달려들어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루크의 턱을 발 뒷꿈치로 후려갈겼다. 이어지는 섬뜩하리만큼 예리한 검격이 얼얼한 턱을 부여잡으며 황급히 물러나려는 루크의 귀를 잘라냈다.

"...!!!"

"어때, 이제 좀 알겠냐?"

라그나 아마게돈의 어조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순식간에 사람의 귀를 망설임 없이 잘라낸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단순하게 시범을 보였을 뿐이라는 듯한 말에, 루크는 잘려나간 귓가가 화끈거리는 것과 반대로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덤벼봐야 그가 예측한 대로 휘둘릴 뿐이라면...

신성력으로 잘려나간 귀를 회복한 후, 루크는 검을 고쳐 쥐었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라그나 아마게돈의 강함은 상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아무래도 마법사이니 근접 전투에서는 그다지 조예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이전에 콜로세움에서 보여주었던 투박한 전투 방식은 마치 연기였다는 듯 능숙하게 레이피어로 쉴새 없이 압박해오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숙련된 검사의 것이었다. 힘과 속도는 마력으로 어떻게든 강화할 수 있다고 해도, 검을 내지르는 순간 순간의 순발력과 판단력은 검을 휘두른 경험이 아주 많은 사람이나 보일 법한 것이었기에.

루크는 상대가 '마법사'라는 인식을 버리고, 한 명의 '검사'를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검을 겨누었다.

"으음. 확실히 조금 전보다는 나은 눈이네."

채앵! 아무런 사전 동작도 없이, 신성력을 폭발시키듯 해방하여 도약한 후 내지른 찌르기를 가볍게 올려 쳐내며, 라그나 아마게돈은 미소를 지었다.

"시도 자체는 좋았어. 원래 검사들의 싸움은 상대의 손의 움직임, 발을 딛는 스텝 하나 하나를 통해 상대가 할 일을 예측하는 순간 순간의 전투이니 그에 필요한 사전 동작을 숨기기 위해 신성력으로 부족한 힘을 채운다는 발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애초에 나는 약점이 신성력이다보니 그 쪽에 많이 민감하거든. 그러니 그렇게 신성력을 잔뜩 끌어 모으면, 그것도 검이 아닌 두 다리에 모아두면 이런 식으로 빠르게 덤벼들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지. 그리고..."

쐐애애액! 챙, 채챙! 촤아악!

루크는 검이 튕겨나가며 뒤로 밀린 팔을 무리하게 되돌리려는 대신, 오히려 팔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고 아마게돈은 레이피어를 옆으로 세워 그 공격을 받아내고서 그대로 칼날을 따라 루크의 손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었다. 루크는 검을 쥔 손을 비틀어 칼날의 접근을 막아낸 후, 아마게돈 남작의 칼을 튕겨냈다. 그리고 확신했다.

아마게돈 남작의 공격은 예측하기 힘들고 노련하지만, 역시 힘과 속도는 자신이 더 우위라고.

너무 뻔히 보이는 공격은 되려 읽히며 반격을 당하며, 이제 와서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묘수 따위를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그 묘수조차 두 번 이상 먹힐 리가 없고. 그렇다면 차라리...

"무리하게 페인트를 넣기보단, 차라리 예측하기 쉬워도 대응하기 어려운 쪽으로 가겠다는 뜻이군. 나쁘지 않아."

공격의 궤도를 읽는 것이 전투에서 유리한 이점을 얻는 것은, 상대의 공격을 적절하게 피하거나 받아냄으로서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령 읽어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을 한다면, 공격의 궤도를 읽힌다고 한들 상관 없으리라.

루크는 공격의 방식을 바꾸었다. 여전히 빠르고 강하지만, 읽기 쉬운 직관적인 공격. 그러나 신성력의 활용은 다르다. 아무리 강한 위력의 공격이라도 명중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애초에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회복할 수 없으니, 위력이 다소 약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을 이어나가면 그만이다. 루크가 검을 내지르고 아마게돈 남작과 검을 맞부딪힐 때마다, 검에 담겨 있던 신성력이 마치 바람에 따라 꽃가루가 휘날리듯 퍼져나갔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피할 수도 없는 가벼운 공격들이 서서히 쌓이며 아마게돈 남작의 팔 하나가 조금씩 신성력으로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후.... 흐흐, 흐흐흐하하하하!"

순식간에 팔 한 쪽이 신성력으로 검게 그을려 고기가 타는 냄새와 함께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음에도,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결코 가볍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 지 조금의 꾸밈도 없는 미소를 띄우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 이제야 좀 내 말을 이해한 모양이군. 그럼 나도 이제 방식을 바꾸어 볼까?"

그 말과 함께 라그나 아마게돈은 손에 든 레이피어를 다시금 창으로 바꾸어, 그것을 루크를 향해 내던졌다. 예기치 못한 투창 공격에 당황한 루크가 그에게 덤벼들려던 것을 멈추고 신성력의 장막을 펼쳐 창을 튕겨내는 사이 아마게돈 남작은 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번쩍거리는 화려한 마법진들의 연계.

"어디 그 튼튼한 방어막으로 이것도 다 막아낼 수 있을까?"

허공에 수놓아진 크고 작은 마법진들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움직이며, 각종 마법 공격들이 루크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뜨겁게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부터 싸늘하게 얼어붙는 죽음의 한기, 순식간에 살을 썩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액 등의 온갖 무시무시한 마법들이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벽을 두들겼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인 공격들이 쉬지 않고 쏟아지는, 그야말로 지옥도 같은 풍경에 루크는 아마게돈이 방금 전까지 자신을 얼마나 봐주고 있었는지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만일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그는 자신이 여기서 포기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테니. 방어벽을 강타하는 온갖 살인적인 주문들 때문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루크는 입술을 악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 머리의 두 배 만한 크기의 불덩이도, 성인 남성 팔 만한 거대한 고드름 창도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장벽을 뚫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들을 튕겨내는 것만으로도 루크는 무척이나 힘겨웠다.

"허, 이걸 진짜 다 막네. 그 방어막은 대체 한계가 어디까지냐? 뇌신의 번개를 막을 때 부터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는데, 100 종류의 마법이 난사 속에서도 멀쩡할 줄은 몰랐네."

"제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이 장벽은 절대 부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방어하는 동안에는 너도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지."

정곡을 찌르는 말에 루크는 표정이 굳었다. 확실히 그의 신성력 방어막은 설령 불멸의 용이 발로 내리 찍는다고 해도 금이 가지 않을 튼튼함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그것에만 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신성력으로 다른 공격이나 신체 강화 등을 일제히 할 수 없다. 라그나 아마게돈과 근접전을 벌이는 동안에 방어막을 쓰지 않고 공격을 허용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언제까지고 수비만 굳혀서는 이 승부는 절대 끝나지 않아. 미스트리나가 만들어 준 이 마법진은 한 번 발동시켜 두면 자동으로 내 마력을 뽑아 먹으면서 미리 지정한 상대를 향해 무차별 마법 폭격을 가하지. 그 대상이 살아있는 한 내가 깨어 있든, 아니면 곤히 자고 있든 말이야. 그리고 이 마법을 유지할 내 마력에는 한계가 없지만, 무적의 방어막을 유지할 네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지. 그렇게 가만히 마법을 방어만 하고 있다가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희미해진 장막 사이로 수십의 공격 마법들이 널 박살낼 거야."

"그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기만 해도 될 텐데, 굳이 그걸 제게 이야기 해 주는 목적이 뭐죠? 당신은 대체 어째서... 제게 패배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루크는 쏟아지는 마법 폭격들을 견뎌내며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보통 이런 류의 무시무시한 마법 폭격은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대량의 마법을 잡아먹기 마련. 하지만 아마게돈 남작은 마력에 한계가 없기 때문에, 마법진만 있다면 이런 무차별 폭격 마법을 언제 어디서든 발동할 수 있다. 사실상 살아 있는 인간 병기나 다름 없는 그가, 처음부터 이 방법으로 자신을 확실하게 끝내지 않고 일부러 이 쪽의 사정을 봐주는 듯 근접 무기로 상대를 해주거나 일부러 자신의 공격의 파훼법을 알려주는 등의 행동은,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하지만 만일 상대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는 것이 목적이라면, 전부 이해할 수 있다.

언제든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가볍게 빼앗을 수 있었음에도, 나라 하나 정도는 손쉽게 날려버릴 수 있었음에도, 굳이 그러지 않고 주변에서 계속 맴돌며 계속해서 도발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는 이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모두 설명이 되는 일들이었다.

"....하."

마치 그림의 뒷배경처럼,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의 뒤로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십 개의 마법진들이 하나 둘씩 불이 꺼지며 흐릿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게돈 남작이 스스로 마법을 해제했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아마게돈 남작은 이를 뿌득 갈며 살의가 넘치는 눈으로 루크를 노려보았다.

"하여간에, 이상한 데서 쓸데 없이 눈치가 좋단 말이지."

콰득, 콰드득. 이윽고, 아마게돈 남작의 두 팔이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졌다.

거대한 짐승의 앞발과 같으나 그 피부는 두꺼운 털 대신 거친 암석의 표면과 같았고 오래된 고목과 같은 세월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팔의 끝에는 달려 있다는 것보단 돋아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어떤 것이 엄지고 검지인지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여섯 개의 손가락과 그 끝에 달린 잘 갈아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갈고리처럼 휘어진 손톱들이 저물어가는 노을 아래에서 섬뜩하게 빛이 났다.

"정말이지, 사람 귀찮게 만드는 녀석이야."

어느새 뱀처럼 찢어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어버릴 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샛노란 동공을 마주하며, 루크는 마른 침을 삼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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