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2부 프롤로그 새로운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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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나 드러난 어깨 등에 화려한 문신을 새긴 험상 궂은 인상의 깡패들부터 금속으로 된 의수를 찬 싸움꾼들과 위험한 약에 취해 눈이 풀린 중독자들, 몸의 일부가 기이하게 변이 된 이들부터 애초부터 인간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불쾌하게 인간 행세를 하는 것들마저 태연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어두컴컴한 지하 도시. 가장 눈부시고 발전된 도시에서 버려진 쓰레기 무더기에서 어느 샌가부터 도시의 모습을 이루게 된 이 오염된 곳에, 어느 날 도시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가 발을 들였다.
"정말 여기가 맞나?"
육체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어디든 간에 최소 한 가지는 하자가 있는 불량한 것들이나 모이는 이 도시에서 너무나도 평범하고 멀쩡해 보이는 금발 사내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금발 사내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온갖 종류의 시선에, 그에 담긴 탐욕과 경계심, 그리고 적의 등에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이 도시 전체가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에, 사내는 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금발 사내는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익숙치 않은 도시의 거리를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지하 도시에서 보기 힘든 깨끗하고 단정한 옷 차림에, 낯선 얼굴의 이방인은 지하 도시 사람들 속에서 무척 눈에 띄었고, 얼마 안 가 이방인을 향한 더럽고 추악한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시선들이 내리 꽂혔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칼에 맞아도 누군가가 찔린 사람을 돕기는 커녕 쓰러진 사람의 짐을 들고 달아나는 것이 일상인 이 법이 없는 것이 법인 도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의 금품을 노리는 강도들은 한 두 무리가 아니었다.
이윽고 품에 단검을 숨긴 강도 무리 하나가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이방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차 강도들이 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어둡고 조용한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방인이 막다른길로 향하는 길목을 지나는 순간, 발소리를 죽이며 그를 쫓던 강도들은 지금이 바로 적절한 때라고 생각하여 이를 씩 드러내며 웃었다. 이번 이방인은 어떤 녀석인지 아직 모르지만, 이방인들이 가진 것 중에서 값어치가 별로 나가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힘들었으니.
"이봐, 형씨. 혹시 이 도시는 처음이야? 혹시 우리가 좀 도와줄까, 응?"
강도 무리 일곱 중에 다섯이 좁은 길목을 가득 메우며 이방인을 향해 다가갔고, 나머지 둘은 혹시 다른 녀석들이 도중에 방해를 해오지 않을까 망을 보았다. 다만 망을 보는 쪽은 직접 금품을 뜯는 쪽에 비해 위험성이 떨어지는 만큼 주머니에 떨어지는 소득도 적었기에, 남은 두 강도는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툴툴 거리면서 다른 패거리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으윽, 이, 이 자식! 무슨 놈의 힘이...!"
"끄아아아악!"
안 쪽 골목에서 비리비리한 이방인이 아닌, 같은 패거리의 비명이 새어 나오기 전까지는.
"젠장, 뭐야?"
"설마 함정이었나?"
망을 보던 강도 둘은 뒤늦게 무기를 챙기고서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의 패거리는 모두 팔이나 다리 중 어느 한 곳이 부러진 채로 바닥을 뒹굴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그 화려한 금발의 이방인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도대체 어디로 간..."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다른 한 명의 동료에게로 시선을 돌린 강도는 문제의 그 이방인이 자신의 남은 동료 하나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솜씨에, 단검을 든 동료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 자식...!"
아, 이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강도는 무언가를 하려는 듯한 위협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이 자리에서 도망칠 각을 쟀지만, 패거리 중에서도 가장 험상 궂은 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금발의 사내는 거침 없이 다가와 그가 달아나지 못하고 단숨에 멱살을 움켜쥐었다.
"컥...!"
"폭력을 그리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순간에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배웠거든요. 마침 길을 잃었는데 잘 됐군요."
사내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고 있던 지도를 꺼내, 멱살이 잡힌 강도의 눈앞에 들이밀며 물었다.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계십니까? 아니면 지도에 붙어 있는 이 사진 속의 사람을 본 적이라도?"
"그 사진은... 너, 설마 위 쪽에서 '선생님'을 노리고 보낸 녀석이냐?!"
사내는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물었으나, 의외로 강도는 그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알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사내는 동시에, 사내가 내뱉은 단어에 의구심을 가졌다.
"위 쪽? '선생님'을? 자세히 설명해 보시죠."
"시치미 떼지 마라! 이런 제기랄, 처음부터 '선생님'을 노리고 온 녀석인 줄 알았더라면..."
"저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당신이 말하는 그 '위 쪽'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있던 곳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이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줄도 몰랐습니다. 자세히 설명을 좀 해주셔야..."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엄습해오는 섬뜩한 살기에, 금발의 사내는 황급히 붙잡고 있던 사내를 놓아주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사내가 딛고 있던 바닥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충돌하며 단단한 벽돌에 쩌저적 하고 실낱 같은 금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나 무엇이 바닥을 깨부쉈는지, 그리고 누가 공격을 날렸는지 아직 사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멍청한 녀석...!"
사내가 놓아주었던 강도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그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너처럼 '선생님'을 노리고 '위 쪽'에서 보낸 놈들이 한 두 명인 줄 알아? '하운드' 부대가 지하를 다 헤집어 놨던 때 이후, 우리도 너희들에 대한 대비를 해 두었다고!"
"그러니까, 저는 그 '위 쪽'이라는 곳과 전혀 관계가 없다니까요! 오해란 말입니다!"
"시끄러워! 그렇게 변명하던 놈들도, 결국 신상을 뒤져보니 죄다 '하운드' 소속이었지! 사냥개를 죽여라, '스펙터'!!"
'스펙터'. 아마도 그것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존재의 정체. 그리 결론을 내린 금발의 이방인은 이어질 공격을 대비하여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 순간 왼쪽에서 불어오는 이질적인 바람 소리에 사내는 그 방향으로 팔을 뻗었고, 사내의 왼팔에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아아아아아...
"크윽...?!"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사내가 펼친 방패와 사내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 섬뜩한 감각에 온몸이 소름이 돋는 것도 잠시, 뒷편에서 날아오는 섬뜩한 살의에 사내는 급히 몸을 돌리며 방패를 내밀었고, 투명한 충격이 방패에 내리 꽂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 방패와 충돌한 그 때, 찰나의 순간이나 공격자의 모습이 일순간 드러났다. 녹슨 금속으로 이루어진 금속 의수가 얼핏 보였다가, 이윽고 다시 어둠 속에 스며들어 형체가 사라졌다.
"젠장..."
비록 상대가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 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보이지 않는 존재가 움직일 때 나는 특유의 이질적인 바람 소리가 단숨에 여럿으로 늘었다. 그럼 그렇지, 일이 그렇게 쉽기 풀릴 리가 없다. 그 남자도 언제나 '원래 인생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이 더 재밌는 것이 아니겠냐'고 항상 말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어디가 재미있다는 건지 전혀 공감 되지 않았지만.
"이봐요, 보이지 않는 습격자 분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 '위 쪽'이니 '하운드'니 뭐니 하는 것들과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그저 이 사진 속의 남자, 당신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용무가 있을 뿐입니다."
"쉬익. 정말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면, 당장 무장을 버리고 투항하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가스 마스크 너머로 들려오는 뭉개져 상대를 특정하기 어려운 목소리에, 금발의 사내는 왼팔의 금빛 방패를 없애버린 후 품에서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항복의 의미로서,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윽고 투명한 손이 그가 떨군 단검을 회수했고,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든 무기가 사내의 등에 맞닿았다.
"쉬익. 대장, 어떻게 처리할까요?"
"쉬익. 일단은, '선생님'께 직접 보고한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이방인 사내는 도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되었는가 한탄했다. 그저 그 사람을 만나서 개인적인 용건 하나를 처리하는 게 전부였는데, 설마 시작부터 이렇게 꼬일 줄이야.
"쉬익. 네, 선생님. '스펙터' 검지입니다. 방금 막 포획한 이방인이 선생님께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며 면회를 요청하였습니다. 네, 네. 외형은 금발에 나이는 20대로 추정...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문제의 그 '선생님'께 보고를 하는 듯하던, '스펙터'라는 무리의 대장으로 추측되는 이는 잠시 후 금발의 이방인을 향해 물었다.
"이방인, 당신 이름이 뭐지?"
"....아마 '루크'라고 하면 누군지 알 겁니다."
"그래, 알겠다. 네, 선생님. 스스로 이름을 '루크'라고... 네? ...예? 아, 네. 그, 알겠습니다."
그리고 루크는, 어째선지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스펙터의 대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음, '그 씨발 새끼 그냥 쳐 죽여버려'....라고 하더군."
"......"
"왠만한 사람이 아니면 선생님이 욕은 커녕 험한 말도 하지 않는데, 그런 선생님이 이렇게 격노할 정도라니... 루크라고 했던가?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철컥, 철컥, 철커덕. 자신을 둘러싼 사방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묵직하고 위협적인 여러 금속 소리에 루크는 입술을 악물며 생각했다.
이건 망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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