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17화 (117/229)

〈 117화 〉 존나 병신 같은 생각이네 ㅋㅋㅋ 당장 하자(1)

* * *

지금까지의 이야기.

나는 빛의 여신 루미너스의 부름을 받아 그녀의 신격 승급 시험, 이하 '연극'을 돕기 위해 '라그나 아마게돈 남작'이라는 배역으로 그녀의 세계에 전생하였다. 하지만 여러 신들의 방해 공작과 예상을 한참 벗어난 용사의 돌발 행동 등으로 연극은 순탄치 못 했고, 결국 루미너스의 시험은 실격으로 처리되었다.그로 인해 연극을 돕는 대가로서 성공하면 받기로 약속했던 소원권 또한 물 건너 가버렸으나... 나에게 흥미를 갖게 된 고대의 외신, 이하 '니아' 씨의 제안에 응하여 나는 새로운 무대로 떠나기 위해 루미너스의 세계에서 있던 일을 마무리 짓고자 용사 루크와 마지막 전투를 치뤘다.

최후의 순간, 드디어 용사의 마지막 필살기에 내가 패배함으로서 모든 것을 무사히 마무리 짓...는 가싶었으나, 이 빌어쳐먹을 용사가 갑자기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어디다가 놓은 건지 필살기 위력이 조금 약해진 바람에, 결국 내가 사망하고 용사가 승리했어야 할 전투는 놀랍게도 공멸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그나마 나와 루크가 사라진 세계는 초대 용사 셀레나, 그리고 내게서 미리 언질을 받은 부하들이 뒷처리를 잘 해준 덕에 큰 문제가 없...

...기는 개뿔. 이 개 씨발 새끼. 밥을 떠 먹여줘도 자꾸 뱉어버려서 링거를 꽂아 줬더니 팔에 꽂은 바늘 뽑았다가 출혈로 뒤질 새끼 같으니.한 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이나 일을 망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서 이미 죽은 루크의 영혼을 다시 죽여버릴려고 했으나 루미너스와 니아 씨가 뜯어 말린 덕에 간신히 참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끝난 루크는 루미너스가 알아서 대처하겠다며 데려갔고, 나는 루미너스와 나누었던 모든 약속을 결국 다 청산하고서 이제 니아 씨의 제안에 응할 일만 남았다.

"자, 그럼... 제가 뭘 해야 하는 지 알 수 있을까요?"

빨리 일을 끝내고 소원권을 받아서, 루미너스의 세계에서 만든 부하들을 데리고서 어디 조용한 세계에 가서 평화롭게 살리라. 그렇게 다짐한 내게, 니아 씨는 특별히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꺼내보이며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에 자네가 향하게 될 새로운 무대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설명들부터 하고 넘어가야겠군. 우선... 라돈 군, 자네는 초월자들이 왜 세상을 부수고 만드는 것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나?"

"예? 어...."

신이 세상을 창세하는 이유? 어, 전에 루미너스 님에게서 들은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건 목적이고, 내가 물어본 것은 이유일세. 도대체 초월자들은 '왜' 끊임없이 창세를 반복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걸까?"

"어..... 전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그들을 만든 '창조주'의 바램이거든."

"창조주의 바램?"

"이 부분은 이 이상 파고 들어봤자 자네가 이해하기도 힘들 테니, 대충 넘어가지. 어쨌든 그래서 신들은 세상을 부수고 만들기를 반복하네. 더 나은 세상, 창조주의 바램에 맞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제부터 자네가 가게 될 세상, 아티피셜 유토피아(Artipicial Utopia), 줄여서 '아티피아'도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계획 중 하나에 속하지. 다만, 이 세상의 경우에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특이해."

위이이잉. 니아 씨가 어디선가 꺼낸 리모콘을 꾸욱 누르자, 벽면에 생겨난 커다란 TV의 화면이 켜졌다.

"초월자들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최소 하나 이상의 세상을 가지고 있네. 그리고 한 초월자가 창세를 하지 않아 자신만의 세상이 없거나 혹은 다수의 세상을 가진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인 '초월자가 없는 세상'이나 혹은 '다수의 초월자가 주인으로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다네. '아티피아'를 제외하면 말이지."

니아 씨가 언급한 여러 케이스들에 대한 설명이 TV 화면에 간단하게 데포르메 되어 나왔고, 마지막인 '아티피아' 부분에선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듯 빨간 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

"그 아티피아라는 곳이 굉장히 특이 케이스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아티피아는 본래 여러 신들이 창세를 반복하는 와중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버려진 세상들을 다른 신들이 그들의 허가 하에 회수한 후 그들의 힘으로 재구축하여 만든 세상일세. 앞으로의 이해를 편하기 하기 위해 여기서 아티피아의 재료로 사용된 세상의 주인을 A 그룹으로 칭하고, 그 버려진 세상으로 아티피아를 만든 자들을 B 그룹이라고 부르겠네."

그리고 화면에는 얼굴에 A가 박힌 사람들과 B가 박힌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A 그룹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버린 신들이고 B 그룹은 버려진 세상을 주워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 신들이라는 건가.

"B 그룹이 만든 아티피아는, 놀랍게도 일반적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에 비해 놀라우리만큼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지. 이전에도 다수의 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아티피아 만큼이나 완성도가 높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지.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던 A 그룹은, 자신들이 버린 세상으로 만들어 졌으나나 자신들이 만드는 것보다 훨씬 멋진 세상을 탐내기 시작했지."

"어...."

이거, 뭔가 더러운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상황은 자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추잡하게 흘러갔지. A 그룹은 아티피아의 재료로서 사용된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아티피아를 빼앗으려고 들었고, 이에 B 그룹 또한 자신들이 힘들게 만든 세상을 향해 야욕을 드러내는 A 그룹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지. 그리고 이 인공 낙원을 하나 두고, 신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더럽고 지저분한 싸움이 이어졌다네. 서로 파벌을 나누고, 적대 파벌이 가진 세상에 공격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지.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대부분의 초월자들이 루미너스의 연극을 방해했던 그 '라이키린'이라는 녀석이 벌였던 것보다 더한 일을 당당하게 벌이고 다녔어. 정말 개판이 따로 없었지."

...이딴 게, 신들의 세상? 이런 젠장, 이런 정신 나갈 것 같은 이야기는 전혀 알고 싶지 않았는데. 셀레나가 들었으면 어이가 없어서 자기 무덤에 다시 들어가서 도로 눕겠군.

"나야 뭐, 담당하는 분야가 분야이다 보니 초월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개판을 그냥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즐겼지. 하지만 일부 고위 신들은 신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 혼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A 그룹과 B 그룹의 싸움을 강제로 멈추고 신들 간의 직접적인 전투를 금지하며 아티피아의 소유권에 대한 판결을 내렸어."

"어떻게 되었는데요?"

"소유권은 A 그룹과 B 그룹, 양 쪽이 각각 반 씩 나눠갖게 되었어."

"....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아니, 애초에 아티피아의 재료로 쓰인 세상은 A 그룹이 버렸던 세상이라며? 그걸 B 그룹이 주워서 만든 게 아티피아이고. 근데 그게 왜 반반이 되는데?

"도대체 어떤 신이 판결을 내렸길래 결과가 그 따위로 나온 겁니까?"

"판결을 내린 건 균형의 여신이었지."

그 말에 나는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균형의 여신이? 도대체 왜?"

"자네는 인간이라서 오해할 수도 있겠군. 원래 인간들이 생각하는 평등과 신들이 생각하는 평등이 같으리란 법은 없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번 대의 균형의 여신이 추구하는 평등은... '결과적인 평등'이었거든."

"이런 씨발."

"그래, 아주 씨발적이지. 자기가 무슨 솔로몬인줄 아는 그 균형충 년이 내린 판결 때문에, 아티파는 아직까지도 두 그룹이 소유권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 자, 보게나."

삑 삑. 니아 씨가 버튼을 몇 개 누르자, 화면이 바뀌며 초승달 같은 형태를 한 땅이 비추어졌다.

"이게 바로 문제의 그 아티피아지. 현존하는 세상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그 탓에 여러 신들이 소유권을 두고 다투는 노른자 세계. 그리고 A 그룹과 B 그룹은 어떻게든 이 아티피아를 확보하려다가 결국 선을 넘어버렸지. 신들끼리 직접 싸우는 일이 금지되니, 대신 자기 피조물들을 데려와서 싸움을 붙이기 시작한 거야. 자신이 만든 세상의 피조물 중에서 완성도가 높은 것들을 선정, 그리고 그것들을 차원을 넘어 아티피아로 보내어 적대 세력과 맞붙게 한 거지."

".....그래도 되는 겁니까?"

"원래 세상이라는게 차원의 벽 어쩌구 내구성 저쩌구의 문제로 그렇게 함부로 차원 이동을 하면 안 되긴 하는데... 앞에서 말했잖아? 아티피아는 현존하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세상이라고. 그래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도, 그 튼튼한 장벽에 흠집도 안 가더라. 이 점이 밝혀지면서, 이제 아티피아는 사실상 신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어. 신들 사이에서 직접적인 전투가 금지 되어버린 지금, 각자가 만든 세상의 피조물을 데려와 어느 쪽이 가장 우월한지 겨루는 일종의 콜로세움이 되어버린 셈이지."

이 시점에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와, 진짜 어질어질하네.

"그리고 최근에... 아, 최근이라고 해봤자 우리 기준이니. 인간의 기준으로는 대략 천 년 정도 쯤 전일 거야. 그 시점에서 아티피아에서 한 세력이 최고 권력을 손에 넣고 그것을 단단하게 굳히면서, 나름대로의 균형이 찾아왔지. 자, 여기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야. 네가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물었지?"

"어, 예...."

뭔가, 뭔가 존나 불안한데.

"아주 간단해. 아티피아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야."

"혼란스럽게 만들라고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과 싸워서 그들을 무너트리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일을 터트리든 상관 없어. 어떤 방식으로든, 아티피아에 혼란을 가져온다.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실패해도 패널티는 없고, 성공하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 네가 바라는 소원 하나를 무엇이든 간에 들어주는 거지. 어때?"

...이건 진짜... 미쳤군.

존나 병신 같은 생각이야.

"당장 하죠."

*

균형, 질서, 평화....

아, 그래. 아주 좋은 단어지. 조금 지루하지만, 나를 제외하면 그걸 싫어하는 녀석은 아마 없을 거야.

지금의 아티피아는... 질서와 균형이 올바르고 아주 평화로울 지는 몰라도,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지.

그런데 그거 알아? 물과 피는 계속 흘러야만 해.흐르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결국 썩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그건 다른 것도 마찬가지야. 무조건 다툼이 없고 평화롭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란 거지. 세상에는 언제나 변화가 필요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 변화란 것은 필수적이야.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한 순간의 모습이 계속되는 것은, 물이 흐르지 않고 한 곳에 고이는 것과 다를 게 없어. 설령 그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변화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지금의 아티피아는 그렇지 않아. 권력을 잡은 세력이 원하는 것은 그 권력이 계속 유지되는 것.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통치가 계속되는 것.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티피아의 유일한 장점인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세상'이라는 장점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짓이야. 멈추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발전하지 않으면, 결국 제자리걸음일 뿐이지. 어쩌면 아직까지도 창조주의 바램인 '가장 완벽한 세계'가 나오지 않은 것은, 변하려고 하지 않고 영원함을 유지함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그런 태도 때문일 지도 몰라.

영원함이 완벽? 웃기는 소리.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영원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을 의미해.

그렇다면 이 아티피아가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많은 신들이 싸움을 벌여가면서까지 손에 넣고자 했던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이 세상이 그들의 손에 망쳐지기 전에 누군가는 지금의 아티피아를 바꿀 필요가 있지.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어. 기껏 손에 넣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싶거나, 아니면 권력을 손에 넣은 이들이 두려워 몸을 아끼거나, 아니면 아예 관심 자체가 없거나.

그러니까 내가 나서는 거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체계, 그리고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혼란을 초래하지. 그러니까 그 혼란을 담당하는 내가, 창조주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이 어리석은 초월자들을 위해 아티피아가 망가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지. 내가 하는 짓이 반드시 옳은 짓이라는 보장은 없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반드시 나쁜 짓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그러니 인간, 네가 나의 뜻을 대행하는 사도로서 아티피아를 혼돈에 물들이는 거다.

아티피아가 진정으로 완벽하고 완성된 세계라면, 너라는 시련을 무사히 이겨내고 더 나은 경지로 갈 수 있겠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우월하고 뛰어나다고 믿고 있는 저 멍청한 놈들에 의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너라는 재앙 하나 제대로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저 그것 뿐이야. 그렇게 약하다면, 어차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는 멸망할 운명이었다는 뜻이니까.

이 일에 실패해 봤자 네게 돌아오는 손해는 없고, 성공하면 무엇이든 한 가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신들의 경우 성공하면 더 나은 세상을 얻게 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목표가 생기는 셈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희 중 어느 쪽이 이기고 지든 간에, 그 과정은 내가 충분한 유희란 말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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