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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21화 (121/229)

〈 121화 〉 존나 병신 같은 생각이네 ㅋㅋㅋ 당장 하자(5)

* * *

서큐버스 모노의 깜짝 방문 이후,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혹시나 모노가 다시금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경계한 것인지, 내가 갇힌 최하층을 지키는 간수 두 명 모두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이후 찾아오는 간수들은 죄다 남자였던 터라, 욕망을 증폭시킨다고 해봤자 몸을 섞을 상대가 없으니 약점을 잡기 어려웠다. 아무리 성욕이 쌓여 있어도, 앞에 헐 벗은 차림새의 발정난 여자가 자신을 따먹어달라고 먼저 유혹하지 않는 이상 남이 보는 앞에서 자기 물건을 꺼내서 자기 위로를 할 인간은 없을 테니까.

젠장... 이 감옥에서 도저히 나갈 방법이 없다. 내 능력은 적용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럴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않으니 힘을 쓸 수가 없다. 이대로 무력하게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나... 싶었던 그 때.

왜애애애애애앵!

"예? 예, 알겠습니다!"

"아이 씨,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젠장, 중하층 A동에서 중요 수감수 하나가 탈옥했다는 모양이야."

"뭐? 대체 어쩌다가? 관리 인원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건데?"

"나도 몰라! 어쨌든... 우리가 지원을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대기하면서 최하층의 수감수를 지키라는 지시가 떨어졌어."

"아, 잠깐... 안 돼! 오늘 카렌이 중하층에서 근무한다고 했다고!"

"진정해. 카렌이 근무하는 곳은 B동이고, 탈옥이 일어난 곳은 A동이잖아."

"그리고 중층이나 하층으로 향하는 통로는 B동에 있잖아!"

보아하니, 나를 감시하는 간수 중 한 명의 사내 연애 상대가 하필 그 문제가 터졌다는 중하층에서 근무하는 모양이다. 간수는 당장이라도 애인이 있는 곳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기색이 가득했으나, 다른 한 명의 간수가 네가 일을 때려 치고 달려가 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비록 요즘 감이 무뎌진 느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하늘이 내려준 기회마저 버릴 정도로 둔해지지는 않았으니.

"안에서 이야기를 대충 듣자 하니, 위쪽에서 제법 큰 소란이 일어난 모양이네?"

"....."

"거기에 하필 소중한 연인이 그 난리 통에 있으니, 걱정이 되어서 속이 검게 타 들어 갈 테지. 정 뭣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헛소리. 우리가 그딴 말에 넘어가서 널 풀어줄 정도로 멍청해 보이나?"

동료를 진정시키고 있던 간수가 나를 향해 싸늘하고 적대적인 태도로 일갈했으나, 나는 별 상관 없다는 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딱히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부탁한 적 없는데? 여긴 조금 지루한 것 빼고는 나름 지낼 만 해서 크게 불만은 없거든. 내가 바라는 건... 그래. 그냥 대화야. 이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여기 갇혀서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나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저 몇 가지 이야기를 좀 해주면 돼. 그것만 약속해 준다면, 네가 사랑하는 연인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지."

"어디서 사악한 악마들이나 할 법한 소릴..."

"대가를 요구하더라도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이라도 내밀어 주는 악마 쪽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신앙을 요구하는 게으른 천사보다는 낫지 않나?"

"신성 모독 적인 이야기는 그 정도 하시지. 아무리 달콤한 말로 꼬드긴다 하여도, 네가 바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 동안 수감된 상태에서 딱히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리 신뢰도가 바닥일까? 애초에 여기 갇힌 경위도,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정의의 여신인가 뭐시깽이가 이상한 예언과 함께 경고한 탓에 재판도 없이 갇힌 건데, 이건 너무한 처사가 아닐까?

간수는 꽤 고민하는 듯 싶었으나, 아직은 내 말에 넘어오기에 조금 부족했다. 절실함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다시 통신이 걸려왔다. 그리고 고민하던 간수는, 통신을 전해 들은 후 흔들리던 마음을 굳혔다.

"....어떻게 하면 되지?"

"에드! 너 설마 정말로 이딴 녀석의 말을 믿을 셈이야?"

"그럼 어떻게 하라고! 지금 중하층 A동에서 탈출한 그 위험한 살인귀가 카렌이 근무하는 B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라면, 나는 뭐든 할 거야! 그게 설령 악마와 거래를 하는 거라고 해도!"

"야, 이 미친 놈아...!"

"이봐, 수감수! 당장 말해줘!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지?"

아, 이 격렬한 감정.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 강렬한 의지. 내가 찾던 그 감정이다. 그래, 이 정도의 욕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평소에 간수들이 식사를 넣어주던 통로를 열어 보이며 말했다.

"이 안으로 손을 넣어서, 내 손을 잡아라. 그러면 네가 바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힘을 빌려 주지. 단, 이것 하나 만은 반드시 명심해라. 나는 너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주는' 것 뿐이다. 당초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바로 내게 돌아와서 다시 힘을 반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좋아, 알겠다."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은 위대하다. 한 남자가, 이토록 위험한 제안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게 만들다니. 나는 문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온 남자의 손을 맞잡고, 내 힘을 사용했다.

스킬 : [욕망의 실현]

그 순간, 남자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크읏...!"

오랜 단련으로 근육이 잡힌 팔 위로, 흉악한 살인귀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차갑고 단단한 갑옷이 덧씌워져 간다. 검은 빛을 띄는 금속 장갑이 몸 전체를 뒤덮고, 이내 간수의 모습은 검은 갑옷의 기사로 변했다. 새로운 힘을 얻은 이는, 오른손에는 두꺼운 칠흑빛 방패를 들고서 철그럭 철그럭거리는 묵직한 금속음을 울리며 지켜야 할 이가 있는 곳을 향해 곧장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다른 한 명의 간수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저 손을 잡았을 뿐인데, 갑자기 어디서 저런 무구가...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별로 특별히 한 것 없어. 그저..."

나는 남겨진 간수의 눈에서 힘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발견하고선,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그 자신이 가진 힘을 일깨워 주었을 뿐이지."

*

"현재 탈옥한 살인귀 제인이 B동으로 향하고 있다! A동의 제압 팀은 서둘러 추격하여 붙잡고 B동의 인원들은 침착하게 보호 구역으로 몸을 피하라!"

"젠장,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켜!"

살인귀 제인.

게이트를 통해 아티피아에 넘어온 것과 동시에 자신이 도착한 작은 도시의 인구를 절반 가까이로 줄여버린 위험한 살인귀. 이미 여러 차례의 탈옥 시도 혐의가 있는 탓에 중하층에 머물고 있음에도 하층의 수감수 수준으로 감시가 심했던 수감수였으나... 최근 들어온 최하층 수감수의 감시 인원을 늘리기 위한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의 무리한 업무 공정 표 탓인지 그를 감시하던 간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 결과 1시간 만에 수 백을 죽여버린 학살자가 또 다시 탈옥하는 참사를 야기했다.

"저기 제인이 있다! 달아나기 전에 어서 붙잡아!"

"쳇, 벌써 뒤쫓아왔나."

'새장'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장 탈출이 어려운 감옥이지만, '새장' 내에서 자신의 방에서 탈출하는 것 자체는 아예 불가능한 편은 아니다. 실제로 살인귀 제인의 경우 이번에 세 번째 탈출이었고, 이전에도 제압 팀에게 몇 번 붙잡힌 경험이 있기에 감히 그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저들은 수많은 죄수들과 매일 같이 드잡이질을 하며 단련된 싸움꾼들이었고, 힘 없는 일반인을 학살하는 것이 전부였던 제인으로서는 상대하기 벅찬 자들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인이 그들에게 무력하게 붙잡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한 청소부가 제압 팀에게 쫓기는 제인의 모습을 보고선 겁에 질려 자신의 청소 도구들을 전부 내던지고서 보호 구역으로 달아났고, 제인은 청소부가 버리고 간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기가 없는 사람을 상대라면 몰라도 강화 에너지 슈트로 무장한 제압 팀을 상대로는 무기로서 쓰기엔 너무나 초라한 대걸래와 각종 청소 도구들이, 제인의 손을 거치며 위험한 물건으로 변모한다.

스킬 : [기폭화].

제인을 아티피아로 보낸 신은 전쟁의 신. 그리고 제인이 그에게서 받은 권능은 기폭화. 그 어떤 작고 약한 물체라고 해도, 그의 손에 들리면 어엿한 하나의 무기가 된다. 비좁은 복도에서 대걸레나 왁스, 고무 장갑 같은 청소 용품들이 허공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폭발하자 천장과 벽면이 교도소장의 억장마냥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제압 팀은 잠시나마 발목이 붙잡힐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제인은 목적지인 B동으로 향하는 통로에 도달했다. 중하층의 A동과 달리, B동에 수감된 이들은 죄질이 강하지만 자체적인 무력이 그리 높지 않은 이들이 수감되어 있었기에 그들을 관리하는 이들도 그리 높은 전투력을 요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곳에 근무하는 관리직들은 민간인보다 아주 조금 강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제인의 기준에서, 그 차이는 별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제인은 새장에서 완전히 탈옥할 생각이 없었다. 앞서 세 차례의 도전 끝에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단을 내렸고, 그는 새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모범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었다. 손에 닿은 물체를 폭탄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자는 그저, 자신을 열받게 하는 이 빌어먹을 교도소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서 누군가에게 공감 받기 어려울 자신의 뒤틀린 악의에 대한 표출과 더불어 자신을 구속하는 이들을 향한 소소한 복수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침내 목적지였던 B동으로 향하는 통로에 도착한 그는 다시금 권능을 사용했다. 스킬 : [기폭화]는 손에 닿은 물체를 일시적으로 폭탄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간수들이 지니고 다니는 카드키가 아니라면 열리지 않는 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카드키 따위 챙겨다니지 않는 제인은 문에 손을 갖다 댐으로서 굳게 닫힌 문에 폭발하는 성질을 부여했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난 후에 그것을 터트렸다.

새장의 문들은 아주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서 어지간한 폭발에도 견디지만, 제인은 문에 폭탄을 날린 것이 아니라 문 자체를 폭탄으로 만든 것. 외부의 충격에는 강한 물체라도, 내부에서부터 진행되는 폭발은 막을 수 없었다. 산산조각난 문 파편을 밟으며, 제인은 마침내 목적지였던 B동에 도달했다. 이번에 탈출한 그의 목표는 하나. B동에 있는, 중층과 하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박살내어 중하층을 일시적으로 고립시키는 것.

B동으로 들어선 제인의 눈에, 한 여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신의 몸을 먼저 챙겨도 모자랄 상황에 자신보다 나약한 이들을 돕고 있는 깨끗한 품성을 지닌 성실한 여성. 그 여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제인은 떠올렸다.

저 여자, 인질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폭발로 벽과 천장을 무너트려 추격해오는 제압 팀을 잠시 뿌리쳤으나, 그것은 아주 일시적이다. 아마 그들은 곧 무너진 건물 잔해를 뚫고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달아나느라 이미 상당한 체력을 소모한 제인은 다시금 전력으로 쫓아오는 그들을 피해 통로까지 향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적당히 사람 하나의 목숨을 인질로 삼는다면, 인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벌며 통로에 도달하기만 하면 게임 끝. 그의 승리다.

계획을 세웠으면, 이제 실행으로 옮길 시간. 제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동시에 가장 무방비하고 연약한 그 여자를 인질로 삼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인을 알아본 붉은 머리의 여인은 도망치려고 했으나, 그녀의 발보다 그의 손이 빨랐다. 그리고...

퍼­억!

"큭...!?"

그의 손보다, '기사'의 절실함이 더 강했다.

인질로 삼으려던 여인의 앞에 난데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한 눈에 봐도 제법 무게가 많이 나갈 것 같은 두꺼운 방패를 한 손으로 들고 앞으로 내민 채, 마치 그라는 적으로부터 여인을 지키려는 듯한 그 모양새는 영락 없는 기사의 것이었다. 허나 제인이 기억하기로 간수들 중에서 저런 녀석은 없었고, 이 층에 있는 죄수들 중에서는 닮은 녀석도 없었다. 그렇기에, 제인은 자신의 계획을 망친 방해꾼을 향해 이를 으드득 갈며 물었다.

"넌 또 뭐야? 어디서 굴러 먹다 온 놈이냐?"

"....."

기사는 답이 없었다. 제인은 그 사실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봤자 터트리면 그만이니.

제인은 흑기사의 방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능력을 아는 이라면 그의 손이 닿는 것을 피하려 할 테지만, 기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인의 손은 기사의 방패에 문제 없이 접촉했고, 제인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잘 가라, 얼간이."

스킬 : [기폭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도구인 방패가, 오히려 폭탄이 되어 자신을 덮치는 꼴이라니. 참 우습다고 생각하며, 제인은 폭탄의 스위치를 꾸욱 눌렀다. 그러나... 그가 기대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큿...?!"

제인이 생각했던 미래는, 기사의 방패가 터져나가며 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그 뒤에 있던 겁에 질린 여인을 인질로 삼아 통로까지 향하는 것. 그러나 기사의 방패는 폭발하지 않았다. 불발인가? 난생 처음 겪는 일에 제인은 다시금 그의 방패를 폭탄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돌아온 것은 방패에 의한 강렬한 후두부 가격이었다. 두꺼운 방패는 그 자체로 훌륭한 둔기였고, 그에 얻어 맞은 제인은 저릿한 고통과 함께 시야가 흔들려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이런, 씨바아아아알...!"

제인은 바닥을 손으로 연신 짚다, 이내 조금 전 B동으로 향하는 통로의 문을 터트리며 생겨난 건물 파편들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에게서 받은 힘을 사용하여 그 파편들을 폭탄으로 만들었다. 저 방패를 직접 폭탄으로 만드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밑천이 다 드러난 것도 아니었으니. 제인은 자신의 머리를 후려친 후 그대로 공격을 이어나갔으면 충분히 끝장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나 넘치는, 혹은 등 뒤에 있는 여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듯한 기사의 태도에 열불이 났다.

그리고 제인은 그런 자신의 불만을, 폭탄이 된 파편을 마구 던져대는 것으로 승화해냈다.

"뒈져버려어어!!"

"꺄아아아아아아악!"

펑, 펑, 퍼버벙! 연이은 폭발이 기사를 덮쳤고, 기사에게 보호 받던 여인의 비명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펴졌다. 그리고 제인은 승리를 자신했다. 도대체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능력이 먹히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 공격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던 것으로 보아 움직임이 그렇게 잽싼 편은 아닐 터고, 아마 뛰어난 방어력으로 적의 공격을 견디는 타입일 테지. 하지만 제인은 폭탄이 된 파편을 던지기 전에 그것을 일부러 더 잘게 부수어, 가루를 흩날렸다. 그리고 그 작은 가루 알갱이 하나, 하나가 전부 동등한 위력을 가진 폭탄이다. 그리고 그 방패 하나로 저 모든 폭발을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기사는 공격을 피할 수도 없다. 자신이 몸을 피한다면, 지키려던 인질이 위험에 처하니.

맞을 수 밖에 없으며, 견딜 수 없는 공격. 그것이 제인이 승리를 자신한 이유였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반만 맞았고 반은 틀렸다.

피어오른 먼지 구름 아래로 드러난, 상처 하나 없이 안전하게 보호 받은 붉은 머리의 여인과 폭발의 그을림 속에서도 멀쩡히 서 있는 검은 기사.

"그걸... 견뎠다고?"

맞을 수 밖에 없는 공격은 정답이나, 견딜 수 없는 공격은 오답이었다.

명예를 중시하는 순백의 기사들이 자신이 속한 나라와 자신의 왕 등에게 충성을 바칠 때, 오로지 단 한 명에게만 자신의 충성을 바친 이가 존재하니, 설령 한 나라를 적으로 돌리게 될 지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한 명을 지키고자 모든 것을 바친, 그는 흑기사.

나라를 위한 기사가 아닌,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기사.

소중한 단 한 명을 지키기 위해 그 외에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릴 각오가 된 이가 고작 도시 하나를 날린 폭발 정도에 무릎을 꿇을 리가 없으니.

"미친...!"

혼란에 빠진 제인은 달아나기 위해 마구잡이로 폭탄을 던졌고 그 중 하나가 기사의 머리 위를 지나 붉은 머리의 여인의 근처에 떨어지며 폭발했으나 여인에게는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여인을 상처 입히는 모든 것은, 그의 기사가 대신 받아냈으니. 연이은 폭발의 쇄도에도 불구하고, 붉은 머리의 여인, 카렌에게는 그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젠...장...!"

검은 갑옷의 기사는 뚫을 수 없는 벽. 그 앞에 가로 막힌 폭탄마는, 이내 뒤쫓아온 제압 팀에게 무력하게 구속 당하며 정체도 모를 적과 조우한 자신의 불운을 저주할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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