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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25화 (125/229)

〈 125화 〉 당연히 말이 되죠~(4)

* * *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수작으로,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새장'에 수감되었다. 재판조차 거치지 않고 최하층에 수감된 바람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교도소에서 나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일의 배후에 이 세상을 지탱하는 신들 중 한 명이 있는 이상, 나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을까?

간단하다. 유스티아 외에 다른 신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나라는 존재를 경계하는 신은 유스티아 뿐. 그녀는 이 아티피아의 주요 신 중 한 명이지만 이 세상의 유일신은 아니었기에, 그녀와 급이 동등한 다른 다수의 신들이 나를 가두는 것보다 꺼내는 것이 유용하다고 판단을 내린다면 아무리 유스티아라도 내가 이곳에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처박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 라도 나는 나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 수단이, 바로 내가 각성 시킨 능력자들.

그들의 힘은 마법도, 신의 권능도 아니다. 그저 나의 힘에 의해, 어지간히 단련한 전사들조차 도달하기 힘든 경지를 넘어야만 다룰 수 있는 힘... 마음의 힘, '심의'인 것이다. 마법이나 신의 권능 없이 순수한 육체 전투력만으로는 오를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한 시점에서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는 사람도, 신에게 선택 받지 못한 사람도 얻을 수 있는, 그러나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 여기지던 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힘을 원하는 이들로서는 절대로 놓칠 수 없으리라.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내가 능력을 각성시켜 주는 대가로서 내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아티피아의 많은 도시들 중 가장 발전된 일곱 도시의 대표 중 한 명과 연줄이 있어서, 그에게 나의 능력을 선보일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네 명의 간수들을 학생으로서 가르친 것은 그걸 위한 발판이었다.

내가 직접 지도하여 각성시킨 네 명의 각성자들의 유용함을 증명해 보임으로서, 내가 단지 새장의 최하층에 썩혀두기에는 아까운 존재라는 것을 알린다. 나는 그것을 위해 그들에게 고문에 가까운 고된 교육을 아끼지 않았고, 아마 메타버스 시티에서 다시 한 번 측정을 한다면 전투력 랭크가 한 단계는 상승했을 정도의 성장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단 2주일만에 이 정도라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나의 능력을 선보이기로 약속한 오늘,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손목에 마력과 신성력을 차단하는 수갑을 착용하고 눈과 귀를 가린 채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귀마개와 안대가 제거되었을 때, 나는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드넓은 투기장의 관객석에서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개하지요. 이쪽이 최근에 새장 최하층에 수감된 수감수, 그리고 저 네 명의 능력자들을 각성시킨 선생 '라그나 아마게돈'입니다."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의 반대편 옆자리에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절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사람이 있었다.

"소개하겠네, 라그나 아마게돈. 이 분은 마법의 나라 마기스토스의 수장이신 엘레이스타 님이시네."

일곱 대도시의 지도자.

무협의 땅, 무림의 주인 천마(??)

강철과 기술의 도시, 메타버스 시티의 관리자 아카위키

황금의 왕국, 엘드랜드의 지배자 빌가메스

마법의 나라, 마기스토스의 수장 엘레이스타

신비의 열도, 마보로시마의 장로 네무

지저 도시, 샴발론의 왕 샨타르크

...그리고 모험과 자유의 도시, 데스페라도의 길드 마스터 정 시우.

"라그나, 아마게돈이라. 재앙과 종말을 의미하는 아마게돈에, 마찬가지로 종말을 뜻하는 라그나로크에서 따온 라그나인가. 초면에 조금 무례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무척 불길한 이름이 아닐 수 없군. 하긴, 그러니까 정의의 여신께서 우려하신 것이겠지."

본인의 언행이 무례하다는 걸 알면 그냥 말을 하지 말던가. 남의 이름을 불길하다고 말하며 혀를 차는 것도 충분히 기분이 나쁜데, 지금 내 앞에서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뭔가 잘못을 저지를 것 같다고 감옥에 영원히 가둬 두라는 지시를 한 여신을 옹호하다니.

진심으로 한 대 후려치고 싶다. 하지만 차마 아티피아에서 가장 강한 일곱 사람 중 한 명의 앞에서 이런 말을 그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 보이며 얼버무렸다.

"브레이크윙에게서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마법도, 신의 권능도 아닌 신비한 힘을 다룬 다지? 마법사란 신비의 탐구자, 미지의 존재가 있다면 반드시 밝혀내는 것이 마법사의 종특이지. 네가 자랑하는 그 신비를 분석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특별히 시간을 내어 방문했으니, 부디 나를 만족 시켜 주길 바라지."

엘레이스타는 조소를 지으며 오른손에 쥔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내 학생 네 명이 서 있는 투기장 중앙에 서로 다른 색의 마법진 세 개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테스트는 간단하다. 저 세 개의 마법진에 한 번에 하나씩 적들이 나올 텐데, 저 네 명이서 나오는 적을 모두 쓰러트리면 합격으로 쳐 주마. 어렵지 않겠지?"

"그야, 어떤 적이 나오는 가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그다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

"글쎄요... 두고 보면 알겠죠?"

"흥, 좋다. 그럼 우선..."

딱. 엘레이스타가 다시 한 번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두드리자, 녹색 빛을 내뿜던 첫 번째 마법진이 번쩍이며 그 안에서 적이 튀어 나왔다. 마법진에서 나온 첫 번째 적은 자신의 키만큼 거대한 석재 기둥 하나를 둔기 대신 어깨에 걸친 흉측한 외형의 거인이었다. 3M에 이르는 거대한 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고 두꺼운 팔, 그리고 단단한 바위 같은 암회색 피부가 특징인 인간형 괴물이었다.

"녀석들이 쓰러트릴 첫 번째 상대는 바로 자이언트롤이다. 자이언트와 트롤의 혼종으로, 기본적으로 체력과 신체의 내구성, 재생력 등이 무척 높은 탓에 마법이나 신의 권능 또는 그에 맞먹는 수준의 값비싸고 강력한 장비조차 갖고 있지 않는 전투력 C 랭크 이하 조무래기는 몇 명이 모여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지. 사실상 전투력 랭크의 C와 B의 판별 조건이 혼자서 저 자이언트롤을 죽일 수 있는가 아닌 가로 구분 할 정도지. 뭐, 네 명이 함께 힘을 합쳐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 저 녀석을 쓰러트리는 것이 첫 번째 시험..."

엘레이스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굶주린 자이언트롤은 눈앞의 먹잇감 네 명을 발견하자마자 괴성을 내지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하였고.

서걱.

"...이다. 물론 그 마저도 쓰러트리지 못하면...?"

섬뜩한 절삭음이 울리더니, 힘찬 기세로 적을 향해 달려나가던 자이언트롤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엘레이스타가 그 모습에 의아함을 품는 것도 잠시, 이윽고 자이언트롤의 몸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성인 남성의 팔 길이보다 지름이 긴 두꺼운 목이 깔끔하게 절단되며, 방어력과 생명력이 높아서 죽이기 힘들기로 유명하다던 자이언트롤이 단 한 방에 사명한 것이다.

"...자이언트롤을 일격에 죽였다고? 아니, 그보다 잠깐... 방금 전에 느낀 그 힘, 내가 잘 못 느낀 게 아니라면... 하지만 그럴 리가? 어째서 경지에 오르지도 않은 이들이, 전투력 A 랭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의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심의'를..."

일단 엘레이스타의 관심을 끄는 일에는 확실히 성공한 모양이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너... 이름이 분명 라그나 아마게돈이었나? 저 녀석들에게 무엇을 했지? 어떻게 해서 저 조무래기들이 저런... 자신의 분수에 맞지도 않는 힘을 얻은 거지?"

"별 거 아닙니다. 그저 제 힘으로... 그들의 '마음'의 힘을 '현실'로 이끌어냈을 뿐."

"그게 문제다!"

쾅! 엘레이스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다그쳤다. 과연 아티피아의 가장 강한 일곱 명 중 한 명이라는 말이 허세는 아니었는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이 내 몸을 강하게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수로? 어떻게? 나조차도 아직 온전히 '심의'를 이끌어 낼 수 없고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 했는데, 너는 무슨 짓을 했길래 저 낙오자들이 나조차 다루지 못하는 그 힘을 다루고 있게 만들었냐는 말이다! 대답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냉철해 보이던 엘레이스타는 지금 완전히 냉정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욕망의 냄새를 맡으며, 생각치도 못한 기회가 찾아옴을 깨달은 나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야, 물론... 그게 제가 가진 별 것 아닌 재주이기 때문이죠?"

"그럴 리가 없어! 불가능해! 말도 안 돼!"

아아, 나는 이제야 엘레이스타의 이 격렬한 반응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가끔 있거든,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자신이 우월한 인간이라고 믿는 족속들이.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열등하다고 무시하는 이들이 해내는 꼴을 결코 두고 보지 못하지.

그 쓸데 없이 높은 자존심이 그런 상황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거야. 만일 나보다 못한 이가 나도 못하는 일을 해낸다면,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가정이 무너지거든.

하지만... 내가 굳이 그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없지.

말도 안 된다고?

"당연히 말이 되죠~?"

*

"...하, 이게 진짜 되네?"

투기장 중앙에 선 남자, 장 센은 자로 잰 것처럼 깔끔하게 목이 잘려나가 즉사한 자이언트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떨떠름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괴물은 분명 4년 전에 메타버스 시티에서 전투력 랭크를 측정할 때만 해도 죽일 방법이 전혀 없어 그를 전투력 랭크 C 등급에 배정 받게 만든 녀석과 같은 종이었다.

어지간한 칼날로는 가죽을 뚫기도 힘들고, 기껏 낸 상처도 금방 회복하는 데다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우악스럽게 돌진해오는 이 괴물은 특별한 힘을 지니지 못한 이들이 결코 넘어서지 못할 벽이었고, 장 센 또한 이 괴물의 앞에서 벽을 체감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괴물이, 지금 단 한 방에 죽었다. 그것도 그의 손에.

"....하, 하하..."

4년 전에 느낀 무력감,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 주일의 악몽의 시간이 보상 받은 듯 한 만족감과 이제 자신 또한 이런 괴물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전능감에 장 센의 몸이 기쁨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물론 혼자서 해낸 업적은 아니었으나, 이전에는 몇 명이 함께 덤벼도 죽이지 못할 괴물을 단 두 명이 해치웠다는 것은 분명히 큰 차이가 있었다.

"정신 차려, 장 센 아저씨. 시험은 아직 안 끝났어."

"누가 아저씨라는 거야? 나 정도면 충분히 오빠지."

"우웩."

본래는 착한 성격이었으나 고작 2주 만에 성격 다 버린 백 유리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다시 자신의 능력을 끌어 올렸고, 장 센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반응을 가볍게 웃어 넘기며 그녀가 건넨 투명한 칼날을 다시 움켜쥐었다.

장 센의 능력은 [왜곡 곡예]. 자신의 투사체에 가해지는 법칙을 왜곡하는 능력.

그리고 백 유리의 능력은 [유리 공예].

그녀가 능력으로 만들어 낸 유리칼은 주먹으로 한 대 내리치기만 해도 부숴질 정도로 내구성이 약하지만 두꺼운 바위조차 두부 자르듯이 가볍게 잘라내는 규격 외의 절삭력을 지닌 무기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어지간한 방어구는 종잇장처럼 갈라버리는 유리칼과, 자신이 던진 투사체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능력.

비록 성격은 서로 맞지 않은 두 사람이었으나, 그들의 능력의 시너지 자체는 엄청났다. 백 유리가 내구성이 낮지만 날카롭고 투명한 유리칼을 만들어 장 센에게 주면, 장 센은 그걸 집어 던진다.

보이지 않는 필살의 흉기는, 그렇게 만들어진 두 사람의 연계기는 튼튼하기로 유명한 자이언트롤조차 일격에 죽여버릴 정도의 엄청난 살상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유리칼의 치명적일 정도로 연약한 내구성이라는 약점도, 장 센의 투척 능력으로 던져진 동안에는 각종 법칙을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이 보완해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반대 방향인 반작용이 존재한다. 그러나 장 센의 능력이 적용됨으로서 반작용만을 무시하게 되면, 백 유리의 유리칼은 강한 충격으로 받아쳐서 박살내는 방법조차 통하지 않게 된다.

"저기 관객 석에서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의 옆에 있는 남자... 분명 엘레이스타야."

"마법의 나라의 수장님께서 직접 보러 오실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지금 선생님께 소리를 지르고 계신 것 같은데...?"

"그에 비해 선생님의 표정은 무척 여유로워 보이네. 마치... 우리들을 굴릴 때처럼."

"미친,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다음 시험을 준비나 하자고."

너무나 빠르게 끝난 첫 번째 시험 이후 서로 떠들던 네 사람은, 두 번째 마법진이 빛나는 모습을 보며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두 번째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것은 앞서 죽은 자이언트롤보다 1.5배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그리고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마수. 사자의 머리와 앞발, 염소의 머리와 뒷발,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그리고 꼬리는 뱀의 머리. 이렇게 서로 다른 세 개의 머리와 각종 짐승들의 특징이 뒤섞인 몸을 가진 그 괴물의 이름은...

"키아아아아아악!!"

"키메라네..."

"독수리의 머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숨겨진 것을 꿰뚫어 보고, 염소의 머리는 뱃속의 뜨거운 불을 토해내며, 사자의 머리는 튼튼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무엇이든 씹어 먹으며 꼬리에 달린 뱀의 머리는 어지간해서는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는 맹독을 뿜어내지."

"굉장히 강하지만, 그만큼 잘 알려져 있어서 약점 또한 쉬운 편이지. 장 센 아저씨, 알고 있지?"

"거,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허잇차!!"

휘익, 후우우웅!

장 센은 손에 든 유리 칼을 던졌고,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칼날이 키메라의 등에 돋아난 한 쌍의 날개를 향해 매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독수리의 머리가 그 칼날을 눈치채고 몸을 움직여 날아온 칼날을 피했으나, 장 센의 능력은 한 번 피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칼날은 일반적인 무기로는 보일 수 없는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독수리의 머리가 확인할 수 없는 방향에서 다시금 날아들었고, 연약한 내구성을 대가로 높은 공격력을 얻는 매서운 칼날이 키메라의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순차적으로 끊어버렸다.

"키에에에에에엑!"

예상치 못한 급습에 날개를 잃은 키메라는 하늘에서 추락했다.

"키메라의 공략법은 우선 날개를 끊어서 공중전을 막는 것이지."

"그리고 전방에선 염소의 머리가 불을, 후방에선 뱀의 머리가 독을 뿜기 때문에 정면에서 맞서거나 뒤를 잡으려고 했다간 오히려 피를 보기 때문에 옆 쪽을 공략해야 하지. 물론 키메라가 바보도 아니고 얌전히 옆구리를 드러내 줄 리는 없지만..."

지면에 추락한 키메라는 괴성을 내지르며 당장이라도 일어나 불꽃과 독을 토해내려는 듯 하였으나, 녀석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괜찮아. 이미 잡아 놨어."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마치 식충 식물의 덫에 빠진 벌레처럼, 키메라는 몸의 옆면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탓에 혼란에 빠져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제니가 가진, 맞닿은 두 면을 고정시키는 능력이었다.

추락한 키메라는 제니의 능력의 범위 안에 있었고, 제니는 키메라가 추락하자 마자 바닥에 맞닿은 녀석의 몸을 그대로 바닥에 고정시켜 버렸다. 그 탓에 키메라는 바닥에 뭔가 끈적거리는 것이나 팔 다리를 붙잡는 구속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몸을 일으키지 못해 꼴사납게 팔다리를 앞뒤로 버둥버둥거리고 있었다.

제니는 다소 피로한 얼굴로, 몸무게가 수십 톤을 가볍게 넘기는 거대한 마수를 가볍게 제압한 채 장 센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당신 차례야, 장 센."

"늦장 부리지 말고 얼른 끝내, 아저씨."

"...이젠 이름도 안 불러 주냐, 망할 꼬마."

장 센은 한숨을 내쉬며, 백 유리가 건넨 유리칼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던진 투명한 유리칼이, 바닥에 몸이 붙어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키메라라는, 아무리 대충 던져도 맞추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큰 표적을 향해 쇄도했다.

키메라의 세 짐승 머리와 뱀의 머리가 잘려 나가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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