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여신에게 사랑 받는 영웅, 외신에게 선택 받은 악당(1)
* * *
마법의 나라, 마기스토스.
모든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최소 하나 이상의 마법을 완전히 마스터했다고 알려지는, 아티피아에 있는 그 어디보다 마법이 가장 잘 발달했고 또한 사회에 가장 잘 녹아든 왕국. 다만 '왕국'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사실 마기스토스에는 공식적으로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를 대신하여 나라를 이끄는 수장만이 존재할 뿐. 그러나 마기스토스에는 오래 전에 사라진 왕정제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그들 스스로도 민주주의 국가보다는 왕국의 국민을 자청한다.
그런 마기스토스의 현 수장, 엘레이스타는 현재 하나의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흐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의 집무실에서 다른 상대도 없이 홀로 체스판 위의 말을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건드리며, 그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불과 몇 주 전, 아티피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모여 앞으로의 일을 토의하는 그 자리에서 엘레이스타는 스카이론의 새장 최하층에 갇힌 한 죄수에 대한 이야기를 회의의 다른 참석자들에게 언급했다. 마법도, 신성력도 아닌 특별한 힘을 다루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운도 재능도 재력도 없어서 한계에 부착한 이들에게, 어지간한 마법과 권능과 무기 정도는 가볍게 압도할 강한 능력을 준 사내.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가 위험한 자라고 경계하였으나, 막상 만나보니 그 특이한 힘을 가진 것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평범한 사내.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할 때만 해도, 그래봤자 얼마나 특별하겠거니 싶었다. 마법사들은 신비의 탐구자,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엘레이스타는 온갖 신비를 파헤치고 그 원리를 이해한 현자.
예상대로, 그 사내가 가진 힘은 엘레이스타가 아는 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모르는 힘이었다.
심의. 그것은 심상의 힘. 인간의 마음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어느 학자가 주장한 이론이었지만, 단순한 근성론에 불과하다며 무시 당하고 잊혀진 이론.
그러나 마기스토스의 수장으로 선발되기 전까지 단순히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러 신비를 추적하고 탐구하던, 그야말로 '모험가'에 가까운 마법사인 엘레이스타는 그 학자의 심의론을 무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인간이 강렬한 의지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업적을 이룬 모습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기에, 학자가 주장하는 '심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겼다. 단지, 그것이 어떤 구조로 그리고 어떤 원리로 행해지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을 뿐.
그런데 새장의 최하층에 갇힌 죄수가 보인 기이한 재주라는 것이, 바로 그 심의를 이용한 것이었다.
마음의 힘.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 현실에 물리력을 행사한다. 말로만 들어보면 정말 편하고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알기 쉽게 예를 들면... '연비가 나쁘다'고 할까.
의지의 힘으로 A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선 정신력을 100만큼 소모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같은 일을 마력으로 대체할 경우 마력을 20, 정신력을 1 소모한다. 의지는 마력을 소모하지 않기에 마법에 적성이 없는 이도 쓸 수 있지만, 정작 마법을 쓸 때보다 더 많은 정신적 체력을 소모하기에 사용 횟수 자체가 크게 제한된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좋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계륵에 불과한 힘. 그것이 심의였다.
그러나 그 날 엘레이스타가 보았던 힘은 달랐다. 전투력 S 랭크에 도달하는 노련한 검사조차 심의를 다루지 못하며 설령 다룰 수 있다고 한들 적 100 명을 쓰러트릴 정신력을 소모해서 손을 쓰지 않고 떨어져 있는 검을 지면에서 5cm 만큼 떨어지게 들어 올리는 것이 고작일 터인데.
전투력 C 랭크 이하인 조무래기들이, 몇 십 명을 모아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전력의 괴물들을 가볍게 도살했다. 그것도 엘레이스터조차 아직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심의를 제 수족처럼 다루며.
그리고 그 정도의 정교하고 강력한 심의를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아마 현재로서는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한 명이자 명실상부 최강인 그 남자 뿐일 것이다.
그렇기에, 엘레이스타는 대표자들이 모인 회사에서 그 죄수의 석방을 제안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비효율적이기 그지 없는 심의를 그렇게 실전성이 높은 형태로 재구성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신비의 탐구자인 마법사답게, 그는 그 남자의 힘을 분석하고 해부하여 이해하기를 원했다.
다만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예언이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세계, 아티피아는 다수의 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세상 답게 일반적인 세상보다 신들의 힘에 기대는 경향이 크며 그만큼 신의 존재가 더 명확하며 큰 영향력을 끼친다.
특히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는 그녀가 가진 실질적인 힘에 비해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아무리 마기스토스의 현 수장인 그라고 해도 대놓고 그녀의 뜻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간 그 영향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엘레이스타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서, 그 남자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려고 했다. 마침 그 사내는 석방되자 마자 지하 도시 랜드필로 향했다. 온갖 불법적인 일들이 오고 가는 곳이니, 개인적이고 은밀한 만남을 갖기에 그보다 좋을 곳이 없는 장소였다. 그래서 엘레이스타는 지금 당장 급히 처리해야 할 국가 사안을 빨리 처리하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들은 제자들에게 맡긴 후에 곧장 랜드필로 향하려고 했다.
...갑자기 메타버스 시티의 관리자와 황금의 왕이 협력하여 마기스토스에 압박을 가해오기 전까지는.
"아카위키 녀석이야 평소에도 그런 녀석이니 그렇다고 쳐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호 관계였던 황금의 왕까지 갑자기 이렇게 적대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필시 누군가 개입한 것이겠지."
황금의 왕의 행동 원칙은 간단하다. 언제나 최선의 이익만을 고려한다. 누구보다도 부유한 사내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가장 많은 이득을 부르는 길만을 선택한다.
그가 마기스토스와의 정기적인 거래로 얻게 될 이득마저 내버리며 이렇게 급격하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그 행동으로 인해 얻을 손해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을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내가 목적이던가, 아니면... 뒤에 그 남자가 있다는 뜻이겠지."
새장의 수감수였던 그 사내가 목적일까? 확실히 그가 가진 힘을 활용하면 아주 큰 이득이 따라오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아카위키와 손을 잡지는 않았겠지. 재능과 무관하며 돈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라니, 최신식 무기 판매를 수출하던 아카위키로서는 자신의 사업을 위협하는 그런 불안 요소는 당장이라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결국 답은 하나.
"길드 마스터 정시우... 넌 도대체 목적이 뭐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거지?"
엘레이스타는 체스판 위, 하얀 체스말과 검은 체스말 사이에 난입한 붉은 체스말의 킹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풀리지 않을 고뇌에 휩싸였다.
*
'최후의 한 잔'.
랜드필 중앙 구역에 위치한 이 술집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가장 매출이 높은 바이다. 물론 그 이유는 그저 경쟁할 대상이 없다는 슬픈 이유 때문이지만 말이다. 랜드필에서 유일하게 외부에서 들여오는 제대로 된 주류를 취급하는 곳이다보니, 랜드필의 거주민들은 제대로 된 공정 과정을 거치지도 않아 도수는 쓸데없이 높은 데 맛은 썩은 폐수나 다를 게 없는 끔찍한 수제 술을 마시느니 차라리 돈을 쓰더라도 최후의 한 잔에서 제대로 된 것을 마시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술을 사 마실 정도로 여유가 있는 이들은 단 두 부류 뿐이다.
랜드필을 통솔하는 다섯 조직 중 하나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돈이 많은 외부인이거나.
딸랑, 딸랑하고 벨이 울리며 문이 열리고, 자그만한 술잔으로 목을 축이거나 구석 테이블에서 카드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서로의 무용담을 자랑하며 웃고 떠들던 이들의 시선이 새 손님에게로 쏟아진다. 최후의 한 잔에 발을 들인 손님은 칙칙한 암회색 판초를 푹 눌러 써 얼굴을 가린, 누가 봐도 '나 수상한 인물입니다'라고 광고하는 듯한 차림새의 낯선 이. 랜드필은 최악에 가까운 내부의 환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외부의 지원에 기댈 수 밖에 없고, 그들에게 있어서 외부에서 온 이들은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태연히 무시하며, 손님은 곧장 바텐더에게로 걸어갔다.
"얼굴을 가린 걸 보니, 여기 사람은 아니신 모양이군. 무엇을 찾으시러 오셨수?"
아주 멋진 수염을 가진 바텐더의 정중한 질문에, 판초를 쓴 이방인은 일부러 변조를 거친 듯한 이질감이 드는 목소리로 답했다.
"몇 주 전에 이 랜드필로 온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여기서 그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던데."
덜컹, 쿵.
낯선 이방인의 입에서 나온 '선생님'이라는 한 단어에, 바 내의 분위기가 술렁였다.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누군가는 초조함에 입술을 악물고, 누군가는 당장이라도 고성을 내지를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의 말에 반응한 손님들 중에서 '선생님'을 찾는 이방인을 환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이보쇼, 이방인. '선생님'은 무슨 용무로 찾고 계신지?"
처음엔 친절한 어투로 대하던 바텐더 또한, 불쾌함이 조금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찾는 그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면, 외부에서 온 사람이 난데 없이 그 분을 찾는다는 소식이 현지인인 우리에게 그리 좋게 들릴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소?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마치 몇 명이 한꺼번에 덤비든 상관 없다는 듯이..."
"틀린 말은 아니지."
사내는 자신의 허리춤으로 오른손을 뻗었고, 판초가 들리며 은은한 빛이 감도는 암청색 강철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필요할 뿐이니."
"...'선생님'을 찾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먼저 밝히시오. 당신이 좋지 못한 목적으로 그 분을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당신에게 그 분이 있는 곳을 알려줄 이유가..."
철컥.
사내가 검 자루에 손을 얹었고, 적막함이 감도는 바 내에서 그 서늘한 금속음이 유독 크게 울렸다. 그것은 명백히 위협의 의도가 담겨 있었고, 이 장소에서 사내의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내는 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에 담긴 적의가 한층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태연한 어투로 다시 되물었다.
"두 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그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지만 알려 주시죠.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직접 그 사람을 만나서 나눌 터이니."
"이 자식..."
사내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열이 받은 손님 몇 명이 그를 향해 적의를 뿜어냈지만.
"됐어, 다들 진정해."
테이블 구석에서 상대 몇 명과 카드를 치던 한 사내의 평온한 말에, 이방인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던 손님들이 일제히 그 투지를 꺼트렸다. 그리고 이방인 사내는, 말 한 마디로 그들을 진정시킨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을 때 묘하게 귀품이 느껴지는 것만 제외하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이방인은 그 사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가, '잠시 실례하지'라고 말하고선 그의 맞은 편의 빈 자리에 털썩 앉았다.
"혹시 당신이 그 유명한 '선생님'이십니까?"
"뭐, 그리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야. 근데 그거 외에는 딱히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일단은 다들 날 그렇게 부르고 있지. 그래서... 날 찾아오신 당신은 어디에 사는 누구시지?"
"그 전에, 당신의 동행인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좋겠군요."
"흠... 싫다면?"
사내는 다시금 위협을 가할까 고민했으나, 테이블에 앉은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유롭게 카드를 셔플하는 그의 눈을 보고선 그 마음을 접었다. 저 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눈이다. 저런 이들에게 목숨을 빼앗겠다는 어중간한 협박은 씨도 먹히지 않으니, 괜히 무의미한 행동으로 상대가 협조할 가능성을 더 낮추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이리라.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판초의 앞섬을 조금 들어 올려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냈다.
선생을 찾아온 사내는, 선생과 크게 나이 차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젊은 미청년이었다. 다만, 그 청년의 눈은 달랐다. 선생의 눈이 꺼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은은하게 영원토록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이방인의 눈은 어두운 밤의 고요한 바다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수많은 세월이 담긴, 고요하게 가라 앉은 그 삭막한 암청색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하게 섬뜩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사내의 어둡고 푸른 눈이 선생을 흩었다. 그리고...
*
{스킬 [분석] 발동 : 상대의 정보 열람.}
{스킬 [흐릿함] : 조건을 달성하지 않은 타인이 세부 정보 분석 불가.요구 조건 : 고대의 지식 LV 5 이상}
{스킬 [운명 왜곡] 발동 = 스킬 [탐색]의 '실패'>'성공'으로 결과값 수정, 성공 확률 10%}
{스킬 [천운] 발동. 스킬 [운명 왜곡] 성공 확률 변동 10%>100%}
{스킬 [운명 왜곡] 성공. [흐릿함] 효과 무효, [분석] 정상 발동. 상대의 정보 열람.}
이름 : [라그나 아마게돈]
나이 : 20+?
성별 : 남
성향 : 혼돈, 악
마법 : [고대의 주술(R)]
가호 : [공용어(N)], [흐릿함(E)], [아, 광기. 내 오랜 친구여(L)], [고대의 지식 Lv 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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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OR}
{ERROR}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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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직. 찌릿한 스파크가 튀기며, 사내는 불쾌한 반동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신에게서 받은 힘으로 그를 비호하는 신의 힘을 뚫고 그의 정보를 파악하려고 했으나 예기치 못한, 그리고 알 수 없는 오류와 함께 기껏 개방한 정보가 굳게 잠겼다.
그는 다시금 그 정보를 캐내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잠금이 아홉 개의 숫자 세 개를 맞춰야 하는 구식 자물쇠였다면 지금의 잠금은 모든 문자와 숫자를 전부 포함하여 몇 자리인지도 모를 패스워드를 맞춰야 하는 셈이었다.
이 정도면 신의 힘을 빌린 인간의 힘으로는 정보를 캐내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 저 비호를 뚫고 그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선, 신의 힘을 빌린 인간이 아니라 신 본인이 직접 찾아와야 할 판이다. 그렇기에 사내는 '선생님'의 정보를 몰래 캐내려던 시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기껏 캐낸 정보조차,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 뿐이었고 정말 중요한 기밀 정보는 하나도 캐낼 수 없었기에 실질적인 소득은 거의 없었다.
"거, 요즘은 허락도 없이 남의 신상을 그렇게 막 캐도 되는 건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 이상이군요. 아무래도 당신을 이 세계에 보낸 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을 아끼는 모양입니다."
"댁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뚫고 내 정보를 조금 살폈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이방인은 아니라는 뜻이니."
이 이상 서로 간을 보는 것은 역시 무리인가. 조금 편하게 정보를 얻으려다 괜히 반발심을 키운 듯 하였다. 차라리 편하게 강압적인 수단을 쓴다면... 아니, 아니다. 저 쪽이 먼저 무력으로 저항할 경우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는 이상 먼저 힘을 써서 좋을 게 없다.
이런 곳에서 힘을 쓰면 금방 다른 곳에 알려질 텐데, 그래서는 굳이 행적을 전부 감추면서 까지 은밀히 찾아온 보람이 없다. 랜드필에서 자신이 나타난 것이 알려지면, 엘레이스타가 다른 대표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적대 구도를 만들 빌미를 쥐어주는 셈이 되었기에, 이 이상 눈길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었기에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지금 당장 상세한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일단은 데스페라도의 모험가 길드에서 나왔다고 말해두겠습니다."
"정말이지, 용건 하나 꺼내는 데 시간을 참 오래도 잡아 먹는 군. 그래서, 도대체 뭐가 목적이지? 뭣 때문에 날 찾아온 거지?"
'선생'이라 불리는 사내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본론을 요구했고, 사내 또한 그에 응하기로 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가진 그 힘. 길드에서 그 힘에 대해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기에, 당신이 직접 데스페라도에 와주시길 요청합니다. 물론, 공짜로 부탁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가진 힘에 대한 정보는 현재로서 제법 가치가 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한 마디로, 나보고 데스페라도로 오라고?"
그리고 '선생'의 앞에서 말장난은 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에 담긴 숨겨진 뜻을 단번에 파헤친 그는, 이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비록 당신보다 무력이 약해서 무례한 태도는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건 좀 선을 넘는 거 아닌가?"
지금도 충분히 무례한 것 아닌가? 그런 사내의 생각이 말로서 나오기도 전에, 선생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당장이라도 그를 씹어 먹을 듯한 사나운 어투로 내뱉었다.
"아쉬운 사람이 직접 와도 모자랄 판에, 지금 누구 보고 오라 가라 이 지랄이야? 일 없으니 썩 꺼져."
반박의 말조차 생각나지 않을, 너무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태도에 사내는 자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차마 감추지 못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