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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37화 (137/229)

〈 137화 〉 싸우지 말고 야스해!!(2)

* * *

수면이란 인간이 24시간 중 3할이나 되는 시간을 소모하여 육체적, 정신적 휴식을 갖는 행위를 일컫는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시간이 한 두 시간 정도의 편차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은 잠을 자야만 한다. 하루 정도 밤을 새는 것은 조금 피곤할 수는 있어도, 며칠 동안 연속으로 수면을 거르는 행위는 그 몸에 막대한 피로를 계속 누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설령 수면의 시간이 매우 짧더라도, 수면이라는 행위 자체를 거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퍼억!

"윽...!"

그렇기에 한참 편안하게 잠을 자던 도중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복부를 얻어 맞고 잠에서 깬 골드 등급의 베테랑 모험가 쿠린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음엔 혹시 야생 몬스터 무리가 텐트를 습격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지금 밖에서 야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의 여관에서 숙박을 하고 있으며 자신을 공격한 주먹이 사실은 옆 자리 임시 동행하게 된 여자 모험가의 고약한 잠버릇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잠든 모험가를 그대로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릴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행동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을 테니 차마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고, 그러나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린 데다가 수면 중에 동료를 주먹으로 강타하는 모험가의 옆에서 다시 눈을 붙히고서 다음날 아침까지 평온하게 잠들 용기가 없던 쿠린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여관의 옥상으로 나왔다. 그 자리에는 그녀보다 먼저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어? 쿠린 씨?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일어나셨나요?"

"그러는 너는 왜 이 시간에 안 자고 깨어 있지?"

"아하하... 저는 원래 잠이 적기도 하고, 동료들이 이 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다 보니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한 대 피우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요."

쿠린보다 앞서 밖에 있었던 남자, 슈미는 반 이상 비워진 담배 갑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마음 같아선 더 자고 싶었다. 숙면 도중 느닷없이 네 동료의 주먹에 정통으로 얻어 맞기 전까지는."

"하하... 미카가 잠버릇이 좀 고약하긴 하죠."

"그건 '좀 고약한'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알고 있었으면, 진작에 이야기 했어야지. 하, 나도 한 개비 다오. 오랜만에 좀 피워야겠으니."

슈미는 라이터를 꺼내서 건네려 했으나, 담배를 입에 문 쿠린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라이터를 쓰지도 않았는데 담배 끝 부분에 피슛 하고 불이 붙었다. 대현자나 쓸 수 있다는 무영창 마법...은 당연히 아니었다.

"오... 그거 골드 등급 이상의 모험가만 쓸 수 있다는 간이 룬이죠?"

"맞아. 담배 불 붙일 때 이만한 것도 없지."

"하하..."

데스페라도의 모험가 길드에 소속된 모험가들은 크게 네 등급으로 나뉘어진다. 아래에서부터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 등급이 있으며, 각 등급마다 길드에서 주어지는 혜택이 다르다. 쿠린이 선보인 기술은 골드 등급에 이른 모험가에게 주어지는 '간이 룬'이라는 기술로, 아주 간단한 마술을 영창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룬을 몸 어딘가에 새김으로서 특정 동작을 트리거 삼아 저장된 마법을 영창 없이 사용하는 기술이다. 불이 필요한 순간에 아주 작은 불씨를 붙이거나 자신의 몸을 순간적으로 1m 앞으로 순간이동 하는 등, 사소하지만 각종 편리한 마술을 쓸 수 있게 해주기에 골드 등급 모험가라면 누구나 누리고 있는 편이다.

물론 사용할 수 있는 마술의 위력 자체가 한정적이며 사용자에게 마력의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공기 중의 마력을 모아 다시 충전되는 방식이다 보니 한 번 사용한 후 다시 쓸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에 직접적으로 전투에 써먹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보조의 용도로 사용되는 간편 마술이지만.

"쿠린 씨는 골드 등급의 베테랑 모험가라고 들었어요."

"맞아. 골드 등급 자체는 아주 예전에 달성했어. 다만, 재능의 한계 때문에 플레티텀 이상은 도저히 못 올라가겠더라. 거긴 진짜... 후, 탈인간의 영역이더라."

쿠린이 모험가가 된 것은 7년 전의 일이며, 골드 등급이 된 것은 5년 전의 일이었다. 길드에 들어오자마자 단 2년 만에 골드 등급에 오른 유망주라는 이야기도 처음에 잠시 뿐, 5년 이상 플레티넘 등급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한 그녀는 이윽고 다른 이들의 관심 속에서 완전히 잊혀져 이제는 그냥 평범한 모험가 중 한 명이 되었다.

"많이 아쉽겠네요. 플레티넘 등급에 들어설 유력 후보 중 하나였다고 들었거든요."

"그것도 다 옛말이지. 그리고 이제는 괜찮아. 플레티넘 등급이 되면 혜택이 많긴 하지만, 그만큼 제약도 많으니까. 차라리 나는 지금이 편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은 슈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쿠린이 아직 플레티넘 등급이라는 목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다는 것을. 애초에 그녀가 이 퀘스트에 지원한 것 자체가 아직 미련이 있다는 증거였다.

길드 마스터 정 시우가 내건 의뢰 내용 기밀의 긴급 퀘스트.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퀘스트 보상은 다양한, 수상쩍기 그지 없는 퀘스트였다. 그럼에도 퀘스트에 지원한 사람의 수는 상당했는데,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내건 목록에서 '골드 등급 이하의 모험가에 한해서 퀘스트 클리어 직후 등급 한 단계 등업'이 있던 탓에 많은 모험가들의 눈이 돌아가버린 것이다.

모험가 길드는 소속된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수주해주고, 의뢰주가 내건 보상의 일부를 그 비용으로서 받아간다. 등급이 오를 수록 의뢰 보상 중에 당사자가 가질 수 있는 몫이 늘어나고, 더 위험하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의뢰도 받을 수 있게 되며 골드 등급의 모험가들은 쿠린이 방금 보여 주었던 '간이 룬' 같은 유용한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모험가로서 등급을 올리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등급을 높이기 위해선 다수의 의뢰를 수행하여 실적을 쌓고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등급 시험에서 합격해야만 한다. 아무리 실적이 좋거나 뛰어난 실력이 있어도 등급 시험을 치루지 않으면 등급을 올릴 수 없고 한 번에 한 등급 밖에 오르지 않기 때문에, 등급 하나를 올리는데 최소 1년은 걸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단 퀘스트 하나만 완료하면 곧바로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많은 모험가들이 길드 마스터가 내건 퀘스트의 내용도 모르면서 너도 나도 지원했다. 현재 그 퀘스트를 맡게 된 실버 등급의 모험과 슈미와 그 파티원 세 명, 그리고 베테랑 골드 등급 모험가 쿠린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굉장하네요. 골드 등급이라니... 실버 등급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저희 파티로는 아직 먼..."

"쉿.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우리가 뭣 때문에 이런 먼 곳까지 왔는지 잊지 마."

"아, 참. 그랬었죠."

슈미와 파티원들, 그리고 쿠린이 맡게 된 길드 마스터의 퀘스트는 버려진 도시 랜드필에서 '선생'이라 불리는 존재에 대한 조사였다. 선생의 정체, 거주지, 목적, 그리고 그 자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이들이 본래 터전인 모험과 자유의 도시 데스페라도에서 이 먼 곳까지 온 이유였다.

게다가 현재 랜드필은 대대적 통합을 앞두고 있는 상황. 내일 아침이 밝으면 비행선 선착장이 있는 동쪽 구역을 다스리는 조직 에시드 패밀리와 그 외 네 조직의 연합이 정면 충돌하게 된다. 각 조직들에 의해 다섯으로 찢어져 있던 랜드필이, 내일 다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비록 랜드필이 온갖 도시와 나라에서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 추방되거나 버려진 이들이 모인 무법지대인지라 다른 곳에서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력으로 묶이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각지에서 힘 또는 사상이 위험하다고 여겨져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고작 단 한 명의 인간을 중심으로 뭉친다니.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랜드필을 통일하려고 하는 인간이, 바로 이 모험가들이 이 랜드필에 찾아온 목표인 '선생'이니까.

현재 랜드필은 거대한 전투를 앞두고 기이하리만큼 고요한 상태,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중심 인물인 '선생'에게 용무가 있다며 찾아온 모험가들을 이곳 주민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지는 너무 뻔했다. 그것도 불과 며칠 전, 스스로를 데스페라도의 모험가 길드 소속이라고 자칭한 남자가 한 주점에서 선생을 노리고 칼부림을 벌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쿠린과 모험가들은 이곳 주민들에게 의심 받지 않기 위해,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모험가 길드에서 갈등을 빚다 못해 결국 추방되었다'는 설정을 쓰기로 했다.

슈미는 과연 랜드필의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이 먹히겠냐고 되물었지만, 의외로 랜드필의 주민들은 그들의 소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게 있었던 덕에, 선생을 조사하기 위해 랜드필에 도착한 모험가들의 퀘스트는 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랜드필을 통솔하는 조직들 간의 대규모 항쟁... 내일이 되면, 아주 큰 소란이 벌어지겠지."

"에이, 그래봤자 폭력배들의 패싸움에 불과하잖아요?"

"그건 네가 이곳 상황을 잘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네?"

쿠린은 이 관찰력 부족한 후배를 위해 자신이 오늘 이 도시에서 보고 들으며 깨달은 것들을 알려 주기로 마음 먹었다.

"조직폭력배들 간의 항쟁은 그냥 동네 양아치들의 패싸움과는 그 규모와 질이 다르다. 양아치들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대다수이며 다른 무리와 충돌하여 싸우는 것도 어쩌다가 한 번 있는 일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양아치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몰라.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비겁한 놈들이지. 하지만 폭력배들은 달라."

쿠린은 얼핏 스쳐 지나간 뒷골목 너머의 풍경에서, 얼굴에 붉은 무늬를 새긴 험상 궂은 남자들과 허리춤에 도(?)를 찬 무리들의 간의 충돌을 떠올렸다.

"그들은 그냥 어쩌다가 뭉쳐서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대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고 혹시나 만일에 상대를 죽여야만 할 필요가 있다면 뚜렷하게 살의를 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직 간의 결속력. 한 무리를 두들겨 팬다고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동료들이 이후에 보복하는 것. 그것이 폭력 조직의 무서움이지."

"으음..."

"그러니 부디 목적을 잊지 마라.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선생'에 대한 정보의 습득이다. 여긴 모험가 길드가 있는 데스페라도가 아니라, 저 폭력 조직들의 무법 지대인 랜드필이다. 괜히 조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흠, 명심해 둘게요. 아, 벌써 날이 밝아 오네요."

후우, 하고 다 핀 꽁초를 바닥에 털어낸 슈미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으음... 그럼 전 슬슬 동료들을 깨워서 준비하겠습니다. 쿠린 씨는...?"

"오늘 나는 너희들과 따로 행동하기로 하지. 어제도 같이 다녔는데 오늘도 같이 다니면, 기껏 통한 변명을 의심할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이만."

슈미가 파티원들을 깨우러 다시 내려간 사이.

"...저 녀석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 줘서 고맙군."

쿠린은 어둠 속을 응시하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 직후, 쿠린의 뒤로 한 남자가 소리 없이 내려왔다.

"굳이 불필요한 희생을 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당신을 상대로, 저 녀석까지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으니."

쿠린은 남자를 향해 자신의 애병인 장창을 겨누었다. 남자는 손에 아무런 무장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필요 없었다. 그의 무기는 칼이나 도끼 같은 날붙이가 아니라, 바닥을 딛고 있는 저 두 다리였으니.

"널 배려한 것은 아니다. 랜드필을 통일해야 하는 오늘, 에시드 패밀리를 상대하는데 써야 할 체력을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수가 적어질 때까지 기다려준 것 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 우릴 의심하고 있었지?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처음부터.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갑자기 외부에서 온 사람을, 우리가 정말 그렇게 쉽게 믿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우릴 너무 무시하는 뜻이지."

"아, 그런가."

쿠린이 피우고 있던 담배의 연기가 방향을 바꾸었다.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지금, 그녀의 앞에 선 남자의 두 다리에 모여 들고 있었다.

"원소를 자신의 몸에 둘러 강화하는 건가... 뭔가 내가 쓰는 것과 비슷한 마술처럼 보이는 군."

"마술? 마술이라... 하긴, 처음 보는 사람은 그렇게 오해할 법도 하군."

남자를 향해 겨눈 쿠린의 창의 끝에 습기가 맺혀간다. 그에 따라, 남자의 두 다리에 조용히 휘감기던 바람도 이제는 그 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세차게 회전을 하고 있었다.

"이건 마술이나 마법 따위가 아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 우리들의 마음... 욕망, 의지, 소망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심상의 힘. '심의'이다."

"흐음... 심상이고 심의고 뭔지 모르겠는데, 상관 없어. 널 박살 내고 심문해서 정보를 캐면 그만이니까."

"할 수 있다면, 해 보시지."

그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남자의 입장에서 랜드필을 통일해야 할 오늘 쿠린은 외부에서 어떠한 목적을 갖고 침입한 수상한 자이니 중요한 일을 하기 앞서 귀찮은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배제하는 것이고, 그리고 쿠린의 입장에선 퀘스트 목표인 선생의 측근으로 보이는 저 남자를 포획하여 심문함으로서 선생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쿠린의 창 끝에 맺힌 습기가 점차 늘어나 한 줄기의 물이 되고, 그 물의 흐름이 늘어나며 파도가 되었다.

"[해신류 창술 제 1식­격류]. 어디, 받아낼 수 있으면 받아내 보시지."

창의 끝에서 피어나는 격렬한 흐름은, 어지간한 갑옷은 종잇장 처럼 쥐어 뜯을 처럼 사나운 기세로 날뛰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말하기는 좀 그런데, 자기 기술에 그렇게 이름 붙여서 폼 잡는 거 조금... 부끄럽지 않습니까?"

"...시발."

하필이면 적에게서, 그것도 싸우기 전에 저런 말을 들으니 쿠린은 순간 평정심이 무너졌다. 그가 한 말이, 모험가가 되지 않고 그저 사무원이 되어 적지만 안전하게 봉급을 벌며 사는 또래 여자애들이 말하던 '모험가들이 필살기 이름 외치면서 싸우는거 진짜 웃겨 ㅋㅋㅋ'라는 뒷담화를 떠올리게 만든 탓이었다. 그리고 싸움의 순간에 있어서 그 한 순간의 방심은 큰 결과를 초래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내는 갑자기 달려 들었고, 쿠린은 창이라는 무기 특유의 메리트인 사정거리를 이용하기 위해 뒤로 스텝을 밟으며 창을 내질러 그의 접근을 저지하려 했으나.

"잡았다."

"윽...?!"

분명 뒤에는 아무도 없었을 터인데,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강철로 이루어진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짓누른 탓에 모험가 쿠린이 내지른 창은 허공을 찔렀고, 그 사이 품 속까지 파고 든 사내의 바람을 휘감은 강렬한 킥이 쿠린의 명치에 그대로 직격하였다. 그것이 베테랑 골드 등급 모험가였던 쿠린이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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