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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41화 (141/229)

〈 141화 〉 뭐야, 그거. 몰라. 무서워.(1)

* * *

최근 나타난 출신 불명의 이방인 '선생'에 대한 조사를 위해 길드 마스터 정 시우는 긴급 기밀 퀘스트를 발령, 어디까지나 목표는 정보 탐색에 불과하며 지나치게 강한 전력은 되려 랜드필의 주민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히 고려한 끝에 퀘스트를 맡게 된 정찰 조는 골드 등급의 베테랑 모험가 쿠린과 실버 등급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험가 슈미와 그 파티원들을 포함한 다섯으로 구성되었다. 랜드필로 향하는 비행선에 탑승한 다섯 명은 대략 일주일의 조사 기간 끝에 모험가 길드로 복귀하였으나, 아쉽게도 그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모험과 쿠린과 슈미의 파티는 그 일주일 동안 '선생'이 랜드필에서 벌인 일은 아주 생생하게 전달했지만, 목표인 '선생'의 출신이나 능력, 그리고 그가 꾸미는 계획이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규모 등에 대한 상세하고 직접적인 정보는 거의 캐내지 못한 것이었다. 실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공으로 치기도 어려운 에매한 성과. 그래도 길드 마스터는 그 험한 곳에 다녀 오느라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보상을 지불했지만, 그 보상 내역에서 '모험가 등급 상승'은 제외되어 있었다.

기대를 하는 만큼, 돌아오는 실망감도 큰 법.

쿠린의 나이는 슬슬 스물 일곱에 들어섰다. 모험가들 중에서는 그래도 아직은 젊은 편이었으나, 쿠린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매우 초조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플레티넘 등급에 들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그녀는 등급 시험의 자격 중 하나인 실적을 쌓기 위해 평소라면 꺼려했을 다소 위험한 원정 퀘스트에 지원했다. 그리고...

"하아, 하아... 쿨럭!"

그 결과가, 이것이다.

이번 원정 퀘스트의 목표는 얼마 전 새로 열린 차원문을 통해 드러난 미지의 던전 탐사. 그 던전에서 확보한 재화는 발견한 당사자가 상당한 지분을 얻을 수 있으며, 이런 개척류의 퀘스트는 위험성이 높다 보니 길드에서 상당한 실적으로 쳐주었다. 쿠린에게 실적을 채우는 것은 급한 일이었고, 따라서 그녀는 무리하게 던전 탐사에 임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들이 탐사를 시작한 이 던전... '거성'은 쿠린을 포함한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정말 최악인 장소였다.

기잉, 철컥. 기잉, 철컥.

원정 대원들과 흩어지고, 하필이면 한 쪽 어깨에 부상을 입은 탓에 긴 장창을 양손으로 휘두르고 내지르는 쿠린으로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 없는 상황. 그렇게 고립된 그녀를 향해 저멀리서 무겁고 불쾌한 금속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거성'은 겉으로 보기엔 영락 없이 중세 시대 배경의 성이었으나, 실은 그 모습은 식충식물이 벌레를 꾀어내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 기껏 나와봤자 벽돌로 이루어진 골렘이나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주변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최첨단 병기. 금속으로 이루어진 병사와 화기가 부착된 드론, 거기에 각종 생물을 본 딴 온갖 기계 장치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며 원정대원들을 급습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급습에, 예상보다 강한 적들의 등장에 원정대는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고 쿠린 또한 기계 병사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드론 중 하나가 발사한 탄환이 어깨에 명중해 버렸다.

"젠장... 너무 욕심을 부렸나. 그냥 평소처럼 데스페라도 근처에서 하는 퀘스트나 수주할 걸, 쓸 데 없이 욕심을 내서 원정을 나와선..."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이미 너무 늦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늦어지면 가망이 없었기에.

쿠린은, 아니, 혜윤은 대한민국 부산 출신이었다.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어부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착한 딸이었다. 낚시에는 영 소질이 없었지만 작살질 하나 만큼은 기가 막혀서, 가끔 의외의 결과물을 낚아올 때마다 아버지가 역시 내 딸이다, 하고 웃으며 칭찬을 하는 것에 소소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던 순박한 여인이었다.

어느 날 배를 타고 나간 날에 갑자기 태풍이 몰아치고, 배의 기둥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바람에 그대로 바람에 날아가 바다에 빠지기 전까지는.

나름 바닷마을 출신답게 혜윤도 수영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를 하고 물 속에 들어서는 것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냅다 물 속에 내던져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숨을 쉬려고 벌린 입과 코로 바닷물이 들어오며, 패닉에 빠진 혜윤은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들이 밀다가 이내 바닷 속 깊이 꼬르륵 가라 앉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게 삶이 끝나는가 싶더니,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한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바다의 신의 사자라고 소개한 남자는, 그녀가 그대로 익사했으며 그 일에 자신들의 과실이 어느 정도 있기에 다시 되살려주겠다고 말했다. 단, 이 세상에 아닌 다른 세상에서.

그렇게 혜윤은 쿠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고 아티피아라는 세상에 다시 태어났지만... 그녀는 고향이 그리웠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 바람을 다시 느끼고 싶었고, 철썩이며 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으며, 그리고 하나 뿐인 딸을 잃고 슬픔에 빠진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그녀의 귓가에, 한 소식이 들려 왔다. 주로 이방인들이 소속되는 모험가 길드, 그 길드에서는 모험가들의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른 혜택이 부여되는데 그 중에서도 상위 1%인 플레티넘 등급의 모험가들은... 길드 마스터 정 시우의 주관 하에, 초월자들에게 소개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신, 천사, 악마, 마신, 초월자 등등... 온갖 이름으로 불리며, 세계를 부수고 만들 수 있으며 차원을 열어 사람 하나 정도는 다른 세계로 보낼 수 있는 신적인 존재들.

그리고 신의 총애를 받은 자들 중에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들 또한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날 쿠린은 망설임 없이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능숙한 창술에 바다의 신의 사자가 준 소소한 축복으로 마법에 대한 재능이 더해져 그녀는 순식간에 골드 등급의 모험가가 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는 플레티넘 등급에 올라갈 수 없었다. 이전에 만났던 바다의 신의 사자도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쿠린은 어떻게 해서든 신들의 선택을 받아야만 했다. 초월적인 존재의 마음에 들어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너무 큰 욕심이었던 것일까.

구멍 뚫린 어깨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로 팔은 흥건하고, 흉측한 기계 병들의 포위진이 점차 가까워진다. 원정은 실패했고, 생존자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자신은 없다.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은 쿠린은 밀려오는 서러움에 참다 못해 눈물을 터트렸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데.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평소처럼 바다에 나갔다가 태풍에 휘말려 익사하고, 모험가 길드인가 뭔가 하는 것에 소속되어서 각종 굳은 일을 맡아 처리하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왠 이상한 남자한테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 본 삶은 너무나 구차하기 초라하였기에, 짙은 후회와 절망감이 그녀를 집어 삼켰다. 저 끔찍한 쇳덩어리들에게 잔혹하게 목숨을 잃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 때.

­정말 그걸로 충분해?

한 목소리가, 그녀를 흔들었다.

그 목소리는... 얼마 전, 길드 마스터가 내건 퀘스트 때문에 지하 도시 랜드필에 향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 랜드필에서 뭔가를 꾸미던 사내, 다른 이들에게 '선생'이라고 불리던 정체불명의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쩐지 순순히 나줬다 싶더니, 이건 또 무슨 개짓거리야..."

­다시 한 번 묻겠다. 정말 그걸로 충분해? 후회는 없나? 원하는 것은?

"후... 다 틀렸어.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희망은 없다. 보이는 것은 그저 깜깜한 미래 뿐. 그런 상황에서, 어째서 다시 일어나지 않고 그저 주저 앉아 있냐며 타박 하는 듯한 그의 말은 쿠린의... 아니, 혜윤의 심경을 마구 뒤흔들었다.

"이제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내가 너에게 물은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이 없냐고 물은 것이다.

"원하는...것?"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려고 기를 쓰는 살육 머신들이 곳곳에 활보하는 적진 한 복판에 고립되어, 죽음을 앞둔 공포에 사로 잡혀 있던 쿠린의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악마의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욕망, 욕구, 소망, 바램, 희망 등등... 뭐라 부르던 상관 없다.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떠올려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서라도 원하는 것을. 너는 그저 눈을 감고 네가 가장 바라는 것을 떠올려라. 그럼 내가 너의 바람을 들어줄 터이니. 자, 다시 한 번 묻겠다.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지?

그의 목소리를 따라, 쿠린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하나의 그림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쏴아아아... 하고 밀려오는 시원한 파도 소리.

끼룩, 끼룩 하늘에서 맴도는 갈메기의 울음 소리.

저편에서 불어와 뺨을 간지럽히며 지나가는 시원한 바닷 바람.

쿠린은, 혜윤은... 어느새 바다에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그녀의 고향.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울 일 없고,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할 필요 없는,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푸른 바다가 훤히 보이는 조용한 시골 마을. 쿠린은, 그제서야 자신의 바람이 무엇인지 직시했다. 그녀는... 여전히 돌아가고 싶었다. 고향으로, 바다로, 가족의 품으로.

­셋, 둘, 하나. 자... 이제 눈을 떠라.

".....어?"

그의 말에 따라 눈을 뜬 혜윤은 당황했다. 그것은 정말로 예상 외의 풍경이었다.

사람을 뼈 채로 씹어 먹는 쇳덩어리 짐승도, 두꺼운 암반을 두부 썰듯이 베어버리는 기계 병사도, 귀를 때리는 요란한 소리로 날아다니며 총을 쏘는 드론도.

모두,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가로막힌 고성은 어느새 물이 가득 차올라 호수에 가까운 작은 바다가 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그녀 자신이 서 있었다. 그리고 성을 순식간에 잠기게 한 물은, 그녀가 창을 꽂은 바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거 봐, 내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잘 됐지?

"이, 이게 뭐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이거... 전부 네가 한 거야?"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사내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저 네가 가진 마음의 힘을 현실로 이끌어내도록 조금 도와줬을 뿐. 이건 전부 네가 한 일이야.

"내가... 한 일?"

어지간한 소도시 하나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이 성을 이 짧은 시간 내에 물에 잠기게 하는 일은, 물 원소를 전공한 어지간한 대마법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고도, 그녀는 별 다른 피로를 느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그녀가 다루는 보조 마법을 별 것 아닌 재주라고 무시하던 마법사들도, 자신들은 신에게 선택 받은 자들이라며 으스대던 권능과 가호의 보유자들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을, 별로 가진 것이 없던 자신이 해내다니.

­그래서, 기분이 어때?

"...."

쿠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사내가 자신의 모습을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을 절대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힘을 더 갈고 닦는다면, 언젠가 네가 바라는 꿈을 이룰 수도 있겠지. 만일 생각 있다면, 언젠가 다시 한 번 랜드필에 들리라고. 난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것으로 사내의 목소리는 끝났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성에 가득 찬 물이 전부 빠진 후에서야, 쿠린은 방전되어 쓰러진 기계 장치 괴물들 사이를 지나 이미 성 밖에 모여 있던 생존한 원정대원들과 합류했다.

이 날, 모험과 자유의 나라 데스페라도에는 당사자인 쿠린의 입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선생'이라는 존재와 그가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졌다.

*

"...이거 제대로 당했네. 설마 우리 쪽의 인원을 이렇게 이용할 줄이야."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던 남자, 데스페라도의 대표이자 길드 마스터인 정 시우는 창문 너머 어떠한 이야기에 대해 열띈 토론을 나누는 길드 소속 모험가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 남자가 가진 힘이 보통 힘이 아니라는 것은 그 남자의 부하들과 몇 번 부딪혀서 확인하긴 했지. 다만, 그 때는 그냥 조금 골치 아프겠다는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이내 시우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베테랑 골드 등급 모험가 쿠린이 최근 갱신한 스테이터스 내력이 적힌 종이를 집었다. 그의 눈이, 종이의 끝부분에 적힌 곳을 향했다.

스킬? : [그리운 바다]

­ 사용자를 중심으로 주변 환경을 '바다'로 바꾸고 이하의 능력들이 활성화된다.

[상시 수증 호흡]

[수영 속도 상승]

....

종이에 적힌 내용은 많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래에 적힌 갖가지 내용은, 전부 첫 대목에 적힌 능력을 보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에.

"주변 환경을 일시적으로 바다로 바꾼다라..."

전투에 있어서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녀가 이번에 새로 얻은 힘은 그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바꾸는 힘.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힘은 마법이 아니기에 마력을 소모하지 않고 가호나 권능 등이 아니기에 신성력의 차단으로도 막을 수 없다. 단지 정신적인 체력을 조금 더 소모하는 것만으로, 적진을 순식간에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바꾸는 그 능력은 많고 많은 마법과 권능과 가호가 판치는 이 아티피아 내에서도 무척 희귀한 부류였다.

그리고... 아마 그 '선생'이라는 남자가 쥐어 준 힘이겠지. 둘 사이에 어떠한 거래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날, 모험가 쿠린은 선생과의 거래 자체를 숨겼으니까. 물론 그걸 빌미로 그녀를 압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안 그래도 부진한 실적으로 길드 내에서 입지가 좋은 편도 아닌데, 그렇지 않아도 목숨을 건 원정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왜 선생과 거래를 한 것을 숨겼냐고 추궁하면 길드가 모험가의 인권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우선시한다며 그대로 길드를 나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모험가 길드는 자유의 보장이라는 원칙 때문에 다른 도시들에 비해 통제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전력이 또 줄이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다. 그것도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꾼다는 파격적인 능력자라면 더더욱.

또한 정시우는 선생에 대한 평가를 다시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 원정대가 큰 타격을 입은 던전은 확인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위험도가 상당히 높았고, 플레티넘 등급 모험가 여럿이 나섰어야 할 수준의 마궁이었다. 그런 위험한 장소를, 고작 골드 등급 모험가 한 명이 전멸시킨 것이다. 골드 등급 능력자조차 그 힘을 각성하면 이 정도 수준인데, 만일 플레티넘 등급 모험가들이 그 힘을 손에 넣는다면?

여태 데스페라도가 가진 타국에 대한 억압력은, 대부분 길드 마스터 정시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정 시우 본인을 제외하면 데스페라도는 처참할 정도로 전력이 낮은 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만일 모든 길드원들이 그런 강한 능력들을 얻게 된다면? 힘의 균형은 단숨에 무너지리라.

그리고 균형의 붕괴는 혼돈을 초래하겠지. 과연 혼돈을 담당하는 외신이 특별히 아끼는 사도답다.

일반적으로 혼돈을 초래한다하면 대부분 테러 같은 파괴 행위로서 혼란을 일으키는데, 이번 사도는 다르다. 그는 만일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곤란해질 정도로 이 아티피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 예정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될 테고, 그렇다고 죽이자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는, 정말이지 상대하기 골치 아픈 존재인 셈.

"정의의 여신이 괜히 예언을 내린 것이 아니었군."

그렇다면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한 명이자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로서, 정 시우가 내릴 결론은 정해져 있다. 선생과 거래를 통해 길드의 무력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세력을 키우지 못 하도록 견제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누군가를 돕는 것과 동시에 방해한다. 모순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실제로 다르지도 않고. 그러나 정시우는 이를 행하는 데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랜드필의 선생에게 서신을 보내야겠군. 가능한 빨리 우호적 관계를 맺고 싶다고."

왜냐하면,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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