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42화 (142/229)

〈 142화 〉 뭐야, 그거. 몰라. 무서워.(2)

* * *

나는 데스페라도에서 찾아온 모험가를 죽이지 않고, 되려 나의 씨앗을 몸에 심은 채로 돌려 보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녀의 생명이 죽음의 문턱 앞에 서는 순간이 다가왔고, 나는 씨앗을 매게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지막 순간,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원래 인간이란,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가장 솔직해지기 마련이다. 죽음은 완전한 끝을 의미하고, 이후의 자신을 생각할 필요가 없기에,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묶고 있던 갖가지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물론 남겨진 이들을 생각하는 배려심 넘치는 이들은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남겨질 이들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 자유롭고 솔직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직감한 그녀에게, 나는 무엇을 바라냐고 물었다. 마지막 순간,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그녀가 바란 것은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것.

내가 그녀에게 심은 씨앗은 그 의지에 반응하여 순식간에 꽃을 피웠고, 그녀의 마음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풍경으로 바꾸는 힘으로서 각성했다.

그렇게 어지간한 대마법사도 하기 힘든, 거대한 고성을 순식간에 작은 바다에 잠기게 한 그녀의 업적은 그녀 자신과 함께 온 원정 대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 졌고... 랜드필에 사는 나, '선생'이 그 힘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정보가 모험가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내가 쿠린을 죽이지 않고, 심지어 씨앗을 심어서 살려 보낸 것은 다 이 그림을 위한 밑준비였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일개 개인이 가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기존의 파워 밸런스를 가볍게 무너트리는 힘. 기존의 힘의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염려에 나를 제거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겠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힘을 통해 자신의 전력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일종의...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지.

자, 과연 먼저 움직이는 쪽은 어디일까?

타인보다 부유해지기 위해 거위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 타인이 자신보다 부유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사람?

어느 쪽이든, 빨리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 누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세력을 적이나 아군으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으니. 뭐... 일단 모험가 길드 쪽은 사실상 적에 가까운 상황이긴 하지만.

"슬슬 랜드필도 안정화가 끝나가는 군."

동쪽 구역을 맡고 있던 조직 에시드 패밀리를 개박살내고, 희망자에 한하여 부하로 영입하고 거부하는 놈들은 모조리 추방했다. 이로써 랜드필에서 가장 세력이 큰 다섯 조직이 하나로 통합되었고, 조직 내의 분열과 갈등 또한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이제 지하에서 올라오는 유독 가스만 처리하면, 랜드필 내부의 문제는 전부 해결되는 셈.

나는 조직원들 전원에게 씨앗을 뿌렸다.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미리 말하지만 여기서 씨앗이라는 건 물론 정자가 아니라, 내 능력의 씨앗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휘두를 수 있는 힘은 씨앗을 심고 욕망을 매게로 그 사람 고유의 마음의 힘을 각성시키는 것. 누가 어떤 능력을 각성할 지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렸기에, 나는 부디 이 많고 많은 이들 중 최소 한 명이라도 저 가스를 다룰 수 있는 능력자가 탄생하길 바라며, 나는 뿌린 씨앗의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선생, 질문 하나 해도 돼?"

"음? 뭐지?"

내 호위이자 충실한 심복이며 동시에 내 계획을 전부 전해 들었던 아이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각성하는 능력은 당사자가 마음 먹기에 달라진다고 했지?"

"그렇지."

"그럼 그냥 가스에 관련된 능력을 각성하도록, 능력을 각성할 사람의 정신을 유도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 최면이라던가 정신 조작이라던가..."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뭐야, 그거. 몰라, 무서워."

"어?"

"어떻게 사람의 정신을 주무른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아무렇게 말할 수 있어? 어우, 세상에."

"어? 어어? 자, 잠깐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 당신이 그렇게 나오기야?!"

내가 보인 반응이 뜻밖이었는지 아이네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허둥지둥거렸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녀가 설마 저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떠올릴 줄이야.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안 돼."

"응? 어째서?"

"설명하기 복잡하긴 한데... 사람이 품는 소망이라는 건 원래 하나가 아니거든."

누구나 가끔 한 번 정도는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 하지 말라고 하니까, 하면 안 된다고 하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반발심리.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고, 흐르는 물길보다 더 역동적이고 다채롭다. 심지어 몇몇 인간은 자기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확신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다. 내가 가진 힘은 그 중에서 가장 강한 욕망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설령 최면이나 정신 조작을 통해 억지로 누군가에게 하나의 욕망을 강조한다고 할 지라도 내게서 씨앗을 받았을 때 반드시 그 욕망과 관련된 능력을 각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주입된 생각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 외부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는 순수하고 강렬한 자기 자신만의 욕망에 비하면 더 없이 빈약하고 허무하다.

정말 내 힘으로 원하는 하나의 능력을 각성시키고 싶다면, 그 당사자에게서 다른 능력을 각성할 변수를 전부 제거하는 수 밖에 없다. 즉, 그 능력을 끌어올릴 욕망 이외의 감정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물론 그 이론 자체가 잘못된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결과도 엉망이지만.

욕망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며 그 사람의 의지이다. 하지만 욕망 이외의 감정을 전부 제외하면 정작 원하는 것을 얻어도 그 순간의 충족감, 목표를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도 없을 것이다. 고된 길 끝에 얻은 보상이 달콤한 것처럼, 고난이 있기에 그 길에 가치가 있는 법. 하지만 하나의 능력을 억지로 각성시키겠다고 다른 감정을 전부 제거하는 순간, 그 만들어진 감정은 스스로의 가치를 잃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비교할 다른 감정이 자신의 안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일부로 원하는 능력을 각성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으음..."

"뭐, 그렇지만 그런 능력을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유도할 수는 있지. 어릴 적에 아픈 사람들을 자주 보다보면 그들을 낫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의사가 되는 꿈을 갖는 것처럼, 특정한 생각을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있기는 해. 다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 성공률이 그리 높지는 않지. 그리고 솔직히... 이 랜드필에서 가스 때문에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없잖아?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이들 중에서 이 가스를 어떻게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긴...."

"뭐, 그런 거지. 어쨌든 이제 남은 일은 주변 공기를 정화하거나 혹은 가스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류의 능력자가 각성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선생님, 큰 일 났습니다!!"

콰앙! 닫힌 문이 부숴질 기세로 거칠게 열리며, 아이네와 함께 내 심복이며 호위인 바인이 다급히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평소에 내 앞에서 누구보다 예의를 차리는 바인이 저렇게 급하게 다급히 행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급하다는 뜻인데... 어째 이 세상에 와서 대부분의 계획이 당사자인 내가 불안하리만큼 순조롭게 흘러간다 싶었더니... 역시나.

"홍등회 조직의 간부였던 카룬을 중심으로 능력을 각성한 몇몇 조직원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미리 상정해 두긴 했지만, 막상 정말로 일어나니 기분이 참 씁쓸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을 품을 수는 없으니 당연히 나에게 반발하는 이들이 나올 거라고 예상이야 했지만, 하필 통합된 조직 내에서 배신자가 나올 줄이야. 아끼며 기르던 개에게 손을 물린 심정이다.

"현재 카룬은 비행선 선착장이 있는 동쪽 구역에서 동료 세 명과 함께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음 비행선이 도착할 때까지 불과 15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들이 각성한 능력이 능력이다보니 어찌 손을 쓸 수가..."

"안내해라, 바인."

체벌과 보상. 채찍과 당근이라고도 하지. 누군가를 교육할 때 처벌만 해서는 반발심을 품게 되고, 보상만 주면 교육자를 만만하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적절한 교육자라면, 이 채찍과 당근을 적절하게 분배함으로서 상대를 확실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요새 일이 좀 많아서 채찍을 휘두르지 않았더니, 이것들이 당근을 먹다가 배가 불렀는지 제멋대로 날뛰네? 슬슬 채찍의 맛도 보여줘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아이네, 너는 모노를 좀 챙겨줘라."

"에엑... 아니, 왜 자꾸 나한테 그 여자 뒤처리를 시키는 건데?"

"같은 여자끼리니 상관 없지 않나?"

"상관 있거든! 그 여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서워! 나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이라고!"

"엄살 부리지 말고."

"쳇..."

나는 아이네에게 모노를 부탁하고서, 곧바로 비행선 선착장이 있는 랜드필 동쪽 구역으로 향했다. 두 다리에 바람을 휘감고 하늘을 달릴 수 있는 바인의 등에 업혀, 쉴새 없이 멀미를 한 끝에 나는 랜드필의 남쪽 구역에서 동쪽 구역에 단 3분 만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배신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비행선 선착장에서 내가 본 광경은...

"움직이지마! 움직이지 마라고! 허튼 수작 부렸다간, 이 녀석 머리가 날아가는 거야!!"

검은 머리카락 위로 고양이 귀가 난 여자가 비행선을 타고 랜드필에 들어왔을 외부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어 인질로 삼은 채, 다음 비행선이 도착하기 전까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빽빽 내지르며 뻐팅기고 있는 개판이었다.

...이래서 턱바퀴는 믿어선 안 되는 건데.

*

카룬.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고, 또 비참했다.

본래 마보로시마의 고양이 수인족이었던 그녀는 성년식을 치루자 마자 장로의 허가를 받고 섬을 나와 그토록 꿈꾸던 기술의 도시 메타버스 시티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가 막 섬을 나왔을 당시에는 아직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세운 규율과 정의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기 전이었고, 그녀가 타고 있던 비행선은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각자 섬기는 신들과 적대 관계인 신들을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일곱 대표자들이 내세운 법을 지킬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고, 불과 열 다섯에 불과했던 카룬은 자신을 지켜주던 섬에서 나오자마자 복부 아래에 치욕스러운 노예의 인장이 새겨지는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다.

사로잡힌 노예들은 곧바로 지하 도시 랜드필로 보내졌다. 그 당시에도 랜드필은 그 험난한 환경 탓에, 치안을 유지할 병력을 보내는 것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정 때문에 각종 위법적인 일들이 이루어지던 범죄자들의 놀이터였다. 온갖 마약이 밀거래 되는 것이 일상인 랜드필에서 노예제의 폐지로 사라진 노예의 밀매 정도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일상'이었다.

다행히 카룬은 랜드필에서 성격 나쁜 주인을 만나 성노리개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사는 대신, 홍등회의 눈에 들어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 들여지는 행운을 얻었다. 비록 하복부의 노예 문신은 지울 수 없었으나, 그녀는 홍등회의 조직원으로서 가끔은 다른 조직원들과 무기를 부딪히고, 가끔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일정한 금전을 거래로 자신의 몸을 파는 등... 어느새 그녀는 랜드필의 주민 중 한 명으로서 버려진 도시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이 선생이라 부르는 존재가 나타났다.

기이한 힘을 휘두르는 수상한 사내. 그는 압도적인 힘으로 순식간에 카룬이 소속된 홍등회를 포함한 랜드필의 조직들을 통합했고, 에시드 패밀리가 검거하던 동쪽 구역마저 되찾으며 다섯 구역으로 찢겨진 이 도시를 통일해냈다.

여자를 좀 많이 밝힌다는 유일한 단점만 제외하고 본다면, 그는 확실히 랜드필의 은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준 씨앗을 삼키고 특별한 힘을 각성한 순간, 그녀의 머리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 이거 잘만하면 다른 도시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거 아니야?'

카룬의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은 자신이 속한 도시를 도우려는 은인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충의가 아닌, 자신이 원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그리고 이제는 가질 수 있게 된 것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이었다.

그 사람이 준 이 강력한 능력이라면, 이 퀴퀴하고 우중충한 랜드필에서 계속 썩을 필요가 없다. 미리 눈 여겨 봤던 몇 명과 함께 이 도시를 떠나, 메타버스 시티나 데스페라도에 가기만 해도 자신들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돈, 명예, 그리고 권력. 머릿속에서 주판을 몇 번 튕긴 카룬은 이내 이 랜드필을 멀쩡한 도시로 바꾸는 것보다 자신이 멀쩡한 도시에서 새 시작하는 것이 더 편하고 얻을 것도 많다는 계산을 끝냈고, 귀가 얇고 능력이 유용한 조직원 몇을 설득해서 랜드필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획을 결행하는 당일, 본래 뜻을 같이 하기로 한 조직원 하나가 차마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은인을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과 동료들의 배신 계획을 선생의 심복들에게 고해하고 말았다.

어차피 배신 계획이 들킨 이상, 처리되는 것은 시간 문제. 그렇게 판단한 카룬은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비행선 선착장을 무단 검거하여, 랜드필을 떠날 비행선이 도착하기 전까지 농성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단 10분만 더 버티면, 이 랜드필을 벗어날 수 있는 비행선이 온다. 배에 찍힌 치욕스러운 노예의 낙인과 에시드 패밀리가 폭리에 가깝게 착취하는 비행기 표 값, 그리고 특별한 능력이 없기에 부족한 전투 능력 때문에 여태 떠나지 못 했던 이 지긋지긋한 하수구를 떠날 수 있다는 뜻이기에 카룬은 더더욱 필사적이었다. 앞으로 10분만 버티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에, 열 다섯의 나이에 섬을 떠난 후 망가져 버린 자신의 인생을 뒤늦게라도 보상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에, 그녀는 죄 없는 외부인의 머리에 총구를 바싹 붙인 채 목이 갈라져라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다.

랜드필은 그 열악한 환경 탓에 외부의 개입이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곳. 랜드필의 땅을 검거하던 조직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마약 밀매나 매춘 등을 허가하고 그 대가로서 받은 돈으로 자신의 조직원들을 먹이고 입힐 식량과 의류를 외부에서 수입했다. 허나 만일 랜드필에 찾아온 외부인이 내부에서 벌어진 다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그녀가 인질로 잡고 있는 외부인이 평범한 관광객도 아니고, 무려 그녀가 그토록 가고자 원했던 기술과 혁신의 나라인 메타버스 시티에서 찾아온 높으신 분이라면?

그녀와 동료들을 둘러싼 조직원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자칫 잘못해서 그녀를 자극했다가 인질이 다치면, 그로 인해 외부와의 무역이 끊기면 랜드필에서 수많은 이들이 굶어 죽을 것이 뻔하기에.

오직 저울의 한 쪽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이 열악한 도시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것이다.

"하, 진짜..."

하지만 그녀가 계산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일방적 파기. 그로 인한 손해 배상을 받아가마."

어디선가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분명 인질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었을 자신의 팔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자신의 허벅지에 총구를 겨누며 그대로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애써 억누르며,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의 앞에 한 사내가 여유롭게 걸어왔다.

"그러게, 약관을 잘 확인 했어야지."

수많은 능력자들을 양성한 랜드필의 은인 선생은, 자신이 준 칼날로 자신을 겨누는 배은망덕한 학생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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