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뭐야, 그거. 몰라. 무서워.(3)
* * *
* 이번 편의 마지막 부분에 다소 잔인한 표현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현재 이 세상에서 나의 공식적인 신분은 아마 '전과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음에도, 그저 이 세상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한 여신이 위험하다고 예언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판도 거치지 않고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만이 갇힌다는 수용소 최하층에 한 달 정도 갇혀 있다가, 여신 못지 않고 권력을 가진 일곱 명에게 가지고 있던 힘의 유용성을 인정 받아 조건부로 석방이 허가 중인 사람.
그게 나다.
완전히 자유가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내건 조건을 어기지 않는 동안에만 허용되는 석방이기에, 사실 전과자라기보다는 갇혀 있지 않는 수감수에 가까운 편이다.
참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이 세상에 막 넘어와서 제대로 된 신분조차 없는 사람을, 앞으로 위험한 일을 벌일 지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붙잡아서 가두라고 명령한 여신이나...
그 억울하게 갇힌 사람이 굉장히 유용한 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까지, 여신의 단독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던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나...
어쨌든 현재 나는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의 허가 하에 조건부 석방된 상태이고, 그들이 내건 조건 중 하나라도 위반하는 순간 나는 다시 스카이론의 최대 규모 수용소 새장의 최하층에 복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동의 없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말 것'.
만일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무슨 수를 써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못하는 조건을 내걸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런 조건을 내걸어 버리면 혹시나 내가 누군가에게 능력을 각성시켜 준 것으로 그 사람 자신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 때문에 아예 능력 자체를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기스토스의 대표 엘레이스타가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의 회의에서 나를 석방시키는 제안을 한 것은, 당연히 내 능력을 분석하고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석방을 하는 대신에 그 능력을 쓸 수 없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주객전도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대의 동의 없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조건을 내건 것이다. 나의 능력으로 인해 생길 지 모를 피해를 최대한 예방하며, 혹시나 나를 적대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 힘에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내가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예외의 상황을 허락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역으로 이용했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특별한 능력을 쥐어 주기 전에, 너희들에게서 한 가지 약조를 받았었지. 능력을 얻는 대가로서 나의 부하로서 충성을 다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맹세를. 카룬, 너는 그 맹세를 어겼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는 다른 이들을 배신했다. 그러니 계약을 어긴 것에 대한 대가로서, 너에게 준 것 이상을 다시 앗아가겠다."
"...시발, 어디 해볼 테면 해 보시던가."
나는 경고했고, 배신자는 코웃음치며 내 경고를 무시했다.
"평생 충성을 바치라고? 미친 소리. 이 능력이 있으면,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어. 그동안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다시 보상 받을 수 있는데, 내가 왜 이 망할 도시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 난 그럴 생각 조금도 없거든? 애초에 갑자기 나타난 어디서 뭘 하던지도 모를 당신 같은 인간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바칠 리가 없잖아!"
"그래. 우리가 충성을 바쳤던 것은 우리들의 보스지, 갑자기 나타난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야."
"두목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우리들이 그렇게 순순히 당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라고."
카룬의 악에 받친 외침에 힘을 얻은 그녀의 동료들이, 한 명씩 내게 받은 씨앗을 통해 각성한 능력을 사용했다.
우선 도계의 조직원이었던 배신자가 [정당한 결투]를 통해 공격 수단을 제한하고, U.F 출신 배신자가 [나의 우상]을 통해 나를 상대할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에시드 패밀리에서 거두었던 배신자가 [병창고]에서 꺼낸 장비로 그림자를 무장시켰다.
[정당한 결투]는 적과 아군을 하나씩 골라 어느 한 쪽이 전투를 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서로 그 대상에게만 공격할 수 있고 다른 대상에게 공격 받지 않게 만드는 능력. [나의 우상]은 사용자가 생각하는, 자신보다 생각하는 가장 대단한 우상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고, 마지막으로 [병창고]는 무구에 한해서 한계 없이 보관할 수 있는 아공간을 갖는 능력이었다.
U.F 배신자의 [나의 우상]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는 그가 속한 조직의 U.F의 보스 마이어의 전성기 시절의 그림자. 그 그림자는 [병창고]에서 꺼낸, 에시드 패밀리와 전투 이후 압수했을 터인 전신 슈트나 레이저 블레이드, 머신 건 등의 최첨단 장비로 무장했으며 [정당한 결투]의 능력으로 나 이외에 다른 이의 전투 참전을 금지했다. 셋의 능력은, 강력한 단일의 적을 상대로 최적화 된 능력들이었다. 저 정도면 종합적인 전투력은 A 랭크 중에서 최상위권, 모험가로 치면 플레티넘 등급 모험가 중에서도 최상급 정도는 되리라.
근데, 어쩌라고?
"너희들, 한 가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손벽을 짝, 하고 부딪히자 무장한 그림자는 태양 아래의 눈사람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버렸고, 도계의 조직원이 펼쳤던 영역 또한 서서히 흐릿해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내가 너희에게 능력을 줄 수만 있지, 다시 거둘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이들의 능력, 심상의 힘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삼킨 씨앗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평생을 검의 수련에 매달린 사람조차 간신히 행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심상의 힘을 제 수족 움직이듯 손쉽게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내면에 뿌리 내린 씨앗이 그들의 마음과 현실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 씨앗은 내 힘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고, 나는 그 씨앗을 언제든 통제할 수 있다.
즉,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내 힘으로 각성한 능력자들을 다시 무능력자로 만들거나, 혹은 그 능력을 폭주시켜서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자신들의 능력을 다시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 배신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그들이 이 깜찍한 쿠데타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내게서 받은 시앗을 통해 얻은 힘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 능력을 다시 앗아간다면? 그들은 이전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저 이 버려진 도시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다 어느 순간 숨이 끊어져도 누구도 기억 못할 존재하나 마나 한 버러지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누군가는 기억하겠군. 이 도시에서는 죽어도 어딘가 묻힐 공간이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썩도록 방치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이 척박한 환경 탓에 부족한 식량을 그 유해로 만든 요리로 대체하겠다는 놈들도 있었으니. 누군가는 이들의 살이 어떤 맛이 났는지 기억해 줄 수도 있겠지.
"으윽...!"
내게서 받은 능력 하나 믿고 설치던 이들은, 막상 내가 나타나서 그 능력을 다시 뺏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깨달은 이들은 겁에 질려 위축되어,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야, 다들 정신 안 차려? 우리가 이제라도 투항한다고 해서, 저 인간이 우릴 용서하고 다시 받아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끔찍하게 죽을 거야. 다시는 자신에게 반항하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본보기로서 끔찍하게 죽일 게 뻔하다고! 그러니까..."
"닥쳐! 시발련아!"
배신자 카룬은 투항 의지를 잃은 동료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외쳤으나, 돌아온 것은 원망 섞인 외침 뿐이었다.
"다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확실한 계획이 있으니 너만 믿으라고 말했잖아! 우리들은 네가 말만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이게 뭐야! 네 그 알량한 꾐에 넘어간 것 때문에 기껏 얻은 능력도, 그동안 몸을 담았던 조직의 신용도 잃었어! 그리고 이제 목숨마저 잃기 직전인데, 뭐? 포기하지 말라고? 지금 장난하냐!"
"이 미친 놈아, 애초에 너도 내 계획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하며 따라왔던 거잖아! 그리고 일이 이렇게 틀어진 것도, 갑자기 우리 뒤를 치고 밀고한 그 배신자 때문이지 내 탓이 아니잖아!"
"그 녀석이 밀고할 때만 해도, 뒤늦게 계획을 그만두고 용서를 구할 수 있었어! 그런데 네가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한 탓에 이렇게 된 거잖아!"
"제기랄, 저딴 골 빈 년의 계획 따위에 어울리는 게 아니었는데..."
"시발, 시발, 시발...!"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거나, 아니면 분열하여 전부 네 탓이라며 서로 잘못을 떠넘기기 바쁘거나.
카룬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저항을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정작 그녀와 함께 행동하던 동료들은 전혀 생각이 달랐다. 애초에 그들이 나를 배신하고 이 랜드필을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도, 내가 준 능력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 밑에 깔려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순간에 다시 능력을 거둬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그들은 저항을 그만두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내 능력이 없어도 밖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그동안 이 랜드필에서 계속 있었을 리가 없으니.
"선생님... 저희들은 투항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목숨과 능력만은 빼앗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 능력이 없다면... 저희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희들이 저 간악한 년의 말에,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입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용서를...!"
세 사람이 단숨에 인질을 놓아주고 손에 든 무기를 버리며 투항했다. 이제 남겨진 배신자는 단 한 명.
"시발...! 도대체 왜 그러는 데!"
궁지에 몰린 그녀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 다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데... 왜 그걸 막는 거야! 어차피 당신 같은 괴물에게 있어서, 나 같은건 있으나 마나 잖아! 그냥 보내줘도 괜찮은 거잖아!!"
"멋대로 조직의 병창고를 털어 무기를 훔치고, 그걸로 외부인을 인질로 잡아서 이 도시를 빠져 나가려다 실패 해 놓고서 한다는 말이 그게 전부냐?"
논리로는 이길 수 없으니 감정에 호소한다. 정말 전형적인 수법이다. 근데 감정에 호소하기에는, 벌인 일의 규모가 너무 크다.
자신의 이익 하나를 위해, 자신이 살던 도시 전체를 곤경에 빠뜨려 놓고서 한다는 말이 저게 전부라니. 정말 이기적인 년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뭐. 어디서 굴러 먹다 온 건지도 모를 나 같은 놈을 섬기기 싫다는 생각은 이해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이런 사건을 벌인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뜻이 맞는 이들을 꼬드겨서 그 동안 몸 담은 조직을 배신하고, 조직에서 보관 중인 무기고를 털어 각종 무기들을 빼돌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죄 없는 외부인을 인질로 삼았다. 외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유독 가스 때문에 농사는 커녕 동물들조차 제대로 살기 힘든 이 랜드필의 주민들이 식량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외부와 무역을 끊어 버리는 대참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그녀는 결국 인질극을 벌였다.
이후 외부의 다른 도시들이 랜드필을 위험한 곳으로 여겨 식량의 수출을 중단하여 랜드필의 주민들이 죄다 굶어 죽을 수도 있는데, 그 때 자신은 어차피 더 이상 랜드필에 있지 않을 테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그렇게 온갖 곤란한 사건을 다 벌여 놓고 한다는 말이, 왜 자신을 그냥 보내주지 못해서 안달이냐니.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 방식인가? 치안이 개판인 랜드필에서 너무 오래 지낸 탓에, 어디까지가 나쁜 일이고 옳은 일인지 구분도 못하게 된 건가?
"닥쳐, 닥쳐, 닥쳐...!"
하지만 대화라는 것은 양쪽이 서로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의지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 톱니바퀴도 서로 맞물려야 돌아가듯, 대화라는 것도 쌍방의 뜻이 맞아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팩트로 후드려 패도, 그녀가 내 말을 죄다 귓등으로 흘려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빼액거리면 대화는 맞물리지 않는다.
게다가 궁지에 몰린 쥐가 최후의 발버둥으로 천적인 고양이를 물어 뜯는 것처럼, 현재 그녀는 랜드필 외부에서 온 사람의 목숨을 인질로 잡은 상태. 섣불리 그녀를 자극했다간, 인질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인질이 된 사람의 생사보다, 그 인질이 목숨을 잃음으로서 생길 후폭풍을 막기 위해, 나는 아직 그녀를 힘으로 제압하는 대신 스스로 항복하도록 설득하려 노력했다.
"내가, 내가 뭘 어쨌다고...! 할 수 있으면, 하면 되는 거잖아! 뺏을 수 있으면 뺏고,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면 빼앗기지 않는 게 이 랜드필의 방식이잖아!"
역시,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잔뜩 흥분한 듯 실핏줄이 돋아난 눈, 심하게 헐떡이는 호흡과 부들부들 떨리는 손. 그녀는 이미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타인의 말을 듣기 싫어 귀를 틀어 막은 주제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멋대로 토해내는 사람을 상대로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말로 해결할 수 없기에, 나는 매를 들었다.
"나는 랜드필의 방식대로 한 것 뿐인.... 으, 으윽...! 구웨에에에에엑...!!"
목이 갈라져라 소리를 지르며, 당장이라도 인질의 미간에 겨눈 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할 듯이 으르릉거리던 그녀는 갑자기 낯빛이 창백해 지더니, 이내 우렁한 소리와 함께 몸 안에 담겨 있던 것을 전부 쏟아낼 기세로 바닥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만 보면 뭘 잘못 먹었나 싶을 테지만, 그 외에도 그녀의 몸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그녀의 상태가 단지 갑작스러운 어지러움과 멀미로 인한 구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우, 우웨에에에엑....! 흐윽, 끄아아아아! 윽, 으으, 으아아아아악! 아, 아파! 아파아아아! 우읍, 구웨에에엑!!"
토사물을 마구 쏟아내다 비명을 내지르고, 고통을 호소하다 다시 속을 게워 낸다. 그리고 이내.
"시아발내파가대아체뭘파어쨌아다고파이런아꼴을파겪어너야하무는거아야나파는아죽무것을도잘것못한같게없아어나제는그발저내살가려배운줘대로너행동무할뿐아이라파고나아한테프대체다왜그고러는아거야파!!"
그 끔찍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된다.
"아파... 아파... 아파아아..."
"시발! 난 아무런 잘못이 없단 말이야!"
"우웨에에에엑....!"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더 이상 아픈 건 싫어...."
"끄윽, 그으으으... 그르르르륽....!"
그렇게 변화된 그녀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끔찍한 참상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던 비위가 약한 몇몇 이들은 헛구역질을 하거나 심한 경우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참혹했다. 마치 사람의 몸을 부품을 조립하여 만드는 조각품을 다루듯, 아홉 명 정도의 신체 부위를 분리하였다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놓은 듯한 기괴한 형상.
이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참혹한 형상의 '그것'은 몸 곳곳에 난 아홉 개의 입에서 저마다 다른 말을 쏟아내었고,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서로 다른 내용들을 다수의 입이 동시에 쏟아내자 그것은 그 어떤 사악한 흑마법의 주문보다 더 불길하게 들려왔다.
카룬, 그녀의 능력은 [고양이 목숨].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는 속설 그대로, 그녀의 능력은 죽음을 맞이해도 여덟 번까지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틀림 없이 강력한 능력이지만, 줄어든 목숨을 다시 보충할 방법은 없기에 추가된 여덟 목숨을 전부 소모한 그냥 무능력자나 다름이 없다.
지적 생명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갈망하지만, 삶에 대한 카룬의 욕망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렬했다. 그녀의 능력이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인 것은, 삶에 대한 그 필사적이가 강렬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녀의 능력을 폭주시켰고, 추가된 여덟 개의 목숨이 현재의 육신에 더해지며, 지금의 참상이 일어났다. 설령 용광로에 빠져 신체가 흔적도 남지 않고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자신의 신체를 지정된 때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현재의 육체에 중복 적용되면서 멀쩡한 몸에 다수의 신체 부위가 더덕더덕 돋아난 끔찍한 괴물의 형상이 된 것이다.
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끔찍한 몰골이 된 그것을 앞에 두고 잠시 주변을 살폈다. 조직원들의 눈에 경악이, 그리고 공포가 새겨짐을 확인했다.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무시무시한 광경에, 누구도 움직이지 못 했다. 혹시라도 비명을 질렀다가 자신 또한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혀까지 굳은 모양이다.
나를 배신하면 이런 끔찍한 꼴이 된다는 것을 녀석들의 머리에 단단히 새겨두었으니, 앞으로 내 뒤통수를 치는 배신자는 나오지 않으리라. 정말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이 아니라면 말이지.
자, 그럼 공포심은 적당히 준 것 같으니, 슬슬 뒷처리를 해볼까. 나는 폭주시킨 그녀의 능력을 다시 안정화 시켰고, 기괴하고 부풀어 오른 살덩어리들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다시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접붙이기 하듯 돋아난 신체 부위들이 하나둘씩 쪼그라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온 몸이 푸른 피멍으로 점박이가 된 채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참혹한 몰골의 한 여인만이 주저 앉아 있었다.
"아, 아아...."
너무 비명을 지른 나머지 목이 완전히 쉬어버린 것인지,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꺽꺽거리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 눈에 여전히 나를 향한 독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았을 땐, 솔직히 감탄했다. 이야, 근성 하나는 대단하네. 자신의 몸이 찢어졌다가 다시 재조립되는 엄청난 고통을 연이어 겪었을 텐데, 나에 대한 두려움보다 증오가 큰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년은 살려둬도 언젠가 다시 내 뒤통수를 치겠구나, 싶어서 그녀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 그 때.
"선생님. 잠시 기다려주세요."
조금 전의 참상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인파를 가르며 카룬이 소속되어 있었던 조직, 홍등회의 주인인 양마담이 내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싶어서 기다려보니, 그녀는 카룬에게 등을 보인 채 나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아랫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윗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법. 제가 거둔 아이로 인해 생긴 피해는, 제가 모두 받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