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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48화 (148/229)

〈 148화 〉 인간이 다섯 이상 모이면...(1)

* * *

현재 랜드필의 권력을 쥔 연합 조직 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는, 단연코 그들의 수장인 '선생'에 대한 것이었다. 본래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우두머리만 믿고 따르던 조직원들의 입장에서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조직의 통합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고, 갑자기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총괄적인 수장을 자처하는 '선생'의 등장은 그들로서 반가울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뱉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지금까지 그들이 따르던 우두머리를 향한 견고한 신뢰와 의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번 랜드필 동부 비행선 선착장에서 홍등회 간부였던 카룬이 벌인 인질극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통합 조직의 대장인 '선생'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외형, 그의 목소리, 그의 태도... 그리고, 그가 가진 힘.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생김새의 청년이지만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끔찍한 고깃덩어리로 변모시킬 수 있고, 그런 참혹한 짓거리를 벌여 놓고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태연한 태도까지... 오랫동안 다른 이들과 다투고 해치며 투쟁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었기에, 그 때 그가 보인 그 사람을 해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 없는 잔혹한 태도가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들이 얻은 이 강하고 신기한 힘을 준 은인이며, 동시에 언제 자신들을 그런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족칠 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 그것이 현재 랜드필에 만연한 '선생'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전의 선례처럼 멋대로 뜻이 맞는 이들끼리 반기를 든다던가 하는 사실상 자살의 동의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저지를 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들이 품은 불만이 온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해소되지 않는 불만을 차마 터트리지는 못하고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쌓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본래 자신들의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이들에게 더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솔직히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힘을 다루며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끔찍하게 죽일 수 있는 괴물보단, 평생 믿고 따르던 조직의 우두머리 쪽이 몇 배는 더 신뢰가 가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 에스크입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송곳파의 두목, 에스크. 랜드필 서부 조직의 관리자이자 내가 가장 먼저 영입한 조직의 대장.

"그래, 들어오도록."

끼이익. 원래부터 열고 닫을 때 소음이 큰 문이지만, 에스크는 그조차도 실례라고 여긴 것인지 최대한 조심스레 문을 들고 들어왔다. 도저히 한 조직의 우두머리라고는 믿기 힘든 저자세인 모습이지만, 그것은 그가 랜드필의 우두머리 중에서도 상하 관계를 가장 확실히 하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한 조직을 이끄는 거물이지만, 나는 그 이상의 존재라고 여기며 대우해주는 것이지.

"내가 말한 능력자가 너의 조직 내에서 나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이제 막 신입 티를 벗어낸 녀석들 중에서 뒤늦게 능력에 각성한 녀석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능력 중 하나를 각성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효력과 지속 시간, 그리고 잠재력 등은 어떤 것 같나?"

"일단 효과 자체는 확실합니다. 저번에 제 눈앞에서 유독 가스를 완전히 해독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잠재력도 괜찮아 보입니다. 다만, 지속 시간이나 사거리 등이 아직은 조금 불안합니다. 기껏해야 세 걸음 내의 공간만 해독이 가능하고, 해독에 3초 정도 걸리는데 능력을 한 번에 유지 가능한 시간은 불과 15초 남짓이라..."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겠군. 마침 에시드 패밀리 쪽에서도 하나, 그리고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랜드필 주민 중에서도 한 명이 내가 필요한 능력을 각성한 것이 보이더군. 다음에 한 번에 모아서, 내가 따로 교육할 테니 미리 준비해 두도록."

"예, 알겠습니다!"

"...에스크."

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 툭 두드리며 잠시 말을 쉬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에스크는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번 비행선 선착장에서 홍등회 간부였던 카룬이 벌인 인질극을 기억하고 있겠지?"

"예..."

"물론 그 때 사건을 벌인 이들 중에서, 네가 관리하는 송곳파는 없었다. 하지만 그게 송곳파 내에서 나에 대한 불만을 품은 자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에스크에게, 나는 옅은 미소를 띄며 어깨를 으쓱였다.

"에스크, 너는 가장 먼저 내가 내민 손을 잡은 사람이다. 그리고 너의 평소 태도 덕에 나는 너를 꽤 신뢰하고 있지. 부디 네가 아닌 이의 행동으로 인해, 너를 향한 나의 신뢰가 깎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신뢰란 것은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것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곧 외부에서 수작을 부려올 테니, 괜히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너의 조직원들 관리에 집중하도록. 용건은 이게 전부이니 이만 가봐도 좋아."

"예! 그럼..."

에스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문이 내는 소음에 주의하며 천천히 조심스레 물러났다. 양마담에겐 이미 책임을 물었고, 에스크에겐 경고해 두었으니... 이제 U.F의 보스인 마일러와 도계의 두령 도성운, 그리고 에시드 패밀리의 차기 우두머리도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해야겠지. 곧 시작될 외부의 보이지 않는 공격에 대비하고, 또 조직 내에서 다른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라고.

카룬의 인질극은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만든 능력자들이 가진 힘은 외부에서 탐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으며, 그 능력을 얻고자 이쪽의 사람에게 몰래 접근해서 회유하거나 나를 배신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힘을 분석하기 위해 멋대로 납치해서 해부하려는 미친 녀석들이 나올 지도 모르지. 애초에 랜드필은 무법지대이다. 이곳에서 어떤 더러운 짓을 벌이던, 그것을 따로 심판할 이는 없다.

이 도시에는 지켜야 할 법이란 것이 없기에 나는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걸어둔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반대로 법이 없기에 외부에서 무슨 더럽고 추잡한 개수작을 부려도 대처할 방도가 없다. 그렇기에 내부의 문제는 원래부터 랜드필을 주무르던 조직의 우두머리들에게 맡기고 외부에서 오는 공격은 마기스토스와 우호 관계를 맺어서 어떻게든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보아하니 엘레이스타도 최근 외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지라 이 쪽을 위해 시간을 내기 힘든 모양이다.

데스페라도의 길드 마스터는 이미 적대적인 관계라도 봐도 무방하고,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있던 마기스토스와 충돌 중인 다른 두 도시의 지도자들도 제외하면... 남은 것은 셋.

지저 도시의 왕, 무림의 천마, 그리고 환상의 섬의 장로.

환상의 섬은 애초에 무척 폐쇄적인 곳이니 도움을 구하긴 글렀고, 천마는 우호 관계를 두지 않는다고 하니, 실질적으로 내가 손을 뻗을 곳은 지저 도시 뿐이었다. 나중에 지저 도시 쪽에 우호적 관계를 바라는 서신이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외부의 도움을 받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이 도시에는 지금 당장에도 여러 문제가 닥쳐오고 있다. 내 힘을 탐내는 외부인, 랜드필이 외부와 무역에 의존할 수 없게 만든 척박한 환경, 그리고 언제 다시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낼 지 모를 하운드 부대...

그래, 하운드 부대. 정의의 여신을 섬기는 자들. 여신에게서 받은 강력한 권능과 가호를 휘두르며 죄인들을 붙잡는 소규모 정예들. 그리고 내가 이 아티피아에 와서 가장 처음 만난 녀석들이며, 동시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나를 단지 여신인지 뭔지 하는 것이 시켰다는 이유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붙잡아 스카이론의 새장 최하층에 가둔 망할 것들.

오직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말 만 따르는 그들은 그 어떤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어느 세력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신의 영향이 여타 다른 세계보다 크고 확실한 이 아티피아에서, 정의를 담당하는 여신의 명령에 따라 죄인들을 제압하고 구금하는 이들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은 없다.

그들이 다시 나를 노린다면 나로서도 그들을 상대할 수 밖에 없지만...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내건 제약 탓에, 상대의 동의 없이 해가 되는 행위를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이 쪽의 말에 귀를 조금도 기울이지 않고 문답무용으로 덤벼오는 그 미친 놈들만큼 까다로운 놈들도 없었다.

내가 이 랜드필에서 계속 세력을 키우는 것도, 사실 내가 직접 손을 쓸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에 나 대신 나의 적을 베어넘길 검을 제련하는 행위인 셈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 칼날이 뭉특해서 날붙이보다는 둔기류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충분히 잘 벼려지기만 하면 어지간한 적들은 다 베어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지.

그래, 결국 이야기는 돌고 돌아 또 이 문제다. 내게 위협이 되는 것들을 대처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데, 정작 그것들은 내게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닥쳐오고 있다. 그리고 이 준비들은 서두른다고 빠르게 끝나는 것도 아니라서, 나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하는 행동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우려하는 게 아닐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들은 죄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들이었으니.

외부에서의 보이지 않는 습격은 분명 있을 테지만, 신비의 수호자들 같이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미친 놈들이 아닌 이상 아직 랜드필의 내부 상황을 잘 파악하지도 못한 외부의 사람들이 벌써부터 적극적으로 행동할 리가 없다.

랜드필이 자립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인 유독 가스는 가능한 빨리 해결할 수록 좋은 문제이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급한 일은 아닐 뿐더러 유독 가스를 처리할 능력자가 현 시점에서 셋 정도 나온 이상 그들이 능력을 충분히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쉽게 해결 될 문제이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하운드 부대는 상식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지만, 나를 석방시켜 준 것은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며 아무리 여신이라도 해도 고작 나 하나 족치겠답시고 굳이 대립할 필요도 없는 이 세계 주민들의 대표 격인 이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괜히 자신의 패를 낭비할 생각은 없을 터이니, 하운드 부대가 이 랜드필에 당장 들이닥칠 일도 없다.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최선의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어쩔 때는 예상했던 것보다 순탄하게 흐를 수도 있고, 또 어쩔 때는 방향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괜히 기대를 했다간 그만큼 실망을 하는 법이기에, 나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정말 행운의 여신에게 미움이라도 받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일어날 리가 없을 정도의 불행이라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에 나는 그런 상황마저 전부 대비해야만 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그 어떤 상황에도 원활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최선의 이득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그 어떤 최악의 상황에 닥쳐도 내게 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

[빌어먹을.]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 그녀는 작은 황금 망치로 손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구름 사이의, 짙녹빛 유독 가스로 뒤덮인 도시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녀의 숙적, 고대의 외신이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장기말이 지금 저 도시에 있다. 그 혼돈의 신이 아끼는 인간, 그리고 현재 그 자의 사도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인간이 저 더러운 도시에 있다. 온갖 쓰레기들이 모여드는 저 버러지 같은 도시에서 그 인간 하나만 없애면 그만인데, 막상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그녀는 못 마땅했다.

앞으로 있을 '성전'을 위해서라도, 그 전에 그 외신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라도 더 줄여둘 필요가 있었다. 지난 번에 외신의 전력을 상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덤볐다가 뼈 아픈 손해를 보았기에, 유스티아는 더욱 철저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자신의 전력을 최대한 아끼며, 상대의 전력을 하나라도 줄인다. 오로지 혼돈을 가져오는 것 외에는 다른 무엇에도 관심 없는 그 늙은 신을 끌어내리고 자신의 정의를 영원토록 유지하는 것만을 위해, 그녀는 하급 신들의 반발을 각오하면서 그들의 세상에서 신의 힘이 듬뿍 담긴 인간들을 멋대로 징병하였다.

자신의 본대가 입을 피해를 줄이기 위한, 화살받이로써.

[이번 대의 하급 신들에게서 거둔 이것들도 슬슬 준비가 다 된 것 같고...]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뒤로, 내부가 반투명하게 비춰지는 호박색 보석 여럿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연결된 여러 가닥의 호스들을 통해 황금색 빛덩어리들이 계속해서 주입되고 있는 보석 안에는, 명백히 사람의 형상을 띈 것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세상에선 파괴를 부르는 마왕이었던 이, 누구도 따라올 이 없는 천재 마법사였던 이, 그리고... 선택 받은 용사였던 이까지.

[각오해, 혼돈의 신.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반드시 쳐부수고, 나의 정의를 실현할 테니까.}

유스티아의 동공이, 저울의 형상처럼 일그러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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