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인간이 다섯 이상 모이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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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비행선 선착장에서 카렌이 벌인 인질극으로 그녀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한 어떤 일을 겪었으며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랜드필에서 이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그럼에도 선생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대놓고 반발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타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토로했다.
"하, 싯팔. 진짜 그 선생이라는 작자는 뭐하는 인간이야? 도대체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이래?"
"낸들 아냐? 분명한 건, 우리가 살던 이 도시는 이제 진짜로 그 인간 소유라는 거지. 하..."
"설마 이 거대한 쓰레기통이나 다름 없는 곳을 가지려는 사람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강력한 능력을 손쉽게 줄 수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과 맞먹을 정도일 수도..."
한 명이 내뱉은 황당무계한 말에, 다른 한 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그 사실을 지적했다.
"야, 야. 사람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그 일곱 명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야, 괴물. 우리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고."
"그럼 네 눈에 선생은 우리랑 같은 차원의 사람으로 보이냐?"
"그건..."
그러나 돌아온 대답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의 눈에는 선생이라는 작자도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과 마찬가지로, 절대 자신들과 같은 차원의 인간이 아니다. 남들이 자신의 남은 인생 전부를 한 명의 신에게 모든 것을 바쳐서 겨우 얻을 만한 권능과 가호와 맞먹는 힘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어주며, 동시에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다진 고기마냥 으깨버리는 그 무시무시함과 잔혹함... 차마 앞에서 대놓고 적의를 표할 용기가 없기에 이렇게 뒤에서 속삭임을 나눌 뿐,
"시발, 뭘 그렇게 열을 내면서 대화를 하냐? 어차피 우리끼리 뭐라 씨부리던, 변하는 것도 없는데."
"하... 진짜 이 놈의 랜드필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냐."
"모르겠다. 머리 써봤자 소용도 없고. 애초에 언제부터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를 나눴냐?"
"하, 다른 건 모르겠고... 제발 그 선생이라는 양반이 갑자기 정신이 훼까닥 해서 다 죽이려고 들지만 않으면 좋겠다."
도계나 U.F 등의 조직에 소속된 조직원들은 한탄 어린 잡담을 나누다 이내 다 피운 담배 꽁초를 발로 밟아 꺼트리고선 뒷골목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담패를 피우던 골목길 바로 윗 골목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네는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하여간에, 선생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으면서 얼핏 본 몇 몇 모습만 가지고 별에 별 헛소리를 다 떠드네."
"선생님의 은혜를 입은 주제에, 배은망덕하긴...."
아이네는 그녀의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조직원들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다 결국 참다 못해 직접 나서려던 바인의 뒷목을 콱 움켜쥐어 붙잡으며 그를 나무랐다.
"저 녀석들을 쫓아가서 뭘 어쩌려고?"
"손 봐 줘야지. 다시는 저런 허튼 생각을 품지 못 하도록."
"아서라. 네가 그렇게 해봤자 선생에 대한 반발심이 줄어들기는 커녕, 되려 늘어나기만 할 걸? 특히 우리들은 선생의 힘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니까, 저 녀석들 입장에선 우리도 그렇게 좋게 보이진 않을 거다. 자기들 밑에서 길길 기던 병신이, 하루 아침에 자기들 머리 위로 올라가선 자신들을 내려다보며 잘난 듯이 설교를 한다고 해서 녀석들이 '아, 예. 그렇군요.'하고 수긍할까? 아니면 '에이, 시발 좆같은 새끼들'이라며 뒤에서 호박씨를 깔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바인의 입에서 나온 답답하기 그지 없는 말에, 아이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빈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하여간에, 이 자식은 평소엔 누구보다 냉정하고 침착하면서 선생과 관련된 일에만 엮이면 사소한 일에도 꼭지가 돌아버려선... 물론 선생에게서 큰 은혜를 입었다 보니 그것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바인은 그 정도가 심하다. 선생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그의 말을 마치 신의 계시처럼 받아들인다. 선생이 '사실 세상은 평평하다'라고 말하면 아마 곧바로 '그렇군요!'라고 수긍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 그녀는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일만 아니라면 누가 무슨 일을 하건 좆도 신경을 안 쓰는 성격이다. 하지만 바인의 경우에는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처지라서 느껴지는 일종의 동질감 때문에? 아니면, 평소에 자신이 벌인 사건을 수습하는 것을 도와주던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이네는 이 랜드필 출신치고는 답답하리만큼 머릿속이 깨끗한 백지인 청년이 무슨 사고를 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내 말은, 일종의 호감작을 하자는 거지?"
"호감...작?"
"잘 생각해 봐. 정치를 하는 양반들이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 도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어디 복지 기관 같은 곳에 수시로 방문할까?"
"음... 모르겠다."
"어휴, 이 빡대갈... 아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일종의 이미지 관리야. '내가 어디서 어떤 선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이지. 물론 고작 그 행동 가지고 그 사람이 정말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적어도 권력을 잡은 사람이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잘못한 아랫사람에게 끔찍한 처벌을 가한 후에 아랫사람들에게 뒷일을 맡기고 사라지는 것보단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 원래 사람은 자신이 보는 대로 믿고 생각하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 도우면서 그, '이미지 관리'라는 것을 한다면 선생님에 대한 인식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이런 말인가?"
"그래, 그거지. 뭐야, 너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아니,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의 입에서 그런 생각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야, 시발. 너 그거 내가 평소에 무식해 보인다는 말이지."
바인이 선생이라는 존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면, 아이네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심하다. 그녀는 분노 조절 장애와 조울증의 증세가 조금 있어서 평소에 워낙 여기저기서 날뛰느라 무식한 여자라는 인식이 강할 뿐, 사실 머리를 굴리는 능력 하나는 오히려 바인보다 능한 편이었다. 정말, 생긴 거랑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어쨌든, 그럼 선생님께 얼른 이미지 관리를 하자고 조언해드려야겠군."
"어차피 이 도시는 이미 선생 거지만, 여기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선생의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 랜드필이 정상적인 도시로서 기능하기 위해선, 선생이 얼른 이곳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할 테고."
그러나 그런 충성심을 품고 선생을 방문한 두 심복에게 돌아온 말은.
"응? 나 그런 거 안 할 건데?"
"어째서죠?"
"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태연하게 포기한 선생의 확고한 거절의 의사 표현이었다.
*
바인과 아이네의 생각은 이해가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선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러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는 것은 분명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나는 그 제안을 따를 생각이 없다.
애시당초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가공육 못지 않은 끔찍한 꼴로 만들었다가 다시 되돌리는 과정을 태연하게 보인 시점에서, 어지간한 행동으로는 그 때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 그럴 생각도 없고.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정통성의 증명이다.
랜드필은 본래 마기스토스에서 관리되던 작은 공업 도시였다. 지진으로 내려 앉은 후 유독 가스가 도시를 집어 삼키기 전까지는. 랜드필을 다시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자원과 예산, 그리고 희생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정상화에 성공해도 돌아오는 이득은 전혀 없었기에 모든 도시가 랜드필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랜드필은 그렇게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이후 각 나라와 도시들에서 추방된 죄수나 탈옥한 사형수, 혹은 부모 없는 고아들의 갈 곳 없는 이들이 이 버려진 땅으로 모여들게 되면서 랜드필은 공업 도시이던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대도시가 되었다.
물론, 환경과 인식은 어지간한 작은 시골 마을 이하였지만.
이곳 사람들은 단순한 약자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만 했고, 베푸는 것의 선함을 누군가에게 배울 여유도 없이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 자신을 채우는 방식을 몸에 익힌 자들이 살아간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동시에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서 빼앗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랜드필은, 버려진 도시는 그런 곳이다. 법이 없는 세계, 어떤 잘못을 해도 그 죄를 심판할 자가 없는 무법지대.
이곳의 유일한 규칙은 힘이 곧 법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힘을 가진 다섯 폭력 조직이 여태 랜드필을 통치했고, 이제는 내가 그들을 휘어 잡아 이 랜드필을 통치한다. 결국 이 도시에서 변한 것은 없다. 그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 아랫사람들의 입장에선 하루 하루가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고 내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과 체념 뿐.
그런 이들 앞에서 선한 행동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으려고 해봤자, 저 미친 또라이 괴물 새끼가 또 이번엔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빌드업을 하려는 걸까 하고 의심하거나 그래봤자 구역질 나는 위선에 불과하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나는 랜드필을 지배하던 조직의 우두머리들을 내 부하로 만들 때, 이 도시를 바꾸기 위해 도와달라고 말했었지."
나는 이 도시를 바꿀 것이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내게 건 제약, 그리고 나를 경계하는 여신과 그 추종자들. 그들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다. 법이란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고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오히려 나는 그 법이 없는 곳에서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이 작은 도시를 나의 입맛대로 바꾸기로 했다.
물론 애초에 난 혼돈의 신과 한 약속 때문에 넘어온 것이고 그걸 위해선 이 세상에 혼란을 가져와야만 하지만, 그 혼란이라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처음 내 계획은 신문물의 도입으로 인한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작은 갈등이라는, 어쩌면 마지막에 좋은 결과로 끝날 수 있는 작은 혼돈이었다. 혼돈이라고 해봤자, 크게 피해 볼 일 없이 그저 조금 휘청일 뿐인, 결과적으로 더 발전할 수도 있는 작은 트러블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단 말이다.
한 여신의 도를 넘은 행동과 그것을 묵인한 일곱 권력자의 태도가 나를 실망시켰고, 나는 이 세상을 통째로 뒤엎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걸 위한, 지면에 뿌리를 뻗는 과정이다.
이야기가 또 멀리 샜는데, 아무튼...
이 도시는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거점이고, 그래서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내가 이곳을 통치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 자격이라는 건 단순히 힘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여태 이 도시를 통치하던 조직들은 모두 하나 같이 어느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소 요구 조건에 불과하다.
홍등회는 양마담의 호의에서 시작된 그녀를 향한 신뢰.
송곳파는 두목 에스크와의 의리.
도계는 무력의 증진, U.F는 경제적 이득 등.
이곳은 힘이 곧 법인 도시지만, 원래 도시가 법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듯 이 도시도 힘 하나로 모든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내가 갑자기 도시를 바꾸겠다고 해봤자, 이곳 사람들은 나에게 힘을 보태진 않을 것이다. 이미 버려지고 실패하여, 포기하고 무기력에 휘감겨, 그저 죽지 못해 다른 이의 것을 약탈하며 비루한 삶을 간신히 이어나가는 그들에겐, 내가 하려는 일은 그저 허무맹랑해서 자신과 전혀 관계 없는 먼 세계의 이야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알려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사는 이 도시를 지배할 자격이 있는 이라고.
그리고 너희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며, 동시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에스크, 전에 말했던 능력자들은 어떻게 되었지?"
"예. 아직 실전에서 써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에 비하면 꽤 많이 발전했습니다."
"도성운. 내가 준 힘은 만족스럽나?"
".....부정할 순 없군."
"마이어. 광장에서 연설을 할 터이니 준비를 해 놓도록."
"연설,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 도시 사람들에게, 슬슬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려야 할 필요가 느껴져서 말이지."
내가 부하로 들인 조직들의 힘은 강하지만, 이 도시는 그냥 폭력 조직 몇 개를 소유한다고 해서 온전히 가질 수 있지 않다. 이곳을 온전히 나만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옭아매어 자유를 빼앗는 법이 없음에도 내가 안전하고 지내며 살기 위해....
나는 이 도시를 바꾸고, 이곳 사람들을 온전히 나의 사람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약 일주일 후, 나는 랜드필의 거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아마 이 중에서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혹시 모르니 자기 소개를 해 보지.]
큼큼. 잠시 목을 가다듬고...
[반갑다, 버려진 이들아. 내 이름은 라그나 아마게돈. 다른 세계에서 넘어오자마자 거부당해, 스카이론의 새장 최하층에 갇히고 한 달 만에 모범수 신분으로 조건부 석방을 당했지. 누구보다 짧은 시간 만에 인생이 아주 나락으로 곤두박칠 치다 못해 심연으로 뚫고 들어갔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은 내가 법 하나라도 어기면 나를 다시 새장 최하층에 가둘 테고, 정의의 여신을 따르는 광신도들이 누구보다 내 목을 간절히 원하지. 혹시 잘 공감이 안 된다면,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지. 너희들이 기껏해야 도시나 왕국 하나에서 버려졌을 때, 난 이 세상에게 거부당했다고.]
커밍 아웃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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