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조삼모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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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드디어 이 날이 왔네."
엘드랜드에서 온 다섯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 세미라를 심문하여 충분한 정보를 캐낸 후, 나는 그녀의 신변을 모노에게 맡겼다. 겹겹이 쌓인 동료들의 시체 위에 여유롭게 앉은 채로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몽마에게 자신을 맡겨둘 것이라는 이야기에 세미라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보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나를 붙잡았지만, 내가 해줄 것이라곤 모노에게 죽이지는 말라고 부탁해두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혹스러운 신음과 민달팽이들이 몸을 부비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조직원들 몇 명과 함께 현재는 영업이 중단된 랜드필의 폐광으로 통하는 입구에 서 있었다.
랜드필은 지진으로 지반이 무너지며 가라 앉고 유독 가스에 고립된 지하 도시가 되기 전에는 마기스토스에서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인 마석, 그러니까 마기스라이트라는 마법적인 용도에 주로 쓰이는 광물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작은 광업 도시였다.
하지만 랜드필이 버려진 도시가 된 후, 자연스럽게 마석 광산은 문을 닫았다. 애시 당초 랜드필을 버려진 도시로 만든 그 문제의 유독 가스가 이 버려진 광산 안 쪽에서부터 나오는 상황인데, 누가 감히 거길 들어갈 수 있을까?
도시 내에서는 그나마 가스 성분이 공기 중에 흩어지며 흐려진 탓에 방독 마스크만 쓰면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가스가 빠져나갈 공간이 협소한 갱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현재 이 랜드필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질이 좋은 방독 마스트를 써도 3분 버티는 것이 고작이다.
어떻게 아냐고? 옛날에 실제로 도전했다가 실패한 용맹한 사람이 한 명 있었거든. 마이어에게 듣기론, 그 용감한 사람은 랜드필의 폐광산에 뭉친 유독 가스는 안 쪽으로 들어갈 수록 농도가 짙어지고 위험성이 올라간다는 정보를 모두에게 알려주고서 얼마 안 가 이 랜드필에 얼마 안 남은 묘지 중 한 곳에 고이 묻혔다고 한다.
어쨌든 그 용맹한 희생자 덕에 랜드필의 폐광은 위험 지역으로서 출입이 금지되었다. 금지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그런 사지로 들어갈 사람은 없을 테지만.
"설마 제가 그 유명한 사지에 제 발로 들어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지만 말이죠."
"쓸 데 없는 소리나 하긴..."
랜드필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폐광의 유독 가스 처리 작전. 그리고 이 작전에 투입된 해독 계열 능력자는 세 명.
자신이 능력의 컨트롤을 조금만 삐끗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순식간에 중독되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U.F 소속의 옥시드.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웃으면서 농담을 내뱉는 송곳파 소속의 레토.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에시드 패밀리 소속의 녹스.
최근 발굴한 해독 계통 능력자들 중에 당장 가용이 가능한 이 셋에 5인 1조로 구성된 세 무리를 이끌고, 나는 폐광에 발을 들였다.
"와, 이거 길이 아주 개판이네."
"으윽, 역겨워."
유독 가스의 근원지로 향하는 길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을 정도로 난잡하고 험난했다. 당연한 일이다. 애시당초 우리가 들러온 입구 자체가 원래 이 광산의 입구가 아닌, 지진으로 폐광이 무너지고 그 위에 있던 도시가 내려 앉으며 생긴 새로운 통로였으니.
"음?"
"왜 그러지, 에스크?"
이 작전에는, 나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하나이자 송곳파의 두목인 에스크도 함께 있다. 그의 능력이,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데려왔거든. 그런데 에스크는 폐광의 입구에 들어서자, 주변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생각보다 시체의 수가 적지 않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 기분탓인 모양입니다. 애초에 고작 시체 좀 구하겠다고 이런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일 얼간이는 이 랜드필에도 없을 테니까요."
"혹시 모르지. 진짜로 그런 놈이 있을 지도. 아, 이런. 가스가 슬슬 심해지는군. 녹스?"
"예, 본부대로."
내가 이름을 호명하자, 가장 앞장 서던 녹스는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껏 깊이 숨을 들이 마셨다. 지상보다 더 농도와 독기가 심한 이 유독 가스가 사방에 진동하는 폐광에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행위는 자살 행위지만, 그에게는 예외였다. 그가 곰방대를 통해 들이 마셨던 가스는, 다시 내뱉어 질 때 깨끗하게 정화된 공기가 되었다. 대신, 곰방대의 끝부분에 아주 진득하게 농축된 한 줌의 유독성 액체 한 방울만이 맺혀있을 뿐.
마치 정수기가 여러 과정을 통해 지저분한 요소를 걸러내고 물을 깨끗하게 만들 듯, 그는 곰방대를 통해 빨아들인 공기를 정화하여 다시 내뱉은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걸러진 것들은, 곰방대의 끝에 아주 작게 농축되어 모이는 것이고.
그 신기한 광경에, 뒤에 서 있던 레토가 "오오!" 하고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이야, 공기 청정기 성능 확실하네. 각 가구당 녹스 한 대 씩은 필수품이겠는데?"
"뭐라는 거야, 이 미친 놈아!"
레토의 실 없는 농담에 태클을 걸던 옥시드는 이내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 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녹스가 능력으로 대량의 가스를 해독한 후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불길한 녹색 가스가 다시 접근해오기 시작했고, 옥시드가 천천히 다가오는 가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다가오는 가스를 붙잡아, 마치 새하얀 눈을 꾹꾹 눌러 눈덩이를 만들 듯이 독한 가스를 손 안에 뭉쳐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렇게 덩어리가 하나, 둘, 그리고 셋이 만들어질 즈음에 다시 호흡을 회복한 녹스가 곰방대로 가스를 들이마셔서 해독하며 일행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혹시라도 두 사람의 싸이클이 중간에 엇나가면, 그제서야 레토가 나섰다. 그녀는 이 셋 중에서 가장 정화 능력이 부족했기에, 지금처럼 두 사람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아주 미세한 공백을 채우는 일에만 나섰다.
"여기, 막힌 길인가?"
"자세히 보니 반대편으로 통하는 틈이 있군. 아마 지진으로 인해 광산이 무너지며 통로가 내려 앉은 것일 테지. 에스크, 네 차례다."
"예, 물론이죠 선생님."
송곳파의 두목, 에스크의 능력은 관통. 손에 든 무기, 혹은 자신의 손을 기준으로 접촉한 면에 반대편으로 통하는 구멍을 만든다. 그것도 어떠한 충격도 가하지 않고. 그렇기에 에스크의 힘으로 무너진 벽에 마치 자로 잰 듯한 깔끔한 구멍이 생겼음에도, 그 과정에 아무런 충격이 가하지 않았기에 기껏 뚫린 통로가 다시 무너져 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 명의 능력자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독 가스를 처리하고, 중간에 무너져서 사람이 자나가기엔 좁은 틈만 있는 막힌 길은 에스크의 관통 능력으로 구멍을 뚫어 통로를 만들고 나아가기를 반복.
그렇게 지하로, 또 지하로 향하던 도중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시체들이네요. 그것도 비교적 싱싱한."
시체를 보고 싱싱하다니. 나는 그 말을 뱉은 도계 조직원을 싸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 도성운 형님을 모시기 전에는 도축업을 하다보니..."
어쨌든 표현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 조직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발견한 시체는 죽은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이 녀석은... 며칠 전에 날 노렸던 그 애송이군."
"예? 그런 놈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엘드랜드에서 온 녀석들의 제안을 수락하여 나를 습격한 놈들. 그 중에서 산 놈들은 랜드필 밖으로 내쫓았지만, 제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죽여버린 놈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시체를 처리했다. 그 시체를 내버려 뒀다가, 왠 식인종이 요리 재료로 써버리거나 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체들은 대게 이 폐광의 입구에 내던져졌다. 어차피 강력한 유독 가스가 진동하니 감히 누가 건드릴 수 없고, 이 가스 속에 내버려두면 빠르게 썩어 문드러질 테니까. 문제는... 입구에 내던졌던 그 유해가, 왜 이런 깊숙한 곳에 널부러져 있냐는 것이다.
그것도...
"이거, 마치 큰 짐승이 파먹은 것 같은데?"
"짐승이 파먹은 흔적이라니, 그게 말이 돼? 대체 어떤 동물이 이런 독한 가스가 진동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데?"
시체의 복부에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물어 뜯은 듯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랜드필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사상자들은 전부 이 폐광에 버려졌으니, 아마 이 짐승은 이 무너진 폐광에서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으면서 계속 살아왔을 테지.
사자나 호랑이 같은 어지간한 포식자보다 더 크고, 거기에 이런 유독 가스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적응한 동물. 거기에 비록 죽은 것들 뿐이지만 사람 고기를 맛 본 짐승이라... 이거 일의 위험도가 생각보다 높아졌군. 비록 내가 데려온 조직원들이 전투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하고만 싸워온 이들이 과연 이 곳에 사는 미지의 괴물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지는...
"일단은 계속 나아간다."
"예, 알겠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가스가 더욱 짙어짐과 동시에 인간의 유해가 보이는 간격 또한 점차 짧아져 갔다. 나중에는, 발을 딛는 곳마다 사람의 유골이 굴러다닐 정도였다.
"허..."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넓은 동공에서, 나는 상상도 못한 것을 보았다.
새하얀 백골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는, 농밀한 마력을 풍기는 선명한 푸른 빛의 보석... 순도 높은 마기스라이트 광석들이 같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예상 밖의 광경에 당혹을 금치 못하는 일행은, 곧 천장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백골 더미에 쳐박히는 것과 함께 이 으스스한 둥지의 주인을 발견했다.
그것은, 참으로 흉측한 몰골의 괴물이었다.
그 짐승은 황소의 배는 될 법한 우람한 덩치에, 등에 돋은 한 쌍의 피막 날개가 억센 털 속에 고이 접혀 있다. 머리는 들개의 것이나 눈은 어디에도 없었고, 짜리몽땅한 뒷다리에 비해 앞발이 기형적이리만큼 길었으며, 엉덩이에는 세 개의 쥐의 꼬리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흔들린다. 어두컴컴하고 넓은 공동 한 가운데에서, 그것은 방금 막 위쪽에서 떨어진 시체를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그 역겨운 생명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체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이내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시고선 긴 주둥아리를 쩌억 벌렸다. 그 뒤로 벌어질 일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괴물은, 죽은 인간의 유해를 뜯어먹었다. 더는 숨쉬지 않는 인간의 팔을 이빨로 물고, 강력한 턱의 힘으로 고정한 뒤 고개를 뒤로 젖혀 팔을 몸에서 뜯어내고서, 입에 물린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그 광경은 참으로 섬뜩하기 그지 없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생물이, 아무리 죽은 자라고는 해도 자신과 같은 사람을 먹는 그 광경에 충격을 받은 일부 조직원들이 괴물에게 들키지 않게 미세한 소리로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더 역겨운 광경은 이후에 일어났다.
괴물이 입안에 담긴 살점을 목 너머로 꿀꺽 삼킨 후, 괴물의 등 뒤에 난 작고 수많은 구멍에서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대량의 유독 가스가 푸쉬이이익, 하는 힘찬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 틀림 없다. 괴물이 방금 막 뿜어낸 저것은, 저 헷갈릴 수 없는 불길한 진녹빛 색의 가스는 틀림 없이 이 폐광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 유독 가스였다. 나는 그 사실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랜드필의 유독 가스는 지진으로 인해 광산이 무너지며, 지하에 매장되어 있던 유독 가스가 분출된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이 도시를 고립시킨 문제의 가스는 저 역겨운 형상의 짐승이 뿜어내던 것이었다.
놀란 것도 잠시, 감정 절제의 영향으로 나는 금방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뭐가 어찌 되었건 랜드필이라는 도시를 병들게 만든 유독 가스의 원인은 눈앞에 있다. 그것이 지하 깊숙히 매장된 물질이 아니라, 들어본 적 없는 괴물이 식사 후에 분출하는 부산물이라는 점은 전혀 몰랐지만.
몇 차례 지독한 가스를 뿜어낸 후, 그 짐승은 기분 좋다는 듯 그르릉거리며 낮은 울음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우리들은 보았다. 그 짐승의 엉덩이에서 나온, 무언가 빛나는 것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을.이 넓고 어두운 동공 속에서도 한 눈에 보이는 그 푸른 빛의 돌은, 틀림 없이 마기스라이트 광석이었다.
....진짜 가지가지하네.
그 충격적인 장면에, 조직원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지금... 사람을 먹고, 유독 가스랑 마기스라이트 광석을 만든 거야...?"
죽은 사람의 유해를 먹고, 등으로 사람을 죽이는 유독 가스를 뿜어내며, 배변으로 마법에 쓰이는 값비싼 보석을 싸는 괴물이라니. 도대체 어떤 역겨운 놈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궁금해졌다. 발안자의 머리를 당장이라도 따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랜드필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고가 아니었다. 랜드필이 유독 가스에 휩싸인 것은 그 지진으로 도시가 광산과 함께 내려 앉은 후였으니, 아마 저 괴물은 그 사건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뭐, 솔직히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부족한 천연 자원을 보충하기 위한 연구, 그 과정에서 태어난 의도치 않은 부산물. 사람을 먹고, 유독 가스를 뿜어내며 비싼 마석을 만드는 괴물. 지진... 아니, 누군가의 수작으로 무너진 도시와 그로 인해 폐광에 갇힌 괴물.
괴물은 위에서 떨어지는 인간의 사체를 받아먹으며 마석과 가스를 토해냈고, 마석은 누구도 회수하지 못 했으나 가스는 곳곳의 통로와 틈을 통해 위로 올라와 랜드필을 위험에 빠트린다.
유독 가스로 인해 사람이 죽고, 죽은 사람의 시체는 유독 가스가 올라오는 폐광의 입구에 던져지며 이 공동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스를 뿜어내던 저 괴물이, 내려오는 시체를 받아 먹고 또 다시 마석과 가스를 만들어 낸다.
사람의 생명을 연료로 계속 이어지는 악순환.
"저,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뭐?"
"아니, 저... 저 마석을 보십쇼. 저렇게 순도 높은 마기스라이트는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산 사람을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처리해야 할 시체를 먹으면서 비싼 광석도 만들어 주는 놈이라면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이것들이 미쳤나.
"너네 진짜 제정신이냐?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좀 해 봐라.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이로 줘서 저 괴물이 뱉어내는 마석을 모아서 파는 것이 정말 이득이라고 생각해? 저 괴물이 마석만 뱉냐? 유독 가스도 만들잖아. 저 가스 때문에 랜드필에선 가축을 기르는 것도 농사를 짓는 등의 생업 수단을 생각도 할 수 없잖아."
"그렇지만 애초에 랜드필은 목축업과 농업을 크게 할 만큼 땅이 좋은 곳도 아니고, 이미 저 유독 가스로 심하게 오염되었는데 이제 와서 그걸 멈춘다고 해봤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 정도 양의 마기스라이트를 계속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농업과 목축업은 예시로 든 거지, 반드시 그걸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리고, 저 괴물이 안정적으로 마석을 공급한다고? 여기 널린 마석들은 아마 랜드필이 내려 앉은 이후에 주기적으로 생긴 것들이겠지. 그 많은 세월에 걸쳐서 이 정도라면, 저 괴물이 하루에 싸는 마석의 양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고. 고작 그 몇 푼의 돈 좀 쥐겠다고, 평생 이 답답한 방독 마스크를 쓰면서 살고 싶냐?"
하지만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도, 조직원들은 아직 바닥에 널린 백골 사이의 마석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다.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미래를 전혀 볼 줄 모르는 녀석이군. 이런 녀석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데에는 특효약이 하나 있지. 나는 조직원 하나를 지명해서 불렀다.
"야, 너. 혹시 아내나 자식 있냐?"
"아, 아뇨. 없습니다."
"그럼 만들 생각은 있나?"
"어... 기회가 있다면, 가정을 만들 의향은 있죠?"
"그래? 그럼 넌 네 자식 새끼가 이 위험한 유독 가스가 진동하는 도시에서 평생 답답한 방독면 쓰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거냐?"
"아, 아니 그건...!"
저 괴물은 마석을 뱉는다. 하지만 그 작은 돌멩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사람 하나와 도시의 미래를 양분으로 삼는다. 저 마석이 비싸다는 것은 나도 알지만, 저 놈이 만들어내는 마석으로 인해 얻는 수익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인 저 유독 가스로 인해 이 랜드필 사람들이 입는 피해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다.
랜드필의 유독 가스는 이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그게 사람의 유해를 먹고 마석을 만드는 괴물이 내뱉는 가스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저 괴물을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앞으로의 미래를 고작 몇 푼의 돈에 팔아 넘기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이 도시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 도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 중 하나를 반드시 처리해야만 한다.
"나는 이 도시를 바꿀 거야. 그걸 위해선, 이 도시를 병들게 하는 저 짐승은 죽여야 해."
그런 나의 확고한 의지를 느꼈는지, 아니면 식사에 집중하느라 닫고 있던 귀를 드디어 연 것인지, 시체를 뜯어먹던 괴물은 눈도 없는 주제에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이를 드러내며 위협적으로 으르릉거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들켰네. 다들 전투를 준비해라. 랜드필 출신이라면, 저 괴물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 할지언정 제 몸 하나는 제대로 간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 내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마침내 이쪽을 온전히 적( 혹은 역대급으로 싱싱한 먹잇감)으로 규정한 그 역겨운 짐승이 귀를 틀어 막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괴성을 터트리며 뚜렷한 적의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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