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엘드랜드의 자본력은 세계 제이이이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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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의 왕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방인이여. 짐이 바로 이 엘드랜드의 왕, 킹 빌가메스 베르 루가르 드 엘드랜드 울르크다."
숙소를 잡은 후 다음 날, 나는 세미라의 안내를 장 센과 모노를 데리고서 이 나라의 왕을 접견했다. 엘드랜드의 왕, 빌가메스 베르 루... 아이 싯팔, 무슨 놈의 이름이 이렇게 길어? 빌가메스라는 이름에 무슨 놈의 성 씨가 더렇게 덕지 덕지 붙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이름이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불리기 위한 건데, 저렇게 어렵게 해 두면 누가 어떻게 부르겠냐고.
아, 생각해보니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사람이 없으니까, 저렇게 어렵게 지어도 상관 없는 건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엘드랜드의 왕이시여."
어쨌든 저 쪽이 먼저 예의(?)를 갖추어서 나를 대하려는 듯 하니, 나도 그에 장단을 맞추어 줘야지. 물론 저 긴 이름을 한 번에 외워서 말하긴 어려워서 그냥 엘드랜드의 왕이라는 직책으로 불렀고, 상대도 그 사실을 깨닫고 잠깐 눈을 찡그렸으나 이내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저를 찾으셨다는 말을 듣고, 그에 응하여 랜드필에서 이곳 엘드랜드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라그나 아마게돈, 불과 몇 달 전에 이 세계로 넘어온 이방인이자 랜드필에서 '선생'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쪽은 제 연인인 모노 릴리스, 그리고 이 쪽은 현재 제가 일깨운 심의 능력자들 중에 단연코 가장 강한 능력자라 할 수 있는 장 센입니다."
이방인이라는 내 소개에 그는 또 잠깐 눈을 찡그렸지만 그것도 잠시, 모노를 향한 그의 시선에 작은 흥미와 탐욕이 일렁이는 것이 보이자 나는 기분이 확 좇같아 졌다. 저, 저 씨발 놈이 지금 누구 여자를 넘보는 거지? 세미라에게 듣기론 매일 밤 여자 여럿을 침실로 끌어 들여서 광란의 시간을 보낸다던데, 그걸로 만족할 것인지 감히 내 거에 흥미를 보여? 왕만 아니었으면, 목을 그냥 확 뽑아버리는 건데...
"그래, 그래. 그대가 바로 그 유명한 버려진 도시의 선생이란 말이지. 내 그대에 대해 들은 몇 가지 소문이 있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가. 좋아, 나도 바라던 바다. 더 이상 이 금태양 같은 새끼랑 오래 어울리고 싶지 않으니.
"신의 권능이나 가호도, 마법도 아닌 특이한 힘을 다룬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예, 맞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일깨워주는 이 힘을, 심의라고 부르더군요."
"심의, 심의라... 마음의 힘이라 이건가. 짐은 부디 그 힘이, 그 유명세에 걸맞기를 바라고 있다네."
"절대 실망하시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한 번 시험해 보도록 하지. 세미라."
"예, 폐하!"
"선생과 능력자를 투기장으로 안내해라. 그리고 그 쪽의 여자는 나와..."
"미안, 나는 우리 자기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모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자다. 그것은 비단, 타국의 국왕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권력 따위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고, 빌가메스는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노가 끼어들며 자신의 말을 거절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듯 얼굴을 붉혔다.
"...좋아. 그럼 셋 모두 투기장으로 안내해라. 어디, 선생이 자랑하는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터이니."
저거, 빡쳤구만. 힘을 시험하겠다는 명목으로 자신들 쪽의 힘을 자랑하며 이 쪽에 망신을 주고 싶은 모양인데, 솔직히 화신 급이 아닌 이상에야 장 센이 패배할 일은 없으니 상관 없다.
나와 모노, 그리고 장 센은 세미라의 안내를 따라 투기장으로 향했다. 분명 나라는 이집트를 연상케 하는 데, 왜 투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생겼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원형 투기장에 관객들이 가득한 것을 보아, 아무래도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 모양이다.
"으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좀 거북한데...."
장 센은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관객들의 수많은 시선에 위압된 것인지 자그만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걱정 마시죠. 저들의 시선은 곧 감탄과 호의로 바뀔 테니."
"별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네요."
잠시 후 도착한 빌가메스 왕의 길고 지루한 선언이 이어졌다.
"이번 전투는 중앙에 선 자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시험이며, 차례로 도전하는 열 명의 적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것이 그들의 승리 조건이다. 도전자들이 부디 짐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부터 시험의 시작을 선포하겠노라."
이내 투기장의 문이 열리며 우리가... 정확하게는 장 센이 상대해야 할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 상대할 적은...
"악어네."
"보통 악어는 아니고, 마수네요. 그것도 상당한 놈이네요. 저 정도면... 메타버스 시티의 측정 기준으로, B 급 정도는 될 것 같은데요?"
성인 남성 셋은 단숨에 집어 삼킬 법한 몸짐의 나일강 악어가 열린 문을 통해 천천히 투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장 센 씨? 혼자 처리할 수 있죠?"
"하하, 선생님."
철컥.
"거, 당연한 말을 굳이 하실 필요가 있나요?"
쐐애애애액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우리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굶주린 마수는 그 끝 없는 허기를 영원히 걱정할 필요가 없는 몸이 되었다.
"...다음 상대를 들여라."
분명 이 자리는 심의의 힘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일테니 우리가 강할 수록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야 할 터인 빌가메스 왕은, 떫은 감이라도 먹은 듯한 불쾌해하는 얼굴로 다음 도전자를 투기장 내로 들여 보내라고 명령했다. 다음 적은 자이언트롤이었는데... 악어 마수보다 더 튼튼한 놈이지만, 이미 엘레이스타가 보는 앞에서 썰어본 적 있는 마물이였기에 장 센은 아무런 부담감 없이 다시 팔을 휘둘러 자이언트롤을 이등분 내었다.
장 센의 능력은 왜곡 곡예. 자신의 손으로 투척한 사물을,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조종하는 능력. 개화 단계에선 최대 조종 가능 시간이 15초에,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변화를 줄 수 있는 횟수가 한 번에 일곱 번까지가 한계였지만, 만개 상태에 이른 그는 전과 달랐다. 그의 팔을 휘감은 저 장갑이 바로 그 증거이다.
만개 상테에선 능력이 단순히 물리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물리적인 형태를 갖는다. 저 장갑이, 그리고 그가 던지는 칼날이 바로 장 센이 가진 능력, 왜곡 곡예의 힘이 물리적 형태를 갖춘 모습.
장 센이 손을 쥐었다가 펼 때마다 그 손에는 서커스 곡예에서 쓰일 법한 단검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가 손에서 단검을 던질 때마다, 모두가 제 눈을 의심할 마법 같은 광경이 연달아 일어났다.
적으로 나온 검투사가 칼날을 튕겨내기 위해 크고 두꺼운 방패를 앞으로 내세우며 천천히 접근해 왔지만, 장 센이 던진 칼날은 방패에 닿기 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검투사의 뒷편에서 나타나 그의 등을 찔렀다.
전신에 두꺼운 갑옷을 두른 검투사가 자신만만한 기세로 돌진해 왔지만, 장 센이 던진 칼날은 두터운 갑옷에 부딪히는 순간 튕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쥐고 계속해서 찔러 넣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다 결국 갑옷을 뚫고 검투수의 맨몸에 꽂혔다.
몸집이 날랜 마수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뛰어다니며 공격해 왔지만, 장 센이 던진 칼날은 마치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수의 뒤를 끈질기게 쫓다가 결국 마수가 잠시 지쳐 숨을 고르는 사이 날아들어 그 목을 절단했다.
적을 처리한 후에 꽂혀 있던 칼날은 사라지고, 장 센이 장갑을 쥔 손을 쥐었다가 피면 다시 새로운 칼날이 그 손에 쥐어져 있다.
"확실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그것 봐요. 내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말해도 그 끔찍한 것은 다시는 안 할 겁니다."
"쩝."
장 센의 능력은 기존에도 매우 강한 능력이었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투척류 무기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했다.
첫째, 투사체 자체의 힘과 속도.
투척 무기의 속도나 힘은, 활대의 탄성을 통해 화살을 쏘는 활이나 화약, 압축된 공기나 가스, 전자기력 등의 힘으로 탄환을 고속으로 가속하여 발사하는 총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사람이 던지는 돌은 보고 피할 수 있지만, 총이나 화살은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없으니까. 물론 이 세상에는 그게 가능한 사람도 있기야 하지만, 어쨌든 그 쪽은 소수에 불과하니 넘어가고.
둘째, 투사체의 재활용.
앞서 예로 든 활과 총은 각각 화살과 탄환이라는 투사체를 소모하여 원거리 공격을 하지만, 단검과 같은 투척류 무기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투사체의 수가 앞의 둘에 비해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물론 활과 총과는 달리 별다른 도구 없이도 팔만 있으면 쓸 수 있지만, 반대로 투사체를 다 써버린 후에는 그걸 회수하기 전에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이러한 단점들 탓에, 장 센이 가진 능력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그만큼 단점이 명확했다. 일 분 일 초가 중요한 전투에서 가장 큰 변수를 만들어내며 상대가 예기치 못한 곳을 찌를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자체적인 위력이 부족하며 장기전에 극도록 불리한 능력이다. 실제로 엘레이스타가 보는 앞에서 자이언트롤을 썰어버릴 때도, 칼날을 던진 사람은 장 센이었지만 그 칼날을 만든 사람은 유리 양이었다. 그녀가 만든, 내구력은 무척 낮지만 절삭력은 엄청나게 높아 어지간히 단단한 사물도 그냥 던져서 맞춘 것만으로도 잘라낼 수 있는 유리 칼날이 없었다면 그 능력을 백 분 활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화에서 만개로 넘어간 장 센의 능력은, 그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했다.
손을 쥐었다가 필 때마다 투사체가 생겨난다. 그 간단한 능력 하나가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장 센이 가진 능력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가 완전히 보완되었다. 아무리 투척류 무기라지만 명중시켰을 때의 위력 탓에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단검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닐 필요가 없고, 갖고 있던 단검이 다 떨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도 않는다. 유사 시에는 만들어낸 단검으로 근접 전투를 벌일 수도 있고, 지속적으로 투사체를 생성할 수 있기에 유지력 면에서의 단점도 해소되었다.
투사체의 속도나 위력은... 사실 이 부분은 능력을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가속도의 법칙을 왜곡해서 어지간한 탄환의 속도 이상으로 투사체를 빠르게 가속시킬 수도 있고, 중력의 법칙을 왜곡하면 활이나 총으로는 노리기 힘든 위치에 있는 적도 불규칙한 궤도의 공격으로 명중시킬 수 있으며,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왜곡하여 튼튼한 피사체에 충돌해도 나가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만듬으로서 내구도가 좋은 적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개화 단계에서 이미 충분히 강한 능력이었기에, 만개 단계에서 변한 것은 무척 사소했지만 그것만으로 장 센의 능력은 완성되었다.
그렇게 장 센은 홀로, 몇 번이고 단검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빌가메스 왕이 준비한 도전자 열 명 중 아홉을 무너트렸다. 아무리 덩치 크고 사나운 마수도, 아무리 단단한 갑옷을 입은 검투사도, 그 앞에선 무의미했다. 빌가메스가 내세운 도전자들은 하나 같이 일반적인 대인전에서 강한 자들이었지만, 정작 이 쪽은 감히 개인이 품을 힘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연이은 전투는 도저히 동등한 조건에서 정정당당하게 이루어지는 결투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저들이 체스판 위에서 체스말을 움직인다면, 우린 그 체스말을 놓는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격이었으니까.
"...짐이 준비한 투사들이 벌써 아홉이나 스러졌군. 정말 놀라운 일이야."
어차피 내 힘을 탐내서 불렀으니 부름에 응한 내가 줄 수 있는 힘이 강할 수록 기뻐해야 정상이지만, 정작 빌가메스의 얼굴은 장 센이 적을 쓰러트릴 때마다 점차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공과 사는 확실히 하리라고 믿었으니까. 비록 자신이 나름 강하다고 생각했던 자국의 도전자들이 근본 없는 외부인 하나에게 허무하리만큼 쉽게 차례로 쓰러졌다고 해도, 그만큼 강한 상대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이성적이다.
"마지막 도전자를 들여보내라."
가정교육을 판타지로 받은 애새끼도 아니고, 설마 한 나라의 왕이라는 작자가 향후 자기랑 긍정적 관계가 될 수 있는 세력이 단지 자기 쪽의 세력보다 더 쎄보인다는 이유로 자존심이 상하서 일을 그르친다거나 하지는 않을...
"저, 저 사람은... 붉은 모래 군단의 장군이신 누비스 님이 아니야?"
"사막의 신의 가호와 권능으로, 직접 나선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무적의 누비스 장군님이라고?!"
"어째서 장군님이 이곳에...?"
"아니, 씨발."
이런 미친, 왜 님이 거기서 나와요?
아니 이 행사는 분명 우리 쪽이 얼마나 큰 힘을 너네한테 제공해 줄 수 있는지, 그걸 테스트하기 위한 장소잖아요. 근데 싯팔, 대체 왜 저런 미친 스펙의 최종 병기가 여기서 나오는 건데?
엘드랜드를 상징하는 심볼, 노란 태양의 문양. 하지만 그 문양이 황적색 배경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엘드랜드만이 유일한 태양이며 그 외의 다른 것들을 모두 떨구겠다는 살벌한 뜻을 품은 한 군대를 상징하는 문양이 된다. 그것이 바로 엘드랜드에서 보유한 몇 안 되는 자체적인 전력이자, 동시에 엘드랜드의 왕 빌가메스의 오른팔이 지휘하는 군대, 붉은 모래 군단의 상징이다.
"누비스. 붉은 모래 군단의 장군이자 짐의 자랑스러운 아우여. 부디 상대가 낯선 손님이라고 적당히 손속을 두지 말고, 전력을 다해 응하도록 하여라."
"이 누비스, 폐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시발, 빌가메스 이 미친 놈.
설마 진짜로 그 놈의 자존심 하나 때문에 이딴 개짓거리를 벌일 리는 없고... 이건 그건가? 이 결투에서 우리 쪽을 쓰러트린 후 사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힘이 유능하지만 그렇게 강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있을 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심보이겠지? 그럴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설마 일국의 왕이, 고작 외부인이 조금 설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국의 가장 강력한 장군을 투기장에 불러와서 싸움을 붙이겠어?
...아니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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