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엘드랜드의 자본력은 세계 제이이이일!!(3)
* * *
엘드랜드의 국왕, 킹 빌가메스 베르 루가르 드 엘드랜드 울르크.
그는 나름 자신의 왕국의 역사에 자부심이 있었다.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부터 존재했고, 다른 이웃 나라들이 역사 속에도 기록되지 못할 먼지로 흩어져 사리지는 동안에도 꿋꿋이 그 존재를 잃지 않고 견뎌온 이 왕국은, 선조들이 물려준 이 영광스러운 역사의 무게는 그 누구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무겁고도 고귀한 것이었으니.
버려진 도시 랜드필에 선생이라고 칭하는 이가 나타나 왕 노릇을 한다고 들었을 때, 빌가메스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어 넘겼다. 그래봤자 랜드필은 버려진 도시.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고, 실패하였으며, 무의미한 것들이 흘러 들어가 징그럽게 꾸역 꾸역 구차한 삶을 이어나가는 폐허. 그딴 폐허의 주인과, 오랜 세월의 전쟁을 겪고도 그 견고함을 잃지 않은 위대한 왕국의 왕은 그 격이 달랐으니까.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하나이자 가장 강력한 이방인인 정시우가 그와 손을 잡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전부 포기하면서까지 그 자를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빌가메스가 랜드필의 선생에게 관심을 기울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갖고자 하는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자랑하듯이 소유하고 있다면 얼마나 그가 분노할까.
괜히 머리카락이 금발이고 피부가 갈색으로 태닝된 남자 아니랄까, 빌가메스는 다른 이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을 즐겼다.
선생과 그 일행이 어전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인 것도 그러한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다. 이 엘드랜드에서도 보기 힘든 이국적인 외형의 미인이었기에, 특별히 자신의 침실에 들어와 밤시중을 드는 것을 허락할 마음도 있었다.
선생인가 뭔가하는 그 같잖은 버러지가 자신을 쏘아보기 전까지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중하고 예의 바르기 그지 없었으나, 그의 눈길에는 일말의 존중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서 대우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 또한 그를 손님으로서 응대할 필요 없다.
어차피 정시우가 아니었다면 관심에도 들지 못 했을 일개 하찮은 요술쟁이 주제에 자신이 뭐라도 된다는 것 마냥 감히 자신의 앞에서 조금도 숙이지 않고 당당히 나서는 모습이.
버려진 도시의 왕 노릇 따위나 하고 있는 하찮은 버러지가 감히 역사 깊은 엘드랜드 왕국의 왕인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듯한 저 시건방지고 오만방자한 태도가.
빌가메스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요술을 부려봤자, 얼마나 대단한 재주겠나? 엘드랜드의 투기장에서 매일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전투에 특화된 용맹한 검투사들 앞에선, 우왕좌왕 하다가 금방 제압 당하고선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리라. 그렇게 주제를 파악하게 한 후, 낙담한 그들에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자신을 섬길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정시우, 그 망할 애새끼를 쳐죽일 가장 날카로운 창으로 빚어낼 것이다.
그것이 빌가메스의 계획이었다.
정확히는, 여덟 번째 도전자인 이 콜로세움 최강의 검투사가 적의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기 전의.
엘드랜드의 시민들과 그들의 왕인 자신이 보는 앞에서, 투기장의 가장 강한 자들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손쉽게 제압하는 그 모습은 동등한 상대에 대한 예의를 차린 결투 따위가 아니라, 자신보다 명백히 하수를 비웃으며 여유를 부리는 자태였다. 그리고 빌가메스는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엘드랜드의 왕인 자신을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에, 결국 그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 붉은 모래 군단의 대장군 누비스.
사막의 신의 가호와 권능을 받은 그를 이 사막에서 이길 수 있는 자는 자신 외에 존재하지 않기에, 엘드랜드는 그를 급히 불러와 열 번째 투사로 내세웠다.
선생의 수행원을 무력으로 꺾고, 선생을 제압하여 무릎 꿇린다. 그리고서도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 옆의 여인을 눈앞에서 범하면서 무력감을 심어줄 것이다. 감히 대국의 왕에게 겁도 없이 도전한 어리석은 자는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할 지니.
"....음?"
그러고보니, 그 여자는 어디로 간 거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생이라는 자의 곁에 붙어 있었던, 그 이국적인 외형의 매력적인 여인은 어느새 어디론가로 사라진 후였다. 그것도 자신이 눈치챌 새도 없이. 그에 빌가메스가 의아함을 느끼려는 찰나, 열 번째 도전자이자 붉은 모래 군단의 장군인 누비스가 아홉 도전자를 상처 하나 없이 거꾸러트린 외국의 전사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
"하아아아아압!!"
얼굴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두꺼운 투구 사이로 흘러나오는 힘찬 기합과 함께, 붉은 모래 군단의 대장군 누비스가 맹렬한 기세로 덤벼 들었다. 장 센은 자신을 향해 곧장 달려오는 누비스를 향해 단검을 내던졌고, 어지간한 탄환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칼날이 누비스의 두툼한 흉부 장갑에 꽂히는 그 순간.
사아아아아아...!
"아니 이런 미친..."
누비스의 몸이, 입고 있는 갑옷을 포함하여 모두 모래가 되어 흩어지며 날아간 단검이 허공을 꿰뚫었다. 장 센은 급히 단검의 궤도를 조작하여 측면에서 다시금 날아들게 만들었지만, 모래로 변한 누비스의 육신에 단검은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그 사이 누비스는 장 센에게 다가와, 금속 장갑을 착용한 주먹으로 정권을 내질렀다.
쿵!
"커흑..!"
장 센은 외마디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날아가, 간신히 장외패를 당하지 않을 위치까지 나가 떨어졌다.
"허억, 허억...! 망할, 설마 내가 신성력 사용자랑 싸울 날이 올 줄이야..."
장 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신성력 사용자, 다른 말로는 신의 가호 및 권능 보유자. 특정 신에게 선택 받아, 그 신이 다루는 힘의 극히 일부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 받은 극소우의 특출난 인간들. 메타버스 시티의 전투력 측정 랭크를 나누는 기준에서 신의 가호를 받은 자가 대다수 기본 A 랭크 이상임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하나 하나가 감히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정예 전력이다. 게다가 상대는 엘드랜드 최강의 부대인 붉은 모래 군단의 대장군을 맡은 자. 신의 권능과 가호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전투력부터가 일반인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젠장할,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누비스는 곧장 다시 덤벼서 그를 완벽히 꺾을 수 있을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장 센이 일어나서 준비를 갖추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명백히 하수를 상대로 보이는 여유였다. 이에 장 센은 입술을 악물며양 손에 각각 세 자루의 단검을 만들어 냈다.
슉, 슉, 슈슉, 슉, 슈슉, 슉!
여섯 자루의 칼날이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그리고 불가능한 각도에서 날아들었다. 분명히 던져진 것도, 목표로 삼은 곳도 같지만, 다른 어딘가에 부딪힌 적이 없음에도 사방에서 일제히 날아드는 칼날은 당사자에게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며 두려운 광경이리라. 단지, 상대가 조금 나빴을 뿐이다.
머리가 용으로 변하면서 입에서 불꽃을 토해내거나 손이 닿은 사물을 폭탄으로 만들어 터트리거나 마법진에서 가종 흉악한 마수들을 불러내던 온갖 적들이 가득한 적들과 전장에서 맞붙던 사막의 대자군에게, 고작 칼날이 예기치 못한 궤도에서 예상치 못한 속도로 날아드는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도 자신의 몸을 입고 있는 갑옷 채로 모래로 뒤바꾸며, 대다수의 물리적인 공격에 제대로 된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머리, 가슴, 옆구리, 허벅지, 팔꿈치와 어깨.
여섯 방향에서 날아든 단검들은 대장군의 맹렬한 진격을 조금도 늦추지 못 했고, 몸을 순식간에 모래로 바꾸어 자신에게 향한 모든 공격을 피한 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대장군이 내지른 또 한 차례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하는 순간, 장 센은 이 싸움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했다.
또, 또 주먹이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저 거대한 언월도를 두고서, 일부로 왼손의 주먹으로만 때리고 있다. 자신의 주 무기를 쓸 필요도 없다, 이런 뜻이겠지.
전투의 경험도 경험이었지만, 능력의 상성부터가 너무나도 차이가 심했다. 장 센의 칼날 던지기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전면전보다는 암살 쪽에 특화된 능력이었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공격을 무효로 할 수 있는 전사와의 대인전은 승산이 없었다.
"시발... 시발! 이딴 게 어딨어...!"
예기치 못한 기연으로 기껏 강력한 능력을 얻었는데, 막상 그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얻어 터지는 상황이라니. 사무치는 억울함에, 장 센은 입술을 악물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래, 결국 이런 거야. 내가 아무리 강한 힘을 얻어도, 진짜 강자들 사이에선 통할 리가 없어. 그야 그렇겠지.
저 자는 가장 부유한 왕국 엘드랜드의 대장군이고, 나는 고작 랜드필 출신의 새장 간수잖아. 상대가 될 리가 없지.
다시 한 번 나가 떨어진 장 센은 더 이상 일어날 기력이 없었고, 상대에게 더 이상 투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대장군은 이 일방적인 싸움을 마무리 짓기 위해 쓰러진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 모습에, 여태껏 장 센이 승승장구 할 때는 침묵하던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대장군님이라느니 뭐니 하는 노골적인 환호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들의 잘난 콧대를 깔아 뭉겔 힘은 없었으니... 별 수 있나.
"뭐햐냐, 너."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 선생님.
"무슨, 말이십니까. 선생.."
"뭐하냐고. 너 아직 일어날 수 있잖아. 만개 단계로 이르는 그 고통을 이겨낼 정도라면, 고작 주먹 두 방으로 쓰러질 리가 없잖아."
"일어나면, 뭐합니까."
평소라면 전혀 말하지 않을, 언제나 마음 속 깊숙히 꼭꼭 가둬 두었던 마음의 소리가, 절대 말하면 안 될 사람에게 흘러 나왔다. 어쩌면 지나치게 두들겨 맞아서 정신이 좀 나간 상태였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고요. 나 같은 게 아무리 노력해 봤자, 달라질 건 없잖아요. 소용 없어요. 소용 없다고요! 나 같은 게, 저런 거물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 진짜."
한심하다는 듯한 경멸의 눈길... 그래,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나에게 강력한 능력을 준 당신이라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었던 당신이라면 나에게 충분히 실망할 자격이 있지.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기대에 보답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어. 그래, 나는 고작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럼 내가 증명해 주지."
그 말과 함께 선생의 양 손에 자신이 손에 착용한 것과 같은 장갑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장 센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울컥해졌다.
새장에서 당신에 대한 소식은 모두 들었어. 당신이 기껏 이런 엄청난 힘을 주었음에도 나는 고향인 랜드필에서 그랬듯이 전과 다를 바 전혀 없는 무채색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당신은 가장 낮은 곳에 스스로 내려갔음에도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네 힘만으로, 저 건방진 놈들의 콧대를 눌러주지. 대신 만약 내가 성공하면, 장 센 너는 스카이론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랜드필에서 내 곁에 머물면서 특훈이다."
...이걸 응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이 되는 상황에서 장 센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
"...싸울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순순히 항복하면, 그 이상 아플 일도..."
"거, 위대하신 대장군 나리께서 혀가 좀 기시네."
장갑을 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피자, 손에 단검이 만들어진다. 장 센의 능력, 왜곡 곡예의 만개 단계.
장 센은 여기서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그의 능력은 유용하기에, 내가 더 많은 힘을 쓰기 위해서라도 그는 더 높은 곳을 갈망해야 한다. 그러니 두려움과 좌절 대신, 그 자리에 동경과 열망을 채워 넣을 것이다.
오로지 그가 사용한 것과 같은 힘만으로, 내가 저 대장군을 제압함으로서.
"긴 말 할 필요 없지. 얼른 덤비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싸움에 재능이 없다. 애초에 전에도 그냥 마력을 넣기만 하면 원리 따위 몰라도 알아서 작동되는 마법들을 몇 번 휘두른 것이 전부다. 그 당시의 내가 한 것은, 그냥 손가락 하나 움직여서 총의 방아쇠를 당기거나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 것과 다를 게 전혀 없다. 애초에 싸움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싸움에 재능도 없다.
"후회할 선택을!!"
근데, 그게 내가 저 사람과 싸워서 진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잖아?
상대가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단검을 던진다. 누비스는 조금 전 장 센을 상대할 때 그러했듯 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모래로 바꾸었다.
게다가 어지간히도 얕보이는지, 상대는 아직도 주 무기인 언월드를 쥔 오른손은 아예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왼쪽 주먹만으로 나를 제압하려고 하고 있었다. 나 따위에겐 본 실력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는 뜻이겠지.
그것은 허영심이나 자만 따위가 아닌, 경험에서 추론된 담백하기 그지 없는 확신.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난 싸움에 재능이 없고, 제대로 싸움이라고 해본 적도 없으니, 실제로 싸움을 하면 백에 아흔 아홉 번은 무참히 두들겨 맞고 널부러지는 것으로 끝이 나겠지.
근데 말이야.
콰득!!
"...큭?!"
"그렇게 방심하다가 목 날아가시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키려고 그러십니까?"
분명 피했을 거라고 생각한 단검이 자신의 몸에 명중하자, 상대의 태도가 급변했다.
"네놈...!"
"어중간하게 힘 조절 하다가 져 놓고서 사실 봐 준거라고 추하게 변명할 게 아니라면, 전력을 다해서 덤벼야지. 안 그래?"
"...!!!"
예상치 못한 급습에 당황하기도 잠시, 상대는 어깨 장갑의 틈 사이로 꽂혔던 단검을 뽑으며, 한층 진지한 태도로 언월도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래, 아무래도 내가 상대를 너무 얕본 모양이군. 당신은, 저기 쓰러진 자와 달리 진심을 다해야 할 상대로 보이..."
콰득. 콱, 콰악!!
"큭, 비겁하게 말하는 도중에...!!"
"그러니까 아까 전에도 말했잖아."
입으로는 상대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말만 골라서 내뱉으며, 팔은 쉬도록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제 할 일을 하게 둔다.
누비스는 몸을 다시 모래로 바꾸어 공격을 피하려고 들었으나, 그 수법을 몇 번이고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나를 상대로 같은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위였다. 같은 수법에 한 번 당할 수는 있어도, 두 번 이상 당하면 바보니까. 이미 파악한 수법에는, 그만한 파훼법이 있기 마련.
상대가 육신을 모래로 바꾸는 시간은 극히 찰나.
그렇다면 칼날이 날아드는 타이밍을 조절하면 그만.
칼날이 몸에 닿을 것을 예상하고 모래로 바꾸고, 다시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순간.
분명 모래로 변한 몸을 뚫고 건너편으로 지나갔어야 할 단검이 허공에 고정된 채로, 다가올 타겟을 기다린다.
그렇게 상대는 제 발로 불길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 없는 꼴.
내 수법을 알아챘는지 몸을 모래로 변화시키는 시간을 늘렸지만, 그래봤자 소용 없다. 가히 무적에 가까운 그 방어술에는, 분명 그만한 디메리트가 있을 터. 그리고 저런 류의 방어법의 가장 대표적인 단점은, 무적인 순간에는 공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공격을 가하기 전에는, 반드시 원래 형태로 돌아와야만 한다.
콱.
"크윽..!"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무적의 상태가 아니라, 그 어떤 공격도 제대로 통하는 평소의 상태로.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다고? 어쩌라고. 앞서 나온 아홉 중에 갑옷을 입은 사람이 없었나? 방패를 든 녀석조차도, 반작용의 법칙을 무시하고 작용의 법칙만 가해지도록 왜곡하여 일방적으로 힘이 가해지게 만들면 계속 밀려나다 언젠가는 뚫리게 된다.
칼날을 무기로 튕겨낸다고?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어차피 튕겨내봤자, 궤도를 바꾸어 다시 목표를 향해 날아들게 할 수 있는데. 몇 번을 튕겨내도 소용 없다. 장 센은 아직 숙련도가 부족하여 한 번에 열 번 까지, 그리고 여섯 자루가 한계일 테지만... 난 아니거든.
"크, 크아아아아악...!!!"
"대, 대장군...!"
"누비스 대장군이... 일방적으로...!!"
서른 자루의 단검들이 고속으로 날아다니며,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에서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날아든다. 설령 그것을 피하거나 튕겨내도, 이내 그것이 얼마 안 가 다시 덤벼듬과 동시에 다른 단검들이 목표를 향해 날아든다. 몸을 모래로 바꾸어 공격을 피한다고 해도, 그 무적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무적 상태를 해제하는 것과 동시에, 서른 개의 이빨이 있으나 마나 한 갑옷을 잘근잘근 씹으며 상대의 몸을 물어 뜯는다.
"허억, 허억, 허억...!"
어느새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대장군. 그에 비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단검들을 조종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나.
엘드랜드의 시민들의 눈에, 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우리들의 기를 죽이겠다고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최강의 패를 불렀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국의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나라의 영웅이 패배하는 꼴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만드는 셈이 되었지.
빌가메스, 네 딴에는 신의 수를 두었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사실 그건 스스로를 패배로 내모는 자충수였던 모양인데?
"질 수, 없다. 질 까보냐...! 나는 이 나라의 검이자 방패! 절대 질 수 없다!!"
부숴진 갑옷 사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상처 투성이의 몸에서 나올 거라곤 예상치 못한, 가녀리지만 힘찬 함성과 함께 누비스의 언월도에 모래 바람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모래 바람은 점차 그 기세가 강해지더니, 이제 사람 하나 정도는 가볍게 찢어 발길 매서운 모래 폭풍이 되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야생마처럼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아, 저거 그거네. 그, 최후의 발악으로 사용하는 필살기.
"근데 그렇게 대놓고 쓰면 그걸 누가 맞아주겠냐?"
변신과 필살기는 도중에 방해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지. 근데 난 악당인데 그런 규칙을 굳이 지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최후의 공격을 위해 거센 모래 폭풍을 언월도에 끌어내며 모든 힘을 다 소모한 누비스 장군은, 양옆에서 매섭게 날아든 열 다섯 쌍의 이빨을 허용하며 그대로 허무하게 쓰러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