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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72화 (217/229)

〈 172화 〉 이건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1)

* * *

열 시간에 거친 긴 시간이 끝나고 비행선에서 내린 나를 반긴 것은 고개를 끝까지 들어도 그 끝을 볼 수 없는 높은 빌딩들. 그리고...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손에 든 것을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우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총구를 겨눈 서른 명의 미래식 병사들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순순히 투항하라! 이쪽의 지시에 응한다면, 후에 불이익은 없을 것이다."

길고 긴 비행을 끝내고, 간신히 밖으로 나오자마자 만난 것이 열 두 개의 총구라니. 이게 메타버스 시티 나름의 대규모적인 환영 인사라고 해도 차마 웃어 넘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발포할 듯이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이나 웃음기 하나 없는 저들의 표정을 보면 개꿀잼 몰카는 아닌 것 같은데. 근데 내가 뭘 어쨌다고 갑자기 이 지랄이지? 나 이 도시에 방금 막 도착했다고.

이 아티피아에 처음 오자마자 아무것도 안 했는데 느닷없이 하운드 부대인가 뭔가하는 것들에게 체포되서 바로 스카이론의 새장 최하층에 수감되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순식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마음 같아선 두들겨 패고 싶긴 한데, 그게 또 그럴 수가 없다. 내 행동에 대한 제약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고, 여기서 저들의 요청에 불응하면 오히려 그것으로 트집을 잡힐 수 있으니. 차라리 지금은 그들의 의도대로 따라주고, 나중에 그만큼 책임을 무는 편이...

"먼저 무기를 겨눈 건, 너희들이다."

아, 젠장. 맞다, 저 친구한테 미리 사정을 말해뒀어야 했는데. 하지만 내가 그를 막기도 전에, 그는 허리에 찬 총을 쥐었다.

"무기 버리라고 했을 텐데!!"

철컥, 철커덕. 열 두 자루의 총기 중 절반의 방아쇠가 나로부터 내 동행인에게로 옮겨갔다. 그러나 겁 없는 나의 동행인은, 그들의 이유 없는 압박에 조금도 굴할 생각이 없었다. 그를 비롯하여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친구들은, 누군가 자신을 얽매려는 시도를 정말로 싫어했다. 그게 나라고 해도.

"거절하지."

탕!

내가 채 말릴 새도 없이, 내 동행인은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도 허리춤에서 총기를 뽑지도 않고.

"이 녀석 대체 뭘 하..."

퍼억!

병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 없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눈 먼 탄환이, 그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기에.

"억, 어억...?!"

"흠, 생각보다 튼튼하군."

동료가 당한 부상에, 총을 든 병사들은 탄환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메타버스 시티의 치안을 유지하는 시큐리티를 공격한 무뢰한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들을 탄환이 날아온 방향에서, 총기를 든 수상한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총을 쏜 것은, 내 동행인이니까.

탕! 타탕! 탕! 탕!

내 동행인이 다시금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도 총구를 바닥으로 향한 채로.

그리고 어디 선가 날아온 네 발의 눈 먼 탄환이, 또 다른 시큐리티 병사들의 팔과 다리를 관통했다.

"이, 이건 대체..."

"뭐야, 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저... 저 녀석이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수상한 녀석이 벌인 짓이다! 저 놈을 겨누어라!!"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대장은 당황한 시큐리티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곱 자루의 총기가 다시 내 동행인을, '눈 먼 저격수'를 겨누었다.

"이보쇼, 치안 집행자분들. 당신들의 조사에 순순히 응할 테니, 제발 무기 좀 내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당신네들이 겨누는 그 위협적인 무기가, 내 과격한 동행인의 신경을 건드리잖습니까?"

"닥치고 손 들라고 했을 텐데!!"

충고를 해 주어도, 알아 먹지 못하는 바보들. 무죄추정의 원칙도 지키지 않는 놈들을 상대로 순순히 투항할만큼, 내 동행인 겸 호위는 자비로운 자가 아니었다.

"젠장, 쏴라!"

위협에도 불구하고 총을 버리지 않는 눈 먼 저격수를 향해, 시큐리티 부대장이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사격 명령을 내렸다. 시큐리티 대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한 발에, 일곱이라."

철커덕.

눈 먼 저격수가 허리춤에서 총기를 뽑아, 본래는 권총 같은 짧은 몸체의 총기에 저격총 특유의 그 긴 총열을 연결하고, 하늘을 향해 총구를 겨누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

"어렵지 않은 일이군."

타아아­­­­!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아앙!

그리고, 단 한 발의 탄환이 일곱 명을 꿰뚫었다.

"컥...?!"

"이런, 미친...!!"

시큐리티 일곱 명은 명중시키기 좋게 일렬로 서 있지 않았고, 목 위로 아무것도 없는 자가 발사한 총의 경로에 서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간을 찢으며 날아든 한 발의 탄환이, 일곱 사람들의 팔을 거의 동시에 관통하여 손에 든 무기를 바닥에 떨구게 만들었다.

아마 그들은, 이제야 무슨 수단으로 자신들이 패배한 것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러나 단 한 발의 총성.

눈 먼 저격수의 탄환은, '반드시 맞춰야 할 것'은 빗나가는 대신 '맞을 리가 없는 것'은 명중하는 힘이 있으니까.

정상적으로 탄환이 발사되었을 때의 궤적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곧 탄환에 명중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진정해, 저격수. 저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나를 봐서 이제 무기를 거두어주지 않겠어?"

"흠... 선생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이 빛은 나중에 따로 받아야겠어."

"그야 물론이지."

저들의 눈에 열 다섯 명이 위협적으로 총을 겨누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방아쇠를 몇 번 당겨 상처 하나 없이 모두 제압한 저격수는 아마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괴물을 고작 말 몇 마디만으로 얌전하게 만드는 나는 뭐로 보일까? 괴물 조련사? 거물? 아니면, 악마? 뭐든 좋다. 어찌되었건, 내 동행인이 가진 무력은 그 생김새 만큼이나 범상치 않으며 또한 나는 그를 통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것을 저들이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다짜고짜 무기부터 겨누는 대신 나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하겠지.

만일 그 정도 학습 능력도 없다면, 다음엔 저격수의 눈 먼 탄환이 정말로 저들의 머리를 터진 수박처럼 만들어 버릴 테니까.

나는 관통 당한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신음을 내뱉는 치안 유지관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그들이 나를 미친놈 바라보듯 보는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해주며.

*

'이, 이 미친 괴물...'

아카위키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수리가 필요하다는 설득을 통해 성공적으로 메타버스 시티에 도착했으니, 이제 이 두 명과 떨어지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린 아카위키는 비행선이 착륙하기 전 미리 치안 유지관들에게 메세지를 하나 보내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왔다. 랜드필의 선생은 아직 각종 제약에서 자유가 되지 못 했기에, 설령 부당한 대우라고는 해도 지금 당장은 시큐리티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머리 없는 괴물의 급발진과 열 다섯이나 되는 시큐리티가 도시 한복판에서 단체로 피흘리며 쓰러지는 일은 아카위키의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자의 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 되려 그의 옆에 있던 괴물의 성질을 자극한 꼴이었다.

엘드랜드를 궤멸에 가까운 상황으로 몰아 넣은 일곱 괴물 중 하나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만, 몸집도 평균 인간 남성 수준에 무기도 총 한 자루가 전부라 생각보다 별 것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머리 없는 괴물이 쏜 탄환은 마치 여기 저기 워프 되는 것처럼 곳곳에서 날아들며 시큐리티들을 무력화 시켰다. 별로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그저 방아쇠를 당기기만 해도, 최소 한 명 이상은 무조건 무력화 또는 사살할 수 있는 마법의 탄환... 저런 괴물이 어디 안전한 곳에 몸을 숙이고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계속 당기기만 해도, 많은 이들이 어디서 날아드는 것인지도 모를 눈 먼 탄환에 맞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다.

아카위키는 머릿속에서 작전을 다시 수정했다. 괜히 어설프게 병력을 끌어와서 조금 일찍 탈출하려고 봤자 저 미친 괴물이 마법의 총을 다시 쏠 명분을 만들어 주는 셈이니, 차라리 빠르게 근처의 안드로이드 수리점으로 안내한 후 그 안에서 적당한 의체로 갈아타기로 했다. 괴물과 선생에게 보이지 않도록, 안드로이드는 다시 메세지를 보내서 시큐리티들에게 퇴각을 지시했다.

잠시 후 굳은 얼굴의 시큐리티들이 누군가의 오인 신고로 인해 오해가 있었고 실례를 저질러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며 자리를 급히 떠났다. 저들은 괜히 골치 아픈 일을 겪었다며 투덜거릴 테지만,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 오후에 개인적인 택배로 도착할 급속 재생 혈청의 처방과 수고비를 보면 다시 아카위키에게 무구한 충성을 바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안드로이드 수리점이... 아, 생각해보니 열 시간이나 비행선을 타고 있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했네. 일단 근처의 맛집부터 안내해 줄래?"

"...확인. 근처 맛집 검색, 탐색 중... 탐색 완료. 근처에 적당한 샌드위치 가게가 있습니다. 평점은 5점 중에 4.8점. 안내를 시작합니다."

*

"...너희들, 방금 그거 확실히 봤지?"

메타버스 시티의 비행선 선착장에서 일어난 그 짧은 소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모험가 에드릭은 확신을 얻기 위해 자신의 파티원들을 향해 물었다.

"예, 똑똑히 봤어요."

"저게 그 엘드랜드를 무너트린 괴물인가..."

모험가들은 방아쇠 몇 번 당긴 것만으로 시큐리티 열 다섯을 단숨에 제압한 존재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메타버스 시티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시큐리티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전투력 테스트에서 최소 B 급 이상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메타버스 시티의 시큐리티들은 착용 중인 슈트의 색에 따라 그 무력을 구분할 수 있는데, 저기 쓰러진 시큐리티들의 복장은 청색이었다. 적색보다는 높지만, 자색보다는 낮은, 세 개의 색 중 중간에 해당하는 색. 데스페라도의 모험가 기준으로 치면 한 명, 한 명이 골드 등급 모험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청색 파워 슈트의 기능은 '연계'. 주변에 같은 청색 슈트가 많을 수록, 착용자의 신체 기능을 최대 80% 까지 추가로 이끌어 내주는 강력한 장비였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저들이, 고작 괴물 한 마리의 총질 몇 번에 죄다 쓰러질 거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에드릭은 시큐리티들을 무력화 시킨 괴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뼈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몸과 2m정도 되는 큰 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뜨지만, 그 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었다.

그 괴물에겐 머리가 없었다. 정확히는, 얼굴에서 입을 기준으로 그 위의 부분이 죄다 소실되어 있었다. 마치 계란이 깨진 것처럼.

눈은 커녕 그것과 비슷한 신체 기관 하나 찾아볼 수 없는데, 앞으로 내딛은 걸음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으며 엉뚱한 곳으로 발사한 탄환은 예상치 못한 경로에서 적을 명중시킨다.

"이래선 길드 마스터가 내려준 지시를 수행하는 것도 어렵겠는데?"

에드릭과 그의 파티원들이 메타버스 시티에 있던 것은 길드 마스터의 명령 때문이다. 그는 랜드필의 선생 라그나 아마게돈 일행을 지켜보다 혹시나 그가 곤경에 처하면 나타나서 도와줌으로서 랜드필의 선생에게 데스페라도의 모험가들에 대한 호의를 사라고 지시를 내렸으나... 막상 그들이 나서기도 전에, 선생의 옆에 있던 저 괴물 하나가 상황을 단숨에 종결시켜 버렸다.

그들조차 감히 정면에서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시큐리티들을 상대로, 고작 총질 몇 번 만으로.

"그래서... 쿠린, 네가 보기엔 어때?"

파티의 리더인 에드릭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침을 세우기 위해, 파티원들 중에서 저 랜드필의 선생이나 괴물과 그나마 연이 있을 파티원에게 물었다. 그리고 '해신의 창' 츠나세 쿠린은 더 없이 덤덤하고 확고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싸우면 절대 못 이깁니다."

"그 정도야? 물론 시큐리티들을 단숨에 제압한 것은 놀랍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들이 저 괴물의 능력을 몰랐던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그리고, 듣기론 랜드필의 선생 자체는 무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들었어. 저기 있는 안드로이드는 전투 기능이 전혀 없는 가정용으로 보이고. 그럼 사실상 우리들이 정면에서 붙게 되면, 머릿수로 따지면 3대5지만 실질적인 전력은 1대5인 셈인데..."

"에드릭. 분명히 말하지만, 저건... 저희들로선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의 존재입니다."

"네가 그 힘을 쓰더라도?"

츠나세 쿠린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 마법도, 신성력도 아닌 별개의 능력. 사람들이 '심의'라고 부르는 힘. 쿠린의 힘은, 주변의 풍경을 바다로 만드는 것과 바다에서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대폭 증가하는 것. 바다에서 싸우는 쿠린을 상대로는, 어지간한 플레티넘 모험가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파티원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죽하면 평균적인 전투력은 파티장인 에드릭이 더 높지만, 그 능력을 사용한 동안에선 츠나세 쿠린 혼자서 나머지 넷을 가볍게 요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 쿠린이, 아직 싸워보지도 않은 적을 상대로 벌써부터 패배를 확신했다. 그것도 자신에게 굉장히 유리한 환경을 임외로 조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능력자가.

"심의를 쓰면, 제 전투력은 분명히 대폭 상승하겠죠. 하지만, 그래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생 옆의 저 자는... 저보다 급이 더 높거든요."

"급이 더 높다고?"

"쉽게 예를 들자면... 제가 주변을 바다로 만드는 것과 같은 힘을, 24시간 동안 지친 기색 없이 계속 사용하고 있는 셈이거든요."

"미친."

쿠린이 가진 [그리운 바다]는 매우 강한 힘이라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험가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를 파티원으로 들인 것도, 그 힘을 직접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니까. 주변을 바다로 만든 상태에서, 그녀가 전위에 서고 나머지 파티원들이 그녀에게 지원을 몰아주면 상대의 머릿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 않는 이상은 거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으니까.

"괜히 엘드랜드를 궤멸시킨 괴물 중 하나가 아니란 건가?"

물론 그녀가 패배를 확신하는 이유는 단순히 저 총잡이의 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심의' 소유자들은, 그것을 스스로 각성한다기보단 랜드필의 선생을 통해서 얻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힘이 현실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막상 그 정도의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에겐 이미 '심의'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무력이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심의'는 순수한 힘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무력을 보조하는 용도로 발달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힘들게 심의를 각성하는 것보단 선생의 힘을 통해 임외로 각성하는 쪽이 더 빠르고 확실하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생긴다.

랜드필의 선생은 심의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돕지만, 동시에 그 힘을 다시 거둘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심의 소유자가 부리는 힘은, 랜드필의 선생이 만들어준 '통로'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에. 선생이 그 통로를 차단하기만 해도, 심의 능력자들은 다시 무능력자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심의를 다루는 자들에게 랜드필의 선생은 새로운 힘과 기회를 준 은인이요, 동시에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지배자였다.

그리고 선생은, 심의를 소유한 자들에게 그 사실에 대한 언급을 금하였다.

혹시나 선생에게 약점을 잡힐까 두려워 심의를 거부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힘을 바라도록. 그것이 자신의 목에 목줄을 거는 일임을 알 수 없도록.

여전히 쿠린에게 있어서 랜드필의 선생은 죽을 위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쥐어 준 은인이었지만, 동시에 원치 않는 관계를 나누었으며 명령을 거스를 수 없는 철저한 갑에 속한 사람이었다.

선생이 무슨 명령을 내리든, 절대 거부할 수 없다. 그리운 고향을 다시 자신의 눈앞에 펼쳐낼 수 있는 힘을 다시 빼앗기고 싶지 않으니까, 보잘 것 없는 만년 골드 등급 모험가로 전락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가 무슨 명령을 내려도, 반드시 따를 수 밖에 없다. 설령, 또 다시 자신의 몸을 원한다고 할 지라도.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과 묘하게 달아오르는 몸의 감각을 무시하며, 쿠린은 숨을 골랐다. 자신의 이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라고 되새기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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