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90화 (163/229)

〈 190화 〉 Fuck↗you↘(7)

* * *

"젠장, 이런 말은 없었잖아!"

"살려줘! 제발, 제발 목숨 만은..!"

"너,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내가, 마!"

로즈네스가 말한 결행의 날. 그 당일에 그녀의 말을 믿고 중앙 지역으로 향했던 토지 약탈자들은 저마다의 비명을 내지르며 하나 둘 씩 차가운 주검이 되어 갔다.

그들이 로즈네스의 말을 믿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평소에 얼굴 알고 지내던 우호적인 사이인데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랜드필의 편을 들어주는 것보단 자신들 쪽을 돕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훨씬 이득이다, 유명한 모험가인 그녀가 일부러 자신의 명성을 망치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에 후원을 그렇게 빵빵하게 해 줬는데 설마 뒤통수를 치겠냐 등등.

물론 그딴 구실들은 저울의 반대편에 놓인 목숨과 비교하면 한 없이 가벼운 것들이었고, 로즈네스는 망설임 없이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 왔던 그 인맥을 모조리 쳐내기로 결심했다. 인맥이고 후원이고, 결국 목숨이 붙어 있어야지 받을 수 있는 혜택인데 그 해택을 포기 못 하겠다고 목숨을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 결과 그녀의 말을 믿고 함정으로 걸어 들어간 토지 약탈자들을 향해, 현 랜드필의 주요 무력 집단이라 할 수 있는 RGA가 단숨에 화력을 집중하여 토해냈다.

그들이 쓰는 무기의 대다수는 메타버스 시티에서 버려진 무기를 적당히 수리해서 재활용한 것이었으며, 무기의 질적인 면에서는 메타버스 시티의 고위 사업가들의 의뢰를 수락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은 토지 약탈자들 쪽이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랜드필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진짜 무기는 손에 든 그 엉터리 고물들 따위가 아니었다. 마법도, 권능도 아닌 미지의 힘이 그들을 향해 쇄도했고 여전히 그 힘의 정체와 파훼법을 파악하지 못 했던 그들은 순식간에 쓸려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내부에 침입한 동료들은 그 순간부터 이미 사로 잡혀 조종 당하고 있던 상태였고, 중앙 지역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경계를 서던 이들이 이미 죽었으니 빈 집을 터는 것이나 다름 없는 쉬운 임무만 수행하면 된다고 믿었던 약탈자들은 중앙 지역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일한 출입구가 닫히며 동시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갖가지 공격에, 대다수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 그나마 눈치 빠른 자들은 가까스로 몸을 피해 살아남았으나, 그들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머릿수는 함정에 빠진 순간 역전되었기에 생존자들이 사망자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런, 망할 놈들...! 반드시, 반드시 이 일은...!"

서걱.

"...또 쓸 데 없는 것을 베었군."

마지막 생존자의 유언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의 목을 날려버린 검객, 도계의 수장 도성운은 한숨을 쉬며 칼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닦아낸 검을 다시 납도한 후, 그는 통신 장치를 꺼내 자신의 주인에게 보고했다.

"현 시간부로, 생태계 교란종을 전부 처리했음을 알림."

[확인. 다들 수고했고, 한동안 휴식해라.]

"알겠다.... 후우.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이만한 수의 사람을 베는 것은... 나라도 이번이 처음이군."

약탈자들의 반 이상이 첫 급습에 변변찮은 저항도 못하고 죽어 나갔으나, 그 습격에서 살아남은 나머지 반은 곱게 죽지 않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쇄도하는 탄환의 비 속에서 어깨나 무릎 등에 총상을 입은 부상자들의 수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처음엔 총성이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에 둔기와 도검만 쓰던 녀석들이지만, 마지막 전투이다보니 탄약을 조금 챙겨왔던 모양이다. 확실히 처음에 수를 많이 줄여두지 않았더라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조직에서 사상자가 최소 열은 발생할 뻔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령."

도성운을 따라 토지 약탈자 처리를 맡았던 조직원들이 무기를 집어 넣으며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RGA라는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뭉쳐 있기 전에도 저들끼리 영역 싸움을 하느라 전투 경험이 결코 적지 않았던 부하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대규모 전투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려했다.

"아니. 나보단 너희가 더 고생했지. 선생께서 다들 휴식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아직 움직일 만한 녀석들은 나를 따라서 뒷정리를 하고, 몸과 정신 모두 멀쩡한 몇 명은 경계를 서도록. 나머지는 휴식하고."

도성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간신히 두 다리로 서 있던 몇몇 조직원들이 한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 때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이의 앞에서 보일 만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도성운은 그런 일로 화를 낼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 힘겨운 전투를 막 끝내서 몸에 긴장도 풀리고, 거기에 자신이 쉬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는데 바로 드러누웠다고 화를 낼 지휘관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그나저나, 이 자식들 진짜 웃기는 놈들이네."

"그러게 말이야. 이 땅을 먹겠다고? 우리들이 몇 년 전부터 이 비좁은 땅이라도 차지하겠다고 피 터지게 싸울 때는 방관하던 놈들이, 갑자기 땅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이렇게나 사람을 투입해선..."

"하여간에 있는 놈들이 더 한다니까?"

랜드필은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외부 사람들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다. 지극히 모순되는 행보일 수 있으나,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이곳 사람들은, 모두 그 '외부'에서 지낼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좁고 척박한 땅에 오게 된 것이니까.

자기들은 오고 싶어서 온 곳도 아닌데, 갑자기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을 쫓아냈던 그 외부에서 사람을 보내 이 마지막 보금자리까지 빼앗으려고 들었으니, 이들이 그 외부 사람들에게 이를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

그리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에, 도성운은 차마 그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그래. 랜드필의 선생, 그 분이 오신 덕분이다. 에스크 녀석이 발가락이라도 핥을 기세로 떠받는 그 사람이 이 버려진 도시에 왔기에, 우리들은 변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터인 어두운 미래 속에서, 작지만 밝게 빛나는 희망을 쥘 수 있었으니. 랜드필의 선생의 계획대로 이 도시가 변하게 되면, 이곳은 더 이상 버려진 자들의 도시가 아니게 된다. 도성운은 선생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랜드필은 버려진 도시가 아니게 될 거야. 물론, 그게 사람을 가려서 받겠다는 뜻은 아니야. 이전처럼, 누구든지 원하는 이 랜드필에 들어올 수 있어. 단, 이전처럼 무법지대는 아닌 거지. 버려진 자들만이 기어 들어 가는 쓰레기장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든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마음 넓은 도시. 어때? 흥미 있나?'

상대가 누구든,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도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도, 다른 이들에게 이해 받지 못한 사람도, 끔찍한 외형으로 괴물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도시.

만일 그런 도시를 실제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 만들어진 가짜 낙원 위에 세워진 진정한 천상의 도시가 될 것이다.

"...아니, 천상은 아닌가. 높이로 따지면, 위보단 아래에 가까우니."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별 거 아니다. 그냥... 혼잣말 좀 했다."

가장 낮은 천상...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신의 검이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에 쓰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에 있을까.

설령, 그 이상향에 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해도.

*

"아야야... 자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네, 진짜."

모노의 죄 없는 정자 착정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녀가 비로소 만족했을 때, 내 자지의 기둥 부분에는 그녀의 립스틱이 자국이 곳곳에 아주 진하게 남아 있었다. 어차피 써도 별 차이 없는 립스틱을 오늘은 왜 귀찮게 바르는가 싶었더니, 내 몸에 자신의 것이라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도 가끔 성욕을 주체 못할 때 상대 여자의 목덜미나 어깨 부분에 이빨 자국을 남기곤 했고, 자지를 물어 뜯기느니 립스틱 자국이 남는 편이 더 낫긴 하지만... 서양의 하드 포르노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내 하반신에 이루어진 모습은 참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누비스는 자신보다 크고 강한 사람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강제적인 느낌으로 당하고 싶어 했고, 내 몸은 그에 맞추어 변했다. 그런 것처럼, 이제는 내 물건 뿐만 아니라 내 몸도 어느 정도 상대의 욕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인간의 욕망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그 여파가 크게 작용하는 셈이다. 모노가 내 남근을 마치 내용물이 끝도 없이 나오는 쮸쮸바를 빨아 먹듯이 다루는 바람에, 잠깐이나마 정액 양만 뒤지게 많은 조루가 되었던 탓에 벌써 체력이 위험할 지경이었다. 모노가 만족하고 잠시 눈을 붙인 지금이, 밀린 일을 처리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다.

"어디... 도성운이 토지 약탈자들 다 처리했다고 보고했고, 양마담은 교육을 시작했고, 마이어는 랜드필에 적용할 법안 작성 중에 에스크는 허튼 짓 하는 놈들 찾아서 교정 중이며... 에시드 패밀리 쪽에서 새로 뽑은 간부인 사비는 도시 재개발에 쓰일 자제 들이느라 바쁘군. 좋아, 다들 자기 일에 아주 충실하고 있어. 그래, 바로 이거지! 살다 보면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 많을 테지만, 지금처럼 계획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일도 있어야..."

쾅!

"...아이 씨발, 이번엔 또 뭐야?"

한창 바쁜 와중에 집무실 문짝을 부수며 쳐들어오는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미친 놈인가 싶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 하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저 새끼는 또 뭐야? 이런 칙칙한 도시에서 저렇게 눈에 띄는 새하얀 로브를 입은 놈을 내가 지금까지 본 적 없을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자식이지?

"아, 드디어 찾았군. 비슷한 방이 하도 많아서 헷갈렸어. 당신이 랜드필의 선생, 라그나 아마게돈 맞나?"

"그래, 뭐. 내가 그 라그나 아마게돈은 맞아. 그런데 넌 뭐하는 놈이냐?"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여섯 번째 신비의 수호자, 거상의 로도스라고 하네. 만나게 되어 영광일세, 신비의 창조자여."

거상의 로도스... 신비의 수호자라고? 그거 마기스토스에 수배 중인 마법사 단체잖아? 마법사의 존재 의의가 미지를 해석하여 그 원리를 밝혀내는 것인데, 반대로 신비란 밝혀지지 않을 때에 그 힘을 발휘한다며 마법사의 사상에 반대한 자들...이니 뭐니 하지만, 실은 그 밝혀지지 않은 힘들을 소유해서 자신들 마음대로 휘두르는 불법 무력 집단. 그리고 내가 랜드필의 조직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홍등회의 간부인 카룬이 배신을 하도록 부추긴 배후.

"신비의 수호자가 내 집무실에는 무슨 용무로 쳐들어 온 거야? 그리고, 신비의 창조자라는 그 거창한 별명은 또 뭐고?"

"랜드필의 선생은 참으로 재미 없는 농담을 하는 사내로군. 이 세상에서 신비의 창조자라는 그 이름에 맞는 사내가, 당신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나는 이 로도스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제정신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었다.

"오오, 우리는 보았다네. 황금의 왕국, 엘드랜드. 그 기나 긴 역사를 가진 왕국과 실체화 된 권력의 힘을 휘두르는 왕을, 그대로 일곱 신비를 불러내어 굴복시키던 그 모습을!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그 신비를 만들어내는 그대에겐, 신비의 창조자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지!"

그리고 그 의혹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일곱 신비를 불러내어, 기나 긴 역사를 가진 왕국과 그 왕을 굴복시켰다? 그러니까 내가 일곱 친구들로 빌가메스를 쳐바르고 엘드랜드를 속국으로 만든 것을 말하는 거지? 그런데 신비라니, 이 새끼들은 그냥 지들이 보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죄다 신비라고 대충 뭉뚱그려서 부르는 건가?

"그래서 넌 왜 날 찾아온 건데?"

"아아, 이런. 나도 모르게 말이 옆으로 새었군. 일단 본론부터 말하자면...현재 자네의 처우에 대하여, 신비의 수호자 내에서도 셋 정도로 입장이 갈라진 상태라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본래라면 당신이 랜드필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우리 신비의 수호자들은 당신에게서 완전히 손을 뗄 셈이었다네. 아군이 되었다면 참 좋았을 테지만, 이쪽의 수호자 중 성급한 친구 하나가 멋대로 단독 행위를 벌인 탓에 당신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진전도 전에 악화된 탓이지. 그런데 당신이 일곱 신비를 부리며 홀로 그 거대한 왕국을 무너트린 이후, 우리들 사이에선 다시금 의견이 분분했네."

흠.... 이거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가?

"우선 나와 내 오랜 친우는 그대와 적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네. 신비를 자신의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신비의 창조자를 함부로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지. 그러나, 나머지 수호자들은 의견이 다르더군. 신비를 창조할 수 있는 자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거나 최악의 경우 이쪽의 편으로 강제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자, 그리고 신비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상태에서 그 힘을 발휘하며 그것은 그 수가 적을 때 효용이 있기에 멋대로 대량의 신비를 만들어 냄으로서 신비가 가진 값어치를 떨어트리는 자네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자. 이렇게 구분할 수 있겠군."

아니,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대체 왜 자기들 멋대로 내 처우를 결정하고 지랄이야? 하여간에 씨발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난 것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아, 모노 릴리스랑 누비스 같이 나랑 밤을 보낸 여자들이랑 지금 나를 따라주고 있는 부하들 빼고.

"그래서 말인데..."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줄 말은 하나 뿐이다."

꾸드드드득. 삽시간에 수십 배로 부푼 손을 뻗자, 하얀 로브의 사내는 황급히 양손 위의 문양을 빛내며 허공에서 거대한 석상의 팔을 만들어 내 공격을 방어하려 들었으나, 난 찰흙을 짓누르듯 그 거대한 바위 손을 찌그러트리며 자신을 여섯 번째 수호자라 칭한 자의 몸을 움켜 쥐었다.

"좇까."

"자, 잠깐... 나는 당신의 편...!"

"내 땅에서 멋대로 개지랄을 떨었으면서 다시 만나서 한다는 말이, 잘못했다는 사과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내 처우에 지들끼리 떠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부냐? 네가 정말로 나를 배려하고 있다면, 멋대로 내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게 아니라 만날 약속을 정식으로 잡고 찾아와서 사과부터 했어야지. 니가 한 짓이 아니더라도, 네가 속한 조직의 누군가가 벌인 일이니까 연대 책임이잖아? 그런데 그딴 거 하나도 없이 제 할 말만 한다는 건... 솔직히, 너도 나라는 개인의 감정이 어떤 지는 별 중요하지 않다는 거잖아?"

"컥, 커억... 그, 그건... 오해가....!"

"오해는 개뿔."

더는 듣고 싶지 않고, 들을 가치도 없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결국 날 이용해서 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눈에 훤하다.

"야, 나는 타인의 욕망에 굉장히 민감하거든? 상대가 어떤 욕구를 품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단 말이야?"

내 말에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는 듯 그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지금 내 눈에, 네 욕망이 어떻게 보이는 줄 알아?"

그러자 무언가 뜨끔한 건지,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왕관을 향해 뻗은 세 쌍의 손... 너의 욕망은, 권력에 대한 바람이야. 타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 다른 사람을 제 밑에 무릎 꿇게 하고 위에서 내려다 보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고자 하는, 그 추잡하고 역겨운 욕망을... 내가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뿌득, 콰득, 우드득...!

"커, 커헉...!!"

뼈가 부러지고, 가루가 되는 소리. 거대한 압력에 짓눌려 으깨지는 인간이 토해내는 단말마. 죽음의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왕관을 향해 뻗어진 손은 내려갈 줄은 몰랐다. 가느다란 밧줄이 제 목에 휘감겨 뒤로 힘껏 당겨지고 있는데, 왕관을 향해 손을 뻗는 대신 그 밧줄을 붙잡고 끊어내면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는 끝까지 왕관을 향해 뻗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심장의 움직임이 멎으며 그 눈동자에 빛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마지막에 네가 그저 살아남기를 욕망했다면, 나도 그 욕망을 들어줄 생각이 있었는데. 아쉽네. 부디 다음 생에는, 권력 따윈 생각도 하지 않는 청렴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길 빌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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