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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92화 (165/229)

〈 192화 〉 님들 저 도시 운영 이번이 처음인데 이거 좋은 건가요?(2)

* * *

객관적으로 말해서, 나는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싸움을 특별히 잘하는 것은 아니고, 남들보다 몇 수 앞서 보는 식견을 가진 것도 아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겁 먹지 않고 앞서 나갈 용기를 가지지 않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릇이 큰 대인배도 아니다.내가 여기까지 온 것에는 여신 루미너스의 힘으로 내 자신의 감정 중에서 두려움이라는 영역을 제거한 것,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두려움이 없기에 망설임이 없고, 죄책감이 없기에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간다.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기에 내가 세운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을 모두 염두하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고민하며 다가올 순간을 위해 철저히 대비한다.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기에 신중하다. 지나치게 신중한 자는 망설이며 기회를 놓치지만, 두려움이 없기에 망설이지 않아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비록 가끔 제 욕심을 어찌 못 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 때문에 이따금 일이 꼬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까지 제외하면 너무 인간미가 없으니 넘어가자.

어쨌든 결론은, 내가 여기까지 도달한 것은 내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내가 잘 해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그 실패율을 줄이고자 루미너스를 통해 내 자신의 가장 큰 문제점인 두려움을 거세하였고, 그 자리에 욕망을 더욱 집어 넣어 추진력을 올렸다. 그리고 루미너스의 연극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나 자신에게 가한 마개조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쓸 데 없이 긴 혼잣말의 결론이 도대체 뭐냐고?

"하, 씨발 진짜..."

랜드필이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공인으로 대도시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외부에서 들여온 대량의 자재들을 통해 전체적으로 재개발을 하고, 본래라면 수십 년은 족히 소모했어야 할 작업이지만 거 누가 판타지 세상 아니랄까봐 온갖 기상천외한 협력이 더해지며 도시의 재탄생은 놀랍게도 불과 3개월 밖에 소모되지 않았다. 그래, 진짜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이지.

우선 마기스토스 쪽에서 마법사들이 파견 왔다. 엘레이스타가 랜드필 재개발에 자신들 쪽의 마법 인력을 보내준 것이다. 내가 다루는 심의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싶은데, 내가 도시 리모델링으로 바빠서 시간이 없으니 그 시간을 단축해야겠다며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더라. 본래라면 인부 수십 명이 영차영차해서 옮겨야 할 무거운 자재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띄워져 여기저기 필요한 곳으로 날아드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메타버스 시티 쪽에서도 지원이 왔다. 굴착기, 크레인 등의 공업 장비부터 나로선 도저히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온갖 기능들이 탐재된 최신형 안드로이드 인부들이 도시의 완공 속도에 박차를 가해 주었다. 아카위키는 아무래도 내가 진짜로 마기스토스 쪽에 넘어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앙숙인 사이인 것은 윗대가리들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인지, 마기스토스에서 파견 온 마법사들과 메타버스 시티에서 지원 온 인부들이 서로를 무시하고 도발하나 싶더니 급기야 누가 더 이 도시 완공에 큰 도움이 되었는가를 결투로 겨루겠다며 자신들의 몸을 혹사해가면서까지 공사의 속도를 진전시킨 것이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 까진 없었는데 말이야. 아무튼 갑자기 경쟁 심리가 발생한 두 집단을 적당히 자극하고 추스르며, 나는 도시 하나가 역대급의 속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이 두 눈으로 지켜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족히 수십 년은 걸릴 대규모 공사가, 두 도시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이렇게 짧은 기간 만에 완공이 나다니.

정말 사람 일이란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에 넘어오자마자 유스티아의 개수작 때문에 새장에 갇혔지만 새장의 관리인인 브레이크윙 교도소장 덕분에 엘레이스타와 인연이 닿아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아카위키는 내 정보를 캐겠다고 몰래 안드로이드에 숨었다가 내가 조립 과정에서 부품을 빼 먹는 바람에 되려 그녀를 암컷 타락시켜서 내 아군으로 만들고... 누가 들으면 혹시 어디서 대가리 한 대 쎄게 얻어맞은 것이 아니냐는 소리를 할 정도로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 투성이다.

그런데 그런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좋은 쪽으로만 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나쁜 쪽으로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 나쁜 일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는 물론 이 세상에 오자마자 하운드 부대니 뭐니 하는 것들한테 잡혀서 새장 최하층에 갇힌 것이 있고, 또...

"하....."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도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

본래 공사란 본격적으로 건물 하나를 새로 짓는 데에만 해도 최소 년 단위의 시간이 소모되며, 그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편이다. 그런데 여긴 판타지 세상이다. 내가 살던 곳보다 뛰어난 고도로 발전된 과학 기술, 내가 살던 곳에는 없던 미지의 마법, 그리고 신들이 단순히 종교에서 이름만 언급되는 그 존재가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실존한다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 세상. 일개 개인이 핵폭탄 급의 파괴 행위도 일으킬 수 있는데, 건설 분야라고 해서 이전 세상과 똑같은 수준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타버스 시티에서 파견된 전문 인부들, 그리고 마기스토스에서 지원을 온 건축 전공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랜드필은 불과 3개월 만에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으나, 그 직후 미루어 두었던 문제가 터졌다. 그것은 바로, 메타버스 시티 쪽 인부들과 마기스토스 쪽의 인부들 사이의 마찰이었다.

본래부터 두 집단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우두머리부터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와중에, 그 아랫사람들이라고 해서 서로 긍정적인 관계일 리가 없다. 실제로 공사 초창기부터 두 집단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나는 일단 도시 재개발을 우선시하자는 말로써 그들의 다툼을 중재했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으로 시공에 걸리는 기간이 대폭 감소된 것은 긍정적인 일이었으나, 랜드필이 새로 태어난 지금 나에겐 미루어 두었던 두 집단의 충돌을 피할 변명거리가 없었다.

"그 잘난 마법이라는 것도, 건설 쪽에선 별 소용이 없네?"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냐, 기껏해야 도구의 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한심한 것들이."

"불완한 건물들의 구조 재설계, 부족한 자제 대체 자원 수급, 거기에 건물 외벽 디자인까지! 우리가 다 했지. 그 동안 너희들은 뭐 했지? 그 잘난 마법으로 건축 자제를 여기저기 옮기는 것이 전부 아니였냐?"

"아아~ 그렇게 건설을 잘 하셔서 초반에 빌딩 몇 개 무너트리셨나? 그 사고 뒷수습 한 게 우리들이란 걸 잊은 건 아니지?"

"그러는 너희들은 지난 번에 공사 중에 다리 하나 무너트렸던 거 기억 못 하냐? 그걸 누가 다시 건져 올려서 복구했는데?"

"한 번 해보자는 거?"

"오냐, 너희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라."

...서로에 대한 경쟁 심리와 지나친 성급함으로 몇 번 사고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어떻게 잘 다독여서 다시 수습했는데 그 동안 쌓이고 쌓였던 감정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이 끝나자 마자 터져나온 것이 이번 일의 원인이었다. 물론 둘 중 어느 한 쪽만 채용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만큼 시공 속도의 한계가 명확해서 재개발 완공에 1년은 족히 걸렸을 테니, 누가 다시 그 때로 돌려 보내준다고 해도 나는 양쪽 모두 고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일은 그들의 책임자인 아카위키와 엘레이스타에게 연락을 돌린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인간들 성격을 생각해 보면, 자기 쪽 사람들을 말리긴 커녕 그 망할 자식의 사람들에게 절대 지고 오지 말라며 되려 싸움을 부추길 테니. 결국 내가 이들을 수습해야 한다는 건데, 마땅한 방법이...

아. 그러고보니 하나 있군. 나는 통신 장치를 꺼내, 간부 중 하나에게 연락을 했다.

"양마담. 곧 거기로 사람을 좀 많이 보낼 건데, 미리 준비 좀 해줘. 문제 없이 접대 가능한 애들은 아마 다 가용해야 할 거야."

"예,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미리 연락했으니 아마 도착할 즈음에는 바로 시작할 수 있겠군.

"자자, 여러분. 다들 열 내지 마시고, 제 말에 잠시 집중 좀 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중간에 끼어들자, 양쪽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곧바로 내게로 향혔다. 당장이라도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따가운 시선들이 온몸에 꽂히는 가운데, 나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선에서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꺼내 들었다.

"다들 이 부족한 저와 저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도시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는 데 아주 고생하셨죠. 물론 여러분들이 일한 것에 대한 비용은 여러분들을 보내주신 그들이 이미 제공했을 테지만, 여러분들의 노력을 높이 산 제가 개인적으로 보상하고 싶습니다. 다들 3개월 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여러모로 힘들었으니 제법 괜찮은 곳에서 대접을 해 드리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

"여... 여긴...!"

마기스토스 쪽에서 파견 온 건설 전문 마법사 리빌드는 개인적으로 보상을 하겠다는 랜드필의 선생의 말에 따라 도착한 곳의 정체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그것은 책상에 앉아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 책벌레인 그와 연이 전혀 없었을, 매우 자극적인 장소였다.

마치 정육점을 연상케 하는 의미심장한 붉은 빛의 등불, 마기스토스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헐벗은 것이나 다름 없는 노출이 엄청난 옷차림으로 자신의 속살을 거의 다 드러낸 야시꾸리한 옷차림으로 그와 일행들을 묘한 미소로 반기는 여러 미녀들.

그렇다. 랜드필의 선생이 리빌드를 포함한 건축 전공 마법사들과 메타버스 시티의 인부들을 데려온 장소는, 명백히 성적인 목적으로 운영하는 퇴폐업소 그 자체였다.

"여러분 덕에 도시 완공이 상당히 앞당겨졌으니, 개업 서비스 삼아 이번에 한해선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할 테니 각자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 잠깐... 이, 이런 건...!"

리빌드의 마음 속의 윤리관이 다급히 위험 경보를 발령했다. 물론 그도 한 명의 젊은 사내였고, 3개월에 걸친 격렬한 업무로 인해 피로도 피로지만 해소하지 못한 욕구도 제법 쌓인 상태는 맞았지만 책방에 쳐박혀 사느라 여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동정 딱지를 뗀답시고 제 발로 퇴폐업소 같은 불건전한 곳에 발을 들일 정도로 10상남자도 아니었던 그는 적당히 집으로 돌아가서 알아서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리빌드를, 그가 재탄생시킨 이 도시의 정식 대표자가 막아서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앞으로 운영할 이 도시, 만인의 도시인 랜드필에서 이런 일은 딱히 불법적인 일이 아니니까요."

"예...?"

"저희 도시에선 합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뭐, 그렇게까지 말해주신다면 오히려 거절하는 편이 더 실례일 테지."

예의를 중시하며 성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꽉 막힌 경향이 있는 마기스토스의 사람답게, 리빌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차마 납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티 쪽은 사정이 달랐다. 그곳은 마기스토스에 비하면 성적인 부분에서 훨씬 개방적이었고, 그래서 랜드필의 선생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캬, 이런 엄청난 대 서비스라니! 랜드필은 천국인가!?"

"게다가 여성분들도 엄청난 미인이잖아! 메타버스 시티와는 다른 스타일이라서 더 좋은 걸?"

"자자, 어서 들어가자고. 우리 고결하신 마법사님들은 너무 고상하셔서, 이런 곳에는 발을 들이지 못 하시겠다니까 우리가 그만큼 더 즐겨주면 되지 않겠어?"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의 말이, 마기스토스 쪽 인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 그렇게까지 말한다 이거지? 좋아, 우리도 눈치 보지 말고 즐기고 싶은 사람은 즐겨라."

"예? 하, 하지만..."

"다른 도시에 가면, 그 도시의 법을 따라야지. 이곳은 마기스토스가 아니라 랜드필이니, 마기스토스의 법에 얽매일 필요 없다."

마기스토스 쪽 인부의 통솔자마저 허가를 내려주니, 리빌드의 망설임은 더해졌다. 마기스토스에선 매춘업이 불법이지만, 이 랜드필에선 합법이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겪을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진짜 여자와의 육체 관계를 맺는 것도 꿈은 아니란 뜻.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리빌드를 뒤로 하고, 눈앞의 매력적인 여인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몇몇의 마법사들이 그 미소에 홀려 걸어나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마기스토스 쪽 인부들도 랜드필의 선생이 제공한 호의에 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 으..."

"어머나, 손님. 왜 그러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아, 아, 그, 그게...!"

"아무래도 손님에게 생긴 문제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

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아가던 동정 마법사에게, 육감적인 몸매의 서큐버스의 육탄 공격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공격이었다. 결국 어버버거리며 단호하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리빌드는 그대로 그녀를 따라 업소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고.

"후훗... 손님,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셨나요?"

"....아, 아앗...!"

그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

본디 남자란,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 앞에선 바보가 되는 슬픈 생물이다. 그리고 서큐버스는 남자를 홀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력적인 음마. 서큐버스의 아름다운 외모와 신 들린 테크닉에 빠진 사내들은, 라이벌 집단 과의 눈치 싸움이고 뭐고 눈앞의 쾌락에 몸을 맡겼다. 물론, 인부들이 전부 남자는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여자도 결코 적지 않았지만, 그 역시 문제가 없었다.

"아가씨, 제 서비스는 마음에 드셨나요?"

"하아, 하아... 최, 최고야아아앗...!"

서큐버스에 비하면 그 수가 턱 없이 적지만, 그래도 여성 인부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인큐버스 또한 있었다. 각자 제 취향의 미남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인부들은, 서로를 향해 언제 으르릉 거렸냐는 듯 무척 얌전하게 변했다. 당근 성능 확실하구만.

"오빠, 다음에도 절 찾아줄 거죠?"

"무, 물론이지...! 헤, 헤헤..!"

"누나, 나 잊지 마?"

"하악, 하악...! 으, 응! 다음에 꼭 찾아올게! 꼭!"

...역시 음마들. 이성을 홀리는 솜씨 하나는 수준급이군. 벌써 대다수의 음마들이 단골 고객을 확보한 모양이다. 물론 이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서큐버스 뿐만이 아니었고, 지나치게 매력적인 탓에 그들에게 접근할 용기가 없던 숫기 없는 사람들은 인간이나 수인, 혹은 이종족의 매력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개 중에는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빠진 사람도 몇몇 보였지만... 뭐, 남들에게 피해만 안 주면 문제 없으니까.

랜드필은 지형 자체가 워낙 척박하기에 특산품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고, 위치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엘드랜드처럼 무역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수입을 땡기기 위해선, 이런 외진 곳에 반드시 찾아 와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내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만인의 도시.

남들에게 전혀 피해가 되지 않지만 다른 곳에선 손가락질 받을 지도 모를, 차마 떳떳하지 않는 행위들이 이곳에선 전부 합법이다. 그게 뭐가 특별하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테지만, 사회의 분위기란 것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도의적인 면에선 수근거림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으니까.

하지만 랜드필은 어차피 버려진 이들이 모여 들어 형성된 사회였기에, 이러한 차별적인 시선이 생각보다 적었다. 워낙 인종이 다양하고 저마다 특이한 사정이 있다 보니, 다른 곳에선 제법 눈에 띌 만한 일이라고 해도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장님인 세상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 취급을 받듯, 이 랜드필에선 특별하고 기구한 사정 하나 없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복잡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정상적인 사람의 기준' 자체가 없기에, 특별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곳.

내가 만들 랜드필은 그런 곳이다.

*

내게 이 세상에 와서 겪은, 현실성 없는 데다가 불행한 일 그 두 번째. 그건 지금 지켜보고 있는 저 손님들이다.

뭐? 인부들이 서로 싸운 게 아니었냐고? 에이, 저 정도 일은 두 도시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며 대응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말한 현실성 없고 불행한 일이란 건, 아무리 나라도 차마 가정하기 힘든 데다가 대처하는 것조차 어려운 불합리한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 도시에 넘어오자마자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무장 세력에게 잡혀서 감옥에 투옥된 것과 같은, 예측도 대처도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사건.

...그래. 내 도시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도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런 슬로건을 내세우긴 했는데... 음... 그렇긴 한데...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아무리 내가 언제나 최악의 사정을 가정하고 행동한다고는 하지만 설마 지저 도시 샴발론의 왕비라는 거물이 아무런 연락 없이 대뜸 내 도시를 방문할 줄 누가 알았겠냐? 그것도 자신의 딸과 그 딸의 남자 친구를 동행인으로 데려와 놓고서...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라스 경은... 제 딸의 반려가 될 사람이지 않습니까? 저 같은 나이 든 여인보다, 젊은 딸 쪽이 더...'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런 말은 마십시오, 애슐렌 왕비. 당신은 한 명의 뛰어난 왕비이며 훌륭한 어머니이기 이전에, 매력적인 여인이니 말입니다. 설령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당신의 미모는 빛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월을 담은 당신의 매력은 어느 젊은 여인들도 흉내낼 수 없는, 부인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아아... 라스 경...!'

...딸이 있는 와중에 자기 사위가 될 사람과 불륜 여행을 즐길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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