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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96화 (169/229)

〈 196화 〉 님들 저 도시 운영 이번이 처음인데 이거 좋은 건가요?(6)

* * *

"흐윽, 하윽...!♥ 아흑..!♥"

단단한 몽둥이가 안 쪽을 쿵쿵 두드릴 때마다, 벌어진 입에서 애타는 신음이 툭툭 튀어나온다. 정인이 아닌 남자의 굵은 남근을 그 몸에 받아들이며, 에슐렌 왕비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찔한 쾌감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른 팔이 어울리지 않는 괴력으로 몸을 끌어 안고, 짐승이 헐떡이는 듯한 거친 호흡이 귀를 때린다. 한껏 달아오른 몸은 안 쪽에 충분하고도 넘칠 분량의 애액을 분비했고, 그 덕에 에슐렌 왕비는 정말 오랜만에 나누는 교접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그 이의 것을 받아들였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남편과 나눌 때에는 느껴졌던 따끔한 통증이, 그보다 더 큰 것을 삽입했음에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몇 배는 증폭된 쾌감이, 그녀의 도덕성을 엉망으로 망가트렸다. 팔뚝 만한 물건이 비좁은 내부를 억지로 벌리며 끝부분까지 침입해 올 때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아찔한 쾌감에 에슐렌은 발 끝을 꼿꼿이 세운 채 마치 그가 다루는 살아있는 악기처럼 그의 움직임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토해냈다.

"왕비님, 생각보다 많이 약하 시네요. 저는 아직 한 번도 싸지 않았는데, 도대체 그 사이에 몇 번을 가버리시는 겁니까?"

거센 숨소리와 정 반대되는 말에, 에슐렌은 무엇이라 반박하려 했다.

"나는... 하윽...!♥"

퍼억! 퍼억! 퍼억!

"흥으으읏...!!?♥"

푸슈웃..!!

"보세요. 도대체 시오후키만 몇 번을 하시는 겁니까? 이러다가 탈수 증상이라도 오시는 거 아닙니까?"

"하아, 하아...!♥ 아, 아니햐아.... 나, 나느흐으은...!"

파앙! 파앙! 파앙!

"히꾸우우욱...!!♥"

샤아아아아...!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에 맞추어, 그가 허리를 강하게 튕기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자신의 말에 무언가 반박을 하려고 할 때마다 허리를 왕복하는 속도와 세기를 높여서, 단숨에 절정시켜 버리며 제대로 된 답변을 내뱉지 못하게 만든다. 입을 틀어 막지만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대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에슐렌 왕비를 향해 계속해서 모멸적인 말들을 이어나갔다.

"보세요. 한 나라의 왕비라는 사람이, 정인이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위의 유혹에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않나, 이제는 다른 도시의 주인이랑 대낮에 바깥에서 몸을 마구 섞어 대지 않나... 국민들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아마 자신이 샴발론 왕국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까요?"

"다, 당시히이이인...!"

"아니면..."

말캉.

"흐응...!"

"이 천박하게 출렁이는 거대한 젖가슴을 바라보면서, 그걸 딸감 삼아서 딸딸이라도 치지 않을까요?"

부끄럽고, 창피하다. 평생 들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온갖 저급하고 천박한 말들이 귓가를 관통한다. 그러나 또 다시 그 말에 반박하려고 하면 강렬한 허리 놀림으로 입을 틀어 막을 것이 뻔 했기에, 에슐렌 왕비는 그가 내뱉는 모욕을 잠자코 듣는 수 밖에 없었다.

"하하... 봐요.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들으면 발끈해서 닥치라고 욕이라도 할 텐데, 왕비 님은 전혀 그러질 않잖아요? 아니, 오히려... 조임이 더 강해졌네요?"

"뭐...? 아, 아니... 하아아아아앗...!!♥"

에슐렌 왕비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부정하려 했지만, 그 순간 뱃속을 뚫어 버릴 기세로 강렬하게 부딪혀 오는 충격에 고개를 뒤로 홱 젖히며 위아래로 물을 내뿜었다. 그렇다, '위아래'로 뿜었다. 가랑이 사이에서 애액이 분무기마냥 퓻퓻 분출되는 걸로도 모자라 거대한 유방의 중앙에서 은은하게 달콤한 향을 풍기는 두 줄기가 찌익 하고 사출되었다. 라그나 아마게돈은 자신의 손에 묻은 옅은 누런 색의 액체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그것을 입가로 가져가 맛을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조롱했다.

"하, 하하...! 이거 뭡니까? 설마 모유입니까? 세상에, 공주님 나이가 몇인데 왕비님은 아직도 가슴에서 젖이 나오십니까?"

"아, 아아...? 어, 어째서어어...?♥"

에슐렌은 제 눈으로 보고도 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즈음부터 나오지 않았던 모유가, 왜 하필이면 지금 다시 나온단 말인가? 그것도, 외간 남자와 격렬한 육체 관계를 나누고 있던 도중에?

게다가 모유란 것은 가슴을 꾹 쥐어 짜야 간신히 한 두 방울 씩 분비되는 것이다. 누가 가슴을 세게 움켜 쥔다고, 터진 물풍선의 구멍에서 물이 빠져 나가듯이 발사되는 것은 무척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란 뜻이다. 그러나 그 현실성 없는 장면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다면, 아무리 망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분명한 현실성을 갖는다. 설령 오랜만에 나누는 육체 관계의 상대가 남편이 아니며 관계 도중에 오르가즘으로 가슴에서 모유를 뿜어내는 것이라고 해도.

"뭐, 그만큼 제 서비스에 아주 만족감을 느끼셨다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앞서 했던 다른 그 어떤 행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추태에, 에슐렌은 얼굴은 물론 목과 귀까지 급격하게 치솟은 핏기로 화끈거렸다. 가족에게 보여도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이런 부끄러우 모습을,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외간 남자에게 보이다니. 왕비로서의 프라이드가 산산조각이 나다 못해 가루가 되어 흩어질 지경이었다.

"괜찮아요. 그래도 당신은 충분히 예뻐요."

정신을 부숴버릴 기세로 거세게 부딪혀 오는 쾌감과 대조되는 상냥하고 달콤한 속삭임에, 에슐렌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찰 지경이었다.

"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에게 주기 아까울 정도야."

어느 샌 가 존댓말이 반말로 바뀌었지만, 에슐렌은 그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여유가 있지 않았다.

"이러지, 흐읏, 마세요...! 제겐, 그 이가..."

"그 이라는 건 어느 쪽이야? 샴발론의 국왕? 아니면, 용살자라며 떵떵거린 주제에 내 친구에게 단 한 방에 제압 당한 그 가짜 영웅?"

"흐긋...!"

허리의 왕복 운동이 멈추었다. 대신 그 굵은 고기 막대가 깊숙한 곳까지 들어섰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올 정도로 압력이 느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짓눌러 뱃속을 아예 뭉게버릴 기세로, 굵직한 것이 끝도 없이 안을 밀고 들어오려 하자 에슐렌은 간드러지는 신음을 토해내며 항복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몸은 이미 굴복한 지 오래였고, 그나마 오기로 버티고 있던 정신마저 방금 전의 그 일격으로 패배를 선언했다.

"잘 들어. 당신은, 이제 내거야."

부정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짐승이 낮게 그르릉거리며 우는 듯한 목소리로 에슐렌의 귓가에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그녀를 잡아 먹을 듯한, 굶주린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으며.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느낌에, 에슐렌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백성들에겐 훌륭한 왕일지 언정 아내에게 최고의 남편은 아닌 그 자도, 주제도 모르고 이미 임자 있는 여자를 포함해 한 번에 두 여자를 가지려고 되도 않는 수작질을 부리는 허울 뿐인 가짜 영웅도 아닌, 내 것이야.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품고 있는 바로 내 것이라고."

마치 자신의 소유라는 흔적을 남기려는 듯, 라그나 아마게돈은 그녀의 어깨를 빨았다. 그 하얗고 고운 피부에, 붉으스름한 자국이 진하게 남을 때까지.

"그리고 이건 그 증거야. 당신이, 내 것이란 증거. 아무리 지워도 소용 없어.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다시 같은 자리에 같은 흔적을 남겨줄 테니까. 당신이 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그 날까지, 몇 번이고 그 몸에 학습시켜 줄 테니까. 다른 남자의 유혹에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당신은 내 것이라는 사실을 그 영혼에 단단히 새겨줄 테니까. 잘 알아들었지?"

과격하고 사납지만, 그만큼 분명하게 느껴지는 강렬한 욕구. 자신을 손에 넣겠다는, 그 솔직하고도 정열적인 모습. 제 욕구에 솔직한, 짐승 같은 그 모습이 되려 에슐렌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사위가 될 젊은 사내의 은은한 유혹에도 크게 흔들리던 그 마음은, 짐승 같은 사내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구애를 떨쳐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까지 여자로서의 자신을 원하는 상대의 마음을 그녀는 거부할 수 없었다. 남편이 더는 찾지 않는 자신의 몸을, 그는 매력적인 여인으로서 봐주며 자신의 것으로 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김 없이 드러냈으니.

"....."

"걱정하지마. 이번엔 대답해도 돼."

안심하라는 듯한 그 한 마디가, 어째서 이토록 마음을 움직이는 지. 에슐렌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네헤에에.♥"

누군가의 아내이며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그녀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뜨거운 사랑의 불길이 지펴졌다.

"잘 했어. 그럼 상으로... 한 번 더."

"아아앗...! 하읏, 흐으읏...! 흐아아앙!!♥"

"아니, 한 번은 적고. 일단 다섯 번만 해보자. 더 할지 말지는, 그 때 가서 보고 결정하고."

짐승의 상대는, 짐승.

"하아앙!♥ 하읏, 흐응...♥ 흥으으으으읏...!♥"

라그나 아마게돈이라는 거대한 늑대의 밑에 깔린 왕비 에슐렌은, 한 마리의 가냘픈 고양이가 되어 요염한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자신의 어깨와 목덜미에 붉은 흔적을 남길 때마다, 에슐렌 또한 그의 생각보다 넓고 탄탄했던 등을 손톱으로 마구 할퀴며 제 흔적을 새겼다. 등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음에도, 그는 아파하며 떨어지기는 커녕 되려 그녀를 정복하겠다는 듯 강렬하게 허리를 찍어 내렸다.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것이란 증거를 집요하게 남기는 그 모습은, 확실히 짐승들의 짝짓기였다.

이미 그의 몸에 굴복한 그녀의 육신은, 그가 주는 모든 것을 쾌락으로 받아들였다. 안 쪽에서 배를 두들기는 강렬한 피스톤도, 어깨를 물어 뜯듯이 빨아서 남기는 붉은 자국도, 안에 담긴 내용물을 전부 쥐어 짜내겠다는 듯이 가슴을 떡 주무르듯 거칠게 움켜쥐는 억센 손길도, 모두 다. 쾌락과 욕망에 굴복한 에슐렌은 교태 어린 아양을 부리며, 그의 몸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의 등을 할퀴고, 허리에 다리를 휘감고, 교성을 내뱉으며 그를 유혹했다.

이따금 길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깜짝 놀란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던, 으슥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커플들이 그 노골적인 광경에 감화되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로 옆에서 몸을 섞기 시작하던, 짐승들의 교미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찔한 행위에 몇몇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급히 자리를 피하건,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서로를 탐했다.

라그나 아마게돈이 새롭게 만든 랜드필에서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였으니까.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지들끼리 붙어 먹든 말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실제로, 두 사람의 뜨거운 모습에 당황하여 급히 자리를 피하거나 얼굴을 붉히며 몰래 훔쳐보는 이들은 대개 랜드필 외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고, 원래부터 랜드필에 거주하던 이들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랜드필의 뒷골목에서 한 쌍의 남녀가 대낮부터 몸을 섞어대는 것은 예전부터 꽤 있었던, 어찌보면 크게 특별할 일 없는 일상이었으니.

그리고 에슐렌 왕비는 그 사실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 황홀한 시간이, 누군가의 방해로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란 뜻이었기에.

두 사람이 골목에서 나온 것은, 해가 슬슬 질 무렵 자신을 찾는 엘리시아 공주의 목소리에 에슐렌 왕비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후였다.

*

"....머님?"

"예, 예? 부르셨나요, 공주?"

정신이 어디로 가 있던 것인지 멍하니 서 있던 에슐렌 왕비는 공주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고, 그런 어머니를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공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님, 정말 괜찮으신가요? 좀 전부터 자꾸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으시고, 발걸음이 조금 이상하신데...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아, 아니.. 괜찮아요. 전 문제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허리와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을 애써 참으며, 에슐렌 왕비는 딸과 함께 힘겹게 거리를 걸었다. 묘약의 효과가 완전히 끝나고, 그러고서도 그 긴 시간동안 해소되지 못 했던 욕정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나서야 에슐렌은 뒤늦게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었고, 또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만큼, 랜드필의 선생과 보낸 시간은 그녀의 삶에 아주 엄청난 경험이었다. 이미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가 자신의 가슴을 잡아 뜯을 기세로 강하게 움켜쥐며 푹 젖은 보지에 딱딱하게 발기한 자지를 거칠게 쑤셔 박던 그 감각이 여전히 느껴질 정도로.

물론 너무 오랜만에 나눈 관계인 데다가 그 행위가 지나칠 정도로 격렬해서, 그 몇 시간만에 흘린 땀만으로도 몸무게가 1kg은 줄어들고 허리는 완전히 나가기 직전인 지경이었지만.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셨길래 이토록 안 보이셨는지, 그리고 그 목덜미에 그 스카프는..."

"아, 이곳에서 산 물건이에요. 디자인이 제법 괜찮아 보여서 구매했는데, 잘 어울리나요?"

"네, 분명 어울리긴 한데... 지금이 목에 스카프를 두를 날씨는 아니지 않나요? 좀 더우실 것 같은데..."

"괘, 괜찮아요. 기왕 산 물건인데, 한 번 착용해 봐야죠."

"어머님께서 그러시다면야..."

목에 스카프를 두른 이유가 사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스카프를 두르고 싶어서 따위가 아니라, 외간 남자가 자신의 몸에 진득하게 새긴 어떠한 흔적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것을, 에슐렌은 자신의 딸아이에게 차마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도 그 사내가, 딸 아이가 약혼자 대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상대라면 더더욱.

"엘리시아. 라스 경과의 약혼에 대해서 말인데요..."

"아, 그거요. 어머님과 떨어지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 파혼이 나을 것 같아서요."

"예?! 그, 그게 무슨..."

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에슐렌은 당혹을 금치 못 했다. 그리고 이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그 남자 때문인가요?"

"제가 라스 경과 약혼을 한 건, 사실 마땅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잖아요? 지금 샴발론은 왕권이 조금 위험한 상태고, 이 상황에서 귀족 가문과 혼약을 맺으면 지금 당장 눈 앞에 들이닥친 문제는 잠재울 수 있을 지언정 길게 보면 결국 왕가의 입지만 좁혀지는 결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를 타국의 왕족이나 혹은 손에 꼽을 정도의 위업을 삼은 영웅과 맺어주기로 결심하셨죠. 그 타이밍에 샴발론 왕국을 괴롭히던 지룡을 라스 경이 토벌함으로서, 그 분이 저의 약혼자로 결정된 것이고요."

"하지만 엘리시아, 당신도 그와의 약혼을 수락했잖아요?"

공주는 어딘가 서글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때는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젊은 나이에 아버님과 같은 일곱 도시의 대표자로 선정되어 이 도시를 운영하는 그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부리는 자들의 무력은 라스 경의 패배가 증명해 주고 있고, 또한 그는 귀족으로서의 예법도 거의 완벽하게 익히고 있었어요. 오히려 조건만 따지고 보면, 라스 경보다는 라그나 아마게돈 선생 쪽이 몇 배는 더 좋지 않나요?"

"그렇지만...!"

그 남자는 여자 하나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 에슐렌은 그와 몸을 섞으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의식이 몇 번이고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되는 와중에도, 끝날 생각이 보이지 않는 정력으로 자신의 몸을 탐하던 그 짐승. 공주가 홀몸으로 그의 욕구를 다 받아줄 수 있을 리가 없고, 육체 관계가 소홀해지면 마음 또한 멀어지는 법.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해 에슐렌은 그가 딸과 만나는 것은 반드시 막으려고 했지만...

"스펙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저는 선생 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제 말을 온전히 경청해주고, 이해해주고, 또 저를 조금의 가식 없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제게 사랑을 속삭이면서,마음 속으로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남자보단 훨씬 낫지 않아요?"

"마음 속으로 다른...?"

에슐렌 왕비는 공주가 유독 강조한 부분에서 몸을 움찔 했다. 그리고 바람 불지 않는 밤의 호수처럼 조용하고 잔잔한 공주의 눈이 그녀와 마주쳤고, 에슐렌은 입술을 악물었다.

"알고... 계셨나요?"

"라스 경이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뛰어난 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저도 인정해요. 그 무시무시한 지룡은 단순히 힘만 쎄다고 쓰러트릴 수 있는 재앙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일국의 공주와 맺어질 수 있는 자격이 될 수 있을 지언정, 공주의 어머니까지 품을 이유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랜드필의 선생은, 사람이 제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더군요. 그 말에 따르면, 라스 경은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욕심을 품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능력보다 욕심이 앞선 이들의 결말은 언제나 파멸이고요."

"....."

"라스 경은 뛰어난 전사는 맞을 지언정 훌륭한 지도자와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이 될 재목은 아닌 모양인가 봐요. 아직 토끼 한 마리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사냥꾼이,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린 결과죠."

"그럼 랜드필의 선생은 어떻고요? 그에 대한 소문은 알지 않나요? 그에겐 여자가 한 둘이 아니에요."

그 여자 중에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음은 숨기며, 에슐렌은 자신의 딸을 떠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상관 없어요."

"뭐라고요?"

"상관 없다고요. 그가 아무리 많은 여자와 관계를 나눈다고 해도,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아니, 그게 무슨..."

"앞에선 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뒤로는 몰래 다른 여인을 탐내는 남자 따위 보다, 다소 문란하더라도 저를 제대로 마주하고 한 사람으로서 대해주는 남자 쪽이 저도 몇 백 배는 더 좋거든요."

에슐렌 왕비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직 딸아이는 세상을 잘 모르기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밤, 자신이 제대로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에슐렌 왕비가 그날 밤에 공주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떠신 가요, 제 몸은....?"

왜냐하면 그 날 밤, 엘리시아 공주는 다소 화끈하고 어른스러운 속옷으로 무장한 채 밤중에 몰래 랜드필의 선생의 거주지에 찾아갔으니까.

*

"어떠신 가요, 제 몸은...?"

낮에는 왕비가 그 음란한 몸으로 내 자지를 쥐어 짜내더니, 밤에는 그 딸이 몰래 쳐들어와 나를 유혹하네. 진짜 이 모녀는 정조 관념이 어딘가 맛이 가 버린게 아닐까?

"별로... 인가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이내 눈에 띄게 시무룩 해진 그녀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일어나, 되려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는 듯한 자세로 그녀를 내려보며 나는 말했다.

"공주님, 세상 모든 남자들은 늑대라는 점을 모르셨나요?"

끝까지 관계를 나눌 자신이 없으면 그냥 얌전히 나가라는 뜻을 내포한 내 말에, 어리둥절하던 공주는 이내 입가에 씨익 미소를 띄우더니 두 팔을 머리 위로 모아 겨드랑이를 드러내어 가슴을 강조하는 포즈를 취하며 당당하게 나와 눈을 마주쳤다.

"늑대 님, 설마 여기 이렇게 살이 맛있게 오른 양을 그냥 보내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아우우우우우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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