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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205화 (178/229)

〈 205화 〉 외전 ­ 0부 2화

* * *

"저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저 여자 혼자서 벌인 일입니다!"

"맞습니다. 저희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순간,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내 귀를 의심했다. 혹시나 마르스가 묶여 있는 척을 하고 있다가, 내가 충분히 다가오면 급습해서 나를 쓰러트리는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고도의 기만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큰 충격을 받은 듯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마르스의 얼굴과 그녀를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듯이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여자를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들에게는 너그러운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귓가를 더럽히는, 추잡한 벌레들의 이명에 절로 눈쌀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저 얼간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마르스를 바친다면 내가 그들을 그냥 넘어가 줄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긴, 원래 사람이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생물. 자신들이 가진 무언가를 바치면, 바친 것의 가치가 높을 수록 그 공을 높이 사서 자신들에게 오는 피해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할 법 하다. 나라면 그렇게 행동할 테니 상대도 분명 그럴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오류에 불과하지만.

마르스는 주인이 달아난 이 영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자진해서 지켜주던 마지막 수호자였고, 유일한 아군을 제 손으로 넘겨버린 시점에서 더 이상 그들을 지켜줄 이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제 아군을 팔아 넘겨 제 삶을 연명하려는 놈들을 등뒤에 남겨둔다는 찝찝한 선택지를 굳이 고를 이유가 없었기에, 불사의 군대에게 그대로 무력한 마을 사람들을 죄다 쓸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절그럭, 절그럭. 죽음에서 되돌아온 자와 죽을 권리를 박탈 당한 자로 이루어진 불멸의 군대가 공허한 갑옷 소리를 울리며 방어구는 커녕 무기로 쓸만한 물건 하나 들고 있지 않은 민간인들을 향해 성큼 성큼 다가갔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마르스는 내가 하려는 짓을 깨달은 듯 몸을 움찔 떨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달아나지 않았다. 다가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듯 몸을 움찔 거렸지만, 설마 자진해서 마르스를 바친 자신들에게 내가 해를 가할 거라곤 생각도 못 한다는 얼굴들이었다.

아둔한 군중들 사이로 귀를 찢는 비명이 터져나온 것은, 가장 선두에 있던 병사가 마을 사람 한 명의 역겹고 가증스러운 낯짝을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뜯어버린 후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군중은 분노가 빠르게 퍼지는 만큼, 공포 또한 순식간에 전염된다. 내가 자신들을 해칠 셈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듣기 싫은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흩어졌다.

"어, 어째서..! 저, 저희들은 항복하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이러시는 겁니까!"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왜 죽는 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면, 그걸 굳이 이해시키는 것보단 그냥 알지 못하는 채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군.

"싫,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죽고 싶지 않다라.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자살 기도자들도, 결국은 자신에게 닥친 고통에서 탈출할 방법이 그것 뿐이었을 뿐 진심으로 죽음을 바라지 않았을 테지.

"마르스 님! 살려주세요! 저희를 도와주세요!"

그 마르스, 조금 전에 너희가 내게 넘겼던 것을 그새 까먹었나? 밤 중에 그녀의 식사에 약을 타서, 저항하지 못하는 그녀의 무장을 전부 해제시키고 팔다리를 꽁꽁 묶은 채로.

"도와줘! 도와 달라고! 우리들을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을 지켜줄 방패를 내던져 놓고서, 이제와서 뻔뻔하게 다시 살려달라니... 정말 가증스럽고 역겹군.

"도와주겠다며! 도와주겠다며! 살려줘! 살려 달라고!"

끝까지 자신들은 죄가 없다는 듯한 태도... 내가 죄책감과 두려움을 잘라내지 않았더라도, 이 녀석들을 죽일 때는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아아!!"

결국 버러지들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버러지였다.또 한 명의 단말마를 가볍게 넘기며, 나는 마르스의 몸을 묶은 밧줄을 끊었다. 그리고 지키려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충격에 일어날 생각조차 못 하던 마르스에게 말했다.

"일어나라."

"나,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참극에, 그녀는 제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악물며 팔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설마 구하고 싶은 건가? 저들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은?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사람이 좋은 것에도 정도가 있지, 그 정도면 그냥 저능아 호구다.

"약자를... 지키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약자에도 종류가 있지. 거대한 악 앞에서 고통 받는 선량한 약자, 겉으로는 무해한 척 하며 그 와중에 제 몫을 약삭빠르게 챙기는 쥐새끼 같은 약자. 지금까지 네가 만난 이들은 전자였고, 이번엔 후자였을 뿐이다. 저런 놈들은, 네가 굳이 몸을 바쳐봐야 지켜줄 가치가 없다. 은혜도 모르는 놈들 따위, 알까 보냐?"

나름 위로를 한답시고 내뱉은 말이지만, 역시 현실에서 여자랑 제대로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찐따여서 그런지 내가 듣기에도 참 뭐한 말만 주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이고, 등신아. 그렇게 말해서 상대가 참 위로가 되겠다?

"나는... 딱히 대가를 바라고서 저들을 도우려던 게 아니야..."

"뭐, 그러겠지. 저 버러지들에게 너를 고용할 만한 재산은 없어 보였으니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니까, 나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마르스는 제 손으로 얼굴을 부여 잡으며, 한 쪽 눈에서만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런데... 나를 팔아 넘긴 자들의 비명을 듣고, 속으로 '꼴 좋다'고 생각해 버렸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무척 아슬아슬한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아마 얼마 가지 않아 제 풀에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꼴을 말 없이 감상하는 취향은 없었다.

"나한테 못 되게 군 놈들이 나쁜 일을 당한 것에, 기뻐하면 좀 어때?"

"뭐...?"

"그렇잖아? 저들은 네가 무상으로 안전을 지켜줬음에도, 그것에 감사를 느끼기는 커녕 되려 너를 내게 팔아 넘겨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 받으려고 했지. 배신당한 당사자인 네겐, 그들의 불행을 비웃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아?"

마르스의 고개가 마치 원래는 그런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는 듯, 삐걱거리며 나를 향해 돌아갔다.

"내가 보기에, 마르스 넌 너무 이타적이다. 타인을 위하는 태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는 너무 자기 자신을 홀대하고 있다. 가끔은 조금 이기적으로 굴면 안 되나?"

"나는 기사의 맹세를 한 몸이야. 힘을 가진 자로서, 약자를 수호하겠다고 결심했어. 그런데 어떻게 내게 이기적으로 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흠... 조금 이기적이면, 뭐 어때? 내가 나를 챙기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애시당초에 정말로 타인을 위한다면, 너 자신부터 지켜야지."

"뭐?"

마르스의 얼굴이, 마치 별 해괴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찡그려졌다. 내가 무슨 말 실수라도 했나?

"잘 생각해 봐. 네가 타인을 돕기 위해선, 우선 네가 있어야 하잖아? 자기 자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도울 수가 있겠어? 그러니 너를 챙기는 것이, 곧 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는 거지. 그리고 네가 고작 저딴 놈들을 위해서 몸을 바쳐 희생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너를 이용해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는 저 이기적인 약자들이 아닌, 정말로 네 도움이 절실한 무고하고 선량한 약자들은?"

"그, 건..."

마르스는 내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떨구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네. 도대체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왔길래... 마침 병사들이 버러지 청소를 막 끝낸 참이었기에, 난 마르스를 일으켜 세운 후 그녀를 데리고서 주인을 잃은 마을 한복판으로 향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로 향하는 길, 곳곳에 널부러진 주검과 혈흔을 바라본 마르스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져갔다.

"자, 잘 봐."

우물에 도착한 후, 나는 마르스에게 마을을 다시 돌아보게 시켰다.

"어때? 정말 끔찍한 광경이지?"

"...."

"대답 안 해도 상관 없어. 어쨌거나, 보시다시피 이 마을엔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지. 그들도 아마 평소엔 그리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을 지도 몰라. 단지 나라고 하는 굉장히 무시무시하고 나쁜 인간이 찾아온다는 말에,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인간다움을 버렸을 뿐. 아마 내가 침공 목표를 이쪽 방향으로 잡지 않았다면, 그들이 평소에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었을 테고 그런 사람들은 선의만으로 지켜주겠다며 나선 어떤 정의로운 기사가 배신당해서 붙잡힐 일도 없었을 테지."

마르스는 여전히 답이 없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랬다면 사람이 죽을 일도 없었을 테고, 이 마을이 이런 끔찍한 꼴이 될 일도 없었을 거야.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마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그 한 마디를 내뱉은 마르스에게,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나쁜 건 나라는 뜻이지."

"네...?"

"이 모든 참상이 일어난 건 전부 내 탓이니까, 저들의 죽음에 네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 없다고. 너는 최선을 다해 네가 해야 할 바를 다 했지만, 단지 그 적인 내가 강했을 뿐이야. 그러니 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뭐 그런 이야기지."

"지금... 저를 위로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들린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맡은 배역, 용사의 적이 되기 위해선 충분한 악행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용사의 동료 후보 중 하나가, 여기서 정신이 무너져서 리타이어하게 둘 수는 없지. 어지간한 병사 수십으로는 진군 속도조차 늦추지 못하는 내 군대를 상대로 어제 하루 종일 버티던 전투 능력을 보면, 나중에 그녀가 용사의 동료가 되면 얼마나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을 지 눈에 선했다.

도대체 무슨 실수가 있었길래 용사 동료 후보 중 하나가 지키려던 마을 사람들에게 배신 당한다는, 대본에 적혀 있지 않은 사고가 일어난 건지는 몰라도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문제이니 만큼 내가 뒷수습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서 마르스가 전의를 다잡고 더 강해져서 용사의 동료가 되면, 내가 용사에게 쓰러질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더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 테지.

"당신... 다른 사람을 위로해본 적 없죠?"

"켁..."

"하... 죽지 않는 군대를 이끄는 사악한 남작이, 실상은 여자 하나 제대로 위로하지 못하는 어설픈 사내일 줄 누가 알았을까요. 제가 목숨을 바쳐가며 싸운 강적이, 이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미안하다, 이런 사람이라서."

"...아하하."

그래도 뭐... 마르스의 얼굴에 생기가 좀 돌아온 걸 보면, 내가 필사적으로 건넨 위로가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르스, 넌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당신이 벌이는 일을 막고 싶었습니다만... 제 힘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 같은 사람이 왜 그런 잔혹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이런 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스스로도 이런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그런데도 구태여 모두에게 미움 받는 일을 자처하고 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죠?"

아니 이 여자는 생긴 건 대화(물리)를 주장할 것처럼 생겼으면서 왜 이렇게 쓸 데 없이 예리한 거야?

"방금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

찌릿.

"에이, 설마 그럴 리가."

"흠..."

"아, 내가 왜 이런 짓을 벌이냐고 물었지? 뭐, 그냥... 내가 빼앗긴 것을 다시 되찾는 거지."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

"나는 라그나 아마게돈. 이 헤르몬 왕국의 개국 공신이자 셋 뿐이었던 공작가 중 하나였던, 그러나 다른 두 공작가의 견제로 인해 지금은 완전히 몰락한 아마게돈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야. 나 외에 다른 가문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 이젠 내가 가주지. 그리고 난 내 가문의 모든 것을 앗아간 두 공작가로부터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지금 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고."

말을 돌릴 겸 내뱉은 내 사정을 들은 마르스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나는 불멸의 군대를 시켜 마을 곳곳에 널부러진 시체를 넓은 공터로 모으게 만들었다. 생전에 제대로 된 무력을 갖지 못한 이들이니 만큼 불사의 군대에 합류시킨다고 해서 1인분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없었고, 저들은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킬 미끼 겸 화살 받이로 쓸 셈이다.

"...당신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이보다 더한 전쟁을 벌이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참극은 계속 될 테죠. 자식 잃은 부모들의 고통과, 부모 잃은 고아들의 희망 없는 삶... 그런 비극이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신은 멈추지 않겠죠?"

"물론. 그 비극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지극히 이기적인 태도지만, 동시에 숨기는 것 없는 내 진심이었다. 마르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설득하는 건 무리겠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당신이 벌일 전쟁에, 함께 하겠습니다."

도대체 오늘 따라 몇 번이고 내 귀를 의심하는 건지.

"다시 한 번 말해 줄래?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마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일어날 참극이라면, 비극을 피할 수가 없다면, 하다 못해 그것을 줄이겠습니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면, 굳이 불필요한 살생을 벌일 이유는 없죠. 제가 함께하면 당신은 더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적은 희생을 내지 않겠습니까?"

"...진심이야? 나는 나쁜 놈이라고. 나랑 같이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나와 함께 있는다면 내게로 향할 모두의 원망과 비난이 너에게도 미칠 텐데?"

아니, 애초에 넌 용사 동료 후보인데? 근데 왜 용사의 적인 악역의 편에 서려는 거야? 너 원래 그런 애 아니지 않아? 대본에도 그런 루트는 전혀 적혀 있지 않거든? 동료로 영입 가능한 캐릭터가 뜬금 없이 적으로 나타나는 루트가 있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설정이야?

"상관 없습니다.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오명은 얼마든지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스는 조금 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학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떨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 태도에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굳힌 거야? 아니, 너 나랑 고작 이틀 본 사이인데 도대체 뭘 믿고 나를 따라가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 어설픈 악당 씨."

그 당시의 난 몰랐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자처해서 악역의 편에 선 이 지나치게 사람을 잘 믿는 수호자가, 나중에는 오히려 전쟁터에서 웃는 얼굴로 사람을 쳐죽이며 '전장의 붉은 귀신'이라는 도저히 웃지 못할 별명으로 불리는 학살자로 변모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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