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나아→락! 나→락! (2)
* * *
인간은 다람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일까?
작은 몸집, 귀여운 외형, 그리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성격.
하지만 그 다람쥐가 사람을 뜯어 먹는 식인 다람쥐라면, 더 이상 인간은 다람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작고 귀여워도, 그게 나를 물어 죽이려고 드는데 그걸 어떻게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 결론은 그거다. 인간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이 뾰족한 돌맹이 하나 들고 사냥을 할 시적부터, 연약한 초식 동물인 토끼는 줄곧 먹잇감이었지만 사자나 곰과 같이 크고 무시무시한 동물들은 이따금 인간들에게 신으로 숭상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인간들은 왜 그 사나운 야수들을 신으로 모셨을까? 왜긴 왜야, 나를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하고 위대하신 분이니까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거지.
이렇듯, 존중이란 공포로부터 나온다. 두려운 것의 앞에선 몸을 사리지만, 두렵지 않은 것의 앞에선 당당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운드 부대. 유스티아의 말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 눈 먼 신도들이 내게 그토록 무례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은 내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들을 순식간에 찢어 죽일 힘이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럴 의사도 매우 가득하며, 실제로 이미 몇 명은 내 손에 척추를 뽑히며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게 존중을 보이지 않는다. 그건 어째서일까?
"물러서지 마라! 우리의 정의를 보여줘라!"
전지전능한 존재에게서 받은 강한 힘으로 되려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
"여신께서 보고 계신다! 정의를 위해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나를 이런 곳에서 죽게 내버려둘 리 없다는 근거 없는 믿음?
"악을 베어라! 정의를 실현할 시간이다!"
아니면 여기서 자신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아둔함?
정답은 간단하다. 지금 저들은, 두려움을 모른다.
"비켜."
뿌직.
내가 마치 갈치 조림의 뼈를 발라내듯 단숨에 몸의 중심의 뼈인 척추를 뽑아버렸음에도 저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정의의 여신이 저들의 눈을 가렸으니까.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서도 권능의 힘으로 앞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으나, 신의 힘으로 투과된 그 광경 속에서 그들은 현실감을 상실한다. 저들은, 사실 그냥 술에 취한 채로 편의점에서 죄 없는 알바생한테 꼬장을 부리는 진상들이나 다름 없다.
취객들은 알코올이 뇌를 마비시켜 두려움을 모른다면, 저들은 신의 힘이 그들이 보는 것에서 현실감을 앗아가며 두려움을 인지하지 못 했다.
여기 저기서 치이고 또 치이며 쌓인 스트레스를, 독한 술의 힘을 빌려 알딸딸한 정신인 채로, 성숙한 어른이라면 그냥 가볍게 넘겨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 사소한 것을 지적하며 자신의 유리한 입장을 이용해 상대를 일방적으로 괴롭힌다. 어차피 술에 꼴았으니까, 뒤처리 따위 생각하지 않고 객기를 부린다.
지금 저들은 취객이다. 신의 힘이라는 술에 취해선, 제 손에 들린 것이 나뭇가지인지 진짜 칼인지도 모른 채 얼굴도 본 적 없는 타인이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르는, 눈이 있되 보지 못하는 장님이며 귀가 있되 듣지 못하는 벙어리. 자기 스스로 보고 듣고 판단하고 행동할 자신이 없어서, 전지전능하며 완벽한 존재가 자신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해줄 것이라며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얼간이들.
"비키라고, 말했잖아."
빠드득.
제 목에 사슬을 건 노예, 자기 팔에 실을 묶는 꼭두각시.
자기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남이 말해준 것이 곧 자신이 바라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불구덩이를 향해 나아가는 병신들.
"후..."
길드 마스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눈가리개를 한 하운드 부대가 내게 덤벼드는 것과 내가 달려오는 적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손에 잔뜩 묻은 더러운 피를 가볍게 털어내며,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적을 주시했다. 하운드 부대의 대장, 오르트리스. 서른이 넘는 부하들이 내 손에 뼈와 살이 발라지는 상황에서도 부하들에게 앞으로 돌격하라고 지시만 내릴 뿐,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여자.
"역시, 너는 악이다. 여신님의 말씀대로, 이 자리에서 베어 넘겨야 할 역겨운 악."
"시발, 그래. 나 개시발새끼다. 그런데 내가 그런 개시발새끼가 되도록 만든 새끼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
오르트리스는 내 반박에 아무런 말 없이 칼을 어깨까지 들어올리며 그 끝으로 나를 겨누었다. 하, 말빨로는 상대가 안 되니까 무력 행사를 하겠다는 건가? 눈앞에서 지 부하들을 그렇게 참혹하게 쳐죽였는데,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건가?
"그 분께서는 악이 없는 세계를 바라신다. 오로지 정의만이 전부인 세계. 그 이상향에, 너 같은 자가 내딛을 땅은 없다."
"지랄. 그딴 세상이 어딨냐?"
정의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정의 따위 없다. 누군가의 정의가 누군가에겐 악이 될 수도 있는데, 오로지 정의만이 존재하는 이상향을 바라고 있다고? 어쩐지 하는 짓거리가 영 시원치 않다 싶더니, 졍의의 여신이라는 년은 그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쫒아다니며 아까운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몽상가들을 그런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로 속여서 써먹고 있었나?
화륵, 하고 그녀가 든 검에 주홍빛 권능이 불꽃처럼 피어나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권능인 징벌의 힘. 물론 저 년이 쓰는 것도 루크가 쓰던 것의 열화판에 불과하긴 하지만.
저 여자는 진심으로, 무기의 형태로 실체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본래 갖고 있던 무기에 덧씌우기만 할 뿐인 미약한 권능만으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눈앞에서 비슷한 것들이 처참하게 실패하는 광경을 서른 번도 넘게 봐 놓고서? 에이, 그럴 리가. 분명 뭔가 다른 수를 숨겨두고 있을 테지. 어차피 저 년의 목적은 시간 벌이일 뿐이지. 그 미친 년이 보낸 것들이 내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동안에, 내가 도시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내 발목을 붙잡는 게 목적이겠지. 그러니까 내가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자기 쪽에서 먼저 덤벼들 일은 아마 없을...
"하아아아압!"
.....이걸 덤비네?
카앙!
"큿...!"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이, 오르트리스가 휘두른 외날검을 쳐내었다. 앞의 서른 명 중에서 열 명 정도가 이것 때문에 내게 손도 쓰지 못하고 죽었는데, 설마 대책도 없이 덤벼들지는 않았겠지. 분명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내 방어를 뚫을 무언가 비책을 발견했을 테고, 그걸 공략하기 위해 일부러 내게 먼저 덤벼들었겠지. 설마 아무 생각 없이 무식하게 공격부터 했을 리가...
"큿, 하아아아!!"
챙! 챙! 채챙! 카아앙!
"....."
그런 내 생각을 배신하듯, 입술을 악물며 아무 생각 없이 형체 없는 방어막을 칼날로 때리는 년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왠지 좀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고작 이딴 년과 그 부하들에게 붙잡혔다고? 아무리 그 때는 내가 막 새로 얻은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이런 형편 없는 것들에게...?
"어휴, 시발."
푸슉!
"끅! 흐으윽...!!"
허벅지에 생긴,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커다란 구멍에 오르트리스는 입술을 악물고 비명을 억누르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공격을, 분명 막거나 피할 실력은 있으면서 그대로 맞아 버리다니. 아마도 상대의 공격을 튕겨내는 쉴드 계열 마법들은 방어막을 유지하는 동안 시전자도 방어벽 밖의 적을 공격하지 못 하는 점 때문에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내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계속 무의미한 칼질을 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내 방어 수단은 그런 마법들과는 원리가 전혀 달라서, 상대의 공격을 막는 와중에 멀쩡히 상대를 때릴 수 있었지만.
유스티아가 왜 그렇게 루크 같은 걸 꾸역꾸역 쓰려고 들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애초에 그녀가 더 나은 자를 영입할 수 있었다면, 루크 따위를 그렇게 마개조시키지 않았겠지. 유스티아, 이 년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인간들 손에 흉기를 쥐어주고 자신을 위해 싸우는 일회용 병사로 써먹고 있던 모양이다. 하긴, 신의 권능 같이 강력한 힘이 있다면 어중간한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지.
다른 일곱 대표자들이 왜 이런 놈들이 으스대며 다니는 걸 그냥 내버려두나 싶었는데, 언제든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놈들이니 굳이 피곤하게 직접 나서지 않았던 거구나? 뭔가 굉장히 나대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괜히 거슬린다고 건드렸다간 여신이랑 귀찮은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으니 방치해 둔 거였어.
"기다리게, 랜드필의 선생."
이번엔 또 누가 나를 막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마보로시마의 장로 네무였다. 그러고보니 저 영감도 정의의 여신의 신도이지 않았나? 게다가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하나라면 분명 상당한 무력을 갖고 있을 텐데 왜 하운드 부대가 죄다 뒤져가는 와중에도 나한테 덤비지 않은 거지? 그런 생각을 품고서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네무는 몸을 움찔 떨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지팡이를 쥔 손이 떨리는 것까진 숨길 수 없었다.
아, 이 영감님은 나를 존중하고 있구나.
존중의 의미를 모르는, 편의점 진상 취객이랑 다를 것도 없는 놈들이라면 모를까 나를 제대로 존중할 줄 알면서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는 사람에게마저 이빨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금 짜증이 나긴 하지만, 나는 아직 내게 존중을 표하는 사람에게 예의 없이 굴 정도로 버릇 없는 새끼는 아니었다.
"무슨 용무십니까, 네무 장로? 제가 좀 바쁜데, 빠르게 끝낼 수 있겠습니까?"
"자네는 승리의 여신이 나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승리의 여신이 함께 하는 이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네. 아무리 불리하고 열악한 상황이라도, 그 여신이 함께 하는 한 마지막에는 결국 승리하고 말지. 그게 바로 승리의 여신일세. 그런 여신이 지금 유스티아님과 함께 하고 계시니, 자네가 유스티아님께 맞서도 결국 결말은 달라지지 않을 걸세. 그러니, 여기서 내가 제안 하나 합세."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점차 자신감을 얻은 듯, 네무 장로의 떨리는 목소리가 점차 안정되어갔다.
"일단은 유스티아님께 고개를 숙이게. 그분께 맞서지 말고, 패배를 인정하게. 승리의 여신께서는 아마 자네가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그 이상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니, 나머지를 위해서 아주 조금만 희생하면 되는 걸세."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저 미친 년을 상대로 싸워봤자 나만 손해니까 그냥 어른답게 참고 넘어가라는 뜻인가?
"네무 장로, 웃기지도 않는 소리는 그만 두시지! 그런 건 유스티아 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 꺄아아아악!"
아니 근데 이 미친 년은 시발, 누가 어른들이 말하는데 예의 없이 끼어들라고 했지? 짜증나서 그녀의 반대쪽 허벅지에도 구멍을 뚫어주자, 이번엔 비명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며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아무래도 구멍 하나로는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것 같아서 왼쪽에 난 것과 같은 위치에 두 번째 구멍을 만들었다. 물론 같은 크기, 각도로 대칭까지 완벽하게 말이지.
"마음은 고맙지만, 안타깝게도 거절하겠습니다."
"후... 그런가."
네무 장로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자, 그 곳을 기점으로 알록달록한 색상이 퍼져나가며 가지각색의 환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고서 가장 최근에 통화한 부하에게 다시 연락했다.
"어, 나다. 지금 도시 상황은 어떻지? 내가 지금 당장 가야 할 정도로 많이 심각한가?"
'괘, 괜찮습니다! 지금 도성운 님, 에스크 님과 같은 전투 특화 간부님들의 지휘 아래 전투가 가능한 이들이 비허가 무장 집단과 대치 중이며 랜드필에 체류 중이던 타국의 사람들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 당장의 문제는 곧 처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알겠다."
그 동안 랜드필 주민들에게 계속 비상시 훈련을 시켜두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비상시 대비 훈련을 한다고 할 때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녀석들도, 아마 지금 즈음은 내 기가막힌 선견지명에 감탄과 감사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지금 당장 랜드필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유스티아 쪽에서 나한테 대놓고 선빵을 쳤으니, 이제 내가 반격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테지. 뭐, 정당방위가 과잉진압이 될 수도 있지만, 어쩌겠어. 안 그러면 내가 뒤지는데.
"네무 장로, 그만 두시지. 당신 혼자서 도시의 대표자 여섯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 혼자서라면, 당연히 무리일 테지. 하지만, 이 일의 당사자가 직접 행차한다면 어떨까?"
"뭐?"
네무 장로를 기점으로 주변 풍경을 덧칠하기 시작한 무지개색 환상은 이내 회의장 주변을 가득 메웠고, 일렁이는 환상의 저편에서 세 개의 인영이 회의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것은 마치, 그림 속의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다 그림의 틀을 넘어서 현실에 나타난 것과 같은 눈을 절로 의심케 하는 광경이었다.
두 손에 각각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망치와 천칭을 들고 있으며 눈가리개로 제 눈을 가린 여인.
테두리를 금빛으로 치장한 붉은 깃발을 들고 있으며 적갈색의 튼튼한 갑옷을 입은 상당한 거구의 여인.
양쪽 어깨에 까마귀를 한 마리씩 얹은,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후즐근한 옷을 늘어트린 오싹한 분위기의 여인.
환상과 환영을 다루며 세상의 눈을 속이는 노인의 영역 안에서, 세 여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정의를 위하여! 악을 벌하라!!"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구조대의 도움 속에서 몸을 추스리던 스카이론 추락 사건의 생존자 중 일부였던 이들이, 무시무시한 권능을 휘두르며 인명 피해를 내고 있다. 전투 경험이 매우 적지만, 하나 하나가 상당한 양의 권능을 품고 있어 그 전투력은 준용사급이었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주홍빛 권능을 온몸에 두른 이들 수십 명이 일제히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 오는 것은 아무리 심의라는 특별한 힘을 깨우친 데다가 원래부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 왔기에 볼 꼴 못 볼꼴 다 보고 살아온 랜드필의 전투원들이라고 그 광경에선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물러서지 마라!"
솨아아아아....!
무언가가 부드럽게 쓸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틈새 사이 사이에서 솟구친 모래의 창날들이 살벌하게 솟아오르며 무고한 이들 사이에 숨어서 침입했던 허가 받지 못한 무장집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랜드필 주민들 사이로, 유스티아의 신도들을 가로막은 이가 걸어 나왔다. 엘드랜드 출신이라는 것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그을린 갈색 피부와 황색을 베이스로 각종 여러 색을 더해 사막을 연상케 하는 무장.
"대장군 누비스...!"
"말도 안 돼! 멸망한 나라의 장군이, 왜 랜드필에 있는 거지?!"
누비스는 방금 자신의 나라가 멸망했다는 망발을 내뱉은 적을 사납게 쏘아보며, 묵직할 할버드를 위협적으로 부웅부웅 휘둘렀다. 그것은 비록 큰 타격을 입고 궤멸에 가까운 상태이긴 해도 그래도 아직은 멀쩡한 남의 나라를 마음대로 이미 망한 것 취급하는 적의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는 일종의 예고였다.
"저들이 가진 힘은 일반적인 사도, 그러니까 권능 보유자의 것에 비하면 양은 많을 지언정 질적인 면에선 크게 떨어진다! 너희들이 두려워하며 겁낼 이유는 전혀 없다!"
랜드필의 선생에게서 허락을 받은 사막의 대장군이 전투 인원들을 지휘하며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적들을 상대하고.
"으아아아악! 추, 추락한다...!!"
"제길, 저 괴물은 분명 이틀 전에 마기스토스 방향의 상공으로 날고 있던 거 아니었나? 최대 속력도 50km 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런 놈이 여기에 있는 거냐고!"
내부에 침투한 교란 부대가 혼란을 일으킨 사이 상공에서 날아서 침투할 예정이었던, 유스티아를 섬기는 세력 중 하나인 '조인족'으로 구성된 스팀팔로스 부대는 하늘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폭군의 앞에서 무력하게 압도 당하고 있었다. 유스티아의 비행 부대가 랜드필에 강습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하늘에는 '추락하는 천공의 재앙'이 마치 이제야 왔냐는 듯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무시하고 날아가려던 이들은 그의 근처 하늘을 지나려는 순간 날개가 마비되는 감각과 함께 반강제적으로 지상과의 매우 거센 재회를 맞이해야만 했다.
"제기랄, 이런 괴물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이야기는 없었잖아! 어떻게 방법이 없나?"
"무리입니다! 주변 기류 자체가, 저 괴물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랜드필에 도달하기 위해선 저 괴물을 지나거나, 아니면 상당히 먼 거리를 빙 돌아야 하는데... 우회한다면 절대 때를 맞출 수 없습니다!"
'추락하는 천공의 재앙'은 마치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이들에게 분풀이를 하듯, 겁도 없이 자신이 있는 하늘을 멋대로 이용하려는 이들을 지상으로 추락시키거나 열 세 개의 문어 다리로 붙잡아 그대로 뼈를 으스러 트려 죽였다. 엘드랜드 궤멸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괴물 중 하나를 상대로, 비행 수단 하나 없는 지상의 병력을 일방적으로 유린하기 위해 가벼운 무장만을 하고 왔던 스팀팔로스 부대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마지막으로...
"크윽...! 설마 이런 황폐한 황야에도 병력을 준비해 뒀을 줄이야!"
타앙! 탕!
화르르르륵!
"끄얽...!"
"으아아아악! 내, 내 몸이 타고 있어..!"
"제기랄, 도대체 어디서 쏘고 있는 거야! 이 주변에 몸을 숨길 지형은 하나도 없는데, 빌어먹을 탄환이 자꾸 어디서 날아오는 거냐고!!"
"이 망할 불은, 도대체 왜 물을 끼얹어도 꺼질 생각이 없는 거야! 어, 어어? 야, 야! 가까이 오지 마! 불이 옮겨 붙는 단 말이... 아아아아아악!!"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치지 않을 황량한 황야를 지나 랜드필을 외부에서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던 유스티아의 신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온 탄환에 절명하거나 이따금 피어오르는 어지간한 수단으로 꺼트릴 수 없으며 마치 전염병처럼 옮겨가며 사람을 태우는 불길 속에서 유린당했다.
{아하하☆ 걱정 마, 안 죽여. 해치지 않아.}
상공을 직접 비행하여 강습하려던 스팀팔로스 부대와는 별개로, 랜드필로 향하는 비행선에 정체를 숨기고 탑승한 유스티아의 신도들은 오로지 거짓말만을 내뱉는 사내에게 그 정체를 발각되어, 이내 내면에 무시무시한 야수를 품고 있는 귀부인과 장미 덩굴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입은 얼굴이 파인 마네킹에 의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세 차례에 걸친 이세계 침공 후 모든 것을 잃고 이 세상의 주민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침입자 출신의 이종족들 중의 상당수 또한 유스티아의 꾀임에 넘어가 랜드필을 습격해 왔지만, 그들은 이미 랜드필에 거주하고 있던 동족들의 손에 역으로 처리당했다.
유스티아는 정말 문자 그대로 자신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끌어 들였고, 그걸 전부 랜드필이라는 넓이에 비해 많은 인구가 사는 비좁은 도시에 때려 박았으나, 그 대다수의 공격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유스티아가 선택한 것은 하나였다.
체스에서의 주 목적은, 바로 킹을 잡는 것.
[체크메이트다, 그 증오스러운 니알라쏘텝의 앞잡이여.]
"크...학...!"
찬란하게 빛나는 정의의 검이, 구제할 길 없는 악당의 심장을 관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