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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213화 (186/229)

〈 213화 〉 나아→락! 나→락! (3)

* * *

유스티아의 행적들은 하나 같이 일반적인 사람의 상식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이었다.

여러 신의 권능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루크를 루미너스의 세계에서 납치해 와 놓고서, 그걸 나한테 보내서 싸우게 한 것.어디 다른 세계의 마법 소녀를 속여서, 암살이나 살인 청부와 같이 그녀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을 시킨 것.아티피아 내에서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거점을 자기 손으로 황야에 추락시켜버린 것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 신도들에게 힘을 주어 내 도시 안에서 내란을 일으킨 것.

이러한 기이한 행보들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낭비'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낭비하고 있었다.

유스티아의 목적은, 아마 내 후원자이자 내 거래 상대인 고대의 외신 니아 씨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인생을 장난감처럼 다루며,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아는 그 사악하고 천재적인 고대의 신을 상대로, 자신의 패를 감추다 못해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이토록 내버리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나는 왜 그녀가 여태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벌였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많은 활용 가능한 수단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검거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전투에서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중 요새도, 여러 신의 힘을 품을 수 있기에 한 번에 다수의 신의 권능을 부릴 수 있는 전 용사도, 그녀에겐 별 다른 가치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목표는 니아 씨 하나 뿐이었고, 그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선 그 외에 나머지의 것들은 그녀에게 있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쓰다 버릴 말로서 빼앗은 피조물들의 원주인 되는 무력한 하급 신들이 어떠한 심정일지, 아티피아의 주인이 되기 위해 힘들게 싸우던 두 파벌의 신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거점 중 하나인 공중 도시 스카이론이 황야에 쳐박혀서 붕괴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그녀에겐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자신이 품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그래, 그녀가 내 가슴에 칼을 꽂는 것도 결국 그 목표로 달성하기 위해 짓밟는 길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크으으...!!"

본래 내 몸을 지키고 있을 무형의 방어벽은, 어디까지나 내게로 향하는 움직임에 대응하여 그것에 반대되는 힘을 가하는 것. 그러나 역시 본가는 다르다는 건지, 유스티아의 검은 내 방어를 무시하고 그대로 내 몸에 꽂혔다. 물론 금방 뽑아내며 거리를 벌렸지만, 루크를 상대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 입은 상처는 설령 찔린 부위를 통째로 드러내고 다시 살을 재생시킨다고 해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게 그녀가 가진 권능의 진짜 힘이다, 이건가? 루크가 쓰던 힘조차 결국 열화판이었나?

가슴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지만, 다행히 그걸로 죽지는 않았다. 평범한 사람은 가슴에 칼이 꽂히는 것이 상당히 큰 치명상이지만, 내 몸은 평범한 신이 만든 몸이 아니라서 말이지. 겉모습은 인간과 유사해도, 그 성질이 인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상처는 조금 위험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정의의 여신. 약속을 지켜라.]

[아아, 물론이지. 이번 일만 끝나면, 균형의 여신에게 이 '평등의 저울'을 다시 돌려주겠다.]

마보로시마의 장로 네무와 길드 마스터 정시우가 그토록 경고하던 승리의 여신이라는 자가 도대체 왜 정의의 여신 따위를 돕고 있나 했더니,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 유스티아라는 년이 보인 행보를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봐도 비디오지. 아마 저 썩을 년은 균형의 여신이라는 사람에게 뭔가 개수작을 부렸고, 그로 인해 그녀의 물건일 저 '평등의 저울'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균형의 여신에게 돌려주는 대가로, 아마 그 여신과 우호 관계일 저 승리의 여신에게서 협력을 구해낸 것일 터이다.

[그런데 설마 그걸 맞고도 멀쩡히 서 있을 줄이야. 과연 그 추악한 악신의 추종자답구나. 제 욕구를 위해, 인과와 법칙을 거스르는 그 모습... 역겹기 그지 없어.]

"시발 년이, 뚫린 입이라고 아주 막 지껄이네. 누가 누구 보고 추잡하고 역겹다는 거야?"

내가 알기론 아티피아는 여러 신이 만든 세상이라, 신의 힘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신이 직접 개입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여신이, 이 세상에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일 것이다. 그 증거로 길드 마스터 또한 경악 어린 얼굴로, 유스티아를 노려보며 외치고 있었으니까.

"정의의 여신이여, 신이 직접 이 아티피아에 강림하여 개입하는 것은 분명히 금지 되어있을 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가소롭구나. 그깟 말 뿐인 금기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지금 이곳은 내 추종자 네무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공간. 환상이란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 그것은 바깥에선 관측되지 않는 영역이기에, 우리들이 직접 행차한다 할지라도 저 쪽에선 확인할 수 없지. 그러니 이곳에 남아 있는 목격자만 전부 처리하면, 아무런 문제 없다.]

저 유스티아라는 년 진짜 말 함부로 막 하네. 정의를 자청하는 년이 당당하게 신들 사이의 규칙을 깨고 신들의 게임 판에 직접 행차해서,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라며 여기 있는 사람들을 죄다 쳐죽이려는 꼴이라니. 게다가 여기엔 일곱 도시의 대표자 전원이 모여 있다. 이 아티피아의 균형과 평화를 유지할 일곱 사람이 전부 있는데 그들을 전부 죽인다는 건...

....미친, 설마?

[상관 없다. 어차피 지금을 기점으로, 이 세상은 물론이고 신들의 세계 또한 개혁을 맞이할 테니.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세계가 파멸하는 순간, 그로 인한 신들의 분노는 이 세상에 혼란을 초래한 사내와 그를 보낸 고대의 존재에게 향할 것이다. 그리고 이내, 옛 것과 새로운 초월자들의 존재를 건 투쟁이 시작될 것이고... 나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모두 죽으면, 아티피아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여러 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현재로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세상인 이 아티피아는 그 혼돈의 불길 속에서 이내 사그라들겠지. 열렬히 갖고 싶어하던 것이 눈앞에서 불에 타 재가 되었을 때, 그것을 바라던 자들의 분노는 원하는 것을 태운 이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아티피아가 '혼란'에 처했을 때 가장 이득을 볼 존재가 '혼돈'의 신이라며 '정의'를 맡고 있는 여신이 물타기를 시전하면, 분노로 이성을 잃은 신들이 과연 니아 씨에게 정말 잘못이 있는가 없는 가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고작 개인적인 원한으로 신 하나 죽이겠다고, 죄 없는 세상과 신들이 얼마나 사라질 지 모를 전쟁을 일으켜? 이 미친 년이 선을 존나 세게 넘네?

"길드 마스터."

"왜?"

"귀가 있고 머리가 있다면, 저 말 다 알아 들었지? 지금 여기서 저 년을 못 막으면, 아주 시발 대 참사가 일어날 거야. 승리의 여신이 저쪽의 편을 들고 있고 자시고 간에,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저 미친 년이 우릴 다 쳐 죽이고 신들 사이에 전쟁 일어나게 부추기겠단 말에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하고 싶었는데 차마 못한 말을 대신 해주고 싶어서 고마워. 그리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심의를 펼쳐 두 팔을 공격에 특화되도록 강화시켰고, 길드 마스터는 성스러운 힘이 막 뿜어져 나오는 멋진 검을 포함하여 rpg게임에서 최종 템으로 나올 법한 강렬한 무구들로 완전 무장했다.

"여신이라는 자가 그런 짓을..!"

"그냥 두고 볼 순 없겠군. 이 세계를 망치게 둘 순 없으니."

회의장에 나올 때 항상 사용하던 사이버 사무라이 의체에 빙의 중이던 아카위키는 광검과 외형은 p90과 유사하게 생긴 개조된 총기를 양손에 각각 쥐었고, 엘레이스타는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마도서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고목으로 만든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하... 설마 본좌까지 이런 해괴한 일에 휘말릴 줄이야..."

"설마 내 딸에게 그딴 이상한 사위를 보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도록 만들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천마의 손과 발에 천지를 뒤흔들 기가 모여 들고, 샴발론의 왕을 중심으로 암석의 형질을 띈 부숴지지 않는 병정들이 나타나 날카롭게 깎인 창으로 적을 겨누며 왕을 지키고자 두꺼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유스티아의 편을 든 네무 장로를 제외한 여섯이 이 공간에 찾아온 세 여신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드러낸 상황에서 유스티아는 그 모습이 퍽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음침하게 생긴 여신을 향해 말했다.

[운명의 여신이여, 시작하라.]

[알, 알겠, 다...]

생긴 걸로만 보면 역병이나 불행의 여신이 아닐까 싶었던 그녀는 놀랍게도 운명의 여신이었고, 그녀가 손에 감긴 실을 엮어내자 어디선가 나타난 실들이 우리 여섯 사람을 각각 세 조로 이었다. 나와 길드 마스터, 아카위키와 엘레이스타, 그리고 샴발론의 왕과 무림의 천마.

"이건...?"

"...! 정의의 여신, 이런 비겁한 수단까지 쓸 셈인가!"

[비겁? 이것이 도를 넘은 비겁한 행위인지, 아니면 승리를 위한 필사의 계략인지. 그것은 결국 승자가 정하는 법이다. 그리고 승리는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지.]

또 또 지들끼리 아는 이야기 한다. 나도 좀 껴 줘.

"이게 대체 뭔데 그래?"

"운명의 실, 그것도 투쟁의 운명. 실로 엮인 둘은, 어느 한 쪽이 죽지 않으면 둘 다 죽어."

시발, 뭔데 그 가불기는?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뭐 그런 거냐? 한 명은 같이 있으면 반드시 이기게 해 준다 하질 않나, 다른 한 명은 아주 간단한 행동 하나만으로 적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어 버리질 않나. 진짜 가지가지 하는 구만?

"끊을 수 있는 방법은?"

[키힛, 키히힛...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 따위가? 라고 비웃는 듯한 말투에 열이 받아 손목에 휘감긴 붉으스름한 실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이나 유리 칼날을 만들어 잘라보려고도 했는데, 죄다 실을 통과해 지나가 버렸다. 끊으려는 시도 조차 불가능하다, 이런 건가?

"젠장."

이러는 사이에도, 실에서 나오는 붉은 기운 때문에, 길드 마스터와 나는 서로를 치지 않기 위해 제 몸을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아카위키랑 엘레이스타는 평소에 사이가 워낙 좋지 않았던 것도 있어서, 진즉에 서로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거나 마법을 난사하는 중이고. 천마랑 샴발론의 왕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 스읍... 이거, 그 방법 밖에 없나.

"길드 마스터. 혹시 나 믿어?"

"뭐?"

"나한테 계획이 하나 있는데, 조금 많이 불확실하거든. 그래서 도움이 좀 필요해. 협조해 줄 수 있어?"

"....그 계획이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 외에 선택지가 없어 보이니..."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짓은, 성공 확률이 0.1 퍼센트도 되지 않는 정말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봤자 저 불합리한 권능들 때문에 저항도 못하고 죄다 죽을 게 뻔하니까. 앞도 뒤도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쪽으로 뛰어드는 수 밖에 없잖아?

조금 전에 듣자 하니, 저 유스티아랑 두 여신이 본래라면 할 수 없던 아티피아에 직접 나타나 개입을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가 네무 장로가 만든 환상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존하지 않는 환상의 공간이기에 아티피아 밖에서 관측되지 않는 영역이니, 이렇게 직접 행차한 것이지.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관측되지 않는 영역이지만, 우리 쪽이 유리한 환경으로 바꾸면 그만이잖아?

"환상이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라고 했냐? 그럼 좀 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겠네?"

"...이게, 무슨?!"

여신들이 직접 행차할 수 있게 주변 공간을 환상으로 일그러뜨리는 것을 유지하던 네무 장로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내 옆으로 지금껏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링, 데리러 왔어~♪"

[몽마? 어디서 기어 들어온...]

"여기가 꿈과 현실의 경계라면, 몽마가 와도 이상하지 않지. 꿈은 몽마들의 전문 영역이니까. 그리고, 이런 것도 가능하지."

나는 모노의 손을 잡았고, 운명의 여신이 이은 붉은 실이 연결된 정시우를 포함한 우리 셋은 환상의 공간 속 더 깊은 곳, 꿈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모노는 대상이 현재 있는 곳인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수면 능력과 정교한 꿈 설계 능력을 갖고 있다. 상대가 자신이 잠들었다는 것을 인지할 틈도 없이 꿈 속의 공간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그녀는 꿈과 현실에 걸친 우리들의 상태를 저 멀리서 확인하고서 나를 빼내기 위해 곧바로 달려왔고, 환상이라는 경계를 통해 꿈의 영역으로 나와 정시우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랜드필에 자신이 모은 병력을 죄다 꼴아 박으며 다른 신들의 시선을 끌고, 그 사이 신들이 관측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방해되는 자들을 한 번에 제거하려 했던 유스티아의 입장에서, 이번 일의 누명을 쓰게 될 니아 씨와 긴밀한 관계인 나와 제거해야만 하는 목격자 중 하나이자 일인 군단 급인 정시우는 반드시 배제해야만 하는 대상. 즉, 이것은 그녀는 우리를 제거하기 위해선 이 꿈의 영역으로 와야만 한다. 자신의 부하가 만들어낸 환상의 공간이 아닌, 우리 쪽의 몽마인 모노가 만든 이 꿈의 세상에.

[바, 바보들... 나한테서 떨어진다고, 그 실이 풀릴 것 같, 같아?]

운명의 여신이 마치 부질 없는 발버둥을 치는 이들을 비웃듯이 킬킬거리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던 유스티아가 이내 그녀의 말에 호응하며 평정을 되찾았다.

[그 말대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운명의 여신이 엮은 실은 풀리지 않는다. 신의 권능이란 그런 것이지.]

그리고 유스티아는 여유롭게 웃으며 우리들을 내려다 보았다. 젠장, 저 음침한 여신 년은 괜히 쓸 데 없는 소리를 지껄여선... 어떻게든 유스티아를 이 공간으로 끌어내야만 하는데, 그 전에 나랑 정시우가 서로 싸우게 생겼다.

[운명의 여신이 엮은 실이 있는 한, 너희들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눌 수 밖에 없지. 둘 중 하나가 쓰러지면, 그 때 내려가서 남은 쪽을 거두면 그만이다. 이 공간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점은 제법 머리를 쓴 모양이지만, 신의 권능을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군.]

유스티아의 말대로, 꿈의 세계로 넘어 왔음에도 정시우와 내 팔을 잇는 핏빛 실은 여전히 멀쩡했다. 나도, 정시우도 이제 슬슬 신의 권능이 강제하는 투쟁을 억누르는데 한계가 왔다.

"크윽...!"

정시우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어깨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유스티아, 저 시발 년이 내 가슴에 낸 것과 같은 상처. 하지만 내 몸에 난 것보다 몇 배는 심각한 흉터. 인간의 육신이 아닌 나조차 이 상처로 움직이는 것이 버거운데, 길드 마스터는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저런 끔찍한 흉상을 입고도 멀쩡히 검을 들 수가 있는 거지? 하긴, 그 정도는 되야 이 아티피아의 혼란을 끝맺은 영웅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아무래도 당신이 말한 계획은 실패한 모양인 것 같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정시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더니, 이내 나를 마주보며 덤덤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이 날 쓰러트려."

"뭐?"

그는 내가 좀 전에 얼핏 보았던 상처를 훤히 보이며, 씁쓸하게 말했다.

"날 봐라. 내 몸에 난 이 상처를 봐. 유스티아가 그 이방인의 몸에 화신으로 깃들어 나를 공격했을 때, 긴 응전 끝에 내가 입은 상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그 상처가 낫지 않고 있어. 그런데 유스티아가 직접 이곳에 내려오면, 부상이 심한 나로선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나보단 몸 상태가 더 나은 당신이 날 이기고, 유스티아를 상대해라. 그것 밖에 방법이 없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더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나는 악당이야. 그리고 악당의 역할은, 주인공에게 패배함으로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

"뭐....?"

정시우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의아함을 드러냈지만, 난 그의 궁금증에 제대로 된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운명의 여신이 엮은 빌어먹을 투쟁의 운명 때문에,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육신을 통한 대화 뿐.

무대는 바다의 끝을 넘어 도달한 달의 바다.

주연은 자신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큰 세상의 혼란을 홀로 잠재운 위대한 영웅.

그리고 악역은 오로지 개인의 사리 사욕을 위해 여기까지 온 나.

운명의 여신이 엮은 피할 수 없는 싸움 속에서, 나는 이전 세상에서 제대로 끝맺지 못한 이야기와 나의 역할을 마주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내게 패배와 끝을 안겨줄 가장 적합한 자가 눈앞에 있으며 세상이 우리의 싸움을 원하는데, 이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입가에 사나운 미소를 띄우며,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웅을 향해 덤벼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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