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나아→락! 나→락! (4)
* * *
아티피아 내에서 직접 본체로 현신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유스티아는 제 부하가 만든 환상 공간을 통해 신들이 볼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 냄으로서 당당하게 어겼다.
그녀는 그 안에서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이들을 한 번에 싹 쓸어버리고, 이대로 이 세상을 혼란에 빠트려 망하게 한 후, 그것을 빌미로 신들 사이의 전쟁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 하나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이들을 제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부하인 네무 장로가 만든 환상의 공간이 꿈과 현실의 경계라는 사실을 듣고, 모노가 나를 찾아오길 기다렸다. 꿈은 몽마의 영역이니, 그녀라면 평소에 예의 주시하던 내가 느닷없이 현실과 꿈 사이에 걸친 영역에 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테니까.
예상대로 모노가 날 찾아왔고, 나는 정시우와 함께 환상 공간에서 빠져나와 꿈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신중한 유스티아는 함부로 꿈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았고, 나와 정시우는 운명의 여신이 엮은 투쟁의 운명이라는 망할 놈의 권능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는 상황에 이르었다. 그 와중에 정시우는 본인의 상처가 심하니 조금이라도 더 멀쩡한 쪽이 남아서 유스티아를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생각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유스티아가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환상 공간에서 이 꿈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우리 중 한 명만 남아야 한다고 하면, 그건 정시우가 맡아야만 했다. 나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이 아티피아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에게 패배할 악당이 되어야만 한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압도적인 기량과 경험으로 무장한 운이 매우 좋은 사내가, 사악한 악신을 따르는 어리석은 악당을 확실하게 죽여서 끝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저 망할 유스티아 년에게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어야만 했다. 그걸 위해선...
"하아아아아...!!"
"크으으으으!!"
까아아아앙!!
이 싸움에서 승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쪽이 일부러 봐주지 않고 서로가 전력을 다해서 부딪혔음에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승패가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승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시우가 맡아야 할 배역이다. 내 역할은 그에게 패배하고, 유스티아에게 그녀의 계획이 모두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그 여유 속에서 방심한 그녀의 빈 틈에 치명적인 비수를 꽂는 것이다.
캉! 카아앙!
검과 주먹이 부딪히며, 날 리가 없는 금속음과 함께 내 팔이 뒤로 밀려난다. 과연 최강이라 불리는 자 답게, 사용하는 무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 내 피부를 검게 물들인 이 힘은 <심의 ="" 금강="">. 자신의 신체 부위를 일시적으로 강화하여 절대 부숴지지 않는 성질을 부여하는 능력. 하지만 많은 부위를 강화할 수록 들어가는 정신력의 소모 또한 만만치 않기에 일부로 공격에 쓰이는 팔과 다리, 그리고 공격 당하면 치명적일 급소에만 적용 중이다.
유스티아 본인이 직접 그 힘을 사용하여 내 가슴팍에 입힌 상처를 제외하면, 징벌의 권능으로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던 이 피부에 옅게 베인 흔적이 이렇게나 남다니. 권능 없이, 순수하게 무기 자체의 성능 만으로도 이런 무지막지한 예리도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는데, 저 칼이면 진짜로 물도 벨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카아아아악!!"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밀린다는 말은 아니었다.
<심의 ="" 집중포화=""/>
내 양옆으로 각각 다섯 쌍의 총구가 나타나며, 눈앞의 영웅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꽈르릉, 하고 천둥 소리로 착각할 법한 무시무시한 파열음이 울려 퍼지며 정시우의 몸이 뒤로 크게 나가 떨어진다. 하지만 어디 특별히 몸에 구멍이 나거나 데인 흔적은 없고 저 튼튼한 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걸 보니, 그 새 칼을 눕혀서 그 열 발의 총격을 전부 방어한 모양이다.
"깜짝이야... 그 심의라는 거, 진짜 별에 별 능력이 다 있네. 이 성검에 닿고도 살짝 베이기만 하고 끝날 정도로 몸을 단단하게 만들지를 않나, 느닷없이 허공에서 총을 소환해서 손도 쓰지 않고 단숨에 발포하지 않나,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어."
심의란 사용자의 마음이 실체화 된 힘. 그리고 열 길 물 속은 알아서 사람 하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 사람의 마음이란 그것이 겉으로 표출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마법처럼 사전에 어떠한 것을 사용할 수 있을 지 미리 알 수 있거나 권능처럼 정해진 것만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개개인이 품은 서로 다른 형질의 힘이니 만큼 그 미지의 정보가 위력을 더해주는 셈이다.
"하지만 한 번 본 수법에 또 당할 일은 없어."
그 말대로, 저 자를 상대로 한 번 사용한 능력이 두 번이나 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즉, <심의 ="" 집중포화="">는 이제 못 쓴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차피 기습적으로 낼 수 있으면서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대신에 한 번 쓰고 나면 다시 사용하기 까지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는 능력이라 이 전투에서 두 번 꺼낼 일은 없긴 하지만.
"그 단단한 피부도 매우 성가시지만, 몸 전체를 뒤덮지 않고 일부 신체에만 적용된 걸 보면 지속 시간이 짧거나 혹은 소모되는 힘이 큰 모양이지. 그렇다면 그 무방비한 부위를 공격하거나..."
챠킹. 정시우의 손에 들린 양날 대검이 사라지며 대신 그 손에 검집에 꽂힌 카타나가 쥐어졌다. 무언가 불길한 직감에 나는 급히 <심의 ="" 금강="">을 전신에 둘렀다. 그리고 정시우가 검을 검집에서 발도한 그 순간.
!!
바람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며, 사방에서 날아든 예리하고 섬뜩한 참격이 내 몸을 두들겼다. 한 발 한 발의 위력 자체는 이전보다 낮아진 대신 공격 속도와 횟수는 압도적으로 상승하여, <심의 ="" 금강="">을 쓴 상태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지만 그 힘이 적용되지 않는 부위는 그대로 두부 썰리듯 잘려나갈 만큼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닥쳐온 수십 번의 참격으로 인해 온 몸에 가는 실선이 가득해 졌지만, 이윽고 나는 이 신체 특유의 강한 재생력으로 그것을 회복했다. 그 모습에 정시우가 아쉬움을 담은 한숨을 내쉬며 뽑아든 검을 다시 납도했다.
"...발도술?"
"이 칼의 이름은 '토키세츠'. 발도술에 미친 어떤 변태가 만든 특별한 마검인데, 검을 검집에서 뽑고서 불과 0.5초 동안 사용자의 신체를 극한까지 끌어 올려서 수십 번의 공격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 순간에는 이동할 수 없고, 오로지 칼만 휘두를 수 있어서 결함이 많은 무기야.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쓸만하지만. 남들의 눈에는 칼을 뽑는 것과 동시에 상대가 수십 가닥으로 토막나는 것처럼 보일 걸?"
오로지 발도하는 그 순간에만 극한의 연격을 가할 수 있게 해주는 칼이라니. 확실히 갑자기 저런 어마무시한 공격이 날아온다면, 그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지 않는 이상은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지 하나는 진짜 확실하네.
"이 칼의 속도에 내 힘, 그리고 티케 님의 가호로 절묘하게 치명적인 급소만을 공격하게 되면 어지간한 적들은 대부분 한 방에 쓰러졌는데, 설마 이걸 두 번이나 쓰는 상대를 만날 줄은 몰랐어. 이제 전신에 그 힘을 둘렀으니 무방비한 부분은 없을 테지만, 이 상태로 계속 밀어 붙이면 소모되는 힘 탓에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겠지."
정시우가 선택한 전략은,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 비록 공격과 공격 사이의 틈은 길지만, 한 번 공격이 가해질 때 모든 힘을 사용하여 전력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그대로 절명할 수도 있을 치명적인 일격을 계속 가함으로서 내 힘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것. 그것 참 대처하기 힘든 공격이다.
"그럼, 한 번 더 간다."
내가 그 공격에 대처할 능력이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챠킹,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에 담겨 있던 카타나가 그 빛나는 이빨을 드러낸 순간, 다시금 수십 회의 예리한 연격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왼쪽 어깨부터 시작해서 오른쪽 옆구리, 배, 왼쪽 허벅지, 오른쪽 팔 등등... 도저히 어디서부터 방어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을 불규칙적인 궤도의 공격들이 날아드는 순간, 무형의 방어막이 날아든 참격에 정 반대 방향의 힘을 부여함으로서 내 반사 신경으로 반응할 수 없는 초신속의 검격이 전부 튕겨져 나갔다.
"....!"
"당신이 먼저 자기가 가진 무기의 정보를 털어놨으니, 나도 이 능력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심의 ="" 금강="">을 쓰지도 않고서 아무러 상처 없이 신속의 연격을 견뎌낸 나는 매우 위험한 도박수가 다행히 성공했다는 사실에 조용히 식은 땀을 흘리며 애써 태연한 척 설명했다.
"이 능력은 <심의 ="" 레인보우="" 리플렉트="">.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는 동안에 나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을 펼치며, 사람이 주먹을 내지르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접근한 것에 가해지고 있는 힘의 방향을 정 반대로 틀어버리는 능력이지. 얼마나 빠르고 강력하던, 자동으로 다 튕겨나간다는 뜻이지."
내 설명에, 정시우는 입을 쩍 벌리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뭐야 그게? 치사하잖아! 개사기 능력은 작작 써라!"
"댁이 할 소린 아니지 않아...?"
정시우는 아쉽다는 듯이 카타나를 다시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보내며, 이번엔 본인의 키만큼 크면서 온갖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장궁을 꺼내들었다. 얼마나 빠르던 전부 자동으로 반사해 버리는 방어막 앞에서, 속도의 이점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도 맨손으로 싸워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고서, 본격적인 공격 수단을 꺼내들었다.
내구성은 형편 없지만 예리도와 예쁜 것 만틈은 일품인 유리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내는 <심의 ="" 유리="" 공예="">, 그리고 내 손으로 던진 투사체를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심의 ="" 왜곡="" 곡예="">. 이 세계에서 매우 초기에 얻었으면서, 동시에 여태까지도 가장 애용하는 두 심의의 연계. 옛날 동화 속 유리로 만든 성을 동경한 이방인 소녀의 마음과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것을 내던졌던 일을 다시 되돌리고 싶은 슬럼가 청년의 마음에서 비롯된 힘이 내 손에 그 형태를 갖추었다.
나는 유리로 만들어진 칼날들을 단숨에 내던졌고, 평범한 속도로 날아드는가 싶던 유리 칼날들은 도중에 급가속하여 어지간한 탄환보다 빠른 속도로 정시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와중에 정시우가 화살을 끼우지도 않은 채 시위를 당기자, 보이지 않는 화살들이 발사되며 그에게로 날아든 공격을 도중에 요격했다.
하지만 유리 칼날의 진짜 무서움은 단순히 그 상식을 벗어난 예리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무기라면 무척이나 치명적으로 작용할 그 형편 없는 내구성이지만, 반대로 지금은 어지간한 약한 공격에도 쉽게 요격당해 부숴지며... 전부 쳐내기 힘든 그 작은 파편들이 특유의 예리함을 잃지 않고 적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큭...!"
과연 행운에게 사랑 받는 사내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는지, <심의 ="" 유리="" 공예="">와 <심의 ="" 왜곡="" 곡예="">의 연계 공격 속에서도 자잘한 흉태는 냈을 지언정 그것이 결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진 못 했다. 저게 천운의 가호... 자신의 공격으로 부숴진 유리 파편에 의해 입는 피해가 확정된 상황에서도 그 변수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함으로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다니. 정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이다.
만일 누가 나보고 저 정시우를 상대로 승리하라고 하면, 그딴 지시를 내린 놈의 대가리를 후려칠 정도로. 내가 지금 맡은 역할이 승리가 아니라 패배여서 정말 다행이다.
쏟아지는 유리 파편 속에서 치명상은 면한 정시우가 다시 나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그 마른 몸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장궁의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가 시위를 당기고 있던 손을 놓는 순간, 매겨지지 않은 화살들이 활을 떠나며 쇄도한다.
"...!!"
나는 세상이 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체감했다. 설마 세상에 사람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날아드는 투사체를 쏘는 원거리 공격이 존재할 줄이야.
눈앞의 풍경이 일렁인다. 공기가 뒤틀리며 만들어진 화살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은 몸을 던져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너무 느린 속도 탓에 <심의 ="" 레인보우="" 리플렉트="">로 방어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고정된 형태가 없기에, 내 몸에 닿는 순간 <심의 ="" 고정="">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다시 <심의 ="" 금강="">을 전신에 펼쳐 방어 자세를 갖추자,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지만 그렇다고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범위가 큰 공격이 내게 작렬했다.
?!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원래부터 소리가 없는 공격인가 싶었으나, 나를 제외한 주변이 화려하게 터져나가며 뒤늦게 귀에 거슬리는 이명이 들리고나서야 너무나도 큰 소음 탓에 내 청각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심의 ="" 금강="">으로 내 몸의 겉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지만...
"쿨럭...!"
몸 안 쪽은 전혀 달랐다.
중세 시대에서 갑옷을 입은 적을 상대로 칼이 먹히지 않지만 메이스와 같은 둔기류는 갑옷을 때리며 그 갑옷 안으로 충격이 전해지듯, <심의 ="" 금강="">을 펼친 피부는 멀쩡해도 내 신체 안 쪽은 보호 받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으며 터무니 없이 느린 거대한 화살이 전달한 충격이 내 몸의 내부를 그대로 뒤흔들었다.
거센 물살에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것 같은 멀미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뒤집혔을 지도 모르고. 무언가 먹은 것이 없음에도 안에 있는 것을 토하고 싶은 기묘한 감각이 든지 얼마 가지 않아, 벌어진 내 입에서 붉은 핏덩이가 역류해 나왔다.
"허억, 허억....!"
"그걸... 맞고도 살아 있다고?"
지금껏 본 적 없는, 마치 내 능력 자체를 카운터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그 기묘하고도 무시무시한 위력의 공격에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정시우 또한 그 무지막지한 공격을 맞고 아직도 살아 있는 나를 보며 당황한 눈치였다.
"세상에... 드래곤 로드조차도 견뎌내지 못해서 온몸이 터져 나가는 그 공격을... 버텨냈다고?"
드래곤 로드라면 드래곤들 대장 아닌가? 보통 드래곤은 어느 세상이든 최상위권에 속한 존재일 테고, 그런 종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가 그 드래곤 로드일 텐데... 그런 걸 죽인 적 있는 공격이라고?
와, 나 진짜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구나? 외신이 만들어준 몸이 확실히 튼튼하긴 한 모양이다. 몸 속의 장기가 전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으깨졌음에도 살아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회복되는 것이 온몸으로 체감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나는 곁눈질로 잠시 위쪽의 환상 공간을 살폈다. 그리고 정의의 여신은 도대체 자신이 뭘 본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살짝 두려움마저 섞인 눈으로 나와 정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딴 어마어마한 공격을 태연하게 날리는 놈이나, 그걸 맞고 살아 있는 놈이나, 저 정신 나간 여신의 눈에도 충분히 미친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참 부족하다. 본래는 우리가 힘이 죄다 빠져서 그녀가 자기 손으로 충분히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게 만듬으로서 제 발로 이곳으로 내려오게 할 셈이었지만, 우리들이 한 번씩 공격을 주고 받은 것은 되려 우리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힘을 갖고 있는 가를 보여줌으로서 그녀에게 망설임을 준 모양이다. 아... 이게 아닌데? 젠장, 그럼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초근접전으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나?
"후...."
몸 안 쪽이 전부 회복되고 나서야, 나는 또 다른 심의를 꺼내 들었다.
<심의 ="" 마음의="" 검=""/>
결코 부러지지 않으며, 내 손을 떠나도 언제든 다시 되돌릴 수 있고, 내 주변에서 일정 거리 이상 사라지면 사라지지만 몇 자루 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검.
"히야아아아아아!!!"
그 검에 도계 조직원들로부터 얻은 날붙이와 관련된 각종 심의를 더해, 나는 정시우를 향해 덤벼들었다.
*
[....하, 꽤 재미있는 짓을 벌이는 군.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친구 덕분에 내가 그 사실을 늦기 전에 알게 된 것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중성적인 목소리가, 조용한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본래라면 지난 번에 그러했든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그녀가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었지. 그것도 나를 적대하는 자들조차 내 편을 들어줄 정도로.]
딸깍, 뚜르르르르...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듯이 이어지던 연결음이 끊어지며 상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인간의 귀로는 인지할 수 없는 목소리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