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217화 (190/229)

〈 217화 〉 나아→락! 나→락! (7)

* * *

캉! 카강! 촤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악!"

가슴팍을 일자로 베인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무릎 꿇은 자의 머리를 걷어 차 완전히 무력화 시킨 후, 누비스는 뺨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숨을 돌렸다. 뜨거운 태양 빛이 작열하는 사막에선 가히 무적에 가까운 그녀였지만, 매일 뜨거운 곳에서만 살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서늘한 곳은 영 적응이 안되어 지형에 대한 떨어지는 적응성으로 인해 평소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후우, 후우...! 각자 상황을 보고하라!"

"이쪽은... 전부 제압했습니다!"

"이쪽도 제압 완료입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이걸로 끝입니다!"

랜드필의 전투 인원들은 평소 그들의 선생 라그나 아마게돈으로부터 다양한 상황에 따른 대응 및 전투 훈련을 받아온 덕에 갑작스러운 유스티아 신도들의 기습에서 불구하고 적절하게 맞설 수 있었고, 그 덕에 피해를 상당히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전투가 예상 이상으로 적은 피해만으로 끝난 것에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따로 있었다.

"누비스 장군... 여길 좀 봐주시죠."

누비스와 함께 전투 인원들을 이끌며 싸웠던 간부 중 하나, 에스크가 뾰족한 세검 끝으로 바닥에 널부러진 적들 중 하나를 가리키며 그녀를 불렀다.

"이건..."

쓰러진 적들 중 하나가 하고 있는 참혹한 몰골에, 누비스는 눈쌀을 찌푸렸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이 자는 그녀의 창에 옆구리가 뚫리며 그대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비록 완전히 죽이진 않았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적 하나 하나를 일일이 확인 사살할 시간에 민간인을 향해 권능을 휘두르는 광신도 하나를 더 저지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살아있던 그 자가, 지금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마치 모든 영양분을 빼앗겨 말라 비틀어진 나무와 같은 몰골로.

겉에 붕대만 감아 두면 미이라라고 주장해도 누구도 의심치 않을 그 어처구니 없는 몰골은, 고작 창에 옆구리 뚫린 채로 잠시 방치했다고 나올 모습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의해 힘을 억지로 쥐어 짜여, 그로 인해 숨을 쉴 기력마저 전부 빼앗겨 탈진사 당한 모습. 하지만 적들 중에, 그리고 아군 중에서 누군가의 생명력을 강제로 빼앗는 힘을 가진 자는 분명히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에 한 번, 이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 있지. 그래, 아마... 전사의 신에게 선택 받은 자였다. 그를 선택한 신은 자신의 투사가 언제나 승리하기를 바랬으나 결국 그 자는 내게 패배했고, 전사의 신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에게 뿌렸던 권능을 다시 거두어갔지. 권능 뿐만 아니라, 그 생명도 함께. 지금 이 자의 모습은, 그 때 신에게 버림 받은 그 전사와 비슷하군."

"그럼..."

에스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윽, 그아아아아아악!"

"흐그으으윽?! 그, 그가아아아아악!!"

전투에서 패배하였지만 아직 목숨은 붙어 있는 채로 바닥을 뒹굴던 적들이 일제히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르는가 싶더니, 점차 그 몸이 앙상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던 끔찍한 곡소리가 마침내 멎었을 때, 랜드필을 노렸던 이들은 하나 같이 과즙을 전부 쥐어 짜인 과일 같은 몰골로 싸늘하게 널부러져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참혹한 그 광경에, 누비스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신이시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

로키의 자식들 중 차남이며, 세계를 제 몸으로 휘감을 정도로 큰 괴물 뱀 요르문간드.

라그나로크에 대한 예언으로 장남 펜리르가 입이 칼로 꿰뚫린 채 재갈이 물리고 난쟁이가 만든 마법의 족쇄에 구속되었을 때, 바다 속에 버려져 복수의 날만을 기다리던 가장 거대한 뱀.

그 요르문간드가, 달의 바다에서 솟아올라 로키를 향해 떨어지던 유스티아의 거대한 검을 제 몸으로 막아냈다. 신들을 향한 맹렬한 적의를 품은 괴물 뱀의 소름끼치는 눈이, 정의의 여신을 바싹 굳게 만들었다.

유스티아가 가진 힘은 인간을 상대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지만, 요르문간드와 같이 상식을 벗어난 크기의 괴물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방어할 수 없고 상처가 낫지도 않는 공격? 그래봤자 유스티아의 공격은 요르문간드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주 작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즉, 로키의 자식들 중에서 유스티아가 가장 승기를 확신할 수 없는 괴물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승리의 여신! 그리고 운명의 여신! 뭘 보고만 있는 거냐! 어서 나를 도와라!]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유스티아는 급히 자신을 따라 온 두 명의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운명의 여신은 로키가 나타났을 때 이미 도망쳤어.]

그곳엔 승리의 여신만이 남아 있었다.

[뭐...?]

[운명의 여신은, 그 선대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대부분의 신들에게 미움 받고 있으니까.]

신화 속에서, 대부분의 비극적인 예언은 그 운명을 벗어나고자 한 이들의 행동이 되려 원인이 되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로키의 자식들이 신들에게 배척 당했던 것도, 그들이 신들의 종언을 가져올 마지막 전쟁 라그나로크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언에 의한 것이었으니. 설령 그것이 현대의 운명의 여신이 벌인 짓이 아니라고 해도, 피해자들이 그런 사소한 것까지 세세하게 따질 만큼 이성적이지 않았다.

[로키가 직접 왔다면, 그의 자식들이 같이 와도 이상할 것이 없지.]

[젠장, 그 망할 년...! 그렇다면 빅토리아, 너라도 참전해라! 나에게 이 저울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겠지?]

딸랑. 유스티아는 손에 들고 있던 저울을 내보이며 외쳤다.

[나와 약조했을 텐데! 내가 이 저울을 평등의 여신에게 돌려주는 것을 대가로, 너는 이번에 한해서 나를 돕는다고! 내가 승리할 수 있도록, 어서 도우란 말이다!]

[아무래도 한 가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러나 유스티아의 발악에 답한 것은 빅토리아가 아닌 로키였다. 그는 턱 끝부분에 난 수염을 매만지며 비웃음을 흘렸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승리의 여신이 가진 힘은 자신이 함께한 자를 반드시 이기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

[그녀의 힘은 승자를 알아보는 것.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만일 그 자가 결국에 승리할 운명이라면,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것이다. 즉, 그녀는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누가 승리할 것인지 알고 승자의 편에 설 뿐, 지고 있는 자를 반드시 이기게 해주는 힘 따위 없다는 거지. 설마 그런 것도 모르고 그녀를 제 아군으로 영입했을 줄이야. 그것도 평등의 여신을 속여서 갈취한 그 신물을 대가로 걸고서 말이지?]

로키의 미소가 점차 싸늘해져갔다. 마치 그녀에게서 받아내야 할 죗값이 더욱 늘어난다는 듯이.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결국 빅토리아, 너는 평등의 여신을 위해서 내게서 이 저울을 받아갈 수 밖에 없어! 당장 나를 돕지 않는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 신물을 파괴하겠어! 그럼 힘의 근원을 잃은 그녀는, 이내 신격을 잃게 되겠지. 너도 그런 건 바라고 있지 않을 테지, 안 그래?]

[....하. 알겠다.]

승리의 여신은 마지 못해, 유스티아의 명령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약속을 따른다고 해서 정말로 그녀가 저울을 평등의 여신에게 돌려줄 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그녀를 따르지 않으면 저울을 부수겠다는 협박은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본래 잃을 것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 대형 사고를 일으킨 유스티아는 일을 더 키우면 키웠지, 이제 와서 그만두고 돌아갈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는 환상 공간에서 꿈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무대는 달의 바다.

적은 승리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

그리고 우리 쪽은 아티피아를 비롯한 여러 세계를 구한 영웅 정시우와 악신의 사도인 대악당인 나, 내게 노예 선언을 했던 죽음의 여신 헬과 헬의 오빠인 요르문간드, 그리고 둘의 아비인 로키까지.

수적으로도, 그리고 질적으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신도들에게 저장해 둔 자신의 힘을 끌어 모아서 평소 이상의 출력으로 낸 공격이 로키는 커녕 그의 자식 선에서 컷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스티아는 여전히 '승기를 보고 있는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뭔가 숨겨둔 수가 있을 거란 뜻인데...

[이봐, 내 딸 채간 놈팽이.]

살기가 가득 담긴 그 살벌한 목소리에, 나는 목을 삐걱삐걱 움직이며 가까스로 로키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물론, 얼마 안 가서 곧바로 시선을 바닥에 깔아야 했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면 앞뒤 안 보고 일단 너부터 어떻게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지. 대신, 내 딸을 데려가도 좋을 지 한 번 확인해 보겠네.]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던 그 때, 유스티아의 손이 움직이며 그녀가 들고 있던 저울이 때앵 하고 맑은 소리를 울렸다.

[평등의 여신의 신물인 이 저울에는, 그녀의 힘이 담겨 있지. 그리고 평등의 여신이 가진 힘은... 본인의 기준에서 양쪽이 동등한 조건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러니 지금처럼 이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면...]

때앵.

그 맑은 소리가 한 번 더 울려 퍼지자, 이내 저울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선이 이쪽의 전력을 둘로 나누었다. 나와 정시우, 그리고 헬과 로키, 요르문간드로.

[동등한 조건이 되도록, 개입할 수 있다는 거지.]

"...!"

갑자기 왜 자기 딸을 데려가도 좋을 지 확인하겠다는 의미 불명의 말을 하는가 싶었더니, 이런 뜻이었나?

양쪽이 동등한 조건이 되도록 만든다. 즉... 헬과 요르문간드, 로키가 이쪽에서 함께 싸우는 것은 형평성에 매우 맞지 않으니 밸런스 조절을 위해 그 셋을 치우고... 나와 정시우만이, 유스티아와 빅토리아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시발, 이게 어딜 봐서 동등한 조건이야. 네년 뇌에는 공평함이라는 게 다른 뜻이냐?"

인간 둘이서 여신 둘을 이기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소용 없어. 저 공평함의 조건은, 저울을 든 자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니... 우리가 아무리 불공평하다고 외쳐도, 저울을 든 자가 그것이 공평하다고 판단하면 방법이 없어."

"젠장할."

나는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고, 정시우 또한 <심의 ­="" 리워드="">의 디메리트로 상처와 피로를 전부 회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최상의 상태라고 해도, 신을 상대로 이기라고...?

루미너스의 세계에서 헬을 이겼던 것도, 어디까지나 그녀가 여마법사 비올라의 육체에 화신으로서 강림했던 것을 이용하여 유리한 상황에서 찍어 누른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 신과 동등한 조건에서 싸운 적 따위 없다. 언제나 유리한 조건에서 유리한 방법으로만 싸워왔더 내게, 이런 상황은 영 달갑지 않았다.

[빅토리아. 네가 정시우를 맡아라. 저 악신의 추종자는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겠다.]

[...그래.]

스르르릉.

쌍검을 쥔 여신 빅토리아는 그 칼 끝을 정시우에게로 향했고, 유스티아는 양손에 각각 거대한 망치와 작은 단검을 쥐고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쳇,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유스티아, 저 년은 아무래도 니아 씨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나만큼은 어떻게든 직접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수많은 보구와 영웅을 거느리는 정시우보단 내 쪽이 상대적으로 만만했던가. 어느 쪽이든, 오히려 이 쪽이 환영이다.

"마침 잘 됐네. 그동안 계속 나한테 개고생 시킨 것에 대한 답례를 할 기회가 와서."

*

선수필승.먼저 행동한 이가 반드시 이긴다.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2 대 2의 싸움에서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승리의 여신이었다. 양쪽 손에 각각 한 자루 씩 검을 쥔 채, 그녀는 정시우를 향해 덤벼 들었다. 빅토리아의 신속하고도 조용한 급습에 정시우는 급히 중앙에 붉은 루비가 박힌 화려한 방패를 불러 내어 공격을 방어했다.

"큿...!"

채챙! 날카로운 두 칼날이 방패를 때리고, 정시우가 반격을 준비하기도 전에 빅토리아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수면 위를 파문 하나 일으키지 않고 빠르면서도 조용하게 달리는 놀라운 재주를 선보이며 검을 휘둘렀다. 마치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검의 궤적 속에서 정시우는 황급히 방어를 이어 나갔다.

[...!]

"후! 흐아압!"

빅토리아가 어떤 사람이든 반드시 승리로 이끄는 여신이 아니라 결국에 어떤 자가 승리할 것인지 알게 되는 여신이었다는 게 밝혀졌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가 강자의 편에만 붙는 비열하고 연약한 겁쟁이라는 뜻이 되지 않았다. 정시우는 빅토리아의 현란한 검무를 받아내며 반격의 기회를 틈틈이 엿보았지만, 조금이라도 공격할 틈이 생겼다 싶으면 빅토리아는 그의 공격이 도저히 닿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벌렸다가 다시 좁히기를 반복하며 그를 압박했다.

까아앙! 끼기기기긱...!

[죽어라, 빌어먹을 악신의 꼭두각시!]

"아가리."

챙! 채챙! 카아앙!

라그나 아마게돈과 유스티아 쪽도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빅토리아가 정시우를 빠르게 몰아 붙히는 것과 달리, 이쪽은 유스티아가 라그나 아마게돈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아무리 근접 전투가 특기가 아닌 라그나 아마게돈이라고 해도, 유스티아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눈 먼 검에 맞을 정도로 전투 센스가 형편 없지는 않았다.

유스티아가 가진 징벌의 권능은 상대의 방어 수단을 무시하며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마법이나 권능 등을 통한 방어 및 회복 수단 하나 씩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의 싸움은 대개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티느냐가 승패를 결정 짓는 장기전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방어도 회복도 못하는 유스티아의 공격은 그 싸움을 단기간에 끝나게 만드는 회심의 무기였다.

그러나 근접 전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를 재는 것이고, 라그나 아마게돈이 다루는 무기들은 유스티아의 망치와 단검에 비해 훨씬 사정거리가 길었다. 빅토리아는 특유의 빠르고 매끄러운 스텝으로 접근과 후퇴를 반복하며 정시우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밀어 붙이는 것에 비해, 유스티아는 한 번만 공격을 성공시키면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 하에 자신보다 리치가 긴 무기를 가진 사람을 상대로 무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를 뿐이었다.

[크윽, 젠장할...!]

유스티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단 한 번, 어떻게든 한 번만 공격을 명중시키면 사실상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인데 그 한 번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으니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가까이 붙으려고만 하면 창을 내질러 견제하며 뒤로 물러나고, 거리가 멀어지면 계속해서 원거리 공격을 쏟아 붓는 탓에 화가 내지 않을 래야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아아아아!!!]

이따금 아주 운 좋게 빈 틈을 노려 가까이 접근하여 공격을 하려고 하면.

"병신. 이걸 낚이네?"

투쾅!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그녀의 몸은 뒤로 멀리 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라그나 아마게돈은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키는 유스티아를 비웃으며 그녀를 도발했다. 조금 전 그 그것은 일부러 상대에게 빈 틈을 노려 큰 공격을 유도하고, 유스티아가 그 빤히 보이는 함정에 걸려 곧바로 공격해 오는 순간에 <심의 ­="" 집중포화="">로 불러낸 열 자루의 총기로 단숨에 그녀의 몸에 폭발성 탄환을 내다 꽂은 것이다.

"계속할 거야? 저 뒤에 계신 분도 아니고, 내 선에서 이렇게 쳐발릴 거면 그런 감당할 수 없는 사고는 왜 친 거야?"

[네놈은... 네놈은 모른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망치로 바닥을 딛으며 다시 일어난 유스티아는 라그나 아마게돈을 향해 악에 받친 외침을 내질렀다.

[네가 따르는 그 악신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넌 전혀 모른다! 그 놈의 손에 몰락한 이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그 악순환을 끊겠다고 나선 건데, 어째서 나를 방해하는 것이냔 말이다!!]

"아까부터 개소리를 참 다이나믹하게 지껄이네. 뭐? 악순환을 끊어? 자기보다 약하고 어리버리한 하급 신들을 찾아가서 속이고, 착취하고, 자기 개인적인 복수를 달성하겠다고 애먼 신들까지 휘말릴 개짓거리를 벌이려고 했으면서, 왜 방해를 하냐고? 야, 그거 아냐?"

라그나 아마게돈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모멸감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니아 씨가 인간을 장난감처럼 취급하는 사악한 신인 건 맞긴 한데, 너처럼 인간을 그냥 일회성 소모품이나 도구 취급 하는 년보다는 몇 배는 더 낫지 않겠어?"

[내가... 그 악신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당장, 그 말 취소하지 못 해...!!]

"취소 안 하면 어쩔 건데?"

[죽여, 버리겠다...!]

"뭐, 언제는 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안 한 것처럼 말하고 있어?"

유스티아는 권능을 다시 끌어 올렸다.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권능은 물론, 자신의 권능을 담고 있던 이들의 생명력까지 흡수하여 힘을 회복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두께가 두 배로 늘어난 망치와 이제는 단검이라 불리기엔 너무나 날이 길어진 검을 거칠게 휘두르며, 라그나 아마게돈을 향해 달려 들었다. 하지만 유스티아의 성질을 긁을 대로 긁었던 그는, 전력을 다해 덤비는 그녀를 정면에서 상대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심의 ­="" 내면의="" 야수="">."

아우우우우우...!

섬뜩한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신체의 일부가 늑대의 것으로 변한 라그나 아마게돈은 자신에게 덤벼드는 유스티아를 향해 달려 들었다. 여태까지는 계속 거리를 벌리며 견제했으면서 갑자기 되려 자신이 거리를 좁히는 그 태도 변화에 유스티아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드디어 자신의 공격을 명중시킬 수 있다며 충돌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무기를 휘둘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리고 라그나 아마게돈은 그녀가 휘두른 망치를 그대로 '통과하여' 지나갔다.

[뭣...?]

어둠에 동화된 그의 육신이, 그녀가 전력으로 휘두른 공격을 무시하며 나아가던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것은, 방어 마법을 펼친 정시우와 그의 방어벽을 검으로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있던 빅토리아.

[이, 이 비겁한 자식...! 정정당당하게 덤벼라!]

"지랄."

키득 키득.

라그나 아마게돈은 뒤늦게 자신을 쫓으려고 허둥대는 그녀를 비웃으며, 머리 위에 늑대의 표식이 나타난 빅토리아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라그나 아마게돈이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깨달은 빅토리아는 양손의 검을 교차하여 아마게돈의 공격을 받아내었고, 그 사이 방어 마법을 해제한 정시우가 두 사람을 향해 화살을 매기지 않은 활의 시위를 한계까지 당겼다.

"원래 악당은 비겁한 거 몰라?"

라그나 아마게돈은 씨익 웃으며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심의 ­="" 금강="">으로 전신을 보호하였고, 그와 무기를 맞대고 있던 빅토리아와 라그나 아마게돈을 쫒아 뒤늦게 합류한 유스티아를 향해...

"떨어져라아아아!!!"

정시우의 '하늘을 떨구는 활'이, 용의 군주조차 한 방에 죽인 필사의 일격을 토해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