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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219화 (192/229)

〈 219화 〉 조슬 조때로 놀리면 아주 조때는 거야(1)

* * *

로키는 마음이 매우 심란했다.

망할 라그나로크에 대한 예언 때문에 소중한 자식들에게 불합리한 폭력이 닥쳐옴에도 자신의 입장상 차마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오딘의 밑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딸이 어떤 고충을 품고 있었을 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 아이가 고생 끝에 죽음의 여신이 되었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게다가 라그나로크가 시작되었을 때 나글파르에 망자들을 태우고서 아스가르드로의 침공을 도왔을 때, 부모의 도움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훌륭하게 성장하여 효도하는 딸에게 얼마나 고맙고도 미안했던가?

그렇기에 딸아이가 만일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 사랑을 축복해 줄 것이라고 로키는 생각했다.

그리고 훌륭하게 자란 현명한 딸이 라이키린인가 뭔가 하는 근본 없는 후천적 신 놈팽이의 계략에 동참했다가 들통난 것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고 했을 때 혹시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열렬히 보호했으며, 그 와중에 그 아이가 누군가에게 아주 진득하게 빠졌음에도 그 상대가 누군지 자신에게 도통 털어놓지 않아서 얼마나 속이 터졌는지 아마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딸과 함께 잠시 개인적인 목적으로 니알라쏘텝을 방문했을 때, 니알라쏘텝이 받은 보고에 딸아이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서, 로키는 깨달았다. 지금 저 보고 속애 언급된 위험에 빠진 사람이, 바로 자신의 귀한 딸의 마음을 훔쳐 달아난 그 못 돼 쳐먹은 놈팽이라고.

라그나 아마게돈.

딸 아이의 첫사랑인 그 자는, 안타깝게도 인간이었다.

신들 사이에서도 인간에게 구애하는 것으로 매우 유명한 행운의 여신 티케가 인간과 사랑에 빠진 첫 번째 신도 아니고 마지막 신도 아닐 테지만, 어째서 하필 제 딸이 그런 인간에게 마음을 뺏긴 것인지. 그 순간만큼은, 로키는 하늘을 저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라그나 아마게돈이라는 사내가 유스티아의 싸움에서 대등하다 못해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로키도 그가 사실 그렇게 까지 싫지는 않았다. 수완 좋고, 능력 있고... 거기에 막바지에 유스티아가 깨우치려던 힘을 되려 역이용하는, 그 묘한 능력. 상세한 것은 다르지만 구조 자체는 신의 힘과 꽤 유사한 힘이었기에, 만일 그가 일개 피조물로 남지 않고 신의 자리에 오른다면 딸아이를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성 편력이 좀 문란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사위감으로 그렇게 최악은 또 아니었으니. 게다가 옆동네의 주신도, 아내를 두고서 바람을 자주 피우긴 해도 본인이 할 일은 알아서 잘 하는 것도 있었고.그렇기에 로키는 매우 마음이 아프지만, 딸 아이와 그 인간 사이의 관계를 훼방을 놓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주인님!!!]

아무리 신이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해도 신이 아닌 몸으로서 여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서 숨을 돌리던 그 사내를 향해 달려간 하나 뿐인 소중한 딸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인님.

동등한 관계가 아닌, 명백히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높여 부르는 단어.

그런데 그 단어가 하필 딸의 입에서, 그것도 저 생전 처음 보는 놈팽이를 향해, 이 아비에겐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저런 꿀이 떨어지는 목소리로...

주인님이라고? 내 딸이 뭐가 아쉬워서 아직 신도 안 된 놈한테 스스로 굽혀야 한단 말인가? 외눈깔한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때에도 속으로는 칼을 갈던 그 아이가, 죽은 자들의 주인으로서 군림하던 그 아이가, 저렇게 자기 자신을 낮추면서, 그걸 기뻐하는 목소리로, 대체 왜...!

그 순간, 로키는 저 망할 새끼를 쳐죽이기로 결심했다.

*

헬이 애정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외치며 내게 안겨듬과 동시에, 로키로부터 온몸이 저릿저릿해질 정도의 압도적인 살기가 피어 올랐다. 이제 겨우 보스전 하나 끝냈는데,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난데 없이 최종보스가 군림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기껏 문제의 원흉인 유스티아를 쓰러트린 내가 여기서 분노한 딸바보 로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딸아, 비키렴. 저, 저 망할 놈을 내가 아주 그냥...!!]

격식 따위 전부 집어 던진, 원색적인 분노를 그대로 가감 없이 드러내며 로키는 당장이라고 내 몸에 해독제 없는 극독이 발린 단검을 천 개 정도는 꽂아 넣고 싶어나는 얼굴이었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 주인님과 드디어 만났는데, 아빠가 뭔데 우리 주인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우, 우리 주인...? 이런 씨발, 야 이 개새끼야. 너 오늘 진짜 뒤졌다고 복창해라.]

[그만하라고! 아빠... 정말 싫어!]

[앗... 아아아...]

죽음의 여신 헬의 [아빠 정말 싫어!] 공격!

효과는 굉장했다! 로키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딸이... 내가 싫다고... 아아아...]

만약 헬이 내뱉은 말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면, 아마 지금 그 뾰족하고 살벌한 날로 로키의 가슴을 무자비하게 헤집고 있지 않았을까? 딸바보 아버지들에게는 반드시 치명타로 적용하는, 딸의 입에서 나온 '아빠 싫어!'라는 필살기 한 방에 로키는 그대로 녹다운 되었다.

[보아하니 내가 재미있는 장면은 다 놓친 모양이군.]

그리고 도움을 청하러 떠났던 모노가 내 후원자 겸 상사에 속하는 분을 데려옴과 동시에, 마침내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어, 째서.]

"뭐야? 정신 잃었던 거 아니었어? 설마 지금 니아 씨가 왔다고 그 새 정신 차린 거야? 진짜 독한 년일세."

분명 심의를 각성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마음이 물리력을 갖는 순간 내가 개입하여 그 욕망을 억누름으로서 삶의 유일한 목표가 줄어든 유스티아는 의식을 잃었을 터인데, 놀랍게도 니아 씨가 도착함과 동시에 다시 눈을 떴다. 도대체 니아 씨가 얼마나 밉고 증오스러웠으면, 기절한 상태에서도 그가 온 것을 깨닫고 황급히 정신을 되찾는 거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네무가 만든 환상 공간은 그 특징 탓에 신계에서 내부를 관측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몽마에겐 신계로 넘어갈 힘 따윈 없었을 텐데, 어떻게 로키와 네놈에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었던 거지?]

[뭐야. 이 풍경을 보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거냐?]

[풍경...? 잠깐, 여긴...]

복수에 눈이 멀어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있던 유스티아는, 니아 씨의 지적에 그제서야 꿈의 영역을 다시금 흩어 보았고 이내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깨달았다.

이곳은 꿈의 영역, 달의 바다.

바다의 끝을 통해서 도착할 수 있는, 달의 이면.

뭐? 세상은 둥근데 어떻게 바다를 통해서 달에 도착하냐고? 그래, 믿기지 않는 이야기겠지. 그게 지구에서의 상식이니까. 근데 말했다시피, 여긴 꿈의 세계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꿈이 아닌...

유스티아가 그토록 증오하는 옛 신들의 땅인 꿈의 나라(dream land)라고.

드림 랜드는 꿈 속의 세계답게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곳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달의 바다이다. 달의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바다라니, 정말 꿈 속이 아니고서야 존재할 수 없는 곳이지.

달의 바다에 사는 주민들, 달의 짐승(moon beast)들은 니아 씨와 동맹 관계인 사이. 모노는 단순히 꿈의 영역을 만들어 네무의 환상 공간에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꿈을 다루는 몽마답게 옛 신들의 땅인 꿈의 나라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내가 정시우과 싸우며 시간을 버는 동안, 모노는 니아 씨와 동맹 관계인 달의 짐승들을 통해 니아 씨에게 이곳의 소식을 전달했다.뭐, 설마 거기서 니아 씨보다 먼저 헬과 로키가 나를 돕기 위해 올 줄은 몰랐지만.

[처음부터... 함정에 빠진 건, 나였나...]

즉, 모노가 이 꿈의 영역을 열어 나와 정시우를 피난시켜 준 시점에서, 이 전투는 이미 우리 쪽이 대략적인 흐름을 비틀어 잡은 것이다. 정시우가 나를 쓰러트리고, 유스티아가 제 발로 달의 바다에 발을 딛은 순간, 그녀는 패배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고.

승리의 여신은 아마 그것을 전부 알고 있었겠지. 로키에게 듣자하니, 그녀의 힘은 누군가를 반드시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이길 것인지 아는 능력이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일부러 침묵을 고수하며 유스티아의 편을 들었던 것은, 혹여나 그녀가 지신이 패배할 가능성을 염두하고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묘수. 그렇게 유스티아는 확실히 패배했고, 빅토리아는 문제의 신물인 평등의 저울을 회수할 수 있었다.

유스티아가 정말로 약속을 지킬 것이란 보장도 없고, 애초에 편을 들어서 싸워 봤자 이길 수 없는 것이 보였기에, 일부러 대충 싸우다가 적절히 때를 봐서 이탈했다. 그 덕에 평등의 여신을 위해 빼앗긴 신물을 되찾는다는 목표도 달성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그녀는 승리한 셈이나 다름 없었다.

[고생했네. 뒤처리는 내가 맡도록 하지.]

"네엡."

그렇게 유스티아가 벌인 하나의 사건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

"그런데 넌 왜 여깄냐?"

"제가 같이 따라오면 안 됐나요? 설마... 저를 보고 싶지 않으셨던 건가요? 저는 주인님을 계속 보고 싶었는데... 흑흑..."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 순간 레바테인 든 장인어른이 나를 라그나 아마게돈 꼬치로 만들어서 무스펠헤임의 불길에 구워버릴 지도 몰랐기에, 나는 울먹이는 헬을 필사적으로 달래주었다.

본래 신들은 이 아티피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가장 많은 신들에 의해 만들어 졌고, 신들의 힘이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거나 신으로서의 전지전능함을 드러낼 수 없는 이상한 땅이 바로 이 아티피아다. 그런데 헬은 꿈의 영역에서 나온 지금도 내 팔을 자신의 가슴에 묻은 채, 내 왼쪽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주인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유스티아처럼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 본래 신이 이 아티피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순 없어요. 하지만 신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죠?"

"아, 그런 거야?"

신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즉, 지금 헬은 '죽음의 여신'으로서가 아니라 '일개 평범한 인간 헬'으로서 이 아티피아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어쩐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 신들 특유의 깊은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했더니, 이 세계에서 내 옆에 있으려고 신력을 두고 출입한 건가?

"그나저나 아버님은 그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은 거 맞아?"

나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가슴을 감싸 안고 무릎을 꿇던 로키를 떠올렸다. 설마 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 진심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얼굴이던데.

"괜찮아요. 나중에 따로 찾아가서 풀어드리면 되죠. 지금은... 주인님과 시간을 보내는 쪽이 더 중요하고...♥"

이전에 굴복시켰을 때도 물론 내게 순종적으로 굴게 되었지만, 도대체 못 보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정을 드러내는 정도가 이렇게나 강해진 건지.

"그야, 어쩔 수 없는 걸요. 주인님께서는 상상하실 수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 만날 수 없는,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이성들과 격렬하게 몸을 겹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심정을... 말이에요."

헬의 숨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그 거친 숨에 묻어나오는 진득한 음욕은, 여자의 마음에 무지한 동정이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옷을 다시 고쳐 입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헬은 내 품에 얼굴을 박고서 계속 코를 킁킁 거리며 체취를 맡았다.

"흐으으으으...! 정말, 오랜만에 맡는 주인님의 냄새...! 벌써 스위치가 켜질 것 같아요...♥"

어... 아무래도 못 보던 사이에 조금 많이 쌓인 모양이다.

"자기야?"

그리고 헬이 잡고 있는 팔의 반대편, 오른쪽 어깨를 제 가슴에 품은 음마가 내게 엉겨오며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예민해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내 차례 아니었어, 달링? 나... 달링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옷이 있거든. 아마 달링의 마음에 쏙 들 텐데..."

모노가 내 귀를 핥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하는 사이, 반대편의 헬 또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내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가선 나를 올려다보며 그대로 손가락을 입에 넣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을 선택하면, 그 다리 아래에 달린 물건도 이렇게 해주겠다는 듯이. 모노 또한 내 손을 자신의 가슴팍으로 가져가, 내 손가락이 거대한 유방 한 가운데에 움푹 솟은 유두를 매만지게 하며 야릇한 눈웃음을 흘렸다.

그 노골적인 모습에, 거리를 걷던 랜드필 주민들로부터 부러움과 질투심 가득한 시선이 쏟아졌다. 내가 여자 관계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테지만, 이렇게 대놓고 보여준 적은 처음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야말로 양손의 꽃... 다만 문제가 있다.

죽음의 여신 헬이던, 음마인 모노던, 둘 중 어느 한 쪽이든 내가 진심으로 하루 종일 상대해야 겨우 만족할 정도로 정욕이 강한 여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여자가 나한테 한 번에 구애를 하면...

"주인님...♥"

"달링...♥"

...아, 몰라. 비록 짦으면 이틀에서 길면 일주일 정도 의식을 되찾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사내로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할 수 있을 쏘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기왕 뒤질거면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자신을 간택해 달라며 묘한 기싸움을 벌이는 두 여인의 가슴을 양손으로 각각 움켜쥐자, 헬은 깜짝 놀란 듯이 몸을 떨며 신음을 토했고 모노는 비음 섞인 달콤한 소리를 흘리며 입술을 핥았다.

"어차피 둘 다 상대해 줄 거니까 괜히 서로 시비 걸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

"네에에...♥"

"알았어, 달링♪"

나는 두 사람을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문제와 직면했다.

"아, 랜드필의 선생. 어서 오시게. 좀 늦었..."

"라그나 아마게돈 씨,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시길래 이제서야 오셨..."

가장 먼저 몸에 난 상처에 붕대를 감느라 소매 없는 얇은 티에 돌핀 팬츠 차림이었던 대장군이 나를 맞이했다가 도중에 말이 끊겼고, 그녀의 뒤로 화장부터 머리까지 꾸미는 데 상당히 노력을 기울인 것이 느껴질 정도로 화사한 차림새로 방문한 샴발론 왕국의 왕비님께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 보았다가 이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누비스는 땀을 얼마나 흘린 것인지 얇은 옷이 투명하게 젖은 채로 몸에 딱 달라 붙어서 끝내주는 갈색 피부를 거의 드러내고 있었으며 매우 가벼운 그 일상복 차림새는 평소의 딱딱한 갑옷이나 보는 사람의 속이 터질 만큼 매우 긴 옷만 입고 있던 누비스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일상 속의 꼴림을 훌륭하게 자아냈다.

에슐렌 왕비의 경우 누비스와 정반대로 매우 갖춰 입은 차림새였지만, 본래부터 워낙 예쁜 유부녀였던 그녀가 머리에 화장에 옷까지 아주 진심을 다해서 차려 입고 오니 평소보다 더 어른스럽고 세련된 매력이 돋보였다. 딱딱한 조개 껍질 속에 진주가 있는 것처럼, 저 두꺼운 옷을 풀어 헤치며 그 속살을 탐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하반신이 빳빳해지는 느낌이었다.

친근하고 가벼운 차림새에서 드러나는 은근한 어필과, 제 손으로 포장 하나 하나를 뜯어가는 기대감이 가득한 선물 상자. 어느 쪽이든 상당한 파괴력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 내가 그 두 사람 말고도 두 명의 엄청난 미인을 품에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니아 씨가 대다수의 남성들이 선호하는 것+내 취향 등을 적절하게 버무려 만든 모노의 육체, 그리고 애초부터 내가 꼴리는 데로 만든 헬의 육체. 2D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법한 몸을 위화감 하나 없이 현실로 가져온 듯한 그 육신은, 어지간한 여인들도 인정할 만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음."

나는 직감했다.

내가 좇됐다는 것을.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모노와 헬은 한 번 노린 먹잇감을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순식간에 각자 내 입술과 다리 사이의 기둥을 점거하여 탐스럽게 빨아 먹고, 그 모습에 누비스가 두 눈에서 열정을 활활 불태우더니 이쪽으로 걸어오며 상의를 훌렁 벗어 던지고, 에슐렌 왕비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소파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예전에 들었던 한 교훈을 떠올렸다.

좇을 좇대로 놀리면, 좇된다는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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