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225화 (198/229)

〈 225화 〉 근데 이제 뭐함? (2)

* * *

주의. 이번 회차에는 다소 잔혹하고 잔인한 표현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신체 손상에 대한 잔혹한 표현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

"...으윽. 여, 여긴...?"

차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혐오스럽고 끔찍한 촉수 속에서 버티다 못해 끝내 의식을 잃은 유스티아는 처음 보는 공간에서 눈을 떴다. 그러나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눈을 뜨자마자 그녀를 바긴 것이 생전 본 적 없는 낯선 천장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모, 목소리가... 신력이...?"

신으로서의 힘이 전혀 담겨 있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목소리. 설마 힘을 전부 잃어버린 것일까? 그런 끔찍한 가정을 떠올린 유스티아는 황급히 몸 속의 기운을 갈무리해 보았고, 이내 아직 자신의 안에 정의의 여신으로서의 신력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종의 수단으로 잠시 흐름이 막혀서 밖으로 분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뿐, 힘 그 자체를 아예 상실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분명, 니알라쏘텝... 그 망할 악신의 수작이겠어. 어째서 날 그... 끔찍한 구덩이에서 갑자기 꺼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순순히 당해줄 성 싶으냐."

유스티아의 머릿속에는 평등의 여신에게서 신물인 저울을 훔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속임수와 기만으로 갈취한 신들의 신물이 숨겨진 장소가 들어 있었다. 그곳으로 가서 신물을 챙긴다면, 혹시 실패할 때를 대비해 준비한 플랜 B를 시작할 수 있다. 또 다시 자신을 우습게 보며, 그 지옥 같은 곳에 계속 내버려두지 않고 자신을 밖으로 건져 올린 악신의 오만함과 방만함을 비웃으며 유스티아가 행동을 개시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

"뭐야, 드디어 일어났나."

"...!!"

언제부터인가 이 낯선 방 안에 있던 그녀와 같이 있던 또 다른 한 명이 무심하게 내뱉은 말에, 뒤늦게 그 존재를 알아챈 유스티아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곳엔... 그가 있었다. 라그나 아마게돈. 악신 니알라쏘텝의 사도이자, 그녀의 계획을 망친 망할 남자.

그는 그녀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유스티아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분해된 총기에 묻은 화약 자국을 푸른 천으로 닦으며 말을 이었다.

"곧 끝나니까 잠깐만 기다려. 아직 이 부분에 떼를 다 못 벗겨서... 어라."

하지만 악신의 꼭두각시 따위가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이유 따위 그녀에겐 전혀 없었기에, 유스티아는 곧바로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촤르릉!

"컥....!!"

강렬한 충격이 목덜미에 가해지기 전까진.

신이 된 후로는 딱히 신경을 쓴 적도 없는 호흡이, 신의 힘을 쓸 수 없게 된 지금은 그녀의 돌발 행동을 통제하는 목줄이 되었다. 유스티아는 뒤늦게 자신이 목에 사슬로 이루어진 차갑고 무거운 목걸이를 차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신의 힘을 조금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딱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그 물건을 끊을 방법 따위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이거 당장 풀어라!"

"내가 왜? 풀면 달아날 게 뻔한데, 미쳤다고 그걸 풀어주냐? 그리고 내가 분명 경고했잖아. 곧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자신의 가녀린 팔 힘으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두꺼운 사슬 목걸이를 붙잡은 채, 유스티아는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외에는 이것을 풀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유스티아는 저 망할 악신의 사도를 속여서 목걸이를 풀게 만든 후 이곳을 탈출하겠노라는 계획을 세웠다. 평등의 여신을 비롯한 각종 중상급 신들을 속여 그들의 힘이 담긴 정수인 신물을 빼앗은 자신이라면, 한낯 악신 따위를 맹목적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인간 남자 따위는 가볍게 속여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라그나 아마게돈이 분해된 총기에 묻은 화약 떼를 닦아내고, 뻑뻑한 곳에 윤활유를 바르고, 그것을 다시 재조립하는 긴 시간 동안 유스티아는 초조한 마음으로 제발 얼른 끝내고 자신을 풀라며 마음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질렀다.

"흠,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마침내 총기 손질 작업을 마친 라그나는 총기를 허리춤의 파우치에 고정시킨 후 총기 손질에 사용한 도구들을 느긋하게 정리하고, 손에 묻은 기름과 화약 떼를 여유롭게 씻어내는, 보는 사람이 절로 속이 타들어가는 길고 짜증나는 과정을 거치고서야 그녀의 앞에 당도했다. 한 때 자신의 공격에 부상을 입고 다죽어가던 인간이, 되려 자신을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의 건방진 시선에 날카롭게 마주 보며, 유스티아는 이를 드러냈다.

"그래, 뭐. 일단 궁금한 게 많겠지? 질문해 봐. 대답해 줄 테니."

"...여긴 어디냐?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여긴 아티피아에 있는 내 도시, 랜드필의 남부에 있는 내 개인 소유의 빌딩이야. 네년이 여기에 있는 건, 니아 씨가 너의 신변을 내게 양도했기 때문이지."

"니아... 니알라쏘텝이, 나를 너에게 양도했다고? 그 망할 악신 자식... 도대체 날 얼마나 우습게 보는 거냐...!!"

자신의 원수에게 또 한 번 무시 당했다는 굴욕적인 사실에, 유스티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금의 여과 과정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그 자가 나를 너한테 넘겼다고? 하,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군. 그 혐오스럽고 징그러운 것들이 내 몸을 갖고 놀 때조차 굴하지 않았던 내가, 고작 사내 따위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건가? 그리고 네놈은 또 그런 추잡한 제안을 수락한 것이고? 하, 아무리 여자에 고픈 자식이라고 해도 설마 그렇게 까지..."

탕!

"아, 씨발. 아가리 안 해?"

"끄, 끄으으윽...!"

분노나 혐오와 같이 강렬한 감정은 때론 사람의 눈을 가리곤 한다. 그리고 니알라쏘텝의 수작으로 인해 신으로서의 힘이 완전히 봉인되었기에 이 사내가 자신을 죽인다고 할 지라도 자신은 그 어떤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유스티아는 뒤늦게 그 몸으로 배웠다. 자신의 허벅지에 손가락 하나는 가볍게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서 말이다.

"크으으으...! 그 사특하고 천박한 악신이나, 그걸 좋다고 따르는 야만스러운 짐승이나, 아주 합이 잘 맞는 구나...!"

물론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녀가 품은 그 한이 서린 증오를 전부 없애주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고통을 장작 삼아 원수를 향한 증오는 한층 뜨겁게 타올랐다. 눈앞의 사내를 향한 혐오감과 함께 말이다.

"어리석은 사내.. 그 악신이 정녕 네가 바라는 것을 들어줄 성 싶으냐? 너 또한 결국 그 자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 자의 손에 좋을 대로 갖고 놀아지다, 실증이 나면 금새 버려질 아둔한 광대 주제에...!"

"맘껏 떠들어 봐라, 실패자."

"뭐, 뭐라고..?"

유스티아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죄다 내뱉었으나, 라그나 아마게돈이 내뱉는 독설 한 마디에 되려 밀려났다.

"됐고, 질문은 그게 끝이냐?"

"하...! 미개한 인간이 추악하고 추잡한 악신 하나만 믿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니알라쏘텝이 내 힘을 묶어 두었다고 해서, 정녕 너같은 것이 나를 어찌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자기도 한 때는 그 미개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머리가 나쁜 거냐? 하긴, 그러니까 그 미개한 인간에게 패배한 거겠지. 그리고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라그나 아마게돈은 더 이상 말상대를 하는 것도 머리가 아프고 귀찮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네 힘을 틀어막은 건 니아 씨가 아니라 나거든?"

"...뭐라고?"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그녀로서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신의 힘을, 인간이 막았다고? 도대체... 어떻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돼는 이야기다. 신의 힘이 어째서 신의 힘이라고 불리는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위대한 창조자가 내려준 막강한 권능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을 리가...

"못 믿는 것 같으니, 직접 원리를 설명해줄까?"

심의와 권능은 근원과 결과는 천차 만별이나 그 결과값으로 향하는 과정과 방식이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라그나 아마게돈이 개인적으로 추진한 실험 결과, 한 때 권능을 소유했던 자는 심의를 다루는 것에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능숙해 졌다. 아마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심의와 권능은 서로 사용하는 재료와 목표로 하는 결과가 다르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꽤 비슷한 셈이다.

그리고 유스티아는 권능의 힘만으로는 승리를 거머쥘 수 없는 상황에서 니알라쏘텝을 향한 복수심과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이 한계를 넘어 심의를 발현했고... 오히려 그것이 원인이 되어 패배했다.

그런데 여기서 유스티아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심의라는 것은 권능처럼 가볍게 세상의 섭리를 비트는 힘이 아닌, 그저 인간 개인의 마음의 의지가 현실로 실체화 된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힘이 물리력을 갖춘다는 것은, 반대로 물리적인 수단으로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의가 발현되는 과정에서 그녀의 마음이 외부로 드러났고, 욕망의 증폭과 억제라는 힘을 통해 심의에 간섭할 수 있던 라그나 아마게돈은 자신의 힘으로 그녀의 심의를 억제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내면에 침투할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든 셈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심의라는 힘을 발현한 신은, 내게서 심의 뿐만 아니라 권능까지도 봉인될 수 있다는 거지. 뭐, 애초에 심의는 인간의 마음이 가진 힘이니, 인간 출신의 신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고 현재 심의를 발현한 다른 신도 없을 테니, 내가 권능을 봉인할 수 있는 신은 어디까지나 유스티아 네년 뿐이지만."

즉, 라그나 아마게돈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자신의 힘을 통제하는 것은 악신이 아닌, 그 사도 개인이 가진 힘이라고.

".....아아."

신의 힘을 쓸 수 없는 상태로 낯선 곳에 갇혀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심지어 그 힘을 봉인한 자가 악신도 아니고 그의 사도인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유스티아의 자존심과 의욕을 단숨에 깎아내렸다.

"더 궁금한 건 없어 보이니, 이제 내 용건을 꺼낼 차례군. 나는 귀찮게 돌려 말하는 것은 딱 질색이니,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겠다. 유스티아, 네가 빼돌린 신물의 위치를 불어라."

"...신물의 위치를 말하라고? 왜? 네 그 잘난 신놈한테 갖다 바치고, 그 구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아무래도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은데."

뚜드드득.

라그나 아마게돈의 오른손이 기괴한 소리를 울리며 일그러지더니 이내 인간과 늑대의 것이 합쳐진 것으로 변했다. 그는 늑대 인간의 억센 손길로 유스티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우득.

"­­­­­­­­­­!!!"

유스티아의 벌어진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어지간한 고문에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던 유스티아라도 해도, 설마 그가 이 상황에서 자신의 팔을 레고 블럭 분해하듯 냅다 뽑아버릴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런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고문은 니알라쏘텝의 방식이 아니었다. 니알라쏘텝은 인간의 육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주는 것보단 정신에 부하를 주어 안 쪽에서부터 무너트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끊임 없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하며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그 악신의 고문법이다. '장난감은 망가지지 않도록 살살 다루어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말이다.

"끄, 으으으윽...!"

이 사내는 다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의 팔을 뚜득 하고 뽑아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막말로 사람은 주먹 만한 돌 한 개만으로도 죽일 수 있고, 죽을 수 있으니까. 도구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그것에 담긴 의지. 사람을 죽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면, 사람이 맨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대개의 살인자들은 고의가 아닌 실수로 저지른 것이거나,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귓구멍 제대로 열고 똑바로 들어."

"흐으윽...!"

이 남자는 어느 쪽도 아니다. 상대가 자신과 같이 말하고 생각하는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것의 생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인격체를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살인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 남자에겐 없다. 그것은 단순히 두려움과 망설임이라는 감정을 거세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과, 두려움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느끼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처럼.

"난 네가 어떤 사정을 안고 있던, 정말 좆도 관심 없어. 네가 아무리 불행하고 불운한 사정이 있다고 한들, 결국 나한테 있어선 단순히 싸가지 없는 살인교사범에 불과하거든. 그러니까 쓸 데 없이 세탁기 돌릴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해라. 나한테 질문도 하지 말고. 자, 네가 뒤통수 친 자들의 중요한 물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그 위치를 불어."

"...내가, 그걸 순순히 불 것 같...?!"

뿌드드드드득...!

"아, 아아아아아악!!! 이, 이 미친 새끼...!!!"

졸지에 양쪽 팔을 잃어버린 유스티아는 생전 겪어볼 일 없는 끔찍한 고통에 색색거리면서도, 눈을 희번뜩거리며 눈앞의 사내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는 것은 잊지 않았다.

"또 헛소리를 하면, 다음엔 나머지 두 다리를 뽑을 거다."

"끄으으으윽.....!!"

"자, 신물의 위치를 불어."

고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죽이지 않고 고통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내의 폭력은 고문이라 할 수 없다. 그녀의 죽음 따위 안중에도 없고, 정보를 구할 수 있으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 없다는 식이다.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자신을 향한 확고한 살의. 그것을 느낀 순간, 유스티아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신물은 어딨지?"

"꺼, 꺼져...!"

빠드드드득!!!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딨냐고."

"마, 말할 생각... 없...끄으으으으윽..!!"

뿌득, 뿌드득...!

왼쪽 다리와 달리, 오른쪽 다리는 한 번에 뽑히지 않고 중간에 꺾여 기괴하게 덜렁거렸다. 라그나 아마게돈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끔찍한 광경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 그저 일이 조금 귀찮게 되었다는 듯이. 이내 그는 발목을 잡은 손을 비틀어 돌리며 힘을 주었고, 유스티아의 비명 소리를 배경으로 그녀의 오른쪽 다리의 힘줄이 뚝 뚜둑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끊어지며 그녀의 마지막 사지가 그 몸에서 완벽히 분리되었다.

"허억, 허억, 허억...!!"

진작에 쇼크로 심장이 멈추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강렬한 고통 속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유스티아는 기어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지금 신의 힘이 봉인 당해 권능을 쓸 수 없다고 해도, 그 몸은 여전히 신의 것. 팔다리를 모두 잃었음에도 죽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웃는 유스티아에게,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물의 위치, 말해."

"흐... 이미 팔다리를 전부 뽑아 놓고서, 이번엔 또 뭘 뽑으려고? 내 머리? 하, 내가 말할 것 같아...?"

"그럼 뭐, 별 수 없지."

라그나 아마게돈은 한숨을 쉬며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고약한 짐승 특유의 냄새가 풀풀 풍기더니, 덩치 큰 들개 한 마리가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들개는 사람 하나는 물어 죽일 법한 사나운 생김새와 달리, 라그나 아마게돈은 자신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듯 낑낑거렸다. 라그나는 그 들개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유스티아에게 말했다.

"10초 준다. 그 안에 신물의 위치를 불지 않으면, 넌 이 개한테 개처럼 따먹힐 줄 알아라."

"...하, 하하...! 그래, 네놈의 그 빈약한 머리로 생각해 낼 고문은 그게 전부냐? 니알라쏘텝의 그 역겨운 촉수에게 욕보여도 참았던 내가, 고작 들개 따위한테 더럽혀지는 것이 두려워 너에게 신물의 위치를 발설할 것 같냐?"

"10, 9, 8..."

라그나 아마게돈이 손을 떼자, 들개는 이내 유스티아를 향해 몸을 돌리며 이를 드러냈다. 그러자 다리가 없는 탓에 평소보다 시야가 한층 낮아진 유스티아의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들개의 다리 사이에 달린, 도저히 일반적인 짐승에겐 존재할 리 없는 그것이.

"무, 무슨...?"

니알라쏘텝의 촉수가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치욕과 수치를 주기 위함이었다면, 각종 동물들의 성기에서 가장 흉악한 부분만 골라서 만든 듯한 저 끔찍한 물건에는 그녀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겠다는 라그나의 악의가 절로 엿보였다. 최소한 정상적인 동물의 생식기에는, 장미 넝쿨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저런 흉악한 가시가 잔뜩 돋아나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저 끔찍한 것이 곧 자신의 여성기를 헤집을 것이란 생각에, 유스티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3, 2, 1... 0."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