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근데 이제 뭐함? (6)
* * *
사실 잘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크툴루 신화 내에서도 매우 천재적이며 인간을 농락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 기어오는 혼돈이, 어째서 나한테는 그토록 공정한 태도를 유지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니아 씨에게 있어 나는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다른 인간들과는 달랐으니까. 정확히는, 자신이 직접 가르치고 키울 차기 후천적 초월자로서 나를 점찍은 것이다.
[어차피 유스티아가 신의 자격을 박탈 당하니, 그 공석을 누군가는 메꿔야 하네. 자네는 유스티아의 만행을 사전에 저지한 공적도 있고, 죽음의 여신이나 나와 같은 여러 신들과도 연이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그럼... 설마 저보고 정의의 신이 되라는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계속 악역을 맡아온 나한테?
"세상에 저만큼이나 정의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없을 걸요?"
[오해하지 말게. 유스티아의 빈 자리를 자네가 차지한다고 해서, 자네가 반드시 정의를 관장하는 신이 되는 건 아니니.]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러니까 니아 씨의 말씀은 제가 그 공석을 채울 신이 되어서, 제 사람들이 살 세상을 제 손으로 가꾸라는 겁니까?"
[뭐, 그렇지.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요청해도 좋네. 나는 자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
"아니, 또 무슨 기대를..."
니아 씨는 싱긋 웃으며(얼굴 전체가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서 이목구비를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왠지 그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태초의 신이 바라는 것은, 완벽한 세계의 창조. 그러나 여태 많은 신들이 노력했음에도, 그 목적에 다다른 자는 없지. 그나마 그 목표에 가장 근접한 세계가 둘 있는데... 그게 바로 지구, 그리고 아티피아일세.]
지면에서 촉수가 일어나 서로 엮이며 이내 텔레비젼의 형태가 되었다. 아니, 저 양반 촉수는 대체 못 하는게 뭐야? 저번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더니, 이번엔 또 시청각 자료를 겸비한 화면으로 변하네? 완전 만능 아니야? 어쨌든 촉수로 만들어진 텔레비젼 화면에, 그의 설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들이 연이어 비추어졌다.
[아티피아는 계속해서 이방인들을 받고 있는 추세일세. 여러 세상을 소재로 만든 세계라서 땅덩어리가 워낙 넓지만, 정작 사람이 부족해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된 땅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지. 그리고 태풍을 경험한 이들이 그것을 대비하는 것처럼, 아티피아에는 시련이 필요하네. 주민들이 평화에 찌들어서 서로를 향해 이기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미워해야 하는 공동의 적이 필요하지.]
"그게 제가 수행해야 할 배역입니까?"
[난 눈치가 빠른 사람을 아주 좋아한다네. 그래서 내가 자네를 특히 총애하지.]
온실 속의 화초는 뭐 하나만 잘못해도 픽 하고 시들어 버리는 것에 비해, 아무데서나 자라는 잡초는 설령 거센 폭풍우가 지나가도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니아 씨는 내게 폭풍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아티피아라는 세계가 신의 힘이 없으면 금방 무너질 연약한 세계가 아닌, 지구처럼 신이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견고한 세계가 될 수 있도록.
[자네는 시련이 되는 거야. 아티피아가 더욱 견고해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시련을 내려 줄 신이 되는 거지.]
"왜 본인이 하시지 않으시고요?"
[사실 난 이미 아티피아에서 블랙 리스트 신세라네.]
자네 이전에 보냈던 사도 둘이 좀 거하게 사고를 쳐서, 나는 직접적으로 아티피아에 관여하는 게 금지되어 있지. 저도 사고는 많이 쳤는데요? 자네가 한 일은 그 두 친구가 한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네. 도저히 하하호호 웃으며 할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니아 씨는 혼란을 즐기고, 세계의 입장에서 적절한 스트레스는 큰 성장으로 이어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냐며, 자신을 대신하여 아티피아에 스트레스를 줄 적절한 대리인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루미너스의 세상에서 악역을 연기하던 나를 발견한 것이고.
"근데 원래 신은 아티피아에 관여하면 안 되는 게 규칙 아닌가요?"
아티피아는 많은 신들의 손을 거친 세상이지만, 동시에 신의 직접적인 개입을 거의 금하는 특이한 곳이다. 유스티아가 부하의 힘을 통해 자신의 강신을 숨긴 것도, 신이 직접 현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허락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 랜드필의 대표인 인간인데, 내가 신이 되면 랜드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거 아나?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예외가 있지.]
"글쎄요... 아티피아를 원하는 자들이 절 곱게 보지 않을 것 같고, 그런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모두가 무기를 들지 않기로 약속한 땅에서 오직 한 명 만이 '혹시 누가 무기를 들 경우를 바로 제압하기 위해서 나는 무기를 들고 있을게!'라고 말해 봤자, '왜 너만 무기를 드는 데? 네가 나쁜 마음 먹으면 어쩌려고? 나도 무기 들거야!'라면서 모두가 규칙을 깰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걸 저 영리한 옛 신이 모를 리가 없고. 니아 씨는 싱긋 웃으며 이내 해답을 내놓았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 극독 버섯과, 한 시간 정도 배탈이 나는 약한 독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뭘 고르겠는가?]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저 말에 따르면 나는 아티피아의 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곳에서 초월자로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인 개입을 할 자격을 갖춘 유일한 신이 될 것이며, 만약 다른 이들이 그것에 불만을 품는 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냥 다 뒤집어 엎을 것이라는 일종의 협박인 것이다.
신입 초월자가 아티피아에 유일하게 개입할 수 있는 예외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천 개의 얼굴을 가진 혼돈의 군주가 다 망쳐버리거나. 아티피아를 원하는 이들이 절대 후자를 선택할 리가 없을 테니, 대부분 전자를 고르겠지.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하는 심정으로.
"그 과정에서 온갖 회유와 협박이 제게 향하겠죠."
모두가 무기를 들지 않기로 약속한 곳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드는 것이 허락된 사람.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자길 대신해서 때려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내가 자네의 후원자가 될 것이고, 자네에게 오는 각종 압박은 내가 막아주겠네. 자네가 어엿한 한 명의 초월자로서 성장하는 날까지. 대신, 이후에도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주기만 하면 된다네.]
어려울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내가 너무나 좋은 제안이다. 아티피아라는 중요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초월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잡을 수 있고, 거기에 내게로 향하는 협박과 회유, 각종 음모를 대신 막아내주며 동시에 내게 필요한 것을 가능한 만큼 지원해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너무 나에게만 좋은 조건은 되려 수상한 법이지만...
"좋아요. 그럼 니아 씨를 한 번 믿어보죠."
[하하... 모두가 믿지 않는 내게 유일하게 믿음을 보낸다니. 가끔 자네는 깜짝 놀랄 만큼의 순수함을 내보이곤 하지.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신뢰 받지 못하는 옛 신은, 자신을 믿어준 예비 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계약 성립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건 이쪽에서 할 소리라네, 후배님.]
꽉 마주 잡은 손을 흔들며, 선천적 초월자와 (예비)후천적 초월자의 약조가 맺어졌다.
*
"...흠. 오늘도 랜드필은, 참 시끌벅적하네."
요즘에는 내가 없어도 부하들끼리 알아서 랜드필을 잘 굴린다. 애초에 내가 오기 전부터 이 도시를 관리하던 녀석들이었고,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그들이 계획하고 진행한 업무에 최종 승인을 내리고 그 보고를 받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남는 시간 동안, 이 초월자의 힘을 쓰는 감각을 익히고 있었다. 심의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각은, 아무리 연습해도 좀처럼 진전이 보이질 않았다. 심의가 동서남북의 방향을 조절하는 평면이라면, 권능... 신의 힘은 거기에 Z축이 더해진 3D였기 때문이다.
뭔가 감이 오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감각... 권능을 빌려 쓰는 인간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육체로 다룰 수 있는 선에서 한정된 권능을 쓸 뿐이고, 그것은 신이 가진 본연의 권능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기에 신에게 선택 받은 자들의 경험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누비스는 드디어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달려 왔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하악, 하악....♥"
그래서 내가 위로해줬고, 지금은 소파 옆에 나자빠져 있다. 너무 진하게 위로해줬는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 여자는 유독 키스에 약하단 말이지.
신의 힘을 익히는 과정의 첫 결과물로서, 나는 랜드필에 있는 내 업무실과 유스티아의 세계에 전이시킨 아마게돈 영지의 내 업무실의 공간을 연결시켰다. 그래서 나는 이 업무실을 통해 유스티아의 세상 속 아마게돈 영지와 아티파이의 랜드필을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었다. 두 세계를 쉽게 오고갈 수 있게 되어서, 어느 한 쪽을 오래 방치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윽, 모노...! 나 지금 집중하고 있잖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모노 릴리스는 전부터 과감한 스킨쉽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요즘은 그 빈도가 좀 심해졌다. 특히 내가 미아의 상대를 해 주고 온 이후엔, 유독 집요하게 달라 붙었다. 마치 내 몸에서 자신의 냄새를 남겨, 미아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모노는 마르스나 레이 같은 다른 여자들한테는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서, 어째선지 미아만큼은 굉장히 경계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지옥의 여신인 헬보다 더.
"...이런, 가 봐야 할 시간이네. 모노, 나머지는 오후에 하자."
"스읍... 달링, 오늘 밤은 잘 생각 하지 마."
"....그래."
끈적끈적한 음욕을 드러내는 모노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아티피아도 유스티아에게서 뺏은 세상도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니아 씨의 영역. 그에게서 신의 힘을 다루는 법에 대한 특강을 들을 시간이라서 그의 영역에 찾아왔는... 데...
나를 반긴 것은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중성적인 외형의 외신이 아닌, 침대 위에서 떡방아를 찧으며 음란한 살내음을 팍팍 풍기는 선정적인 모습의 여인이었다.
"하악...♥ 하윽...♥ 흐으으으응...♥"
"....."
대체 왜 루미너스 여신이 혼자, 그것도 니아 씨의 영역에서 달콤한 신음을 흘리며 자기 위로를 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내 것과 아주 유사한 딜도를 바닥에 고정시킨 채 그 위에서 거칠게 허리를 내리찍으면서.
혹시 이 방에 환각을 보게 만드는 힘이 있나 살폈으나, 그런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즉, 내 앞에서 요란하게 자위하는 저 여인은 내가 아는 그 빛의 여신 루미너스가 맞다는 뜻인데...
여신의 품격이 절로 느껴지는 우람한 둔부가 팔뚝 만한 모조 성기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며, 찌걱찌걱 거리는 끈적한 물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자신을 위로하는 행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누가 와서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이 허당 여신은 대체 왜 여기서 자위를 하고 있는 거람? 그것도... 남의 것을 본 딴 물건으로? 애시당초 내 사이즈의 딜도는 또 어디서 구한 거야?
"크흐으으읍...♥"
땀과 애액을 마구 흩뿌리며 허리를 쿵떡쿵떡 내리찧던 여신은, 이내 간드러지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절정에 도달하여 멍한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고, 그녀의 눈에 현실감이 돌아오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에 집중하느라 타인이 그것을 보고 있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거기에 이 때 목격자가 남성이며, 동시에 지인이라며 자기 위로에 사용 중인 물건의 베이스가 된 사람일 때 여자 쪽에서 느낄 수치심은 어느 정도일까?
"꺄,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정답. 내 고막에서 피가 흐를 만큼 높은 데시벨의 비명을 내지를 정도.
"다, 당신이 왜...! 그, 그리고 대체 어, 어어, 언제부터...!"
설마 남자의 3의 다리를 화나게 만드는 괘씸한 몸매에 비해 그 순박하고 여리여리한 심성을 갖고 있던 루미너스 여신이, 스스로를 위로할 때는 이토록 관능적이고 야릇하게 변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저야 뭐, 니아 씨에게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온 거지만요...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루미너스 여신 님, 당신은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그, 그, 그건..."
고개를 푹 숙여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우물쭈물하는 여신의 모습은 정말 놀려먹기 좋은 것이었고, 나는 심술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 쪽이 매우 고달프다고 해도, 다른 신의 영역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좀... 게다가 사용 중인 그건 아무리 봐도 제.."
"그만! 그마아아아안!!"
이야, 이 여신님은 진짜 놀려먹기 좋은 여신님일세.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이 여신 님도 진짜 예쁘긴 하네.
순수함을 드러내는 새하얀 백의는 땀에 젖어 몸에 달라 붙어 속살이 비추고, 가랑이 사이에서 흐르는 애액은 침대 시트를 흥건히 적셨다. 빛의 여신은 물이 많은 체질이다, 메모...
맑고 여린 심성을 지닌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모습은 또, 얼마나 남자의 가학적인 성욕을 자극하는지. 게다가 조금 전까지 그런 엄청난 모습을 보여줘 놓고서, 이대로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나는 말 없이 웃으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루미너스는 내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그저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본인이 한 짓이 있어서, 차마 눈을 마주치기 힘든 모양이다. 나는 젖은 천에 감싸진 탐스러운 한 쌍의 과실을 향해 손을 뻗었다.